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 개정판 현대사상의 모험 14
조셉 캠벨 지음, 이윤기 옮김 / 민음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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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의 힘>에서 조셉 캠벨에 대한 소개를 하였으므로, 여기서는 이 책과 조셉 캠벨의 연관성 내지 책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먼저 이 책은‘집단의 무의식과 원형’에 대해 탐구하는 융 학파의 견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인간의 영혼과 심상은 시대와 나라를 불문하고 그 모습과 결을 같이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여러 신화나 옛이야기, 동화, 민담에서 발견한 수많은 주제들을 모아놓고 스스로 ‘그것’이 밝혀지게 한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이라면 거치게 되는 우리 인생의 모습을 간극과 행간을 뛰어넘는 시적 언어로 살려내고 있다. 토마스 만은 “시인적 본성은 심리학적 관심과 무관하지 않고, 심리학적 관심은 신화에의 관심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조셉 캠벨은 시인의 마음을 갖고 현대인의 마음속 모습을 신화를 빌어 생생하게 이 책에서 살려낸다.


  이 책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책에는 옛날이야기가 가득하지만 그것은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삶의 모습은 궁극적으로 ‘이야기 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수많은 이야기가 펼쳐진 숲을 걷다보면 저절로 ‘온전한 삶’이 떠오를 것이라고 여기며 이 책을 저술했다. 책 속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최신형 오이디푸스의 화신, 미녀와 야수의 속편이 오늘 오후에도 뉴욕의42번가와 50번가 모퉁이에 서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에 우리가 읽은 동화 속 내용이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인류의 삶은 태초부터 그 뿌리를 같이 한다. 이 책은 삶의 신비로 가득하고,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는 이야기로 넘쳐흐른다.


  인간의 삶은 문턱 넘기의 과정이다. 우리는 출생하고, 성인식을 거쳐 취업이란 것을 하고, 이성을 만나 결혼하며, 그 후 장년과 노년의 삶을 맞는다. 이 책은 삶을 살아가는 이라면 누구나 거치게 되는 모습을 이야기한다. 삶이 원활하지 않을 때 우리는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성인식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어른이 된 남자가 있고, 이성과의 만남에서 온전한 기쁨을 맛보지 못하는 청춘이 있다. 그리고 인생의 묘미가 체화되지 못한 장년과 이승에서의 삶을 마무리 하지 못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노년이 있다. 삶이 힘든 이유 중 하나는 적절한 때에 요구되는 인생의 과업을 해결하지 못해서이다. 이 책은 ‘온전한 삶’의 원형을 우리에게 선사하니, 인생이 힘들다고 여겨질 때 읽으면 좋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저마다 자기 인생의 영웅들이다. 이 책은 사람들에게 문제에 머무르지 말고 용기를 내어 삶의 중심으로 뛰어들 것을 당부한다. 지금의 삶이 우리가 살아야 할 인생이다. 생명은 매순간 그대를 부르고 있다. 거부하지 말고 뛰어들어 살아있음의 황홀을 체험하라. 기꺼이 죽임을 당하고 영광스럽게 재생하라. 나와 네가 둘이 아님을 깨달아라. 그리하여 삶과 온전한 화해를 하라. 저자는 이런 식으로 우리를 선동하며 나서고, 이 과정이 바로 삶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신화가 현대의 정신분석에 많이 기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정신분석 장면에서 참여자는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두려운 용과 대면하게 된다. 이어서 욕지기가 나는 갖은 시련에 빠지게 되고, 호부와 액막이를 지니고 혼란 끝에 보편성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다. 마지막으로 세상의 편견을 바로 잡고, 넓은 관계성의 마당으로 나와 평온한 일상을 살아낸다. 결국 이 과정은 자기의식의 확장이고, 의식의 확장이 바로 삶이라고 저자는 결론짓고 있다.


