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사이언스 - 30편의 문제적 영화로 본 현대 과학 기술의 명암
김명진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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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상품의 매력이란 상품을 감상하는 행동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사용자의 능력과 여유에 따라서 상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붙일 수 있다는 점에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때문에 영화를 볼때 우리는 영화를 단순히 재밌다-없다의 측면에서 바라보기도 하고, 영화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잘 전달됐는지를 유의하거나, 현실을 어떻게 반영하고 의도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무엇을 누락하고 있는지 보기도 한다. 첫번째는 우리 대다수가 영화를 볼 때 (혹은 선택할 때) 취하는 방법이고, 두번째는 우리가 그렇게 고른 영화에 대해 감상 후 깊은 공감,문제점,언짢음 등 다양한 기분을 느꼈을 때 선택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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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리우드 사이언스>는 과학기술의 측면에서 후자의 방법으로 영화를 평론하는 책이다. 이 책은 30가지의 다양한 영화들을 통해 과학기술의 사회성,역사성,윤리성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제공한다. 우리가 보통 과학의 윤리성이라고 할 때 떠올리는 주제인 방사능,유전공학 등의 문제 뿐 아니라 우주과학기술의 성(性)편향성과 허구성, 여성이 과학사에서 소외되고 삭제되는 역사, 과학기술 사용과 조사에 있어서의 시민의 가능성, 사회문제와 과학기술의 연관성 등 우리가 과학기술에 대해 사고할때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던 것 이상의 논제들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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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같이 비록 전문가가 아닐지라도 감상평을 해 나가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좋은 예시가 될 만한 책이다. 책 속의 대부분의 글들은 다음과 같은 방법을 밟아나가며 평론을 진행한다. 1) 이 영화는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가? 2) 이 영화가 만들어진 현실적 배경은 무엇인가? 3)이 영화가 반영한 과학기술에 대한 현실은 무엇이고, 누락시키거나 놓친 현실은 무엇인가?. 이 과정에서 영화를 둘러싼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들이 드러난다. 더불어 작가는 영화 속 과학기술의 묘사가 비현실적이거나 공상적이더라도 그것을 단순한 오류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과학기술에 대해 가지고 있는 대중적 인식이나 이데올로기의 반영으로 보는 시각을 일관되게 견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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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이런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고, 나름의 방법을 고수하는 평론을 읽는 것은 책을 사야만 가능한 일이 됐다. 영화를 평한다는 것은 이제 상당히 흔한 일이 됐고, 영화를 평가하는 어플까지 나와있는 상황에서 영화평은 이제 전문가의 일이라기보다는 누구나 극장 문을 나서서면서 혹은 모니터를 끄면서 행하는 모두의 일이 됐다. 하지만 문화상품에 대한 평론이라는 것이 상징의 파악이나 관람 등급을 매기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그 속에 반영된 우리가 알지 못했던 우리 자신과 세계의 모습을 찾아내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음으로써 영화를 보는 시선과 과학기술을 보는 시선에 있어 자신의 좌표를 정리해 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아래는 인용


"<왕립우주군>에서 주인공 시로츠구는 이런 요구를 애써 외면하면서 '초월적 경험으로서의 우주비행을 성사시키는 데 집착한다. 우주 비행이 비루한 현실을 넘어 인류를 하나로 묶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은 것이다..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는 그러한 순진한 열망을 배반한다. '인류의 거대한 도약'인 아폴로 우주선의 달 착륙이 전쟁을 끝내고 세계 평화를 앞당길 수 있을 거라던 우주 비행사들과 논평가들의 기대는 바로 그 프로젝트를 가능케 했던 이기적 동기를 감안한다면 애초부터 얼토당토않은 것이었다"


"..초기 우주 개발 프로그램은 미래를 내다본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의 산물이 될 수 없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선전활동에서의 실패를 만회하고 우주 공간을 어떻게든 선점하기 위한 정치적 미봉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격은 미국 최초의 유인 우주 프로그램인 머큐리 계획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미 항공 우주국의 개발팀은 '캡슐'내지 '포드'에 표본을 실어 우주 공간에 먼저 올려 보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고, 그 '표본'이 무엇이며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의 문제는 뒷전이었다. 이러한 NASA의 기본 방침은 시험조종사가 주축을 이루었던 머큐리 우주 비행사들과 갈등을 빚었는데, 여기서 부분적으로나마 승자가 됐던 것은 우주 비행사들이었다. 그들은 일반 대중이 갖고 있는 유인 우주 비행의 미혹을 이용해 자신들의 능동적인 역할을 관철시켰다...그러나..그들의 역할에서 근본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예거와 같은 시험 조종사들이 조롱했던 것처럼 그들은 결국 '스팸 깡통'의 지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일반 대중이 SF를 보면서 우주 비행에 대해 품게 되는 환상과는 달리, 우주 비행사가 자유자재로 우주선을 몰고 다니는 일은 과거에도 없었고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가망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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