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도시 기행 2 - 빈, 부다페스트, 프라하, 드레스덴 편 유럽 도시 기행 2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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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나의 세계사 점수는 형편없었다.

필기를 아무리 꼼꼼히 하고 도표로 그려봐도 게르만족이니 투르크족이니, 무슨 제국에 무슨 황제가 어쩌고저쩌고, 아우구스투스 1세가 어쩌고 2세가 저쩌고. 정신 바짝 차리려 버둥거려도 쉴 새 없이 들이치는 낯선 고유명사의 거센 물살에 속절없이 휩슬려 떠내려가는 것 같았달까. 돌이켜보면 수업 도중에 그렇게 졸았던 과목도 없다. 


그러나 나이라는 것을 먹으면서 나의 세계사에 관한 미천한 교양도 점차 깊이를 더해

왔는가 하면 전혀 아니다.


취업 한답시고 미친듯이 판 한국사능력시험 덕분에 한반도에 터를 잡은 여러 나라들의 흥망성쇠를 동일 시간 선상에서 이해하는 데까진 어떻게 성공했는데, 세계사에 관해서는 여전히 낯선 고유명사들이 머릿속을 정신없이 날아다닐 뿐이다.


그래도 세계사 초반에 힘 주어 배운 몇몇 단어들은 제법 친근하다. 이를테면 직접민주제를 실시한 고대 도시 국가 아테네. 그리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할 때의 그 로마...? 이탈리아에 로마가 있다는 건 아니까, 콜로세움이 있는 로마도 대충 아는...건가?


《유럽 도시 기행 1》은 비교적 친근한 도시인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가 겪은 세월을 상징적인 건축물을 중심으로 풀어간 덕에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수월했다. 그 쾌감을 기대하고서 《유럽 도시 기행 2》를 펼친 건데. 몇 장 읽다 보니 나의 미천한 배경지식을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메워나가면 좋을지 전혀 감이 안 잡히는 세계사가 드넓게 펼쳐졌다. 이를 테면 이런 거다.


11세기 스위스 북부 아르가우 지방의 어떤 귀족이 합스부르크라는 성을 지었다. 그때만 해도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시골 귀족이었을 뿐인데, 2백 년쯤 지났을 때 후손 한 사람이 독일 지역 봉건영주들의 왕으로 뽑혔고 그 아들이 오스트리아 영지를 물려받았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주로 혼인을 통해 보헤미아, 헝가리, 스위스 티롤, 이탈리아 북부 지역을 손에 넣었고 15세기 중반부터 3백여 년 동안 신성로마제국 황제 직위를 대물림했다. 이탈리아 피렌체를 지배하면서 문화예술을 후원해 이름을 떨쳤던 메디치 가문조차 한낱... (생략) 

《유럽 도시 기행 2》 p.25


한 번 지나온 부분을 다시 읽으면서

'...음, 그래... 뭐가 어떻게 됐다는 거야?' 하고 갸웃.


세계사에 훤한 사람이라면 저자가 해주는 이야기가 친절하게 와닿을 것도 같은데. 아쉽게도 나에겐 아니었다. 책을 읽는 이틀 동안 어디선가 들어보긴 했으나 많이 낯선 고유명사의 거센 물살에 (다시금) 휩쓸렸다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그래도 백지 같은 머리에 밑그림이라도 흐릿하게 그리는 셈 치고 문장과 문단을 나름 정성껏 읽었다. 어딘가에서 주워 들은 단어들이 집중력 흐트러질 때마다 등장해 주었고, 작가가 들려주는 세계사 이외의 이야기들 덕에 흥미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완독 후 머리에는 책 내용을 따라가며 검색해본 몇몇 역사적 인물들의 이미지가 남았고,

마음에는 저자의 인간에 대한 묘사 몇 문장이 남았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광장 한복판에 세워진 기념탑 '페스트조일레'에 관해 설명하는 대목이었다.


