-
-
당신이 살았던 날들 - 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하여
델핀 오르빌뢰르 지음, 김두리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월
평점 :
『당신이 살았던 날들』
-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하여
델핀 오르빌뢰르 / #북하우스
.
.
🔖아무도 죽음에 대해 말할 줄 모른다. 아마도 그것이 죽음에 대해서 내릴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정의일 것이다. 죽음은 말을 벗어나는데, 죽음이 정확히 발화의 끝에 도장을 찍기 때문이다. 그것은 떠난 자의 발화의 끝일 뿐 아니라, 그의 뒤에 살아남아 충격 속에서 늘 언어를 오용할 수밖에 없는 자들의 발화의 끝이기도 하다. 애도 속에서 말은 의미작용을 멈추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것이 더이상 없음을 전하는 데에만 종종 쓰일뿐이다. p139
.
.
📖프랑스의 세 번째 여자 랍비이자 철학자이고 작가인 오르뵐뢰르의 "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한 11편의 이야기. 저자가 하는 랍비의 일이란 의례를 집행하고 사람들과 함께 그들을 가르치는 것, 「성서」의 텍스트들을 번역해서 그것들을 읽을 수 있게 해주고, 한 전통의 목소리들을 각 세대에 들려주는 것이라지만 제대로 말하자면 '이야기꾼'이다. 그리고 오르뵐뢰르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이야기는 시간 사이와 세대 사이에, 존재했던 사람들과 존재할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우리의 거룩한 이야기는 살아 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 사이에 통로를 연다. 이야기꾼의 역할은 그 입구에 서 있으면서 그곳이 열려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p20
.
.
책 속의 11편은 누군가의 죽음에서 이어진 이야기들을 촘촘히 엮어나간다. 그 방식이 평소 죽음에 관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 그러니까 살아 남은 자들이 갖게될 지독한 슬픔이나 상실로 인해 마음이 동요되어 눈물을 안 흘릴수가 없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내게 제일 크게 다가왔다. 물론 그 감정들이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만 '죽음'의 고유한 개별성을 넘어 다른 관점으로 죽음을 응시할 수 있는 가르침이 담겨있다고 느꼈다. 저자가 들려주는 유대 전통 문화(중에서도 장례의식)와 히브리어의 어원은 생경한만큼 신비로운 요소가 많았고 탈무드나 성서 속의 이야기들은 솔직히 재밌으며(!) 대담함이 엿보이는 부분이 많았다. 등장인물들의 종교적 가치관이라던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확실히 삶 쪽으로 더 기울어져 있달까. 그리고 때론 이런 방식이 애도를 건네는 자에게도, 받는 이에게도 필요로 하는 언어일 수 있다는 것, 적어도 죽음을 겪거나 미래의 죽음 앞에서 허우적거리지는 않겠끔 해주지 않을까, 하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었다.
.
.
🔖나는 자주 생각한다. 우리의 장례식 날에 우리의 삶이 비극의 형식과는 다르게 이야기될 수 있고, 우리가 다른 어휘와 다른 상황의 언어로 회상될 수 있기를, 그리고 우리의 삶 역시 스릴러, 로맨스 시리즈, 신화, 심지어 대중적인 코미디 영화처럼 간주될 수 있기를, 내가 사랑하는사람들 역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의 장례식에서 우리가 우리의 죽음으로 요약되지 않고, 그래서 우리가 살아생전에 얼마나 살아 있었는지를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p57
.
.
📖하지만 이 책이 죽음을 말하면서 죽음을 배제하고 건조시킨 이야기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해두고 싶다. 이 책은 죽음의 끝이 아닌 죽음과 삶이 함께 하는 이야기이며 내가 낳은 내 삶의 이야기가 "반드시 살아남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
.
🔖『성서』는 삶과 출생의 이야기다. 더욱이 히브리어로 '이야기'라는 단어 '톨레도트toledot'는 '출생'이라고 일컬어진다. 당신의 삶은 무엇보다 당신이 낳은 것으로 이야기된다. p142
🔖죽음을 배운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렇다. 단 두려움을 회피하지 않고 모세처럼 돌아서 미래를 본다는 조건하에서 가능하다. 미래는 우리 앞이 아니라 우리 뒤에, 우리가 막 오른 산의 흙 위에 새겨진 우리 발자국에 있다. 그 흔적 속에서, 우리를 뒤따를 사람들과 우리 뒤에 살아남을 사람들이 우리가 아직 거기에서 볼 수 없는 것을 읽을 것이다. p222
🔖우리가 튼튼하게 세운 모든 것이 결국 마모되거나 사라질 때, 약하고 일시적이며 빈틈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세상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지나간 존재의 입김은 증발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숨을 불어넣고, 우리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데려간다.p271
.
.
✔북하우스 서포터즈 자격으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
.
#당신이살았던날들
#랍비 #유대교 #장례식 #삶 #죽음 #히브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