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맑고 향기롭게 - 법정 대표산문선집
법정(法頂) 지음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지금 법정스님이 가끔 들었다는 ‘옴마니반메훔’이란 티벳 음악을 듣고 있다. 법정스님 글을 읽다가 만났는데 우연히 지금 듣게 됐다. 이 노래를 들으면 번뇌와 죄악에서 벗어나 지혜와 공덕이 쌓인다 한다. 실제로 들어보니 불교 국가에 여행을 온 느낌이 든다. 오늘은 요즘 자주 읽게 되는 법정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요즘 마음이 많이 답답했다. 어떤 책을 들어도 잘 읽히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법정스님 수필집 <맑고 향기롭게>를 펼쳤는데 신기하게도 읽혔다. 그러면서도 내 마음을 매우 편안하게 해 주는 느낌을 받았다. 스님의 글은 삶을 단순하고 간소하게 바라보게 해 준다. 그동안 내 마음이 답답한 이유를 대충 알게 됐다. 내 마음이 각박하고, 욕심이 많아서 그랬을 거다. 지금 집도 충분히 좋은데, 괜한 마음에 마음이 답답해 현재를 떠나고 싶다는 것을 느꼈다.
 
우연히 책에서 허균이 지었다는 <한중록> ‘숨어 사는 즐거움’이란 책을 알게 되고, 법정스님의 <인도기행>이란 책도 있기에 같이 주문해서 읽었다. 먼저 <인도기행>을 펼쳐 읽었는데, 술술 읽혔다. 이것도 매우 신기했다. 여행기는 보통 내가 집중을 못하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 연유를 생각해보니 스님의 필력과 근기가 있기에, 즉 삶이 중심이 잡힌 사람이 쓴 글이었기에 힘이 있었던 것 같다.
 
스님의 글은 주로 자신이 보내는 하루의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느끼고 생각한 걸 대중인 우리에게 알려주며, 현대 문명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또한 일침을 놓는 글을 쓰신다. 그렇게 자연의 맑음과 따뜻한 교류를 우리에게 전해 주시고, 자연을 소중히 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교훈을 주신다.
 
그것보다 스님의 글이 내게 편안함을 주는 이유는 <홀로 사는 즐거움>이란 수필집에 담겨 있는 내용과 비슷하다. 스님은 홀로 사는 삶을 예찬한다. 무리에 섞여 충분히 살아보셨지만, 그 속에서 특별한 뜻을 발견하시지 못하신 것 같다. 그래서 어느 날, 강원도 화전민이 살던 외떨어진 오두막에 거처를 구해 거기서 몇 십 년을 살게 된다. 나도 혼자서 살아가길 즐기는 부류의 사람이다. 요즘은 더워서 그런지 더욱 혼자 사는 것에 빠져 있다. 스님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어려서 혼자 살아 버릇하던 사람들은 커서도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하다고. 그러니 자신이 남들과 다르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제비꽃은 제비꽃답게 피면 되니까 말이다. 그것이 제비꽃의 일이니까.
 
스님은 우리에게 강요하기보다 또는 주기보다는,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것을 덜어주고, 비워주기에 우리를 편안하게 해 주신다. 나는 더욱 그렇다. 삶이 복잡하게 느껴지는지 스님의 적게 앓고, 적게 소유하고, 적은 것에 만족하라는 말이 그렇게 시원하게 들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 자연과 홀로 벗하며 그 속에서 자유로운 삶을 사시는 모습은 과히 신기하기까지 하다.
 