  캠벨은 이 책에서 신화의 이야기를 영웅이라는 가슴 떨리는 주제로 잘 정했다. 그에 맞춰 보편성 있게 목차를 훌륭히 잡았다. 그리고 옛날이야기라는 케케묵은 재료를 가지고, 누구보다도 현대인들의 입맛에 맞게 진수성찬을 내놨다. 이 책은 의식의 확장을 이야기하고 있어, 나의 관심사인 ‘상담심리’, 즉 사람의 내면 변화 과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나중에 내가 책을 쓴다면 이렇게 정리해 보고 싶다. 출발 : 삶에서 잘 안 풀리는 것, 자기 자신의 문제에 대한 인식. 입문 : 관찰 과정에서 혼란에 빠지기, 세상에 대한 편견이 바로 잡음. 귀환 :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화 성찰, 젊은 세대에게 확신과 용기를 주기. 열쇠 : 삶의 시기에 따라 위의 과정을 반복, 되풀이 하며 삶을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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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힘
조셉 캠벨 & 빌 모이어스 지음, 이윤기 옮김 / 21세기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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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셉 캠벨은 1904년 가톨릭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심층 정서는 평생 동안 잘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캠벨은 고집이 무척 셌다. 그래서 어렸을 적부터 자신이 하고자 하는 대로만 했다. 부모님이 그걸 허락해 주었고 감사히 여긴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인디언 문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때의 호기심이 청년 시절까지 이어져 비교신화학에 입문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학에서는 신화학과 무관한 전공을 공부했다. 기회가 생겨 유럽의 파리와 뮌헨 대학에서 공부를 했다. 황금 같은 시절에 제임스 조이스, 토마스 만, 괴테, 슈펭글러, 프로베니우스, 카를 융, 피카소 등 현대 정신문화를 일군 인물들의 책과 조우하게 됐다. 청년 시절 만난 이들은 캠벨의 평생에 걸쳐 깊은 영향을 주었다.


  미국으로 돌아온 후 영문학 대신 인도 철학과 미술 쪽으로 공부하기를 원했으나 학교에서는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하오?”라고 외치며 캠벨은 대학을 떠났다. 그리고 그 유명한 ‘우드스톡에서의 5년’을 맞게 된다. 대공황 시절이라 취업하기도 힘든 시절이기도 해 그렇게 됐다. 그곳에서 그는 평소 읽고 싶었던 수많은 책들을 섭렵하며 평생 연구의 기틀을 잡게 된다. 그 후 캔터베리 스쿨에서 어학 교사를 거쳐, 중산층 여학생들이 다닌다는 사라 로렌스 대학에서 38년간 학생들을 가리키는 일을 했다.


  캠벨은 공부하며 전 세계의 신화가 그 내용을 같이 한다는 점을 알게 됐다. 그를 바탕으로 40대에 들어 그의 첫 책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쓰게 됐다. 이 책은 전문 학자들 사이에서 아주 중요한 책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저술하며 자신이 살아오며 가져온 믿음이 맞다는 걸 재확인하게 되었다는 그의 주저(主著) <신의 가면> 4부작을 발표한다. 그리고 말년에 ‘신화’의 대중화에 기여하게 된 <신화의 힘>이란 책을 내게 되었다. 그의 저작을 지켜보면 처음에는 전문이자 잡학가로 출발하여, 자기 평생의 연구를 정리하는 연구가가 되었다가, 많은 사람들에게 신화의 중요성을 알리는 안내자로 생을 마쳤다.


  캠벨의 중요성을 보자. 그는 전 세계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다르지 않다는 걸 알려주었다. 카를 융 방식으로 말하면 ‘집단무의식’인데 그는 인간의 영적이고 심층 내면의 모습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걸 발견하고 인류에게 강한 확신을 주었다. 또한 현대 사회가 ‘의례’를 잃어가면서 사람들이 분열되고 병들어간다는 점을 알려주었다. 또한 영웅 체험에 대한 이야기를 알려주었다. 신화의 영웅적인 인물들을 빌어 현대의 각 개인들도 자신만의 영웅 여정을 마쳐야한다는 점을 이야기해 준다. 캠벨과 기독교의 관계성도 빼놓을 수 없다. 서양의 뼈대를 이루는 축의 하나여서 그는 그리스도의 이야기도 많이 했다.


