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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팔기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10
나쓰메 소세키 지음, 서은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단편소설의 구조가 익숙해서 가끔은 장편소설의 서사가 범람하듯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 작품은 플롯이 뚜렷하지 않고 서사가 흐르듯이 진행되는데 왜인지 지겹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책을 손에서 놓았을텐데.
얼핏보면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 심심한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으나 실은 다양한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아도 생활의 사실적 묘사가 두드러져서 충분히 현실적이다. 특히 교육 수준이 높은 화자가 언뜻 내비치는 오만함이라든지, 인물 성격의 묘사가 그렇다. 주인공을 보며 오만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런 점이 나에게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뭇 깨닫게 된다.
겐조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일을 발이 묶였단 식으로 표현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오랜 기억으로 남아있는 장소를 거닐면서, 여전한 사람들과 몰라보게 변한 자연을 대조하며 새삼 사색에 빠지는 장면도.
이 작품이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소설이라고 하던데. 이 작품의 세세한 묘사와 더불어 자전적 이야기라는 점이 소설 창작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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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과거의 작품이다보니 지금의 관점으로는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부분도 존재한다.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이 특히 그렇다. 또 가족들이 겐조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모습과 그것을 어쩔 수 없다는 듯 받아들이는 겐조의 태도가 그랬다. 이런 것들은 당대 사회를 고려하여 읽어야할 것 같다. 해설을 보면 노동자와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에, 남성 관점으로만 소설을 쓰던 소세키가 여성을 하나의 주체로 내세운 소설을 창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16쪽)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작품을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다.
그는 지금 다시 그 속으로 뒷걸음질 쳐서 오랜만에 과거의 냄새를 맡았다. 그것은 그에게 삼분의 일의 반가움과 삼분의 이의 혐오를 불러오는 혼합물이었다. - P81
그리고 만약 신이 그의 일생을 통찰한다면 이 탐욕스러운 노인의 일생과 그다지 다를 것도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 P137
노쇠할 뿐 의외로 변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과 변하여 날로 번화해 가는 교외의 자연이 겐조에겐 뜻밖의 대조적 자료가 되어 그는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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