어떤 때에는 신문에서 읽은 아이들 형제가 서로 이국땅으로 헤어져야 하는 사연을 읽으시고는 베갯을 눈시울로 적시기도 하고, 산에 사는 토끼와 꿩, 고라니 발자국을 보며 따뜻함을 느끼시기도 하신다. 무척 감성이 발달하셔서, 스님의 글을 읽는 나조차도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수행자로서 깊은 깨달음을 얻으셨고, 스님 말로는 원래 우리 마음이 깨끗하니 견성이니 성불이니 할 것 없다. 대신 본래 청정하니 그 깨끗함이 더럽혀지지 않게 가끔 닦아줄 필요가 있다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스님의 글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맑아지고 편안해진다. 수행자로서 느끼고 체험한 것의 깊이가 상당하셔서 그럴 것이다.
 
이제 스님은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이렇게 글로써 우리와 인연이 닿아 있다. 스님의 글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각자 자신이 어디에도 얽매이지 말고, 스님에게도 얽히지 말고 자신의 본연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라 하셨다.
 
스님의 책은 겨울에 보통 읽었었다. 한 겨울 추위에 읽으면 그 정신이 더 번쩍 들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알게 된 것은, 한 여름 무더위에 읽어도 마음을 더 가지런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님은 그렇게 우리들의 정신을 깨우시곤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행복하게 하는 친밀함 - 좋은 관계를 만드는 비밀
이무석 지음 / 비전과리더십 / 200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무석 교수의 <친밀함>을 읽었다. 처음에는 그저 그렇게 읽었는데, 끝으로 갈수록 좋았고, 읽고 나서는 마음이 개운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인생을 고달파하고, 문제에 질질 끌리며 살아왔는데, 청량한 해방감을 감지한다.
 
먼저 책을 보며 내게 어떤 열등감이 있는지와 관계가 불편한 사람이 있는지를 묻게 됐다. 나는 깊은 열등감을 지녀 그 반대 보상심리로 아주 큰 성취를 바란다. 그리고 사람에게 정을 잘 못 느껴 관계에서 도망가기 바빴다.
 
책에는 사람들이 갈등하는 부분이 풀리면 인생이 편안해진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과 친밀해지면 일도 잘 되고, 인생의 짐도 수월해진다. 또한 친밀함이 좋아지면 자존감이 높아진다.
 
관계에서 먼저 ‘나’가 확실해야 ‘너’가 확실해지고, 그때부터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도 가능해진다고 한다. 이건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사람들의 주체성에 관한 인식은 대개 불투명한 편이다. 이걸 이렇게 보자.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잘 아는 사람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체성의 물음에 답할 수 있다.
 
정신분석에서는 사람이 3세 이전에 엄마와 어떤 관계를 맺었느냐에 따라, 성장해서 친밀함의 정도가 결정된다고 본다. 정신분석가 코헛은 ‘자존감 높은 부모가 자녀를 건강하게 키운다.’라고 말했다. 마음이 따뜻하고, 관계에서 잘 반응하는 사람이 그런 부모가 된다.
 
책에 재밌는 실험이 하나 나온다. 원숭이를 어릴 때 격리시켜 놓고, 그 후 이 원숭이들의 관계 패턴을 보았다. 격리 원숭이들의 우리에 정상 원숭이를 넣고 이를 지켜보았다. 정상 원숭이가 다가오자, 격리 원숭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고, 구석으로 피해 거기서 떨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사람들도 친밀함의 정도에 따라 관계에서 위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 좋은 부모 밑에서 건강하게 성장한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 자유롭고 편해 한다. 그런데 그 반대의 부모에게서 자란 사람들은, 왠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답답해하고, 마음이 불편해진다.
 
이무석 교수는 원숭이 실험에서 다음 3가지 점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첫째, 자기가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여인은, 자기 자식도 보살펴 주지 못한다. 이는 자신과 아이에게 친근한 관계를 형성하기 어렵게 만든다. 둘째, 사회적 관계의 단절과 고립 경험은 대인기피증을 일으키고, 이는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셋째, 격리 원숭이들도 치료자 원숭이를 만나면 치료가 된다. 사람으로 치면,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 그런 치료자 역할을 할 수 있다.
 