  캠벨은 현대 사회가 살아 생동하게 했다. 옛날에는 집단에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샤먼들이 맡았다. 현대 사회에서는 신화적 영감을 지닌 예술가들이 그 역할을 한다. 지금 시대는 ‘창조성’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고 있다. 그것은 ‘개인성’에서 나온다고 많은 연구 결과 밝혀지고 있는데, 이 부분을 그는 예전부터 알려주고 있다. 또한 캠벨은 현대의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천복’을 따라 나서라며 용기를 주었다. 현실적 제약으로 많은 젊은이들의 현실에 안주하는 결정을 내리는데, 그는 영웅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기 내면의 소리에 깊이 귀를 기울이라며 젊은이들을 지지해 주었다.


  캠벨은 또한 제임스 조이스와 토마스 만 등 현대 문학의 문제아와 총아의 작품이 지닌 깊은 의미를 해설해 주었다. 조이스는 현대 사회의 모습이 결코 옛날 신화적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훌륭히 밝혀냈다. 인생이란 슬픈 것이고, 삶은 죽음을 향해 흘러가고 있는 것이라는 매우 분명한 점을 알려준다. 그리스도의 자비를 알려면, 우리는 순종하지 않고 죄를 지어보라고 그는 지적한다. 생의 충동을 억제하지 마라. 죽음이 생명을 태어나게 한다. 그러므로 삶을 두려워하지 마라. 토마스 만은 기성의 기계적인 삶의 모습은 태초 인류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고 쓰고 있다. 현실적인 제약에 따라 현대의 많은 젊은이들도 기성의 사회에 편입된다. 그는 생이 충만한 밝은 대로로 그들을 이끈다. 거짓된 모습을 버리고 진실에 진실한 삶의 모습을 이야기 한다. 그것이 이들 작가들이 신화에 빗대어 글을 쓰고 있는 점이라고 캠벨은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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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적 심리치료
Nancy McWilliams 지음, 권석만 외 옮김 / 학지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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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원 수업 중에 듣는 과목이 있는데, 오늘은 매우 인상 깊은 몇 구절을 읽었다. 그래서 그 소회를 남겨보려 한다.


  “변화가 두려운 나머지 퇴행적인 행동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퇴행적 행동이 이전과는 다르게 나를 짜증나게 만들었는데, 왜냐하면 나는 그가 더 현명하게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언제 변하는가? 이건 매우 어려운 물음이다. 나는 아직 치료 경험이 없기에, 내가 내담자로 참여했던 경험을 떠올려 생각해 보자. 먼저 책에서 읽은 걸 간단하게 얘기하면, 심리치료는 회복만 되지 않고, 회복되었다 다시 퇴행되었다, 이 과정을 무수히 반복한다고 했다. 나의 경우만 봐도, 나아질 때가 있었고 안 좋아질 때도 있었다. 내 생각으로 표현하면 치료가 잘 진행되지 않을 때는 내가 저항하고 있다고 본다. 저항하고 있을 당시에는 인식하기 어려운데 나중에 되돌아보면 그렇게 보인다는 거다.


  다시 위 문구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면, 치료자를 짜증나게 하는 건 역전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내담자의 퇴행이 한 단계 진전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는 거다. 나의 경우를 돌아봐도 퇴행이 있은 후에, 치료가 조금 된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일보 전진을 위해서는 때로 이보 후퇴가 필요하다는 거다.


  “한 사람의 성격 구조를 현격하게 변화시키는 일은 깊이 뿌리 내린 관료체제를 현격하게 개혁하는 일과 유사하다.”


