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발생 2시간 43분 경과 
2호선 강남역 부근



엄마가 노량진역에 갇혀 있다. 엄마는 다쳤다. 어디를 얼마나 다쳤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중상인 것 같다. 엄마는 구조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엄마는, 죽을 수도, 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눈앞이 핑 돌았다. 
엄마가 죽을 수도 있다고? 

“찾았습니다! 여기예요!” 
누군가 소리쳤다. 개구멍을 찾던 사람들 모두가 일제히 쳐다봤다. 강남역 승강장과 가까운 곳이었다. 인부와 기관사, 해병대, 그 외에 많은 사람들이 소리친 사람 쪽으로 몰려갔다. 개구멍을 덮고 있는 벽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우린 패닉 상태가 되어 멍하니 그 광경을 보고만 있었다. 머리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엄마가 노량진역에 갇혀 있다니……. 이제 어떻게 해야 되지?  

연아가 애써 차분히 말했다. 

“정신 차리자. 우리 아니면 엄마를 구할 사람 없어.” 

나는 연아를 쳐다봤다. 그렇게 말하는 연아도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침착한 척하려 해도 몸의 반응은 어쩔 수 없었다. 아마 울음을 참고 있는 것이리라. 

“왜 하필 오늘 지하철을 타 가지고! 아오!” 

지태가 잔뜩 화를 내며 소리쳤다. 말은 그렇게 해도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나도 눈물을 참으면서 말했다. 

“일단…… 개구멍을 찾았다니까 나가서 바로 노량진역으로 가자. 가서 119 붙잡고 들어가든, 아니면 군인 붙잡고 구해달라고 하든, 아니면 우리가 직접 들어가든, 엄마 데리고 나오자.” 

말하다 보니 조금씩 정신이 들었다. 그래, 정신 차리자. 정신 차리자. 정신 차려야 된다. 

우린 사람들이 발견한 개구멍 쪽으로 달려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개구멍이 있는 터널 벽 주위에 몰려 있었다. 인부가 어디선가 커다란 망치를 가지고 오더니 터널 벽에 내리쳤다.  

쿵! 쿵! 조금씩 벽에 균열이 생겼다. 사람들이 벽이 갈라지고 있다며 난리법석을 떨었다. 인부가 몇 번 더 망치로 벽을 내리쳤다.  

쿵! 쿵! 쿵! 쿵! 벽의 일부가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뿌연 먼지가 덮치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연신 기침을 해댔다. 먼지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자 인부가 랜턴을 비췄다. 랜턴에서 나오는 불빛이 먼지를 뚫고 무너진 벽 사이를 더듬었다. 마침내 개구멍이 보였다. 딱 어른 한 명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철문이었다. 저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신분당선으로 향하는 통로가 나온다. 

나는 연아와 지태에게 말했다. 

“됐어. 개구멍 찾았어. 이제 나가서 노량진역으로 가면 돼. 그럼 엄마 구할 수 있어.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언제나 우리에게 괜찮다고 말해준 건 엄마였다. 엄마의 ‘괜찮아’라는 말 한마디에 우리는 철없는 아이처럼 뭐든지 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우리에게 괜찮다고 말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 사실이 슬펐다. 나는 나 자신에게, 그리고 연아와 지태에게 우린 다 괜찮을 거라고 몇 번을 더 말했다. 

그러나 내가 바보였다. 
개구멍을 발견했으니 이제 탈출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내가, 바보였다.  

모습을 드러낸 개구멍을 보자마자 사람들은 환호하면서 일제히 개구멍으로 몰려들었다. 탈출구를 찾은 1등 공신인 인부는 개구멍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떠올린 채 밀려드는 사람들에게 파묻혀버렸다. 그 뒤로 그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아마 압사했을 것이다.  

아귀다툼이었다. 선릉역에서 여기까지 온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이제껏 봤던 어떤 모습보다 더 추한 모습으로 개구멍에 달려들었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희망 앞에서 사람들은 사람임을 포기해버렸다. 절망이 아닌 희망이 사람들을 괴물로 만들어버렸다. 