위 3가지 사항은 내게 정확하게 오버랩 된다. 나의 어머니는 외할머니로부터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친밀한 관계가 없고, 사람들을 불편해한다. 이는 내게 그대로 이어져 나도 친근한 관계형성 능력이 떨어지고, 사람들 속에서 겉돈다. 그리고 한 때 사회적 관계에서 단절되고, 고립된 시절이 있었다. 이는 자연히 나를 현실에서 멀어지고 만들었고, 방황하게 했다. 그래서 뭘 하든 불만족스럽고, 공허했다. 다음으로 장기간의 심리치료는 나를 치료해 주었다. 마음이 따뜻하고, 통찰력 있는 상담가 선생님과의 오랜 관계는 나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만나게 해 주었다.
 
친밀함이 떨어지는 부모님 밑에서 성장한 점과 개인적인 이유로 사회와 떨어져 살아온 점, 이 두 가지는 나를 인생에서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책에 헬렌 켈러를 훌륭하게 키워낸 앤 설리번의 이야기가 나온다. 앤은 한 때 관계가 단절된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자신을 괴롭히며 살았다. 그녀에게 나이든 간호사가 치료가 아닌, 친근한 관계 맺기를 하나씩 해 나가자, 신기하게도 앤은 치료가 되었다. 앤은 이제 정상적인 대인관계가 가능해진 것이다.
 
관계 맺기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사람은 사람을 통해 행복해진다고 했다. 사회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도 하고 말이다. 우리가 관계만 정상적으로 잘 맺을 수 있어도 생의 많은 문제가 풀린다. 이 단순하며 기본적인 내용을 오늘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의 내용을 나에게 적용해 본 결과, 나의 마음은 가뿐해졌고, 기쁨이 샘솟아 올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놀라운 일을 며칠 째 경험하고 있다. 우선은 4일 전에 <어느 가족>이란 영화를 우연히 본 거고, 그 다음은 3일 전에 <생활의 발견>이란 책을 읽게 된 거고, 오늘은 <걷는 듯 천천히>란 책을 읽으며 내 마음이 풍성해짐을 느꼈다.


  자주 얘기했지만, 나는 장기간의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꽤 오랫동안 상담을 받고 있는데, 내 행동은 바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심리치료는 내담자의 세계관이 현실에서 통용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중요하게 다룬다. 선생님은 언제나 한적하고 선선한 느낌을 내게 전해 주신다. 난 고민과 마음의 답답함을 토로하고 위로와 지혜를 얻어가지만 그때뿐이었다. 내 세계관이 좀 더 융통성 있게 변화되어야 삶이 만족스럽게 다가올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시기는 잘 오지 않았다.


  심리치료에 또 대략 이런 말이 있다. “치유는 상담가가 하는 게 아니다. 다만 상담가는 내담자가 안전하게 치료에 참여할 수 있는 치유 공간을 만들어준다.” 보통의 신참 상담가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서 그렇게 행동하지 못한다. 요즘 내 마음에 큰 변화가 찾아온 게 어쩌면 생활면에서 치유적인 작품을 많이 접하면서이다. 선생님을 매우 좋아하고 존경하는 나는 모든 공을 그분께 돌리지만, 이야기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제목이 무엇을 뜻하는 지 말해 본다.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어느 가족’을 보고 감상평을 썼었다. 근래에 본 매우 인상 깊은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작년 이 맘 때 ‘그 후’와 겨울에 ‘원더’ 그리고 얼마 전에 ‘류이치 사카모토’란 영화를 흥미롭게 봤었다. 이 영화들 모두 관련된 도서와 음악이 있었다. 나로 하여금 그 후는 나쓰메 소세키를 읽게 했고, 원더는 원작 소설에 관심을 갖게 했고ㅡ읽지는 않았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그의 아름다운 음악과 영상을 찾아보게 만들었다.  


