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발생 2시간 02분 경과 
2호선 선릉역 ~ 강남역 구간



우리들은 다 같이 인부를 따라 강남역 방향으로 걸어갔다. 선릉역에 있던 사람들도 대부분 강남역 방향으로 걸어갔다. 다들 기약 없이 구조대를 기다리느니 자력으로 이곳을 탈출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누나는 내가 안고 갔다. 알고 보니 누나는 내 육상 경기를 보러 온 적도 있는 나의 팬이었다. 누나는 이런 곳에서 나를 직접 만나게 될 줄 몰랐다며 신기하다고 말했다. 

“너 달리는 거 보면서 배 속의 아기도 누구보다 잘 달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난 살면서 너무 많이 넘어져서 어떻게 달리는 건지도 잊어버렸거든.” 

누나는 어쩌다가 지하에 갇히게 됐는지도 말해줬다. 누나는 교대역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승강장 여기저기서 폭발이 일어나면서 엉망이 됐고, 정신을 차려보니 승강장은 폐허가 되고 모든 출구가 막혀 있었다. 신기한 건 교대역 승강장에서 유일하게 누나만 피해를 입지 않고 무사했다는 것. 같이 지하철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모두 잔해 더미에 깔려 괴로워하며 죽어가는데 누나만 혼자 멀쩡히 잔해 더미 위에 서 있었다. 누나는 세상에서 혼자만 살아남은 것 같은 그 순간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누나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잔해 더미에 깔린 사람들을 구해주기 시작했다. 그러다 괴물들로부터 도망치는 우리를 만나 여기까지 함께 오게 된 것이다.   

강남역으로 가는 동안 연아와 지태는 계속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계속 연결되지 않았다. 연아는 우리가 처한 상황을 대충 적어서 엄마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됐고 연아가 문자 메시지까지 보냈는데도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분명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다. 우리는 엄마에게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계속 걸어갔다. 

우린 그렇게 사람들과 함께 계속 걸어 강남역 승강장 부근에 도착했다. 다행히 괴물들은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가는 길에 시체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봐서 괴물들은 강남역까지 넘어오지 않은 것 같았다.  

기관사와 해병대들, 인부, 그 외에 많은 사람들이 강남역 승강장 부근 벽에 붙어 개구멍을 찾기 시작했다. 인부는 개구멍 위에 콘크리트를 바를 때 신분당선이 완공된 날짜를 새겨놨다고 했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찾아야 하는 건 신분당선 완공 날짜가 새겨진 벽이었다. 그곳을 찾아 부수면 개구멍이 나올 것 
이다. 

나는 누나가 벽에 기대 쉴 수 있게 내려준 뒤 개구멍을 찾기 위해 벽을 살피고 다녔다. 그런데 갑자기 연아가 스마트폰을 흔들며 나에게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내가 의아하게 쳐다보자 연아가 외쳤다. 

“빨리 와, 빨리! 엄마 전화 왔어!” 

나는 두 눈이 동그래져서 지태와 함께 연아에게 달려갔다. 연아가 스피커폰으로 설정하고 전화를 받더니 소리쳤다. 

“여보세요! 엄마! 어디야?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았어?” 

옆에서 나와 지태도 엄마에게 어디냐고 우리는 지금 지하에 갇혀 있다고 소리쳤다. 그러자 엄마가 대답했다. 

“아유, 시끄러워, 이 녀석들아……. 엄마가 좀 바빴어. 일이 좀 생겨서……. 너희들 지금 어디에 있니? 주위에 사람들도 같이 있지?” 

그런데 엄마의 목소리가 별로 좋지 않았다. 어딘가 아픈 사람 같았다. 연아가 엄마의 물음에 대답했다.

“우린 지금 강남역 쪽 지하에 있어! 밖으로 나가는 길이 다 막혀서 지금 사람들이랑 다 같이 나가는 길 찾고 있어. 엄마는 어디야?” 
“그래, 우리 딸…… 듬직하네. 사람들 말 잘 듣고…… 절대 너희들끼리 딴 데로 가면 안 된다…….” 

그러곤 더 이상 말이 없었다.  

후…… 후……. 
엄마의 숨소리만 들려왔다. 숨소리가 거칠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퇴근길 버스가 아닌 게 분명했다. 불안해진 내가 전화기에 대고 소리쳤다. 

“엄마! 왜 그래? 어디 아파? 지금 어디야?” 
“아유…… 귀 아파, 이 녀석아……. 난 괜찮아…….” 

