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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투를 빈다 - 딴지총수 김어준의 정면돌파 인생매뉴얼
김어준 지음, 현태준 그림 / 푸른숲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이제는 유명인이 된 김어준의 <건투를 빈다>를 20대 후반에 읽었다. 그때가 2007년 겨울이었는데, 한겨레에 격주로 실리는 그의 상담 칼럼은 당시의 내겐 한줄기의 빛이었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좀 해 보자.
이 책이 나온 2008년의 김어준은 지난 10년 동안 우리에게 알려진 것만큼 그리 유명인이 아니었다. 언론 분야에서는 나름 한 획을 긋고, 존재감을 과시하던 자였다. 그러던 그가 ‘나는 꼼수다’ 라는 팟캐스트로 전 국민에게 알려지게 됐다. 최근에는 라디오 DJ와 방송 MC를 하며 다시 그의 진면목을 펼쳐 보이고 있다.
난 지금의 그도 좋지만, 2007년 겨울의 그도 좋았다. 내가 그리도 읊는 10년 전 그 사건이 터진 다음의 일이다. 평소에도 생각이 많은 나였지만, 더욱 머릿속으로 궁리를 많이 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김어준의 졸라 명랑하고, 파격적인 글을 만났다. 매우 명확하고, 통찰력으로 가득했던 내용이기도 했다. 특히 그의 글은 입장이 분명한 내용이라,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자주 그의 글을 찾았다.
난 어려서부터 소외감이 심한 아이였다. 성장하면서 그게 신경증이 되고, 더 나아가 성격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그런 내게 삶은 참 힘든 순간의 연속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의 글을 열었다. 그게 지나고 보니 30대 10년의 시간을 그의 글과 책과 함께 했었다. 그만큼 내게 인생은 어렵게 다가왔다.
여기까지는 남들 다 하는 하소연이고, 이제 자기 객관화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김어준의 글에서 자주 나오는 내용이 자기 객관화이니 말이다. 참, 내가 이 글을 쓰는 주된 동인 중 하나는 그의 책이 발간된 지 10주년 맞아 뉴 에디션으로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그 책의 표지는 매우 섹시하고, 간지난다.
자기 객관화도 책에서 말하는 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내 이야기를 곁들여 전달해 볼까 한다. 나의 20대 후반은 처참했다. 밑바닥 중 밑바닥이었다. 디딜 바닥을 찾지 못해 나는 익사하고 말았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현명한 분의 도움을 받아 취업을 하게 된다. 거기서 또 인생의 벗이자 선배를 만나지만, 나의 방황은 5년 더 지속됐다. 한 번 인생이 무너지고, 퇴행된 삶은 그 바닥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게 여기서도 욕먹고, 또 저기 가서도 퇴짜 맞는 시간의 연속을 보내게 된다. 그러다 잠깐 정신이 들 때면, 현실 속의 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내 발길이 닿은 곳이 상담심리대학원이었다. 이제 조용한 직장 속의 나만이 아닌, 대학원 생활에서의 나를 느껴 볼 수 있는 시간이 다가왔다. 단체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긴장했지만, 실수를 하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그러다 우연히 1년 전에 상담심리센터에서 심리상담가 준비를 위한 수련도 받고, 무사히 끝마쳤다. 그러고 나니 내 나이가 30대 후반에 들어섰다.
내 30대 10년의 인생이 위 글에 담겨 있다. 자기 객관화도 다르지 않다. 처음에는 자신의 낯설고, 거부하고 싶은 모습을 만나야 한다. 그건 당사자에게 상당한 당혹으로 다가온다. 그 시간이 지나면 이제 방황의 시간이 얼마간 주어질 거다. 그러면서 조금씩 세상이 느껴진다. 한 때는 실수의 연속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처음 하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지만, 이제 차츰 세상이 객관화된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라는 성찰을 하게 되고, 세상의 방식에 적응이 된다. 그러면서 이전의 나와 변화된 나라는 두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그의 정신은 각성되고, 한 번 높아진 정신 상태는 다시 되돌아가지 않는다. 세상에 나를 표현하게 되고, 이제 어른으로서의 태도를 지닌다.
이것이 모든 훌륭한 책에서 말하는 변모이자 성장이다. 아이는 자신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청년은 이제 자기 삶의 배역을 떠맡게 된다. 그럼으로써 인생이란 연극에 그도 뛰어들게 된다. 점점 삶이 흥미로워지고, 내 삶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김어준까지는 모르겠고, 그의 명저 ‘건투를 빈다’는 그렇게 나의 아픈 시간과 함께 했고, 스스로 나를 객관화하는 데 크나큰 도움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