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장 오래된 원형

[몽골리안 1만년의 지혜](폴라 언더우드, the walking people, 그물코 출판사)라는 책에 서술된 내용들입니다. 이로쿼이 북미 인디언 부족이 극동아시아로부터 출발하여 베링해협을 거쳐서 현재의 캐나다-미국 북부에 정착하기 까지, 그들이 겪었던 당시의 사실들을 기록한 역사책이지요. '역사'라는 어휘를 내가 썼는데요.... 이들에게(아니 모든 인류에게도 마찬가지인데) '역사'란, 대대로 부족 가운데 가장 뛰어난 기억력과 가창력의 소유자들을 중심으로 구비전승되어져 온 노래입니다. 그러니 '이 단계에서의 역사'란 것을 잘 이해하면 지금 우리들이 곧잘 '신화'라고 부르는 것의 출발지점, 발생학적 원형을 볼 수 있게 되지요.

그러니 '신화' 이전에 '역사'가, '사실'이, 있었던 것입니다. [몽골리안 1만년의 지혜]를 쓴 폴라 언더우드는 이로쿼이 부족의 구비전승자의 5대 후손입니다. 책을 읽어 보시면 알게 됩니다만, 이들 이로쿼이 인디언들의 상상력에 경탄하게 되지요. 신화 이전의pre-mythos '사실로서의 역사'와 상상력 사이에 나타나는 묘한 융합이 그것입니다. 덧붙이자면, '상징계'에 들어서기 시작한 '상상계'의 형상적 사유들이란 것이지요.

구비노래인 까닭에 모든 서술들은 대단히 사실적입니다. 하지만 객체에 대한 명칭들은 '상상된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제 틈나면 상세하게 분석해 볼 마음입니다. 여하튼 간에 [몽골리안 1만년의 지혜]는 문학적으로 상징화되고 형식화되기 직전에 놓인 전-신화적인 사실 또는 역사의 원형이 무엇인지 만끽하게 해줍니다.

물론 책의 주인공들인 이로쿼이 인디언들이 알타이 북방 유목부족의 직접적인 선조는 아닙니다. 인종학적으로는 이로쿼이 인디언들은 고아시아족 홍인종이지요. 하지만 [몽골리안 1만년의 지혜]에 나타나는 이로쿼이 인디언들의 '사실적 역사'를 통해서 1만년전(아니 그보다 더 오래) 동북아시아 극동지역의 인종사회에서의 변동을 추적할 수 있더군요. 기후와 같은 자연환경의 변화는 물론이고 어떻게 해서 고아시아 홍인종들이 새롭게 나타난 알타이 황인종들의 진입으로 인해서 베링해협 너머로 밀려 나는 지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즉 1) 인종적 자연적 혼합상태라는 문화사적 역사성, 2) 시간적 동시성, 두가지 점에서 나는 [몽골리안 1만년의 지혜]를 통해서 고대 모계제 사회의 원형들이 어떻게 사회학적으로 역사학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 지를 감잡았습니다. 그래서 주저없이 [몽골리안 1만년의 지혜]를 알타이 고대신화의 가장 오래된 모계원형에의 통로라고 추정합니다.


2. 고도화된 모계제 신화의 원형

이번에 올린 만주족 창세신화 [천궁대전]이 알타이 신화의 두번째 단계의 원형입니다. [몽골리안 1만년의 지혜]와 비교해 보면, [천궁대전]은 이미 충분할 정도로 '상징계'에 들어선 텍스트입니다. [천궁대전]은 이미 충분할 정도로 모든 등장 대상들에 대한 명칭이 '추상화'되어 있고, 벌어지는 모든 사실은 이미 관념화된 형상들, 즉 신들의 거대한 드라마입니다. 대충으로 보자면 한 100여명의 신들, 자세하게는 수백명을 넘는 신들이 등장합니다.

[천궁대전]은 문학적으로 보아도 이미 고도의 형식화를 이루고 있지요. [몽골리안 1만년의 지혜]에서 보여지는 것, 즉 '자신들이 경험한 사실들에 대한 직접적인 정서'의 노래'가 보여주는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역사-서술을 이미 훨씬 뛰어넘어서, [천궁대전]은 온 우주와 세상을 넘나들면서 허구적 상상력 그자체의 나래를 활짝 펴고 있습니다. 만주족의 상상력은 이 세상과 인간, 자연과 인간 사이에 놓인 수많은 수수께기와 같은 드라마들을 최초의 여신 아부카와 최초의 악마적 남신 예루리 사이의 '전쟁'을 축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합니다. 이처럼 [몽골리안 1만년의 지혜]가 놓인 '사실과 역사'로부터 [천궁대전]의 형식화된 문학적 '상징들'로의 발전과 변형이 이루어 진 것입니다.

그럼에도 [천궁대전]은 맨 끝부분 9모링 후반부 전까지, 즉 <아부카 언두리 남신>으로 <아부카 여신>이 바뀌기 전까지는, 철저하게 <아부카-바나무-와러두>라는 3 여신의 모계제적 원형을 유지합니다. 이점은 정확하게 [몽골리안 1만년의 지혜]에서 이로쿼이족을 지도하는 <3 여성 선지자들>의 역할과 동일합니다. 이러한 '모계제적 원형의 유지'는 [몽골리안 1만년의 지혜]와 [천궁대전] 사이의 원형적 연속성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남성 부계권력의 원형

[부도지]가 그것입니다. [부도지] 역시 그 우주창조에서는 마고와 두 딸들이라는 <3 여신>의 모계원형이 유지됩니다. 하지만 [부도지] 전체 구성에서 곧바로 모든 사건과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남자들, 특히 <황궁씨-유인씨-환웅씨-임검씨-신라>라는 부계 계승자들, 즉 기부장 권력으로 넘어 갑니다.