누가 페스트를 물리쳤는지 우리는 안다. 공중보건 전문가, 행정가, 건축가, 의사와 과학자들이었다. 그들의 분투와 지성과 헌신 덕분에 인류는 전염병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3백 년 전의 빈 시민들은 그렇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치명적 전염병을 견디는 일이 얼마나 끔찍했겠는가. 기도의 힘이 모자라서 신의 가호가 내리지 않은 게 아니었다. 세균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없어서 비극을 막지 못했다. 30여 년 후 페스트가 또다시 덮쳤을 때 빈의 방역 담당 관리들과 의사들은 첫 번째 대유행 때 저질렀던 오류를 되새기면서 적극 대처해 피해 규모를 크게 줄였다. 비를 맞고 선 페스트조일레를 보면서 그들을 생각했다. 인간은 얼마나 무지하며 무력한가. 그러면서도 또 얼마나 지혜로우며 용감한가. 삶은 때로 얼마나 허망하며 또 얼마나 질긴 것인가. 

《유럽 도시 기행 2》 p.32


무지하고 무력하지만 용감하고 지혜롭기도 한 인간. 

어찌 보면 허망하기도 질기기도 한 삶.

비단 페스트 앞에서만의 이야기일까.


삶의 여러 장면에서 곱씹어 볼 만한 표현인 것 같아서,

어쩌면 이 글귀에 힘을 얻을 날도 있을 것만 같아서 필사 노트에 고스란히 옮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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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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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잠자고 있던 책을 꺼냈다. 세월을 거듭하며 서서히 행동 양식이 바뀌듯이 책을 고르는 취향도 조금씩 바뀌어서, 지금은 어느 쪽인가 하면 소설보다는 인문학에 더 끌리는 편이다. 그래서 우리 집엔 소설책이 그리 많지 않다. 《작별인사》는 그런 와중에 쟁여둔 소설이다. 요즘 들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이야기의 소재가 AI라는 정보만 가지고서 읽기 시작했고, 마지막 장면에선 눈물이 꽤 났다. 소설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린 게 언제였더라. 읽으면서 아마도 내가 살아가는 동안엔 겪어보지 못할 세상과 삶에 대해 생각했다. 어쩌면 살아있는 동안 언젠가 두 눈으로 목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야기는 주인공 철이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p,9

자작나무숲에 누워 나의 두 눈은 검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한 번의 짧은 삶, 두 개의 육신이 있었다. 지금 그 두 번째 육신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 어쩌면 의식까지도 함께 소멸할 것이다. 내가 겪은 모든 일이 머릿속에서 폭죽 터지듯 떠오르기 시작한다. 한때 회상은 나의 일상이었다. 순수한 의식으로만 존재하던 시절, 나는 나와 관련된 기록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기억을 이어 붙이며 과거로 돌아갔다. 그때마다 이야기는 직박구리가 죽어 있던 그날 아침, 모든 것이 흔들리던 순간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을 지나자,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이 소설의 인물들은 언제나 그런 이미지였다. 혼자이고, 외롭지만 어떻게든 이 고통의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갈 이유를 찾는 존재들.’


자신만의 이야기를 완성하려 애썼고, 파도처럼 일어나는 맹목적인 본능에서 벗어나 끝내 자신의 이야기를 완성한 한 마음의 일대기다. 눈물이 났던 건 세상에 홀로 남겨진 존재가 느끼는 외로움과 헛헛함, 그럼에도 자아를 세우려는 인간적인 면모에 마음이 동해서가 아니었을지. 마지막 장면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철이만이 취할 수 있는 작별 인사의 방식이었다.


과연 의식은 영속할까. 그랬으면 좋겠다. 무엇이든지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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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 -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
이인규 지음 / 조갑제닷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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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작가 왈,
[‘힘센 나쁜 놈’이 누군지에 대해서 이인규 씨는 그때도 지금도 헌법이나 상식과 크게 다른 관념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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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프레지던트 - 국가 기념식과 대통령 행사 이야기
탁현민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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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온 힘을 다하는 사람은 멋지다.

아니, 온 힘을 다하는데 잘하기까지 하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다.


'대통령이 극한 직업이네' 싶을 만큼 문재인 정부 내내 나라는 안팎으로 다사다난했다. 하루하루가 어찌나 긴박하고 숨 가쁜지, 평범히 사는 시민조차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뉴스를 챙기기 바빴을 정도.

그런 시대를 살면서 취미(?)가 되어버린 일이 있었으니, '국가 기념식'을 실시간으로 보는 일이었다. 밖에 있어 실시간으로 보지 못하면, 집에 돌아와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보았다.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라 눈물을 닦기도 여러 번. 그렇게 감탄하며 보았던 국가 기념식 뒤에는 의전비서관 탁현민이 있었다.


