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길 인생의 길 - 학문의 외길을 걸어온 실천적지식인 12명의 삶과 학문
역사문제연구소 엮음 / 역사비평사 / 2000년 2월
평점 :
절판


무척 흥미있으면서도 한장 한장 읽어나가기가 힘겨운 책이 있는가 하면, 정말 언제 책장이 넘어가는지 모르는 사이에 이만큼씩 와있고 책을 놓고 잠시 쉬려면 다시 집어들 충동을 느끼게 만드는 책도 있다. 나에게 <학문의 길 인생의 길>은 후자와 같은 책이었다. 그나마 책의 구성이 자연스럽게 12사람과의 12 대화로 나누어져 있는 것 덕택에 간간히 책을 놓고 생각의 숨을 쉴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빨리 읽어버리기에는 너무나 아쉽기도 했다.

사실 이 책을 펴들 당시, 이 책에 실린 12사람의 학자들 중 내가 그 저서를 한 권이라도 읽어본 이는 딱 한 분이었고, 이름이라도 들어본 이는 두세분 밖에 안 되었다. 그만큼 내가 우리 학자, 우리 학문에 대해 무지한 까닭이었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내 전공(경제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은 분야(주로 역사학)의 학자들이 그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12개의 인터뷰는 역사문제연구소가 펴내는 잡지인 <역사비평>에 연재되었던 것들이다. 대중적으로도 비교적 알려져 있는 역사학자이자 저술가인 이이화 선생이 주도가 되어 발행하는 잡지로 알고 있다.

이 책의 서두에 인터뷰 시리즈의 취지를 설명하는 이도 이이화 선생이며, 12개의 인터뷰는 각 분야의 후학인 교수들이 진행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역사학 관련 잡지에 실린 인터뷰인 만큼 대상이 된 학자들은 대개 역사학자이거나 역사학과 이런 저런 관련을 맺은 이들이고, 폭넓게 말하자면 학문과 사회에 대해 고민해 온 '실천적 지식인들'이다. 비록 이 책을 만나기 전에 나는 그들을 몰랐지만 이 책을 읽으며 잠깐이나마 인간으로서, 학자로서, 대선배로서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엿듣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그들이 각 분야에서 어떤 학문적 업적을 이룩하였고 그 가치가 정말 어떠한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어쩌면 지금 젊은 학자들이 볼 때 이미 한물간(?) 세대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처한 상황 속에서 학문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고, 나름대로 독자적인 학문 세계를 쌓았으며, 그 뿐 아니라 당시 사회 속에서 그 학문의 의미를 찾고자 애썼던 이들이었다. 이들 인터뷰들 자체가 잡지에 연재로 실렸던 것이라 각 장들간에는 다소간에 시차도 존재하고, 따라서 각 인터뷰 시점에서 언급되는 당시 사회상을 엿보는 것도 나름대로의 재미이다.

내가 처음 이 책을 고르기에 다소 망설였던 것처럼, 어쩌면 많은 젊은 세대들에게는 낯선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뷰 모음이지만 이 땅의 선배 지식인들의 진솔한 모습을 만나보는 일은 참으로 즐겁고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조만간 다시 찬찬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이었다. (지금껏 내가 예닐곱 편 쓴 알라딘 독자서평 중 처음으로 별 다섯개를 붙이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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