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프레지던트 - 국가 기념식과 대통령 행사 이야기
탁현민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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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온 힘을 다하는 사람은 멋지다.

아니, 온 힘을 다하는데 잘하기까지 하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다.


'대통령이 극한 직업이네' 싶을 만큼 문재인 정부 내내 나라는 안팎으로 다사다난했다. 하루하루가 어찌나 긴박하고 숨 가쁜지, 평범히 사는 시민조차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뉴스를 챙기기 바빴을 정도.

그런 시대를 살면서 취미(?)가 되어버린 일이 있었으니, '국가 기념식'을 실시간으로 보는 일이었다. 밖에 있어 실시간으로 보지 못하면, 집에 돌아와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보았다.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라 눈물을 닦기도 여러 번. 그렇게 감탄하며 보았던 국가 기념식 뒤에는 의전비서관 탁현민이 있었다.


그런 탁현민이 책을 냈다. 문재인 정부 동안의 국가 행사 뒷이야기를 담았다. 의전비서관으로 근무할 때도 이따금 방송에 출연해 행사 뒷이야기를 전하곤 했는데, 한참 재밌을 때 인터뷰가 끝나곤 해 아주 감질이 났더랬다.

책에는 자세히 듣고 싶었던 이야기와 방송에선 언급한 적 없는 뒷이야기가 한 상 가득 실렸다. 대통령 일정을 준비하며 겪은 우여곡절에서부터 국가 기념식을 준비하며 했던 고민과 기념식의 의미, 해외 순방 뒷이야기까지.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풀어놓는 소회에서는 자신이 업으로 삼고 있는 일에 대한 애정과 철학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은 '오희옥 애국지사의 올드 랭 사인(72주년 광복절 경축식)'과 '장군의 귀환(여천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식과 안장식)'.

'청와대', '국가 행사'라는 듣기만 해도 몸이 절로 경직되는 단어들로 이루어진 책이지만 문체는 꾸밈없고 때로는 유머러스하기까지 해 '빵빵' 터진다. 대통령의 한마디로 인해 한복 국무회의를 개최하게 되었는데, 회의 참석자들이 한복을 구하느라 한바탕 소란이 일었던 이야기. 이 소란통에 정작 의전비서관인 저자는 한복을 구하지 못해, 회의 당일에 황급히 전통의장대 복장을 빌려 입고 회의에 참석한 이야기.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했을 때 얼떨결에 무대로 끌려 나온 대통령이 마지못해 덩실덩실 춤을 추다가 탁 비서관과 눈이 마주친 이야기. 유럽 순방 때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모면했던 이야기들.


처음 프롤로그에서부터 마지막 에필로그까지 읽는 내내 수없이 코끝이 찡했다.

다시는 없을 5년이었다.


지난 5년 내내 '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중략) 우리에게 쇼한다고 비난하는 사람치고 '쇼'하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언젠가 했던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쇼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과 우리의 차이는 딱 한 가지밖에 없다.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는가."

p.5


실수가 없을 수 없고, 때론 실패도 겪게 된다. 그렇지만 잊어버려야 했다. 내일 또 다른 일정과 행사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쉴 수 있는 자리가 아니고, 어떤 프로젝트 하나로 끝나는 일도 아니다. 실수를 잊고 다음을 준비하는 것은 성공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다. 나아지도록 노력하면 반드시 나아진다.

p.425


그때 탈을 쓴 누군가가 대통령 손을 이끌고 무대로 나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람들이 "와 대통령이 나오셨다. 신난다. 문재인! 문재인!"이라고 외쳤고, 한쪽에서는 "김정숙! 김정숙!" 하는 소리도 들렸다.

그때 대통령 얼굴은 웃으셨지만, 눈빛은 날카롭게 무엇인가, 아니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아!' 나는 대통령이 찾으시던 '누군가'가 나라고 확신하고 급히 몸을 숙였다. 잠시 후 엄청난 박수 소리와 환호가 터졌다. (살짝 일어나 보니) 대통령이 팔을 쭉 뻗으시고 덩실덩실 춤을 추고 계셨다. 얼굴은 웃고 계셨지만 여전히 누군가를 찾는 눈빛으로... 그때 그 눈빛과 내가 마주쳤고, 대통령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던 것은 오직, 나만 보았을 것이다.

p.150


'주문하면 그때부터 조리해서 30분 이내에 500명을 먹일 수 있다고?' 말도 안 되는 계획이었다. "장관님, 이거 음식 지금 주문해도 절대 시간 못 맞출 것 같아요." (중략)

여기저기서 의전비서관들과 외교부 장관들이 분주했다. 어떻게든 자국 정상을 챙겨야 하는데 음식이 나오지 않으니 다들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준비해 온 도시락을 조용히 꺼냈다. (중략)

뒤에서 누군가 물었다.

"그 음식들, 그거 어디서 난 건가?"

"우리는 음식이 늦을 것 같아 도시락을 싸 왔다."

"아, 우리도 싸 올 걸 그랬다. 좋겠다."

"어, 부럽지. 부러울 거야."

p.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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