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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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잠자고 있던 책을 꺼냈다. 세월을 거듭하며 서서히 행동 양식이 바뀌듯이 책을 고르는 취향도 조금씩 바뀌어서, 지금은 어느 쪽인가 하면 소설보다는 인문학에 더 끌리는 편이다. 그래서 우리 집엔 소설책이 그리 많지 않다. 《작별인사》는 그런 와중에 쟁여둔 소설이다. 요즘 들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이야기의 소재가 AI라는 정보만 가지고서 읽기 시작했고, 마지막 장면에선 눈물이 꽤 났다. 소설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린 게 언제였더라. 읽으면서 아마도 내가 살아가는 동안엔 겪어보지 못할 세상과 삶에 대해 생각했다. 어쩌면 살아있는 동안 언젠가 두 눈으로 목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야기는 주인공 철이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p,9

자작나무숲에 누워 나의 두 눈은 검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한 번의 짧은 삶, 두 개의 육신이 있었다. 지금 그 두 번째 육신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 어쩌면 의식까지도 함께 소멸할 것이다. 내가 겪은 모든 일이 머릿속에서 폭죽 터지듯 떠오르기 시작한다. 한때 회상은 나의 일상이었다. 순수한 의식으로만 존재하던 시절, 나는 나와 관련된 기록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기억을 이어 붙이며 과거로 돌아갔다. 그때마다 이야기는 직박구리가 죽어 있던 그날 아침, 모든 것이 흔들리던 순간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을 지나자,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이 소설의 인물들은 언제나 그런 이미지였다. 혼자이고, 외롭지만 어떻게든 이 고통의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갈 이유를 찾는 존재들.’


자신만의 이야기를 완성하려 애썼고, 파도처럼 일어나는 맹목적인 본능에서 벗어나 끝내 자신의 이야기를 완성한 한 마음의 일대기다. 눈물이 났던 건 세상에 홀로 남겨진 존재가 느끼는 외로움과 헛헛함, 그럼에도 자아를 세우려는 인간적인 면모에 마음이 동해서가 아니었을지. 마지막 장면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철이만이 취할 수 있는 작별 인사의 방식이었다.


과연 의식은 영속할까. 그랬으면 좋겠다. 무엇이든지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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