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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간적인 인간
브라이언 크리스찬 지음, 최호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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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00년대 초반 개봉했던 매트릭스 3부작 속의 인공지능들은 매력적이지만 동시에 가혹하고 공포스러운 존재로 묘사된다. 인류에게 버림받고 탄압받아서 결국 인류를 정복하려는 기계와 기계와 인간 둘을 다 증오하는 프로그램(스미스), 예언자 인공지능 등등....사실 상투적인 묘사이긴 하나 이러한 캐릭터 묘사들은 인간이 만들었지만 인간 이상의 지능과 자아를 가지고 인간을 정복하려 하는 인공지능/로봇에 대한 전통적인 공포에 기인한다. 이러한 공포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얼마전 짚신벌레의 뉴런 패턴을 입력한 로봇이 짚신벌레와 똑같이 행동하는 것을 봤을때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은 신기해하고 놀라워한만큼 두려움도 같이 느꼈다. 언젠가 인간과 같은 인공지능이 나타나면 우리는 그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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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적인 인간>은 매년 외국에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화를 통해 누가 진짜 인간이고 기계인지를 심사위원단이 판별하는 '뢰브너상 대회'에서 자신이 인간임을 가장 잘 어필한 참여자에게 수여되는 '가장 인간적인 인간'상을 수상한 브라이언 크리스찬이 쓴 책이다. 뢰브너상 대회 참여 경험을 토대로 저자는 인공지능의 발달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기술의 발달. 인공지능의 발달은 인간에 대한 위협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더 인간적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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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노필리아의 흔한 기술지상주의처럼 들리거나, 인공지능과 인간의 결합을 통한 영생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이 주장의 요지는 이렇다. 인공지능의 발달을 통해, 좀 더 넓히자면 동물학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통해 우리는 인간에게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특성들 (이성,계산,논리)이 사실은 우리가 만든 프로그램이나 혹은 인간보다 못한 동물들에게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와 더불어 사실은 인간이라 해도 딱히 항상 인간성을 가질 수는 없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됐다. 예를 들자면, 콜센터 노동자의 반복적 코멘트는 인간적인 행위인가? 그것은 사실 인공지능의 발화와 동일하지 않은가? 옛날에는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계획적 사고,계산력은 이제는 모두 컴퓨터가 대체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기술이 발전할 수록 인간에 대한 정의의 폭은 좁아진다. 이러한 사실들은 인간에게 그렇다면 과연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란 질문을 던지고 인간성을 가다듬게 만든다. 인공지능과 인간이란 결국 인간성을 획득하기 위한 일종의 동반자 관계인 것이다. 때문에 기계와 인간을 구분해내는 튜링테스트는 저자가 볼 때는 기계의 수준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인간성을 시험하는 검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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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그가 말하는 인간다움이란 사실 우리가 종종 들어온 것들이고, 당사자의 경제적 요건을 고려해야만 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이 책을 읽고 나면 이러한 삶과 사유가 결코 모두에게 허락되거나 가능한 것이 아님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생산력이 극대화되어 인간의 고통스러운 노동이 기계로 대체되거나 혹은 최소화되고, 인간은 유적 노동에만 집중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직까지도 먼 이야기이듯이, 인공지능의 발전 앞에 우리가 자신의 인간성을 매번 새롭게 정의하고 고찰하기는 어렵다.


 기술의 발달은 인간성에 대한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일자리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져왔다. 인간성을 다시 구성하는 작업의 이면은 '굳이 인간을 쓸 필요 없는' 일자리의 축소와 창의적 인간에 대한 과도한 요구와 그 궤를 함께 한다. 때문에 브라이언 크리스찬이 인간성에 대해 하는 이야기가 자기계발과 자기경영을 요구하는 이들의 주장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매번 새롭게 도전하기, 표준화,전문화에 저항하고 반복하지 말기, 동물적 본능을 소중히 할 것, 자아에 집착하지 말 것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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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이 사실 인간다움에 대한 진정한 묘사인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이러한 인간성을 모두가 찾을 수 없는 맥락과 환경에 있을 것이다. 소수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이라 하더라도 인간다운 삶에 대한 갈증과 표준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들이니까. 하지만 그런 점들을 생각하더라도 뢰브너상 대회에 대한 이야기와, 대화에 대한 고찰,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들이 저자의 풍부한 지식과 어우러져 덕에 매우 설득력있고 진실하게 다가오는 책.