  위 문장은 내가 오늘, 아니 요즘 가장 인상 깊게 느낀 내용이다. 그만큼 내가 요즘 나의 성격 구조를 변화시키는 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겠다. 내가 존경했던 분이 평생 변화를 연구하셨다. 난 그 분의 제자는 되지 못했지만, 그 분의 활동을 홈페이지 및 책을 통해 지켜보았다. 그 분이 변화를 다루는 일은 아주 위험하고, 조심스럽게 이뤄져야한다고 말했다. 오늘 그 이유를 알겠다. ‘관료체제를 현격하게 개혁하는 일과 유사하다’고 한 것처럼 그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심리치료도 마찬가지로 어려운 과정이다. 우리가 이전과 달리 더욱 편안한 세계관을 가지게 될 때, 치유는 이뤄질 거다. 아무튼 심리치료가 대체 무엇이기에 나를 이렇게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일까? 이 물음은 다음 문구를 통해 답할 수 있다.


  “심리치료가 적절하게 잘 진행되는 경우 내담자들은 현실적인 유능감을 서서히 키워나가면서 치료자에 대한 의존심이 감소하며, 그들의 지위에 대한 심리적인 평등의식이 증대되고 열등의식은 감소한다.”


  이렇게 되는 건 쉽지 않다. 현재 나는 6년 이상의 장기적인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데도 위 문구처럼 잘 되지 않는다. 물론 내 고집이 매우 센 것이 치료가 장기간 동안 진전을 보이지 못하는 이유일 수도 있다. 모든 일은 장단이 있기에, 이 점은 또 내게 유익함도 주었다고 나는 본다. 아무튼, 최근의 나는 퇴행이 많이 되었고, 세계관을 잘 변화시키지도 못했다. 현실 유능감도 곤두박질치고, 선생님에 대한 의존심도 높았고, 그에 따라 열등의식도 높았다. 치료가 잘 된 내담자는 이 점들이 좋아진다고 하니, 위 문구를 기준으로 내담자로서 자신의 상태를 평가해 봐도 좋겠다.


  책에는 이 외에도 훌륭한 내용이 많다. 하나 더 생각나는 것을 정리해 본다. 치료자가 될 사람들이 자기 분석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많다. 책에서는 이들이 나중에 다양한 성격의 내담자를 만나게 될 텐데, 그때 자신의 성격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어야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내담자를 치료하려는 우를 범하지 않게 된다고 했다. 심리치료에 열심히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다양한 성격에 관해 이해를 높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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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와 사랑. 싯다르타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29
헤르만 헤세 지음, 홍경호 옮김 / 범우사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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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여 페이지의 책을 단숨에 읽었다. 읽는 내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내용이었다. 헤세의 지혜가 가득 담겨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 <싯다르타>말이다.


  그의 지혜에 감탄을 그칠 수 없었고, 문장을 쓸 줄 안다는 것에 아름다움을 느꼈다. ‘싯다르타’에는 인생사의 모든 장면이 담겨 있었고, 깨달음을 전해주는 많은 이야기가 흘러 넘쳤다. 인간은 행복을 바란다. 그런데 거기에 도달하는 건 쉽지 않다. 바로 집착이 우리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현재 이 순간을 살면 좋을 텐데, 인간은 과거를 끌어안고 미래를 불안해하며 하루를 산다.


  주인공 싯다르타는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으로 등장한다. 거기에다 그는 총명하고, 배움에 대한 열의도 가득하며, 그러면서도 겸손하다. 모든 사람은 그런 그를 좋아하고 사랑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는 모든 것을 갖추었으면서도 마음이 편안하지가 않다. 뭔가를 더 갈구하고, 현재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친구 고빈다에게 자신은 고행을 업으로 삼는 사문들과 함께 길을 떠날 거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아버지에게 허락을 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버지는 훌륭한 아들이 집을 떠날 거라는 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싯다르타는 “아버지는 알고 계십니다.”라는 말을 하며 두 손을 모은 공손한 자세로 방안에 서 있다. 아버지는 잠자리에 들어서도 잠이 오지 않는다. 다시 그 방에 가 보니 계속 싯다르타는 같은 자세로 서 있었다. 한 시간 후에도 잠이 오지 않아 다시 가 봐도 마찬가지였다. 결국에는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싯다르타의 구도의 길은 시작된다.


