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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 자기 삶의 언어를 찾는 열네 번의 시 강의
정재찬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군가 '누구나 시 하나쯤은 가슴에 품고 산다'고 했던가(찾아보니 시집 제목도 있다), 백마디 말이 적힌 책 보다 한 편의 짤막한 시가 더 마음에 와닿을 때가 있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시어마다 담겨 있는 시인의 마음이 독자의 마음에 그대로 전달이 되는 순간일 것이다. 수능을 끝으로 '시'라는 것은 참 오래 놓고 살았다. 단지, 재미가 없어서라기 보다는, '시집' 이라는 것은 책 중에서도 범접하기 힘든 책이었다. 한 권의 책이 온전히 시로만 담겨 있는 시집은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자연스레 시와 멀어졌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시집을 한 권, 한 권 사게 되었다. 그게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을 갖고 싶어서였는지, 류시화 시인이 엮은 시집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의 제목에 홀딱 반해서 였는지, 아니면 또 다른 계기가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우연히 내 책장에도 시집이 자리하게 되었지만, 시집이라는 것을 한 권 꼬박 읽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또 시집과 멀어졌다. 그러다 정재찬 교수님의 책 『시를 잊은 그대에게』를 만났다. 그때의 기억은, 책의 내용도 좋았지만, 제목에 한대 맞은 느낌이었달까.
이번 책도 우선 제목부터 끌렸다. 교수님이 직접 제목을 지으신건지, 편집자가 지은 제목인지 알 수 없지만 시를 다루는 책인만큼, 제목의 단어에도 힘이 느껴졌다. '인생', 쉽게 사용하는 단어지만 이 책에서 만큼은 크게 다가왔다. '그래, 세상에 치여서 또 시를 잊고 살았구나.' 시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다시금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게 안내하는 책. 정재찬 교수님은 인생의 14가지 커다란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온다. 물론 시와 함께다(시 이외에도 소설이나 에세이, 사설 등 다양한 글이 함께 온다). 시를 강의 한다고 하지만, 사실 읽고나서 드는느낌은 인생을 강의한 느낌이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세상속에서 조금 돌아보면 볼 수 있는 이야기들, 혹은 정말 나를 두고 이야기하는 것만같은 이야기를 시와 여러 글을 통해 해주신다.
책 속의 이야기들은 우리와 멀리 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주변의 이야기 혹은 나의 이야기에 가까웠다. 사실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홀로 세상속에 분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주변에 함께 손내밀어 같이 나갈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는 것. 함께 살아가고 있는 시인들이, 작가들이 우리가 할 법한, 혹은 하게 될 생각들을 시와 글로 표현해 놓았다. 그것을 적절하게 가져와 읽어주시는 교수님의 자상함에 책을 읽는 내내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같은 시를, 같은 글을 혼자 마주했을 때는 그저 스쳐지나갔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이 책의 묘미는 바로 거기 있었다. 그저 인생을 이야기하는 에세이가 될 수 있었는데, 그 곳에 여러 작품들을 함께 데려와 독자에게 더 큰 울림을 줘버리는 것.
삶을 또 살아가면,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도 시를 마주하는 시간도 또 잃어버릴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처럼 한번쯤 멈춰서서 인생을 보듬고, 생각을 보듬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삶에 좋은 휴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언젠가 또 우연히 마주하는 시에서 나의 인생을 읽을 수 있도록, 또 다시 내 인생을 살아내보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