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인간적인 인간
브라이언 크리스찬 지음, 최호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2000년대 초반 개봉했던 매트릭스 3부작 속의 인공지능들은 매력적이지만 동시에 가혹하고 공포스러운 존재로 묘사된다. 인류에게 버림받고 탄압받아서 결국 인류를 정복하려는 기계와 기계와 인간 둘을 다 증오하는 프로그램(스미스), 예언자 인공지능 등등....사실 상투적인 묘사이긴 하나 이러한 캐릭터 묘사들은 인간이 만들었지만 인간 이상의 지능과 자아를 가지고 인간을 정복하려 하는 인공지능/로봇에 대한 전통적인 공포에 기인한다. 이러한 공포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얼마전 짚신벌레의 뉴런 패턴을 입력한 로봇이 짚신벌레와 똑같이 행동하는 것을 봤을때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은 신기해하고 놀라워한만큼 두려움도 같이 느꼈다. 언젠가 인간과 같은 인공지능이 나타나면 우리는 그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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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적인 인간>은 매년 외국에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화를 통해 누가 진짜 인간이고 기계인지를 심사위원단이 판별하는 '뢰브너상 대회'에서 자신이 인간임을 가장 잘 어필한 참여자에게 수여되는 '가장 인간적인 인간'상을 수상한 브라이언 크리스찬이 쓴 책이다. 뢰브너상 대회 참여 경험을 토대로 저자는 인공지능의 발달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기술의 발달. 인공지능의 발달은 인간에 대한 위협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더 인간적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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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노필리아의 흔한 기술지상주의처럼 들리거나, 인공지능과 인간의 결합을 통한 영생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이 주장의 요지는 이렇다. 인공지능의 발달을 통해, 좀 더 넓히자면 동물학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통해 우리는 인간에게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특성들 (이성,계산,논리)이 사실은 우리가 만든 프로그램이나 혹은 인간보다 못한 동물들에게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와 더불어 사실은 인간이라 해도 딱히 항상 인간성을 가질 수는 없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됐다. 예를 들자면, 콜센터 노동자의 반복적 코멘트는 인간적인 행위인가? 그것은 사실 인공지능의 발화와 동일하지 않은가? 옛날에는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계획적 사고,계산력은 이제는 모두 컴퓨터가 대체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기술이 발전할 수록 인간에 대한 정의의 폭은 좁아진다. 이러한 사실들은 인간에게 그렇다면 과연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란 질문을 던지고 인간성을 가다듬게 만든다. 인공지능과 인간이란 결국 인간성을 획득하기 위한 일종의 동반자 관계인 것이다. 때문에 기계와 인간을 구분해내는 튜링테스트는 저자가 볼 때는 기계의 수준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인간성을 시험하는 검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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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그가 말하는 인간다움이란 사실 우리가 종종 들어온 것들이고, 당사자의 경제적 요건을 고려해야만 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이 책을 읽고 나면 이러한 삶과 사유가 결코 모두에게 허락되거나 가능한 것이 아님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생산력이 극대화되어 인간의 고통스러운 노동이 기계로 대체되거나 혹은 최소화되고, 인간은 유적 노동에만 집중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직까지도 먼 이야기이듯이, 인공지능의 발전 앞에 우리가 자신의 인간성을 매번 새롭게 정의하고 고찰하기는 어렵다.


 기술의 발달은 인간성에 대한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일자리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져왔다. 인간성을 다시 구성하는 작업의 이면은 '굳이 인간을 쓸 필요 없는' 일자리의 축소와 창의적 인간에 대한 과도한 요구와 그 궤를 함께 한다. 때문에 브라이언 크리스찬이 인간성에 대해 하는 이야기가 자기계발과 자기경영을 요구하는 이들의 주장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매번 새롭게 도전하기, 표준화,전문화에 저항하고 반복하지 말기, 동물적 본능을 소중히 할 것, 자아에 집착하지 말 것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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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이 사실 인간다움에 대한 진정한 묘사인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이러한 인간성을 모두가 찾을 수 없는 맥락과 환경에 있을 것이다. 소수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이라 하더라도 인간다운 삶에 대한 갈증과 표준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들이니까. 하지만 그런 점들을 생각하더라도 뢰브너상 대회에 대한 이야기와, 대화에 대한 고찰,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들이 저자의 풍부한 지식과 어우러져 덕에 매우 설득력있고 진실하게 다가오는 책.


아래는 인용


"인간의 자의식,자신의 행동과 생각을 되짚어보는 능력이 인간의 고유한 지능에 해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인생에서 생산적이고 재밌으면서 매력적이고 만족스러운 순간은...행운의 여신을 생각하면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무엇을 할 때이다...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런 상태에서 어떤 행동을 하다 보면 종종 '동물 같다'거나 심지어 '기계 같다'는 말을 듣는다는 것이다"


"컴퓨터는 사실상 자신의 과제에 선행해서 존재하는 최초의 도구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스테이플러, 구멍뚫는 기구, 회중시계 같은 도구와 컴퓨터의 근본적인 차이이다. 우리는 먼저 컴퓨터를 만들고 그 다음에 그것으로 무엇을 할지를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런 의미에서 컴퓨터의 존재이유 없음은 존재가 본질에 선행하는 것이 인간에게만 고유한 특성이라는 실존주의자들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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