아래는 인용


"인간의 자의식,자신의 행동과 생각을 되짚어보는 능력이 인간의 고유한 지능에 해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인생에서 생산적이고 재밌으면서 매력적이고 만족스러운 순간은...행운의 여신을 생각하면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무엇을 할 때이다...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런 상태에서 어떤 행동을 하다 보면 종종 '동물 같다'거나 심지어 '기계 같다'는 말을 듣는다는 것이다"


"컴퓨터는 사실상 자신의 과제에 선행해서 존재하는 최초의 도구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스테이플러, 구멍뚫는 기구, 회중시계 같은 도구와 컴퓨터의 근본적인 차이이다. 우리는 먼저 컴퓨터를 만들고 그 다음에 그것으로 무엇을 할지를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런 의미에서 컴퓨터의 존재이유 없음은 존재가 본질에 선행하는 것이 인간에게만 고유한 특성이라는 실존주의자들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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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 - 족청계의 형성과 몰락을 통해 본 해방 8년사 역비한국학연구총서 34
후지이 다케시 지음 / 역사비평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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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겨레에 쓰는 칼럼으로 매번 읽는 이의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후지이 타케시씨가 쓴 <파시즘과 제 3세계주의 사이에서-족청계의 형성과 몰락을 통해 본 해방 8년사>라는 책을 읽고 있다이 책은 우리가 흔히 이승만 정권에 대해 '친미 친 자본주의적 정권'이라고 인식하는 것과 다르게이승만 정권의 초반부가 보여줬던 정책과 발언들이 '반제/반자본주의'성격을 띄고 있었기에 '반공적이면서 미국적이지는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그리고 이 근저에 이승만과 함께 권력블록을 형성했던 이범석과 안호상이 주축이 된 '조선민족청년단-족청계'가 있었다는 점에 주목한다그리고 족청계가 띄었던 정치적 색채에 식민지 경험으로부터 비롯한 민족주의 뿐 아니라 당대의 독일 파시즘과 장제스의 군국주의까지 큰 영향을 끼쳤기에 족청계가 지향하는 바가 민족/반제/반자본주의적 경향을 보였다는 점을 분석해나간다.


2. 책을 중반부 정도까지 읽었을 뿐인데 독립운동과 한국의 건국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이 든다문득 떠오르는 글은 이전에 계원예대 서동진 교수가 썼던 다음과 같은 글이다 (http://www.homopop.org/log/index.php?ct1=7&ct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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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불행한 일이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한국 사회의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철석같이 공유하는 이데올로기는 탈이데올로기적 회의이다최인훈의 광장에서 조정래의 태백산맥까지 한국의 모든 이데올로기 비판 문학(나는 그것을 진보적인 문학이라거나 민중문학이라거나 심지어 지식인문학이라거나 하는 평가에 전연 동의할 구실을 찾지 못한다외려 그에 걸맞는 이름을 찾자면 이데올로기적인 문학이지 않을까)은 언제나 이데올로기적 선택을 강요받은 어느 개인의 무력한 자유를 제시한다그것은 남인가 북인가라는 두 가지의 선택지 밖에 주어지지 않았던 개인에게 제3의 길이라는 진정한 환상이데올로기 외부의 공간을 향한 꿈이기도 하다그리고 이런 탈이데올로기적인 몸짓의 이데올로기는 비단 문학의 공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그것은 이른바 노무현 정권 이후 본격화된 과거사 청산과 민주화운동 기념사업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다나는 이러한 사태가어느 진보적 사회학자의 말처럼기본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 제도를 갖추고 형식적인 민주주의의 틀을 완성하는 정상화의 과정이었다고 보는데전연 수긍하기 어렵다그것은 거칠게 말해 민주주의와 압제라는 틀로 그간의 한국사회운동을 소급적으로 그것도 아주 빈약하게 재단하기 때문이다그의 논리에 따르자면 노동자들이 정치조직을 결성하고 새로운 경제체제를 꿈꾸고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서적을 공공연하게 읽고자 했던 염원은 모두 그저 민주화일 뿐이다그것이 자신의 통치 기반을 정당화하려는 이른바 민주화 세력의 주장이라면 모를까 진보적인 사회학자가 할 소리는 아닐 것이다.

