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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의 뇌 - 뇌는 승리의 쾌감을 기억한다
이안 로버트슨 지음, 이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8월
평점 :
이안 로버트슨 <승자의 뇌>. 이 책은 승리의 경험과 권력이 인간의 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에 대해 분석한 책이다. 표지에는 '이기는법칙'이라는 매우 자기계발스러운 표현을 쓰고 있지만 사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건 승리의 법칙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흔히 유전적 특성이나 본질로 간주하는 승자의 특징이 얼마나 환경에 좌우되는 문제인지, 또 권력이라는 것이 남용됐을 경우 뇌과학적으로 얼마나 해로운지보여주는 책이며 이를 통해 권력자들의 멍청한 행동에 대한 합리적 답을 내고자 하는 책이다. 때문에 이 책 내내 권력은 독점되어서는 안된다는 사회의식이 깔려 있으며, 이 과정이 복잡한 이론보다는 다양한 실험들을 통해 제시돼 읽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책의 즐거움과는 별개로 책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우리는 과학을 근거로 하여 윤리적 결론을 내리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된다. 과학이라는 '사실'을 기반으로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과연 어디까지 가능한 것일까. 뇌과학이 이러하니 인간은 이렇다. 유전공학의 결론이 이러하니 인간은 이렇다...혹은, 사회법칙이 이러하니, 사회는 이렇게 될 것이다. 그런 수많은 윤리적 판단들이 어떻게 명멸해갔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근대 이후 과학은 자신이 가치중립적임을 끊임없이 어필했지만 실상 윤리에 과학이 끼친 영향이란 어마어마하다. 물리학,진화법칙,사회과학,유전자공학..과학의 가치중립성, 혹은 과학의 진보성이나 맨 얼굴을 아는 이들은 진화법칙에서 인종차별을끄집어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하지만 실상 반대측은 그것이야말로 과학이라 말하곤 했었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실상 그런책이 아니라고 하지만 수없이 오용됐고, 이제는 그게 아니라는 이론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마음은 또 살랑살랑 바람을 따라 움직인다. 과학을 통해 윤리를 구성하는 것이 이와 같다.
<승자의 뇌>를 보면, 이 책 속에 나오는 사실들은 매우 달콤하다. 인간의 뇌는 변화무쌍해서 약간의 환경에도 적극적인 상태로 바뀔 수 있고, 우리가 적절한 제도만 갖춘다면 뇌가 권력에 중독되는 걸 방지해 더 민주주의적인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사실을 <승자의 뇌>는 알려주지만, 근데 과학이란 본래 '반증 가능한 이론'이 아니던가.
과학만에 기반하여 우리가 윤리적 주장을 펼쳐나갈 경우, 우리가 의지했던 과학이 반증된다면 우리는 어떤 주장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예를 들자면 얼마전 스웨덴에서 '성폭력 범죄자의 주요 요인은 유전자'라는 이론이 발표됐는데, 그렇다면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교화 혹은 사전 예방의 시도를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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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논쟁인 성악설과 성선설은 매우 중요한 논쟁 같지만 나는 단 한번도 그 논쟁이 의미있는 논쟁이라고 생각해본적이 없다. 인간이 본디 선하다면 그 선한 본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를 구축해나가야 할 일이고, 인간이 본디 악하다면 그 악함을 억누를 수 있도록 사회를구축해나갈 일이다. 과학적 사실만으로 윤리를 구성하는 것 또한 이와 같다. 중립적 사실이란 없다. 어떤 사실은 반드시 한가지 이념을 동반한다. 물론 과학적 증거들은 우리가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도구를 개발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며, 우리는 세계를 설명할때 합리적 태도를 취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세계는 과학, 혹은 사실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설사 구성했다 하더라도 그 세계는 결국모래성같이 무너질 것이다. 합리적 사고를 견지하고 세상 모든 일을 설명하고자 하는 우리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어떤 세계를 꿈꾼다는 건결국 어떤 종교적 열망을 동반한다. 물론 그 종교적 열망이 기존의 종교들에서 나타났던 그런 모습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적,합리적사고와 윤리적 이상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까. 그것은 분리되거나, 혹은 단계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일일까? 너무나 낙관적인 과학책 <승자의 뇌>가 의도치 않게 던지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