그런 탁현민이 책을 냈다. 문재인 정부 동안의 국가 행사 뒷이야기를 담았다. 의전비서관으로 근무할 때도 이따금 방송에 출연해 행사 뒷이야기를 전하곤 했는데, 한참 재밌을 때 인터뷰가 끝나곤 해 아주 감질이 났더랬다.

책에는 자세히 듣고 싶었던 이야기와 방송에선 언급한 적 없는 뒷이야기가 한 상 가득 실렸다. 대통령 일정을 준비하며 겪은 우여곡절에서부터 국가 기념식을 준비하며 했던 고민과 기념식의 의미, 해외 순방 뒷이야기까지.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풀어놓는 소회에서는 자신이 업으로 삼고 있는 일에 대한 애정과 철학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은 '오희옥 애국지사의 올드 랭 사인(72주년 광복절 경축식)'과 '장군의 귀환(여천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식과 안장식)'.

'청와대', '국가 행사'라는 듣기만 해도 몸이 절로 경직되는 단어들로 이루어진 책이지만 문체는 꾸밈없고 때로는 유머러스하기까지 해 '빵빵' 터진다. 대통령의 한마디로 인해 한복 국무회의를 개최하게 되었는데, 회의 참석자들이 한복을 구하느라 한바탕 소란이 일었던 이야기. 이 소란통에 정작 의전비서관인 저자는 한복을 구하지 못해, 회의 당일에 황급히 전통의장대 복장을 빌려 입고 회의에 참석한 이야기.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했을 때 얼떨결에 무대로 끌려 나온 대통령이 마지못해 덩실덩실 춤을 추다가 탁 비서관과 눈이 마주친 이야기. 유럽 순방 때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모면했던 이야기들.


처음 프롤로그에서부터 마지막 에필로그까지 읽는 내내 수없이 코끝이 찡했다.

다시는 없을 5년이었다.


지난 5년 내내 '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중략) 우리에게 쇼한다고 비난하는 사람치고 '쇼'하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언젠가 했던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쇼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과 우리의 차이는 딱 한 가지밖에 없다.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는가."

p.5


실수가 없을 수 없고, 때론 실패도 겪게 된다. 그렇지만 잊어버려야 했다. 내일 또 다른 일정과 행사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쉴 수 있는 자리가 아니고, 어떤 프로젝트 하나로 끝나는 일도 아니다. 실수를 잊고 다음을 준비하는 것은 성공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다. 나아지도록 노력하면 반드시 나아진다.

p.425


그때 탈을 쓴 누군가가 대통령 손을 이끌고 무대로 나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람들이 "와 대통령이 나오셨다. 신난다. 문재인! 문재인!"이라고 외쳤고, 한쪽에서는 "김정숙! 김정숙!" 하는 소리도 들렸다.

그때 대통령 얼굴은 웃으셨지만, 눈빛은 날카롭게 무엇인가, 아니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아!' 나는 대통령이 찾으시던 '누군가'가 나라고 확신하고 급히 몸을 숙였다. 잠시 후 엄청난 박수 소리와 환호가 터졌다. (살짝 일어나 보니) 대통령이 팔을 쭉 뻗으시고 덩실덩실 춤을 추고 계셨다. 얼굴은 웃고 계셨지만 여전히 누군가를 찾는 눈빛으로... 그때 그 눈빛과 내가 마주쳤고, 대통령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던 것은 오직, 나만 보았을 것이다.

p.150


'주문하면 그때부터 조리해서 30분 이내에 500명을 먹일 수 있다고?' 말도 안 되는 계획이었다. "장관님, 이거 음식 지금 주문해도 절대 시간 못 맞출 것 같아요." (중략)

여기저기서 의전비서관들과 외교부 장관들이 분주했다. 어떻게든 자국 정상을 챙겨야 하는데 음식이 나오지 않으니 다들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준비해 온 도시락을 조용히 꺼냈다. (중략)

뒤에서 누군가 물었다.

"그 음식들, 그거 어디서 난 건가?"

"우리는 음식이 늦을 것 같아 도시락을 싸 왔다."

"아, 우리도 싸 올 걸 그랬다. 좋겠다."