간단히 말해보자통혁당은인혁당은남민전은 그저 민주화운동 세력이었을까몇 해 전 쓸쓸히 자신의 차디찬 골방에서 목숨을 잃은 어느 마지막 여자 빨치산 할머니는 그냥 민주화 운동 세력의 일원이었을까민주화라는 것은 그 투쟁과 운동에 가담하고 있던 자들의 신념과 희망을 백지상태로 돌려놓은 채그들을 순전히 국가폭력의 희생자로 환원해도 좋은 것일까오랜 동안 영어의 몸에 있다 출소한 어느 사회주의 투사를 권위주의적 정치의 피해자로 박제화 시켜 놓고붓글씨나 쓰고 동양사상이나 풀이하는 좋은 어른으로 재갈을 물려놓고그것을 모시는 것이라고 시치미를 떼도 좋은 것일까제 정신이라면 아마 그렇게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서동진 <혁명가인가 피해자인가 - 우리 시대정치적 이데올로기의 한 가지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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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화 운동'이라는 라벨로 다채로웠던 사회혁명운동들을 묶는 것은 일종의 모독이다다소 맥락이 다르지만 이 이야기는 독립운동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독립운동은 건국운동이기도 했다때문에 독립운동가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단순히 일제 식민지를 벗어나는 것을 넘어서식민지 이후 어떤 이념의 국가를 건설하느냐도 포함되는 일이었다여기에는 이념이 중요하고이념은 차이를 만들어낸다김일성도 김구도이범석도 여운형도 박헌영도 독립운동이라는 카테고리에서는 동일했다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공부를 해보면 알 수 있듯 그 방법론은 해방 이후까지를 생각해본다면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그리고 그 차이는 결코 쓸데없는 갈등이 아니었다김구가 세우려는 나라와 여운형이 세우려는 나라박헌영이 세우려는 나라는 결코 같지 않았다이처럼 그 모든 다양한 시도들을 독립운동만으로 묶는 것은 수많은 가능성을 압살하는 일이 아닐까.


3.그런데 좀 더 삐뚤어진 생각을 가지고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개혁진영의 지지자들이 흔히 말하듯 '친일파'가 정권을 잡지 않고 '독립운동 세력'이 정권을 잡았다면 어땠을까친일파 청산 실패가 한국 현대사 비극이라 믿는 이들은 마치 한국의 모든 문제가 친일파로부터 비롯된 듯이 말한다그러나 사실 이미 국민국가 건설이 진행되는 시점에서 더이상 일제에 대한 저항 여부가 더 나은 국가를 세울수 있느냐에 대한 유일한 판단기준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문제는 '어떤 세력'인가이다. 이는 단순히 '독립운동가출신의 이승만이 어떤 말로를 겪었는지만 생각해봐도 자명해지는 일이다이런 생각은 이 책에 펼쳐진 족청계 주요 인물들의 사상적 계보를 보고 있자면 더욱 힘을 얻는다족청계의 단장 이범석은 지금 친일파 출신들을 공격하는 논리로 보자면 더할나위없는 순혈 독립운동가 출신이었다그러나 그는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감명깊게 읽고독일의 일사불란함에 감명받았던반공 군대를 세우고자 했던 사람이기도 했다그리고 결국 이승만에게 충성을 바쳐 그의 부패에 일조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그와 족청계가 권력을 잃지 않고 이승만 정권과 명운을 같이 했다면지금의 한국과는 좀 다른 나라가 됐었을까혹은 이범석의 족청계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던 장준하가 권력을 잡았다면아니한때는 백색테러의 선봉장이었던 김구가 권력을 잡았다면그 세계가 과연 우리가 그토록 싫어하는 박정희/전두환의 세계와 얼마나 다른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독립운동가 출신의 김일성의 세계가 박정희의 세계만큼이나 끔찍한 것이었듯이 말이다.


