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인 동주
안소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평점 :
윤 동 주 (1917 - 1945)
주요 작품: <서시>, <별 헤는 밤>, <참회록>, <쉽게 씌여진 시>, <자화상>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자아 성찰, 저항시인.
내가 아는,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배운 윤동주는 대충 이러했다.
다른 시인에 비해 조금 인상적이었던 건 내가 줄줄 외웠던 <서시> 때문이었다. 쉽게 읽히면서도 입에 착 감기는 느낌. <서시>를 한번 외고 나면 바람이 토닥여주기라도 한 듯 마음이 잔잔해지는 듯한 기분이 좋았다.
윤동주를 다시 만난 건 일본에서 지낼 때였다. 간사이 여행 일정을 짜던 중 윤동주가 다녔던 도시샤대학교에 윤동주 시비(詩碑)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도시샤대학교에는 정지용의 시비도 있다.)
시비에는 윤동주의 생애와 <서시>가 한국어와 일본어로 나란히 적혀 있었다. 특히 '尹東柱' 이름 석 자와 <서시>는 어쩐지 낯이 익은 그의 글씨로 새겨져 있었다. 시비 옆에는 '중요 문화재가 있으니 금연해달라'는 내용의 키가 큰 나무 표지판이 벗삼아 서 있고, 시비 앞엔 색색의 꽃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함께 간 일본인 친구와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사실 이 때도, 내가 아는 윤동주는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배운 모습이 거의 전부였다.
다음으로 윤동주를 만난 건 한 다큐멘터리를 통해서였다.
MBC 스페셜: 537회 가을, 윤동주 생각 (2011.11.4)
이 다큐멘터리에는 '윤동주를 기리는 릿쿄의 모임'이라는 일본 단체가 나온다. '릿쿄'는 경성에서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도쿄로 건너간 윤동주가 다니던 대학교 이름이다. (릿쿄대학교에 다니던 윤동주는 고민 끝에 교토의 도시샤대학교로 학교를 옮기게 된다.)
일본에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한국 시인 윤동주를 생각하며 눈물 짓고, 그의 희미한 일본 발자취를 되살리려 노력하는 일본인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결코 우호적이지 않으며 때때로 숨이 턱 막히는 분위기에서 바다 건너 가족과 동료를, 일본의 그늘에서 벗어날 날을 그리며 잠들곤 했을 청년 윤동주. 나는 그제서야 교과서에 나오는 시인이 아닌, 나보다 앞선 시대를 살다 간 한 청년으로서 윤동주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일본에서 지내며 늘 잊지 않았던 '나는 한국인'이라는 자의식과 나를 둘러싼 공기에서 이따금 느꼈던 위화감. 당연히 무단통치 시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내가 느꼈던 감정보다 더한 감정을 윤동주가 느꼈으리라 생각하면 어쩐지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윤동주의 시에 등장하는 '육첩방'은 다카다노바바 1초메(高田馬場一丁目)일 거라는 기사를 보았을 땐 '70년 전 바바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혼자 그려보기도 했다.
내가 걸었던 길을 윤동주도 걸었을까, 그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걸었겠지, 티 없이 맑은 하늘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
나는 이렇게 조금씩 윤동주를 만났다. 그리고 《시인 동주》를 읽게 됐다.
《시인 동주》는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을 무렵부터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시간을 그린 소설로,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생전 윤동주의 모습을 생생히 되살렸다는 점이 인상깊다. 윤동주는 왜 창씨개명을 해야 했을까. 왜 일본으로 건너갔을까. 왜 시의 제목이 <서시>일까. 제각기 흩어져 있던 수많은 점을 선으로 이어 하나의 물결로 재현해낸 느낌이다.
소설은 1938년 '동주'와 '몽규'가 경성역에 내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연희전문학교에 다니는 동주와 몽규를 중심으로 당시의 암울한 시대상이 묘사되다가 일본으로 건너간 윤동주의 모습이 그려진다.
시인 윤동주의 생을 그린 소설이지만 오로지 윤동주 개인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은 아니다.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에 다닐 무렵은 일본의 무단통치 하에서 삼십 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고, 핍박받은 시간만큼 조선이 무기력해져만 갈 때였다. 《시인 동주》에도 이런 시대상이 잘 나타나 있다. 치밀한 현실 및 풍경 묘사와 시대상을 잘 보여주는 단어 선택도 돋보였다.
"일본에 이어 식민지 조선도 전쟁을 위한 '국가 총동원' 체제로 본격적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강압적인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려 본국 정부가 그랬듯이, 조선 총독부는 말 많은 지식인 사회부터 길들이려 했다. 그리하여 기독교계 교수와 학자, 사업가들의 모임인 '흥업 구락부'를 불온 단체로 규정하고 회원들을 잡아들였다." (본문 99쪽)
"학교에서 돌아와 야단맞은 진규의 누나와 형도 마음이 복잡했다. 집에서 오가는 이야기와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은 너무도 달랐다. 아버지가 친구 분들과 낮은 소리로 주고받는 이야기에 정의로운 울분이 담겨 있는 것은 어린 마음에도 알 수 있었다. 아버지를 수시로 찾아와 근황을 꼬치꼬치 캐묻는 형사의 눈길과 말투도 기분 나빴다." (본문 183쪽)
윤동주의 시를 그의 삶 속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윤동주는 시 마지막에 항상 날짜를 덧붙이는 습관이 있었다는데, 덕분에 어떤 맥락에서 쓴 시인가 하는 정황이 비교적 선명하다. 시에 정답은 없다지만 윤동주의 삶 속에서 그의 시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죽음에 이르는 병과 같은 절망의 끝에 결국 동주는 닿아본 것일까. 끝없이 빠져드는 깊은 늪 속을 허우적거리다 마침내 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거짓말처럼 고요히 몸을 떠오르게 하는 부력의 그 순간을 느낀 것일까. 동주의 새로운 시는 맑고도 담담했다." (본문 172쪽)
이렇게 담담히 책장을 넘기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동주가 감옥에서 풀려나올 날짜는 1945년 11월 30일이고, 몽규가 풀려나 자유를 얻게 될 날은 1946년 4월 12일이다." (본문 280쪽)
"만 이십칠 년 이 개월이 채 못 되는 삶. 동주가 태어날 때부터 조국은 남의 나라 식민지였다. 아무런 근심 없이 한번 싱그럽게 웃어 보지도 못했고, 어떤 일을 마음껏 좋아해 본 적도 없었다." (본문 297쪽)
그리고 1945년 2월 16일이 묘사되기 시작하는 장면에서 나는 얼마간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만 이십칠 년 이 개월이 채 못 되는 삶. 동주가 태어날 때부터 조국은 남의 나라 식민지였다. 아무런 근심 없이 한번 싱그럽게 웃어 보지도 못했고, 어떤 일을 마음껏 좋아해 본 적도 없었다." (본문 29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