"어, 부럽지. 부러울 거야."

p.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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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붓다 - 바람과 사자와 연꽃의 노래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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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간 읽어보고 싶은데' 하고 눈에 밟히는 책 중에는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북드라망, 2021)도 있다. 저자는 고전평론가 고미숙. 우연한 계기로 《청년 붓다》를 통해 저자를 먼저 접하게 되었다.


인간은 죽고 태어나기를 되풀이한다는 윤회설, 새해가 되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절에서 소중히 가져와 현관에 붙이던 부적, 부처님께 108배를 하면 간절히 바라던 일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 '불교'라는 말을 접하면 흔히 이런 모습을 떠올렸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어떤 작업을 계기로 불교를 다룬 책과 스님이 쓴 책을 여러 권 읽고, 불교 신문을 읽고, 유명한 스님들의 유튜브 설법도 챙겨보았다. 아이가 걸음마를 떼듯 하나둘 톺아나갔다. 그런데 어릴 적 어른들의 어깨너머로 보고 들으며 가졌던 불교의 이미지와 이제야 새로 알아가기 시작한 불교는 왜 이리 다르단 말인가. 불교에 없는 말은 아닌데, 와전되어 잘못 알고 있었던 이야기. 알면 알수록 '불교는 이런 거래'라는 해묵은 이야기들이 산산이 조각났다.


청년 붓다는 이른 나이에 어떻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나.


고전평론가인 저자는 이 책에서 붓다의 생애를 시간순으로 들려준다. 붓다는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으며 어떻게 부처가 되었는가. 맛보기로 이야기하자면 붓다는 지금의 네팔 카필라바스투 지역에 터를 잡은 샤카족의 슈도다나 왕과 마야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다. 12세에 태자로 책봉되는데,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다.


문체는 구어체에 가까워서 제법 술술 읽힌다. 딱딱한 문체에 익숙한 터라 부들부들한 문체에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책 중반을 넘어서니 옆집 언니 목소리를 통해 듣는 듯 친숙하게까지 느껴졌다. '탐(貪), 진(瞋), 치(痴) 삼독(三毒)' 같은 조금은 생소한 불교 용어가 가끔 나오는데, 앞쪽에서 언급하며 풀어서 설명해 주어 그리 어렵지 않다.


불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차라리 삶의 철학에 가깝다.

붓다(석가모니)는 신이 아니다. 깨달음을 얻고자 한 우리 같은 사람일 뿐이다.


p.274

'불교'하면 가장 먼저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반야심경』의 구절이 떠오를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空)이 바로 연기다. 연기법은 생성과 소멸의 원리에 더하여 세계의 상호의존성, 곧 누구도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이치가 핵심이다. 세상이 모두 연기적 조건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누구도, 그 어떤 대상도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신이건 인간이건 그 무엇이건. 이것이 바로 공의 핵심이다. 공은 '없다'가 아니다. '허무하다'는 더더욱 아니다. 무상하게 흘러가는 변화 그 자체다. 고로,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하다.

연기법을 깨닫는 순간 고타마 존자는 붓다가 되었다.


p.279

세계를 움직이는 다르마는 연기법이다. 만물의 상호연관성이 그것이다. 이 연기법을 모르면 무명에 갇혀 괴로움을 겪게 된다. 그럴 때 인간은 탐진치 삼독을 '내 것' 즉 '자아'라 여기고 그것을 굳게 지키려 한다. 한 철학자의 언어를 빌리면, '생명의 바다에 무명의 폭풍이 몰아닥칠 때 자아라는 괴물이 우뚝 솟아난다.' 이 자아라는 망상에서 벗어날 때, 그것이 곧 열반이다.


p.301

무아는 달리 표현하면 존재와 세계의 상호작용을 의미한다. 나라고 할 것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면 더 이상 이기적인 욕망에 복무할 이유가 없다. 자연스럽게 그 마음은 타자와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당연한 일이다. 나의 욕망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서 어떻게 타자와 연결될 것인가로 나아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 연결이 곧 생명이고 운동이다. 따라서 무아는 결코 허무주의, 비관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자아의 감옥에 갇혀 있다가 비로소 그 감옥의 벽을 부수고 나온 격이니 그야말로 환희용약하지 않겠는가. 그 자유와 기쁨의 파동이 마음의 경계를 넘어 확장해 가는 것이 바로 자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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