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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준 선물, 감자 이야기
래리 주커먼 지음, 박영준 옮김 / 지호 / 2000년 2월
평점 :
품절


내게 있어 역사를 읽는 즐거움은 지금 당연하게 알고 있는 것들이 전혀 그렇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고, 한편 요즘 나타난 특이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예전에도 있은 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요즘 많이 소개되고 있는 '미시사'류의 책들은 특히 첫번째 부류의 즐거움을 많이 선사한다. 무심코 당연히 받아들이던 우리의 식생활이 현재의 모습을 띄게 되기까지 뜻밖에도 여러 상황과 사건들이 연루되어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은 알려 주고 있다.

지금 우리가 당연히 먹고 즐기는 감자, 특히 밥과 반찬식의 구분이 덜 분명한 서양에서는 거의 필수 메뉴로까지 보이는 감자가 서양 여러 나라들(이 책에서는 영국, 아일랜드, 프랑스와 미국)의 식탁에서 당당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기까지 온갖 사회적 편견들-종교적, 도덕적, 영양학적, 계급적 등등-을 이겨냈어야만 했다는 것을 차근히 보여주는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사실 이 책의 강점은 어찌보면 '감자' 이야기보다는 감자를 둘러싼채 펼쳐지는 네 나라의 식생활, 더 넓게는 사회생활 전반에 대해서 보여주는 모습들이다. 예를 들자면,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불과 얼마 전까지 유럽의 서민들이 매우 단조로운 식단으로 근근히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고, 또 근대 의학의 도래 이전에는 서양 의학이 오히려 요즘 대안 의학이라 불리는 동양식 접근을 본래부터 닮아 있었다는 점 등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책은 미시사답게 당시 실생활을 들여다보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 예를 들어 당시 주부들의 일기, 여행자들의 기록 등을 통해. 서술 방식은 주요 대상국인 네 나라를 차례로 기간별로 다루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다소 반복적인 내용도 등장하고, 간혹 몇몇 인물들이 불쑥불쑥 나와서 혼란스럽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번역은 매끄럽기는 하지만 생생하지는 않은 듯하여 조금 아쉽다 (내가 초판을 읽은 탓이겠지만 오탈자도 제법 눈에 많이 띄었다).

책 말미에 우리 나라의 감자 도입에 대한 장을 간결하게나마 붙인 것은 유익한 시도였다고 생각되어 높이 사고 싶다. 결론적으로 일반적 흥미를 불러 일으키기에는 조금 역부족인 듯 하지만, 미시사 또는 문화사 등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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