  <걷는 듯 천천히> 이 책이 의미하는 바도 다르지 않다. 어느 가족을 보고 매우 가슴이 뛰었던 나는 감독을 찾아봤다. 일본 영화감독 중에 자신의 영상미학을 일관되게 추구한 것이 마음에 들었지만, 그가 쓴 산문집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도 첫 산문집이란 타이틀이 내 마음을 더 끌어당겼다. 오늘 짬을 내 그의 책을 읽었다. 역시 예상대로 영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일상의 미학과 그의 세계를 엿볼 수 있어 좋았다.


  200여 페이지의 얇은 책이지만 50쪽 정도를 읽고 독서평을 남기기는 처음이다. 책을 펼치고 읽자마자 일상을 관찰하는 그 특유의 담담함과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짧은 글로 묶여 있지만, 글이 전해주는 통찰과 깊이는 상당하다. 그럴 수 있는 건, 그의 평소 고민과 사색의 흔적이 글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매우 좋은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느 가족을 보고 동양 미학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쓴 것 같은데, 이 책도 다르지 않다. 일본, 그러니까 동양 특유의 아름다움이 글 속에 녹아 있다. 요즘 읽고 있는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이 동양의 지혜를 발하고 있는 점과 무척 닮았다. 미학을 펼치려면 여유가 가장 필요해 보이는데, 호흡이 짧은 나는 아직 한계가 있는 듯하다. 그래도 내가 읊을 수 있는 미학은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과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책 정도이고ㅡ물론 아직 읽지 못했다, <강의>란 책으로 유명한 신영복 선생님을 읽고 알게 된 그분의 미학이다. 더 나아가 내가 존경해마지않는 변화경영사상가 구본형 선생님의 미학 정도이다. 이분은 변화경영의 시인으로 불리다 죽기를 원했는데 뜻대로 되지는 못했다.


  책 속 이야기 하나 하고, 글을 마무리 짓자. 어느 시인이 했다는 말인데 “시는 메시지가 아니다. 메시지는 의식한 것에 불과하지만 시는 무의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꿈과 영혼의 중요성을 강조한 분석심리학자 칼 융을 무척 좋아한다. 그는 우리 삶이 신화와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했다. 신화도 우리의 무의식 영역과 접촉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저자의 영화가 관객들로 하여금 매우 편안하게 다가오는 것도, 그가 우리의 무의식과 친숙하게 지내는 데 익숙한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그 비밀을 맛볼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완역 생활의 발견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5
임어당 지음, 김병철 옮김 / 범우사 / 1999년 4월
평점 :
품절


  어제 오늘 임어당이 쓴 <생활의 발견>에 취해 있었다. 역자는 이 책을 러셀의 ‘서양의 지혜’에 견주어 ‘동양의 지혜’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했다. 과연 책을 읽으니 동양 특유의 정취와 여유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난 마음이 바쁜 사람이다. 항상 무언가를 배우려하고, 끊임없이 도달하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부류의 사람이다. 그러다 지칠 때 나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본능주의자로서의 삶을 꿈꾼다.


  임어당은 동서양의 형이상학자들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의 원숭이 예찬과 육체 지향을 보면 알 수 있다. ‘서유기’에 손오공이 등장한다. 원숭이고 하는 짓이 괴이하다. 신들의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분노를 참지 못하고, 연회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기도 한다. 그러다 관음보살로부터 벌을 받게 된다. 다행이 삼장법사의 도움으로 풀려나긴 하지만, 법사를 도와 긴 여행길에 올라야 했다. 손오공은 그렇게 명랑한 장난꾸러기지만, 하는 짓이 귀엽고 미워할 수 없는 존재다.


  또한 그는 정신과 반대로 인간은 육체를 지닌 동물이란 것을 강조했다. 내게는 본능과 영혼의 구별처럼 들렸다. 나는 영적인 체 하는 사람이었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본능주의자의 글과 생각에 너무 끌렸다. 그러고는 나를 잃어버렸다. 내가 누구인지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요즘 다른 사람을 닮는 게 아닌, 나로써 존재하기를 바랐는데 생각의 실마리가 잘 풀렸다. 이 책을 읽고는 영혼과 본능의 선상에서 나는 어느 곳에 위치하는 사람이란 걸 깨닫게 됐다.