  처음에는 사문들과 함께 생활하며 고행을 일삼는다. 다음에는 고타마(위대한 현인)를 만나 가르침을 듣지만, 그 길은 자신이 생각하는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또 길을 떠난다. 그러다 어느 여인을 만나, 사문 생활을 정리하고 모든 것을 새롭게 배우게 된다. 그는 자신이 “생각을 할 줄 아는 것과 기다리는 것과 단식을 할 줄 아는 것” 이 세 가지만 잘할 수 있다고 했고, 어느 부자를 도와 그도 큰 부자가 된다. 깨달음의 길을 걷던 그는 어느덧 부유한 생활에 취해 여느 부자들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한다. 어느 새 구도의 길은 멈춰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삶이 타락했다 여기며, 집을 떠나오던 때를 떠올리며 다시 길을 떠난다.


  길을 걸으며 그는 그때까지 갈구했던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감을 느꼈다. 다시 처음부터 모든 걸 시작해야 한다는 비통함을 깨달았다. 그러던 그가 전에 건넌 적이 있던 강가에 이르렀다. 거기서 그는 한 번 만났던 뱃사공을 다시 만난다. 그와 함께 지내며 싯다르타는 시끄러운 마음을 가라앉힌다. 뱃사공은 말은 많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정말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잘 들어주는 사람을 그는 처음 만났다. 그와 함께 지내며 그 비결이 그 뱃사공은 강물의 소리를 자주 듣는다는 걸 알게 됐다. 시간이 흘러 싯다르타에게도 다양한 일이 일어나 다시 세속의 행복이 그에게 찾아왔다. 하지만 즐거움은 잠시였고, 세속의 고통스러운 감정이 그에게 일어난다. 힘들어하던 그는 뱃사공의 도움으로 강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싯다르타는 그의 괴로움의 원인이 과거에 대한 집착과 미래에 대한 불안에 있음을 깨닫는다. 뱃사공의 인내심과 따뜻하고 자상한 미소에 그는 크나큰 기쁨을 느꼈다.


  시간은 또 흘러 싯다르타도 노인이 되었다. 친구 고빈다가 어느 마을에 들렀다가 어느 뱃사공이 현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그곳을 찾아간다. 이미 뱃사공은 길을 떠나고, 그의 뒤를 이어받은 싯다르타가 그를 맞는다. 고빈다는 승단에서 최고의 자리에 앉았지만 속으로는 아직 깨달음에 대한 갈구와 불안이 그를 지배했다. 그는 싯다르타에게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해 줄 말이 없느냐며 묻는다. 싯다르타는 모든 건 양면성을 지니고 있으며, 죄수에게도 성인의 씨앗이 있고, 아이에게도 노인이 잠재돼 있듯이 시간의 합일로 세상을 이해할 것을 주문한다. 고빈다는 친구의 말을 이해하지도 수긍하지도 않았지만, 그의 모습에서 생전의 고타마에게서 느꼈던 따뜻하면서도 자상한 면을 발견했다.


  헤세가 도달한 지혜의 책을 읽는 기쁨은 대단히 컸다. ‘싯다르타’는 행복을 갈구했던 젊은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며 읽을 수 있다. 이 책에는 행복한 삶에 대한 비밀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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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와 사랑. 싯다르타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29
헤르만 헤세 지음, 홍경호 옮김 / 범우사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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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히 헤르만 헤세의 소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알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에서 나온 판을 구해 읽었다. 그렇게 천재 헤세와 만나게 됐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읽었다. 지금껏 책은 좋아했지만 문학은 거의 읽지 않던 나이기에 별 기대도 없었다. 한 가지가 있다면 헤세가 칼 융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바는 있었다.