답답하게 왜 어디에 있는지는 말하지 않는 걸까? 불길한 예감은 점점 커져갔다.  

“엄마, 지금 퇴근길 아니지? 솔직히 말해. 어디야?” 

연아도 나처럼 답답함을 느꼈는지 화가 난 것처럼 낮은 목소리로 침착하게 물었다. 연아가 정말 심각할 때만 가끔 나오는 목소리다. 엄마가 잠시 간격을 두고 대답했다. 

“……엄마, 지금…… 노량진역에…… 그 안에 있어.” 

깜짝 놀란 나는 전화기에 대고 소리쳤다. 

“노량진역? 엄마가 그 안에 갇혔다고? 왜?” 

후…… 후…….  
거친 엄마의 숨소리.  
이번엔 지태가 전화기에 대고 소리쳤다. 

“엄마! 왜 자꾸 숨만 쉬어? 말 좀 해봐! 거긴 지금 상황이 어떤데?” 
“엄마도 힘드니까 숨만 쉬겠지, 바보야!” 

연아가 지태를 타박했다. 지태는 이 와중에도 “아, 그렇지” 하며 눈이 동그래졌다. 
다시 엄마가 입을 열었다. 

“엄마가 지금…… 여기 돌에 좀 깔렸어……. 아까 지하철 기다리는데 갑자기 무너져서…….” 

우리 셋 다 놀란 얼굴이 됐다. 내가 연아의 스마트폰을 낚아채 소리쳤다. 

“돌에 깔리다니, 뭐 얼마나 깔린 건데! 아, 평소엔 버스 타고 다니면서 오늘은 왜 지하철 타러 갔어!” 
“단이 네가 오늘 기분 안 좋을 것 같아서……. 빨리 가서 너 좋아하는 갈비 해놓으려고 했지. 버스는 많이 막히잖니…….” 

엄마의 대답에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엄마는 오늘 내가 육상을 그만두기로 했다는 걸 눈치챈 것이다. 그래서 평소엔 타지도 않던 지하철을 탄 것이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왜 하필…….” 

내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연아가 스마트폰을 가져갔다. 

“엄마, 주위에 도와줄 사람 없어? 거기 엄마만 있는 거 아니지?” 
“후…… 걱정 마, 우리 딸……. 119에서 구조하러 온대. 엄마 걱정하지 말고 너희들 몸 잘 챙겨……. 특히 단이랑 지태, 너희는 몸이 재산이잖아. 연아는 똑똑하기라도 하지…….” 

나와 지태가 발끈해선 서로 전화기에 대고 소리쳤다. 

“또 그 소리! 나도 머리 좋거든!” 
“내가 창만 안 던졌어도 전교 1등 했어!” 

연아가 흥분한 나와 지태를 말리고는 다시 차분히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119에서 진짜 구조하러 온대? 누가 그랬어?” 
“아까…… 여기 사람들이 그랬어. 나가서 자기들이 119 불러온다고 했어. 걱정 마.” 
“몸은 어떤 상태야? 아예 못 움직여? 돌에 어디가 어떻게 깔렸는데?” 
“아유…… 너희들이 그거 알아서 뭐하게. 그냥 여기 있으면 구조하러 올 거야……. 움직이는 건 좀 힘들어.” 

나와 지태가 119는 빨리 못 올 수도 있다고, 주위에 도움 청해서 나오라고 바득바득 소리치는데, 연아가 또 다시 우릴 말렸다. 연아가 다시 차분하게 말했다. 

“엄마, 잘 들어. 우린 지금 다 괜찮아. 다친 데도 없고 여기 어른들도 많아. 다 같이 밖으로 나가려고 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알겠지? 대신 엄마 몸 잘 챙겨야 돼. 우리가 지금 나가서 119 아저씨들한테 엄마 있는 곳 알려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아프다고 정신 잃으면 안 돼. 응?” 

침묵.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우린 엄마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래, 우리 딸……. 다 컸네…….” 

엄마의 목소리에 눈물이 묻어 있었다.  

“내가 딸 하난 잘 키웠……” 하는데, 갑자기 수화기 너머에서 쿠쿠쿵 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찢어질 듯한 비명이 이어졌다.  

“엄마! 왜 그래? 엄마!” 

우리들은 애타게 엄마를 불렀지만, 엄마의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콰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어져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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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표: 10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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