  서양까지는 아니지만 저자는 미국의 한계점을 들어, 중국 그러니까 동양의 아름다움을 펼쳤다. 그 대표적인 것이 우유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편안하고 한가하게 삶을 풍미하자는 거다. 내가 가장 실천으로 옮기지 못한 부분인데, 임어당은 한가롭게 생활하는 역사적 인물들의 사례를 들어 자연주의자의 삶을 예찬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도연명이었다.


  그는 세상에 나아가는 유학자도 아니었고, 세상으로부터 한걸음 물러나 있는 도학자도 아니었다. 그는 그 중간에 위치했다. 돈은 너무 많이 갖고 있지 않고 그저 생활에 쪼들리지 않는 정도와 친구가 어려울 때 빌려줄 수 있는 정도의 재산이면 되고, 글은 쓰되 신문에 어쩌다 실리는 정도로 원고료가 떨어지는 걸 느낄 수 있는 정도면 되고, 이름은 알려지되 세상에 너무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고 그저 한 두 작품 남아있으면 된다. 이런 삶을 임어당은 좋아했고, 실제 본인도 실천에 옮긴 듯하다.


  이 책을 중간 정도 읽고 평을 쓰는데 가장 좋았던 부분은 ‘한 나라의 문학, 시가, 미학 등이 무엇 때문에 중요할까? 그것은 주로 그런 것들이 그 나라의 남성과 여성에게 개성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알리는 재료와 암시가 되고’ 유물론자답게 저자는 실용주의자였다. 나도 형이상학에 학문이 쓰이는 것보다는 이렇게 실생활에 적용되는 것을 무척 중요시여기는 사람이다.


  “하늘에 있는 용의 고기가 좋기는 하지만 범부는 먹을 수 없다. 땅 위의 돼지고기는 용의 고기처럼 고귀하지는 않지만 누구나 먹을 수 있다. 용의 고기와 같아서 심오하기는 하지만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없다면 먹을 수 없으니 배만 고플 뿐이다. 그러나 돼지고기처럼 소박하고 쉬우면 생활 속에서 실현될 수 있으니 배가 부르고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변화경영사상가 구본형이 쓴 글이다. 이 책을 읽으며 계속 이 문장이 떠올라 옮겼다. 구 선생님은 그렇게 이상주의를 품으면서도, 현실에 적용 가능해야 함을 항상 역설하셨다. 모든 좋은 것들은 생활인을 웃게 한다. 임어당이 이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것도, 이론이 아닌 실천 가능으로써의 생활 철학이다. 이 책의 제목이 생활의 중요성 혹은 생활의 발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꽤 오랫동안 혼란스러운 생각을 하며 지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생활인으로서의 내 모습을 되살릴 수 있었다. 자칫, 이론과 책 속에 빠져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균형을 잡아주는 훌륭한 책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건투를 빈다 - 딴지총수 김어준의 정면돌파 인생매뉴얼
김어준 지음, 현태준 그림 / 푸른숲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이제는 유명인이 된 김어준의 <건투를 빈다>를 20대 후반에 읽었다. 그때가 2007년 겨울이었는데, 한겨레에 격주로 실리는 그의 상담 칼럼은 당시의 내겐 한줄기의 빛이었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좀 해 보자.


  이 책이 나온 2008년의 김어준은 지난 10년 동안 우리에게 알려진 것만큼 그리 유명인이 아니었다. 언론 분야에서는 나름 한 획을 긋고, 존재감을 과시하던 자였다. 그러던 그가 ‘나는 꼼수다’ 라는 팟캐스트로 전 국민에게 알려지게 됐다. 최근에는 라디오 DJ와 방송 MC를 하며 다시 그의 진면목을 펼쳐 보이고 있다.


