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각

경복궁 부근


“아버지, 절대 집에서 나오지 마세요. 특히 지하철역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마시고요.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집에 계세요. 제가 연락드릴게요.”


현국은 TV 채널을 아무리 돌려도 한 가지 방송밖에 나오지 않는다며 전화를 해 온 아버지에게 짧게 할 말만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모든 TV 채널은 서울의 지하 세계를 휩쓴 전대미문의 재난에 대해 앞다퉈 보도하는 중이었다. 서울의 지하철역 100여 개가 폭파되었으며 정체불명의 괴생명체가 나타나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다. 지상에 있는 사람들은 직접적인 피해는 겪지 않았어도 온갖 뉴스를 접하며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현국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현국은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는 주차장이 되어버린 도로 사이에서 숨을 헐떡이며 뛰어가고 있었다. 도저히 차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아 자동차는 도로에 버려둔 채였다. 얼마 전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목발을 짚고 있어 뛰는 게 뛰는 게 아니었다. 바람이 선선한 늦가을이지만, 현국은 한여름처럼 온몸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도로에 갇힌 운전자들은 목발을 짚고 지나가는 현국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자신들도 그냥 자동차를 버리고 가는 게 더 나을까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들은 스마트폰과 라디오, DMB 내비게이션 등을 통해 서울의 현 상황을 체크하고 있었다. 모든 포털 사이트, 채널에서 재난에 대한 속보를 전했다. 


또 다시 현국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방금 전화를 끊은 아버지 아니면 왜 빨리 안 오냐고 독촉할 국정원장일 거라고 생각하며 휴대폰을 꺼내는데, 휴대폰 액정에 ‘장호준 박사님’이라는 발신인 표시가 떴다. 장 박사라면…… 3년 전에 죽었다. 그 뒤로 한 번도 휴대폰 전화번호부를 정리하지 않아서 아직 번호가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 장 박사의 번호로 전화가 왔다? 현국은 전화를 받았다. 상대방은 다짜고짜 자신의 용건을 말했다.


“오늘 밤 11시까지 장 박사님과 처음 만났던 곳으로 오십시오.”


현국은 “여보세요”라고 반복해서 말했지만 상대방은 이미 전화를 끊은 뒤였다. 


‘뭐야? 누가 이런…….’

현국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장 박사는 현국이 국정원에 들어와 방황할 때 만난 멘토 같은 존재였다. 그가 심장마비로 죽고 난 뒤 현국은 꽤 큰 공허함을 느꼈을 정도다. 그런데 서울에 재난이 일어난 이 시점에 그의 번호로 정체 모를 누군가에게서 연락이 오다니,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 현국은 경복궁역에 거의 다다랐다. 경복궁역 근처에서 분주하게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있는 군인들이 보였다. 바리케이드를 지나 경복궁 돌담길을 쭉 달려가면 청와대가 나온다. 청와대 깊숙한 곳의 지하 벙커. 지금 현국이 가야 할 장소다. 


“이쪽으론 못 들어갑니다. 돌아가세요.”


바리케이드를 지나려는데, 군인들이 현국을 막아섰다. 현국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등에 메고 있던 백팩에서 신분증을 꺼냈다.


“국정원 소속 기현국 실장입니다.”


군인들이 현국이 내민 신분증과 얼굴을 비교해보더니 어디론가 무전 연락을 했다. 현국의 출입 여부를 허가 받는 것 같았다. 현국은 심호흡을 하며 숨을 골랐다. 잠시 후 무전을 끝내더니 군인들이 현국에게 바리케이드를 열어줬다.


“후, 저기, 비상 상황이라 그런데 저 차량, 운행 가능합니까? 청와대까지 좀 태워주시면 좋겠는데…….”


현국이 주차되어 있는 군용 레토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군인들은 왜 귀찮게 하냐는 듯 현국을 쳐다봤다. 현국은 자신의 목발을 가리키며 고개를 까딱했다.  