  시작 부분은 주변 배경 묘사로 쓰여 있었다. 그런데 다음 장부터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그 흡인력이 약 100페이지 정도 됐다. 주인공 골드문트가 방랑을 떠나기 전 나르치스와의 대화와 긴장 관계는 정말 최고였다. 내가 읽었던 어떤 소설보다 완전했다. 내심 헤세가 천재라고 생각했다. 만약 모든 소설이 이 정도로만 습작된다면 난 기절초풍하며 빠져들 거다. 주인공 두 명의 심리묘사와 그들에 대한 통찰, 독자를 빠지게 만드는 솜씨 등 모든 게 완벽했다. 그래서 난 헤세의 소설을 모조리 주문했다.


  하지만 책을 더 읽어나가니 내가 기대했던 바는 거기가 끝이었다. 뒷부분도 나를 충분히 빠져들게 했지만 첫 날에 읽은 흡인력에 비하면 약했다. 하지만 소설 전체로 본다면 강약 조절이 충분히 됐다고 봤다.


  이 책이 헤세의 소설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모른다. 듣기로는 헤세의 ‘영혼의 자서전’이라 불린다고 했다. 이성으로 대표되는 수도원의 지성 나르치스와 그의 가르침 덕에 감성을 깨우게 된 골드문트의 대비를 통해 소설은 펼쳐진다.


  그 중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부분도 주인공 골드문트의 잠재력이 깨어나는 이야기였다. 나도 젊어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이건 나만이 아니라 젊은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겪게 되는 거다. 스승이나 거장의 손을 거치면 우리는 그들을 만나기 전의 우리가 아니게 된다. 새롭게 우리의 내면이 깨어난다는 이야기다. 나의 경우에는 위대한 인물과 접촉은 했지만 깊이 있는 만남을 갖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들에게서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은 경우는 아니고, 그들을 존경한 나머지 먼발치에서 깨우침을 받은 축에 속한다.


  나도 이성과 감성으로 대비되는 기질을 깨울 기회를 젊은 시절 가졌다. 어느 시기부터 책에 빠져들어 나의 이성은 발달하였다. 최고의 깨어짐은 훌륭한 스승을 접하면서 이뤄졌다. 그 경험을 통해 사람은 사람에 의해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는 걸 알게 됐다. 그 후 나는 원치 않았던 30대의 방황 시절을 겪는다. 그 출발선은 감성으로 대표되는 예술 세계 혹은 있는 그대로의 나였다. 그때 모진 고초를 겪으면서도 감정적으로는 내 생의 그 어느 때보다 고양돼 있었다. 난 그 둘의 모순과 충돌 그리고 통합되지 않는 갈등으로 인해 무척 고통스러웠다.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지만, 헤세가 이 작품으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글이 많이 돌아왔는데, 헤세는 두 주인공을 통해 어느 작가도 도달하지 못한 지점인 내면 통찰과 심리 묘사와 관찰에 천재적인 면을 보여준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가장 잘하는 점도 이 점이 아닌가 생각되지만 말이다. 소설 이야기를 더 하자면, 사람을 꿰뚫어볼 줄 아는 나르치스는 골드문트에게 잠재돼 있는 내면 모습을 끌어내 준다. 이 부분이 앞서 말했지만, 이 소설 최고의 절정 부분이다. 그 후 골드문트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둘은 서로 강렬하게 서로를 각인하고, 결국 마지막에 가서 재회한다. 다시 말하면 이성과 감성의 만남 후 마지막에 그 두 부분은 화해하고 조화를 이루게 되는 내용이다.


  헤세는 이 작품으로 내 인생을 든든하게 붙잡아주는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문학의 재미와 통찰에 눈을 뜨게 해 주었다. 삶은 쉽지 않고 흔들리는 거다. 그래서 우리 곁에는 사람이 필요하다. 문학은 충분히 그 역할을 해 주는 것 같고, 우리 삶에 이야기를 더 해 준다. 천재의 갖은 번민과 고초는, 우리 삶에 얼마나 유익함을 가져다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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