  난 지금의 그도 좋지만, 2007년 겨울의 그도 좋았다. 내가 그리도 읊는 10년 전 그 사건이 터진 다음의 일이다. 평소에도 생각이 많은 나였지만, 더욱 머릿속으로 궁리를 많이 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김어준의 졸라 명랑하고, 파격적인 글을 만났다. 매우 명확하고, 통찰력으로 가득했던 내용이기도 했다. 특히 그의 글은 입장이 분명한 내용이라,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자주 그의 글을 찾았다.


  난 어려서부터 소외감이 심한 아이였다. 성장하면서 그게 신경증이 되고, 더 나아가 성격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그런 내게 삶은 참 힘든 순간의 연속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의 글을 열었다. 그게 지나고 보니 30대 10년의 시간을 그의 글과 책과 함께 했었다. 그만큼 내게 인생은 어렵게 다가왔다.


  여기까지는 남들 다 하는 하소연이고, 이제 자기 객관화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김어준의 글에서 자주 나오는 내용이 자기 객관화이니 말이다. 참, 내가 이 글을 쓰는 주된 동인 중 하나는 그의 책이 발간된 지 10주년 맞아 뉴 에디션으로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그 책의 표지는 매우 섹시하고, 간지난다.


  자기 객관화도 책에서 말하는 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내 이야기를 곁들여 전달해 볼까 한다. 나의 20대 후반은 처참했다. 밑바닥 중 밑바닥이었다. 디딜 바닥을 찾지 못해 나는 익사하고 말았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현명한 분의 도움을 받아 취업을 하게 된다. 거기서 또 인생의 벗이자 선배를 만나지만, 나의 방황은 5년 더 지속됐다. 한 번 인생이 무너지고, 퇴행된 삶은 그 바닥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게 여기서도 욕먹고, 또 저기 가서도 퇴짜 맞는 시간의 연속을 보내게 된다. 그러다 잠깐 정신이 들 때면, 현실 속의 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내 발길이 닿은 곳이 상담심리대학원이었다. 이제 조용한 직장 속의 나만이 아닌, 대학원 생활에서의 나를 느껴 볼 수 있는 시간이 다가왔다. 단체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긴장했지만, 실수를 하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그러다 우연히 1년 전에 상담심리센터에서 심리상담가 준비를 위한 수련도 받고, 무사히 끝마쳤다. 그러고 나니 내 나이가 30대 후반에 들어섰다.


  내 30대 10년의 인생이 위 글에 담겨 있다. 자기 객관화도 다르지 않다. 처음에는 자신의 낯설고, 거부하고 싶은 모습을 만나야 한다. 그건 당사자에게 상당한 당혹으로 다가온다. 그 시간이 지나면 이제 방황의 시간이 얼마간 주어질 거다. 그러면서 조금씩 세상이 느껴진다. 한 때는 실수의 연속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처음 하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지만, 이제 차츰 세상이 객관화된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라는 성찰을 하게 되고, 세상의 방식에 적응이 된다. 그러면서 이전의 나와 변화된 나라는 두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그의 정신은 각성되고, 한 번 높아진 정신 상태는 다시 되돌아가지 않는다. 세상에 나를 표현하게 되고, 이제 어른으로서의 태도를 지닌다.


  이것이 모든 훌륭한 책에서 말하는 변모이자 성장이다. 아이는 자신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청년은 이제 자기 삶의 배역을 떠맡게 된다. 그럼으로써 인생이란 연극에 그도 뛰어들게 된다. 점점 삶이 흥미로워지고, 내 삶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김어준까지는 모르겠고, 그의 명저 ‘건투를 빈다’는 그렇게 나의 아픈 시간과 함께 했고, 스스로 나를 객관화하는 데 크나큰 도움을 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