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빛이 여전합니까 창비시선 440
손택수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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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게體



부산진 시장에서 화물전표 글씨는 아버지 전담이었다
초등학교를 중퇴한 아버지가 시장에서 대접을 받은 건
순전히 필체 하나 때문이었다
전국 시장에 너거 아부지 글씨 안 간 데가 없을끼다 아마
지게 쥐던 손으로 우찌 그리 비단 같은 글씨가 나왔겠노
왕희지 저리 가라, 궁체도 민체도 아이고 그기
진시장 지게체 아이가
숙부님 말로는 학교에 간 동생들을 기다리며
집안 살림 틈틈이 펜글씨 독본을 연습했다고 한다
글씨체를 물려주고 싶으셨던지 어린 손을 쥐고
자꾸만 삐뚤어지는 글씨에 가만히 호흡을 실어주던 손
손바닥의 못이 따끔거려서 일치감치 악필을 선언하고 말았지만
일당벌이 지게를 지시던 당신처럼 나도
펜을 쥐고 일용할 양식을 찾는다
모이를 쪼는 비둘기 부리처럼 펜 끝을 콕콕거린다
비록 물려받지는 못했으나 획을 함께 긋던 숨결이 들릴 것도 같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지게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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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에 경도의 기준이 되는 본초자오선(과 날짜변경선)이 국제회의를 통과하면서 경도에 따른 시차를 실생활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1873년에 발표된 쥘 베른의 소설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이미 이런 시차가 실생활에 깊이 간여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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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와 사직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혼을 모신 사당으로 일종의 신전이다. 유교에서는 인간이 죽으면 혼(魂)과 백(魄)으로 분리되어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덤(墓을 만들어 백을 모시고 사당(廟)을 지어 혼을 섬긴다. 후손들은 사당에 신주(神主)를 모시고 제례를 올리며 자신의 실존적 뿌리를 확인하고 삶의 버팀목으로 삼는다. 역대 임금의 신주를 모신 종묘는 곧 왕이 왕일 수 있는근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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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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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관계가 너희의 관계보다 얼마나 더 위반적인지 봐라.(p.327)

따라서 같은 단어가 재활용된다 해도, 밤에, 지구 전역에서, 수십억의 사람들이 중고의 표현으로 자신들의 사랑의 유일무이함을 주장한다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p.352)

 너는 공감과 반감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 인간의 마음에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감정들이 나란히 번성하고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있다. 너는 그간 읽은 책에 화가 난다.
단 한 권도 이런 것에는 대비시켜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가 엉뚱한 책들을 읽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아니면 엉뚱한 방식으로 읽었거나.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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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아서 좋은 것은 무기뿐이다. 검劍이 가장 이름다울 때는 검집 속에 들어 있을 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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