경복궁 옆, 청와대로 가는 길엔 군인들이 바글바글했다. 모두 일사불란하게 보호벽, 무기 등을 설치하고 있었다. 그 사이로 현국이 탄 레토나가 지나갔다. 보조석에 탄 현국이 태블릿 PC를 꺼내 뉴스 속보를 스크롤하며 확인했다. 특별히 더 알려진 소식은 없었다. 서울 각지의 지하철역이 일제히 테러를 당해 도심이 마비됐다는 소식, 그 이상의 정보는 없었다. 다행이다, 라고 그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실시간 SNS 정보에 괴물의 사진이 올라와 있는 걸 보자 현국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괴물들의 사진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괴물의 정체 자체를 의심하는 반응부터 공포에 질린 반응까지. 괴물의 정체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연했다. 대한민국에서 괴물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으니까. 현국은 그중 한 명이었다.


레토나에서 내린 현국은 몇 차례 신분 확인 과정을 거친 후, 청와대 지하 벙커로 내려갔다. 지하 벙커에선 청와대 실무진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빨리 와.”


원도훈 국정원장이 현국을 맞이했다. 국정원장은 현국의 걸음을 재촉하며 지하 벙커 가장 안쪽에 위치한 비상대책센터로 향했다


“들어가서 입도 뻥끗하지 마. 알겠지.”


국정원장이 현국에게 경고했다. 현국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국정원장은 비상대책센터에 들어가지 않고 바로 앞에 멈춰 섰다. 현국은 국정원장에게 왜 들어가지 않느냐는 눈빛을 보냈다.


“대답해, 기현국.”


국정원장이 현국을 노려봤다. 이에 질세라 현국이 대꾸했다.


“지금 이 마당에 어떻게 가만히 있습니까? 어서 다 알리고 대책을…….”


하지만 현국은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자신보다 한 뼘이나 더 큰 국정원장이 현국의 턱을 잡아 자신의 얼굴 앞으로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곧 우리끼리 따로 회의할 거야. 그러니까 여기선 조용히 해. 알겠어?”


국정원장이 현국의 두 눈을 짓이길 것처럼 노려보며 말했다. 현국은 씩씩 숨을 내쉬기만 했다. 국정원장은 현국의 그런 태도를 무언의 긍정이라 생각했는지, 그의 턱을 놓고 비상대책센터 문을 열었다. 현국은 비틀거리면서 목발로 몸의 중심을 잡았다.


비상대책센터 안에는 이미 도착해 있는 각 부처 장관들, 실무진이 가득했다. 모두들 전화통에 불이 난 듯 어딘가와 통화 중이었다. 국정원장과 현국은 비상대책센터 가운데 있는 회의 테이블의 비어 있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와 동시에 비상대책센터의 또 다른 문이 열리며 검은 양복을 입은 대통령 비서실장과 경호실장, 몇 명의 경호원 뒤로 굳은 표정의 박정근 대통령이 들어왔다. 개헌을 통해 현재 9년째 장기 집권 중인데도 독보적인 카리스마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대통령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5분만 함께 있으면 상대방을 무장해제시켜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매력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국은 그가 매력적인 만큼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역시 괴물의 정체를 아는 대한민국의 극소수 중 한 명이었다. 지금 일어난 재난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현국이 보기에 대통령은 야누스 같은 사람이었다. 천상이 내려준 카리스마와 핵폭탄보다 위험한 야망을 동시에 품은 사람.

대통령이 들어오자 비상대책센터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황급히 전화를 끊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통령이 상석에 앉자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자리에 앉았다.


“현재 상황 브리핑해주세요.”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시하자 비상대책센터 안의 여러 각료 중 국가안보실장이 대형 스크린 앞으로 나왔다. 스크린에 서울의 복잡한 지하철 노선도가 떠오르며 안보실장이 브리핑을 시작했다.


“현재 폭발 테러가 일어난 곳은 서울 지하철역 127개 역으로 파악되며, 이 중 98개 역은 출입구가 완전히 붕괴되어 이동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나머지 29개 역은 붕괴 직전 단계로 곧 출입구가 완전히 막힐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번 테러는 모두 지하에 위치한 지하철역 승강장에서만 발발했으며, 지상에 위치한 승강장은 어느 곳에서도 테러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지하 터널을 지나가던 지하철 탑승객과 지하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던 시민들이 큰 피해를 입었고, 현재 군부대가 투입되어 구조 중입니다. 지상에서는 아직까진 교통 대란 이외에 어떠한 피해도 접수되지 않았습니다.”