4.물론 이 이야기는 박정희와 친일파를 싫어하고 김구를 찬양하는 이들에게는 끔찍하고 터무니없는 비약일 것이다그러나 나는 박정희가 됐건 누가 됐건 어차피 똑같았을 거라던가친일파 청산 실패는 신경 쓸 문제가 아니라는 냉소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나 자신도 개인적으로 여운형이 만든 독립국가라면 어땠을까 하는 쓸데없는 가정을 해보곤 한다내가 하고 싶은 말은 독립운동이라는 한 라벨만으로 모든것을 좋게 평가하기에는 실제 양상은 너무나 달랐고복잡했다는 것이다우리가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결국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고 좀 더 세계시민에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 중 하나라면, 이런 복잡함들을 고려해야만 우리가 좀 더 좋은 선택을 할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은 꼭 독립운동에 관한 것 만은 아니다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민주화 운동 세력을 탄압하는 독재정권의 후예들정의로운 야권 세력과 대립하는 독재자의 딸친일파 출신과 독립운동가 출신...이러한 대립 구도로 정치와 사회를 판단하고정의로운 자신들에게 표를 달라는 말들은 너무나 잦다나는 실제로 그 대립항이 유효했던 시기에 그들이 행했던 일들을 존경하고 존중하며 감사하게 생각한다그러나 지금 이 세계에서 그런 간단 명료한 카테고리의 효능이란 '내가 곧 정의다'라는 쾌감 외에는 없는 것 같다오히려 실제 세계를 나아지게 하는 데는 방해가 될 뿐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역사와 세계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다는 점을 실감하게 하는 책이다.


5.위에 말한 부분과 별개로 아래 인용한 부분들은 제헌의회 당시 노동법에 관한 논쟁에 관한 이야기인데 뭔가 건국 상황에서의 역동성이 느껴져 매우 재밌어 옮겨봤다무엇보다지금 오고가는 논쟁보다도 더 진일보한 논쟁이 이미 해방공간에서 이뤄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지닌 역동적인 세계였는지그리고 한국전쟁이 얼마나 많은 논쟁의 싹을 잘라냈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국회에서 문시환은 적극적인 활동을 보였다특히 그가 중요시한 것은 노동 문제였다노동에 관한 조항인 헌법 제 17조를 심의하는 과정에서 문시환은 수정안을 제출했다그 내용은 제 1항을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와 의무가 있으며근로자는 노자협조와 생산증가를 위하여 법률의 정하는 범위 내에서 기업의 운영에 참가할 권리가 있다" 3항을 "기업주는 기업 이익의 일부를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임금 이외의 적당한 명목으로 근로자에게 균점 시켜야 한다"로 수정하자는 것이었다즉 노자협조와 생산 증가가 그 목적이긴 했지만 노동자의 기업 경영 참가와 이익 균점을 주장한 것이다.

..문시환은 노동자의 기업 경영 참가의 필요성을 경제적 민주주의로 설명하기도 했지만주목할 것은 이 조항이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본받은 것이 아니라면서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노동자의 경영 참가를 헌법으로 보장한 결과 산업 부흥과 공업력 향상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말한 점이다..즉 문시환은 파시즘 체제를 모델로 이러한 조항을 제안한 것이다이에 대해 윤재욱은 절대적인 지지를 밝혔으며윤석구도 다시 이익균점의 필요성을 호소했다이재형 역시 국가는 국민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며그에 필요한 생산 증강을 위해서는 노동자의 경영 참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노일환은 노동자의 경영 참가가 오히려 노자 협조라는 명목하에 생산 증가를 위해 노동력 상품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반대했다...먼저 발언한 이윤영은 공산주의 헌법을 만드는 것도 우리 자유이지만 국제관계를 떠나서 살 수는 없기 때문에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며 냉전적인 관점에서 압력을 넣었다이유선은 8할 이상의 근로 대중의 생활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완전한 국가를 형성하지 못한다며 문시환 안을 지지했다."ㄷ


"족청 출신 의원들 가운데 약간 다른 방향성을 보인 사람이 강욱중이다강욱중은 헌법안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국회의 권한을 규정한 제 42조에 국회가 정부 불신임안을 결의할 수 있는 권한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또한 대법원장의 임명권이 대통령에게 있음을 규정한 제 77조에 대해 전체주의를 막기 위한 삼권분립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대법원장 및 대법관은 법률에 의해 선정된 다음에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으로 수정할 것을 주장했다."