갑자기 어디선가 코를 찌르는 악취가 풍겨왔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악취가 나는 쪽을 돌아봤다. 우리가 걸어온 역삼역 방향에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사람들 뒤로는 괴물들이 밀려오고 있었다. 앞서 본 날개 달린 괴물은 물론이고, 거인처럼 거대한 몸집에 두 발로 걸어오는 처음 보는 괴물도 있었다. 날개 달린 괴물이 사람을 물어뜯어서 죽인다면, 거인 같은 괴물들은 사람들을 내려치거나 집어 던져 죽였다. 어느 쪽이든 무자비한 괴물임에 틀림없었다. 그런데 역삼역 방향이면 방금 우리가 지나쳐 온 길인데 대체 어디서 괴물들이 나타난 거지?   

크아아아아아! 괴물들의 포효가 지하 터널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사람들은 개구멍을 향해 더욱 맹렬히 달려들었다. 하나같이 눈이 뒤집힌 채였다. 서로 자기가 먼저 들어가려고 앞선 사람을 밀치고 밟다가 정작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밟혀 죽어갔다. 개구멍에 들어가는 사람보다 밟혀 죽는 사람이 더 많았다. 

“젠장! 우리 어디로 가야 되냐?” 

지태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의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개구멍을 향한 아귀다툼에 동참하든가, 괴물이 나타난 반대 방향인 교대역 쪽으로 도망가든가. 그런데 교대역은 괴물들의 최초 습격이 있었던 곳이다. 그곳에 아직까지 다른 괴물 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야야! 언니는?” 

대뜸 연아가 소리쳤다.  
그 순간 큰 송곳이 머리를 관통하는 것처럼 지끈거렸다. 아차, 싶었다. 누나를 잊고 있었다. 엄마가 노량진역에 갇혀 있다는 걸 알고 난 뒤부터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그 뒤에 바로 개구멍을 찾고 난리가 나는 바람에……. 그러고 보니 개구멍이 발견된 위치가 누나를 벽에 기대 쉬게 했던 곳 근처였다. 그렇다면 누나는 이 근처 어딘가에 있어야 하는데……. 

그때였다. 개구멍 앞에서 아귀다툼을 벌이는 사람들 틈에서 거짓말처럼 누나가 보였다. 슬로모션처럼 모든 게 천천히 움직이는 가운데, 누나는 조금씩 개구멍으로 향하고 있었다. 운 좋게 개구멍 근처에 앉아 쉬다가 기회를 잡은 것 같았다. 누나는 불룩한 배를 움켜쥐고 창백한 얼굴을 한 채 한 걸음 한 걸음 개구멍을 향해 움직였다. 그러다 문득 우리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나는 미소인지 울음인지 모를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안 돼’라고 생각한 순간, 누나는 사람들에게 치여 바닥을 뒹굴었다. 불룩한 배는 이름 모를 수천 명의 발에 밟혔다. 비명을 지르던 누나의 얼굴 역시 사람들의 발에 밟히면서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바닥에 떨어진 누나의 손에는 아까 누나의 식은땀을 닦아준 연아의 손수건이 꼭 쥐어져 있었다. 누나의 모든 것이 사람들의 무수한 발에 묻혀 사라졌다. 누나는 그렇게 우리 눈앞에서 사라졌다.  

지태가 고개를 돌렸다. 연아는 누나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양손으로 입을 막고는 덜덜 떨었다. 나는 누나의 시체라도 찾아오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는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생존을 향한 사람들의 광기는 무시무시했다. 거센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처럼 사람들 틈에서 휩쓸리다가 결국엔 바깥으로 튕겨나오고 말았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지태와 힘을 합쳐야 할 것 같았다. 

그사이 괴물들의 포효는 더욱 가까워졌다. 고개를 돌리자 대략 200미터 앞까지 괴물들이 몰려온 게 보였다. 선택해야 한다. 아귀다툼에 동참할 건지, 교대역 쪽으로 도망갈 건지. 

“씨발! 저 괴물들하고 이 사람들이 뭐가 달라! 교대역 쪽으로 가자!” 

나는 터져 나올 것 같은 울음을 억누르면서 소리쳤다. 연아와 지태도 누나의 죽음이 준 충격을 딛고 고개를 끄덕이며 내 선택에 동의했다. 우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뒤로 하고 교대역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강남역 승강장을 지나갈 무렵, 우리 앞에 생각지도 못한 존재가 나타났다. 
완전무장한 군부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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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ycoffee 2017-10-26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재 단숨에 읽었습니다. 긴장감이 끝까지 유지되서 개인적으로 만족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