[천궁대전]이 맨 마지막에 가서 <아부카 여신huhu에서 아부카 언두리enduri(남신)>으로 변형되는 것에 비하면 [부도지]에서는 초반부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부계제 신화에 바쳐집니다. 두 텍스트 사이에 이처럼 엄청난 분량과 초점의 이동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비록 그런다 해도 [단군기]나 [삼국유사] 또는 [규원사화]처럼 애초부터 가부장제 남성 신격들이 등장하고 주도하는 것에 비하자면, [부도지]는 아직도 [몽골리안 1만년의 지헤}와 [천궁대전]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고대의 모계원형을 마지막까지 고수하는 텍스트의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러한 [부도지]에서 초반부 조금(전체의 약 10/1) 다루어진 <마고-궁희-소희>라는 3 여신의 원형이 '과연 어떤 본래 진면목과 내용을 가지고 있나'를 알려면, 그러므로 [천궁대전]을 읽어야 하고, [천궁대전]을 통해서 [부도지]에 간촐하게 서술된 <3 모계-여신>의 보다 풍성한 맥락을 알게 되고, 다시 [몽골리안 1만년의 지혜]를 읽으면, 마침내 '그러한 [부도지-천궁대전]의 여신들이 발생한 사실적 역사 현장이 어떠한 것이었나'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오늘 내 글의 초점이지요.

게다가 형식 상에서도 [부도지]는 이미 중국 도교의 사상적 문학적 영향을 깊이 보여줍니다. 어떤 하나의 텍스트에서 이질적이고 오래적인 사상들이나 스타일들이 많이 발견될 수록, 복잡하게 혼합되어 있을 수록, 그 텍스트는 후대의 것입니다. 소박하고 사실적이며 직접적일 수록 보다 원초적인 것이구요. 이런 점에서, [몽골리안 1만년의 지혜]가 어떠한 외부적 외래적 사상의 작용을 받지 않은 100% 순수한 이로쿼이족의 내재적 상상력의 결실이자 문학적으로도 대단히 소박하고 진실된 사실주의 단계의 것이라면, [부도지]의 어휘들은 이미 중국 도교의 침투로 인해서 모든 어휘와 사고가 경직되고 정형화된 것입니다. [부도지]가 [단군기]나 [규원사화]와 같은 재야도가사서로 분류되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천궁대전]은 물론 중국 도교나 불교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요. [천궁대전] 역시 순수한 만주족의 내적 상상력과 형상적 사유의 결실입니다. 하지만 [몽골리안 1만년의 지혜]와 비교하면 [천궁대전] 역시 그 문학적 형식화의 발전단계에서는 이미 소박한 사실적 묘사를 넘어쓴 고도로 형식화된 상징적 형상사유의 단계입니다.


4. 끝으로

이렇게 간략하게 나마 [몽골리안 1만년의 지혜]로부터 [천궁대전]을 거쳐서 [부도지]에 이르는 알타이 모계원형의 3가지 발전 형태를 요약해 보았습니다. 많은 신화학자들이나 고대사 연구자들이 북방 알타이적 원형의 고유성과 순수성을 찾아서 방황합니다. 이들의 마음 속엔 서양 자본주의 근대성이 내세우는 그리스-유태적(헬레니즘-헤브라이즘) 가부장적 남성성의 오리엔탈리즘에 맞서서, '알타이적 독자성'을 만들어 내려는 옥시덴탈리즘적 열정과 욕망이 넘치는 것이지요.

하지만 나는 그것을 <모계/부계>라는 '원형의 분열'에서 보다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해석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오리엔탈리즘/옥시덴탈리즘'의 대립 자체가 <이성의 간계>에 지나지 않으며, <모계/부계 원형의 대립과 분열>을 통해서 나아가야 하며, 그로부터 인간이 <모계원형>의 비밀을 깊이 이해한다면, 근대성-남성성-오리엔탈리즘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나는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동양이냐/서양이냐'를 떠나, 동서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애니미즘, 토테미즘, 샤머니즘>이 바로 모계원형의 기초 위에서 태어난 신화적 패러다임들이었으며, 그것은 근대적 남성성이 비하하듯이, 정착문명의 이성주의가 경멸하듯이. 결코 원시적이거나 미개하거나 열등한 것이 아님을 다시 인식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말입니다.

<모계원형의 단계>로 들어서야만 정신적 갈등과 억압의 족쇄들로부터 인간정신은 자유를 얻습니다. 모계원형의 경지에 이르면, 이집트의 이시스, 메소포타미아의 이쉬타르-티아마트, 그리스의 데메테르-키벨레-가이아, 알타이의 아부카, 인도의 칼리 등등 모든 거룩하고 신성한 신격들이 <죽음/삶, 선/악, 빛/어둠, 동/서. 육체/영혼 등의 모든 이원론>의 해체와 무용함과 무상함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무상함과 혼돈을 통해서 인간 정신은 드높은 화해와 비밀의 해방에 이를 수 있는 것 아닐까하고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오리엔탈리즘/옥시덴탈리즘'의 갈등과 투쟁은 남성성-부계원형의 숙명이자 업보에 불과해 지니까요.

이러한 점에서 [몽골리안 1만년의 지혜], [천궁대전], [부도지]로 이어지는 <모계원형의 계보>는 남성-이성-정착문명의 권력이 판치는 오늘날 어떻게 인간 정신이 자신의 방향을 정해야 할 지 많은 시사점과 지혜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수군작^_*
200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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