"김수선은 헌법 논의 과정에서 민족자결권민족 통일민족의 균등 생활강력한 국방군을 헌법을 통해 획득해야 한다며 그것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화폐의 특권계급을 제재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강력한 행정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김수선을 비롯한 청구회 소속 의원들은 대체로 민족주의적이었으며한민당으로 대표되는 지주/자본가 집단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때로는 소장파와 공동 보조를 취하기도 했지만그들 인식의 바탕에는 강한 국가의 필요성이 있었다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입장은 여순 사건을 거쳐 국가보안법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국가보안법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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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사이언스 - 30편의 문제적 영화로 본 현대 과학 기술의 명암
김명진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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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상품의 매력이란 상품을 감상하는 행동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사용자의 능력과 여유에 따라서 상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붙일 수 있다는 점에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때문에 영화를 볼때 우리는 영화를 단순히 재밌다-없다의 측면에서 바라보기도 하고, 영화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잘 전달됐는지를 유의하거나, 현실을 어떻게 반영하고 의도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무엇을 누락하고 있는지 보기도 한다. 첫번째는 우리 대다수가 영화를 볼 때 (혹은 선택할 때) 취하는 방법이고, 두번째는 우리가 그렇게 고른 영화에 대해 감상 후 깊은 공감,문제점,언짢음 등 다양한 기분을 느꼈을 때 선택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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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리우드 사이언스>는 과학기술의 측면에서 후자의 방법으로 영화를 평론하는 책이다. 이 책은 30가지의 다양한 영화들을 통해 과학기술의 사회성,역사성,윤리성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제공한다. 우리가 보통 과학의 윤리성이라고 할 때 떠올리는 주제인 방사능,유전공학 등의 문제 뿐 아니라 우주과학기술의 성(性)편향성과 허구성, 여성이 과학사에서 소외되고 삭제되는 역사, 과학기술 사용과 조사에 있어서의 시민의 가능성, 사회문제와 과학기술의 연관성 등 우리가 과학기술에 대해 사고할때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던 것 이상의 논제들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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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같이 비록 전문가가 아닐지라도 감상평을 해 나가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좋은 예시가 될 만한 책이다. 책 속의 대부분의 글들은 다음과 같은 방법을 밟아나가며 평론을 진행한다. 1) 이 영화는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가? 2) 이 영화가 만들어진 현실적 배경은 무엇인가? 3)이 영화가 반영한 과학기술에 대한 현실은 무엇이고, 누락시키거나 놓친 현실은 무엇인가?. 이 과정에서 영화를 둘러싼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들이 드러난다. 더불어 작가는 영화 속 과학기술의 묘사가 비현실적이거나 공상적이더라도 그것을 단순한 오류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과학기술에 대해 가지고 있는 대중적 인식이나 이데올로기의 반영으로 보는 시각을 일관되게 견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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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이런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고, 나름의 방법을 고수하는 평론을 읽는 것은 책을 사야만 가능한 일이 됐다. 영화를 평한다는 것은 이제 상당히 흔한 일이 됐고, 영화를 평가하는 어플까지 나와있는 상황에서 영화평은 이제 전문가의 일이라기보다는 누구나 극장 문을 나서서면서 혹은 모니터를 끄면서 행하는 모두의 일이 됐다. 하지만 문화상품에 대한 평론이라는 것이 상징의 파악이나 관람 등급을 매기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그 속에 반영된 우리가 알지 못했던 우리 자신과 세계의 모습을 찾아내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음으로써 영화를 보는 시선과 과학기술을 보는 시선에 있어 자신의 좌표를 정리해 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아래는 인용


"<왕립우주군>에서 주인공 시로츠구는 이런 요구를 애써 외면하면서 '초월적 경험으로서의 우주비행을 성사시키는 데 집착한다. 우주 비행이 비루한 현실을 넘어 인류를 하나로 묶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은 것이다..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는 그러한 순진한 열망을 배반한다. '인류의 거대한 도약'인 아폴로 우주선의 달 착륙이 전쟁을 끝내고 세계 평화를 앞당길 수 있을 거라던 우주 비행사들과 논평가들의 기대는 바로 그 프로젝트를 가능케 했던 이기적 동기를 감안한다면 애초부터 얼토당토않은 것이었다"


"..초기 우주 개발 프로그램은 미래를 내다본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의 산물이 될 수 없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선전활동에서의 실패를 만회하고 우주 공간을 어떻게든 선점하기 위한 정치적 미봉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격은 미국 최초의 유인 우주 프로그램인 머큐리 계획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미 항공 우주국의 개발팀은 '캡슐'내지 '포드'에 표본을 실어 우주 공간에 먼저 올려 보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고, 그 '표본'이 무엇이며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의 문제는 뒷전이었다. 이러한 NASA의 기본 방침은 시험조종사가 주축을 이루었던 머큐리 우주 비행사들과 갈등을 빚었는데, 여기서 부분적으로나마 승자가 됐던 것은 우주 비행사들이었다. 그들은 일반 대중이 갖고 있는 유인 우주 비행의 미혹을 이용해 자신들의 능동적인 역할을 관철시켰다...그러나..그들의 역할에서 근본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예거와 같은 시험 조종사들이 조롱했던 것처럼 그들은 결국 '스팸 깡통'의 지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일반 대중이 SF를 보면서 우주 비행에 대해 품게 되는 환상과는 달리, 우주 비행사가 자유자재로 우주선을 몰고 다니는 일은 과거에도 없었고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가망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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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의 뇌 - 뇌는 승리의 쾌감을 기억한다
이안 로버트슨 지음, 이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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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 로버트슨 <승자의 >.  책은 승리의 경험과 권력이 인간의 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에 대해 분석한 책이다표지에는 '이기는법칙'이라는 매우 자기계발스러운 표현을 쓰고 있지만 사실  책이 말하고자 하는  승리의 법칙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흔히 유전적 특성이나 본질로 간주하는 승자의 특징이 얼마나 환경에 좌우되는 문제인지 권력이라는 것이 남용됐을 경우 뇌과학적으로 얼마나 해로운지보여주는 책이며 이를 통해 권력자들의 멍청한 행동에 대한 합리적 답을 내고자 하는 책이다때문에   내내 권력은 독점되어서는 안된다는 사회의식이 깔려 있으며 과정이 복잡한 이론보다는 다양한 실험들을 통해 제시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책의 즐거움과는 별개로 책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우리는 과학을 근거로 하여 윤리적 결론을 내리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된다과학이라는 '사실' 기반으로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과연 어디까지 가능한 것일까뇌과학이 이러하니 인간은 이렇다유전공학의 결론이 이러하니 인간은 이렇다...혹은사회법칙이 이러하니사회는 이렇게  것이다그런 수많은 윤리적 판단들이 어떻게 명멸해갔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근대 이후 과학은 자신이 가치중립적임을 끊임없이 어필했지만 실상 윤리에 과학이 끼친 영향이란 어마어마하다물리학,진화법칙,사회과학,유전자공학..과학의 가치중립성혹은 과학의 진보성이나  얼굴을 아는 이들은 진화법칙에서 인종차별을끄집어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하지만 실상 반대측은 그것이야말로 과학이라 말하곤 했었다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실상 그런책이 아니라고 하지만 수없이 오용됐고이제는 그게 아니라는 이론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마음은  살랑살랑 바람을 따라 움직인다과학을 통해 윤리를 구성하는 것이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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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의 > 보면  속에 나오는 사실들은 매우 달콤하다인간의 뇌는 변화무쌍해서 약간의 환경에도 적극적인 상태로 바뀔  있고우리가 적절한 제도만 갖춘다면 뇌가 권력에 중독되는  방지해  민주주의적인 사회를 건설할  있다는 사실을 <승자의 > 알려주지만근데 과학이란 본래 '반증 가능한 이론' 아니던가.


 과학만에 기반하여 우리가 윤리적 주장을 펼쳐나갈 경우우리가 의지했던 과학이 반증된다면 우리는 어떤 주장을   있을 것인가예를 들자면 얼마전 스웨덴에서 '성폭력 범죄자의 주요 요인은 유전자'라는 이론이 발표됐는데그렇다면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교화 혹은 사전 예방의 시도를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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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논쟁인 성악설과 성선설은 매우 중요한 논쟁 같지만 나는  한번도  논쟁이 의미있는 논쟁이라고 생각해본적이 없다인간이 본디 선하다면  선한 본성을 유지할  있도록 사회를 구축해나가야  일이고인간이 본디 악하다면  악함을 억누를  있도록 사회를구축해나갈 일이다과학적 사실만으로 윤리를 구성하는  또한 이와 같다중립적 사실이란 없다어떤 사실은 반드시 한가지 이념을 동반한다물론 과학적 증거들은 우리가  나은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도구를 개발하는데  도움을  것이며우리는 세계를 설명할때 합리적 태도를 취해야만 한다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세계는 과학혹은 사실만으로는 불가능하며설사 구성했다 하더라도  세계는 결국모래성같이 무너질 것이다합리적 사고를 견지하고 세상 모든 일을 설명하고자 하는 우리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어떤 세계를 꿈꾼다는 결국 어떤 종교적 열망을 동반한다물론  종교적 열망이 기존의 종교들에서 나타났던 그런 모습은 아닐 것이다그렇다면 과학적,합리적사고와 윤리적 이상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까그것은 분리되거나혹은 단계적으로 적용될  있는 일일까너무나 낙관적인 과학책 <승자의 > 의도치 않게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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