안보실장의 말에 따라 대형 스크린의 지하철 노선도에 테러를 당한 지하철역들에 반짝이는 불빛이 들어왔다. 현국은 그걸 보며 테러를 당한 지하철역들이 너무 예쁘게 표시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보실장은 반짝이는 지하철역들을 가리키며 브리핑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걸 보시면 아시겠지만, 현재 테러가 일어난 구역은 지하철 2호선을 중심으로 그 안쪽에 위치한 지하철역들입니다. 2호선 지하철은 서울 시내를 원을 그리며 도는 순환선인데, 이 원에 위치한 2호선 지하철역들을 포함, 원 안쪽에 위치한 수많은 지하철역들이 모두 테러를 당한 것입니다.”


안보실장의 말에 따라 2호선 지하철 노선도가 그리는 원과 원 안쪽의 지하철역들이 모두 빨갛게 표시됐다. 한강을 중앙에 두고 서울 시내를 뒤덮은 커다란 원이 빨간색으로 채워졌다. 안보실장이 말을 이어갔다.


“2호선은 서울의 대표적인 흑자 노선 중 하나인 만큼 서울의 주요 역들을 지나고 있고 그 안쪽의 지하철역들 또한 두말할 것 없이 주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잠깐만요, 그럼 저 2호선 원 안쪽 지하 구역이 모두 테러리스트들에게 점령당했다는 말입니까?”


질문을 던진 건 현국이었다. 안보실장은 브리핑을 끊은 현국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봤다. 현국 바로 옆에 앉은 국정원장 또한 현국에게 눈치를 줬다. 


“대답해보게. 나도 궁금하니까.”


느닷없이 대통령이 말했다. 대통령은 평소에도 소신 있게 할 말 하는 성격의 현국을 신임하는 편이었다. 안보실장은 별수 없이 현국의 질문에 대답해줬다.


“조금 전 말씀드렸듯, 2호선 원 안쪽 구역을 사수하기 위해서 군부대가 투입된 상황입니다. 하지만 붕괴 직전에 있는 29개 지하철역이 모두 붕괴된다면 저 원 안쪽 구역은 거대한 지하 밀실이 되고 맙니다. 그러면 우리 군도 저곳에 갇히게 되는 셈으로, 사실상 적들에게 저 구역을 넘겨주게 된다고 봐야 합니다.”


안보실장의 대답이 끝나자 1초 정도 침묵이 이어진 뒤, 다른 장관들이 기다렸다는 듯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비상대책센터 안은 순식간에 새벽 시장의 경매장처럼 시끄러워졌다. 


“조용히 하세요! 조용!”


대통령 비서실장이 회의 테이블을 내려치며 소리쳤다. 박력 있는 그의 목소리에 센터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평소에도 위압적인 카리스마로 대통령의 손발이 되어주는 그였다. 

정적을 깨고 각료 중 한 명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 하나만은 대답해줘야 우리도 대책을 논의할 수 있습니다.”


국민안전처 장관이었다. 그가 스마트폰을 들어 사진을 하나 떠올렸다. 지하 터널에 나타난 괴물이 찍힌 사진이었다.


“이것의 정체가 뭡니까? 국가안보실에서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요?”


안보실장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사진만 쳐다봤다. 모른다는 의미의 침묵이 아니라 알고 있지만 말할 수 없다는 의미의 침묵이라는 것을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사진을 들고 있던 국민안전처 장관이 대통령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대통령님, 진상을 말해주셔야 저희들도 대책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이번 테러와 이 괴생명체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겁니까? 혹시 지하철역을 폭파시킨 것도 이 괴생명체의 짓입니까? 북한에서 보낸 괴물이라는 소문도 있습니다. 대체 이 괴생명체의 정체는 뭡니까?”


비상대책센터는 다시 정적에 휩싸였다. 누구 하나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긴장이 흘렀다. 모두들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현국은 대통령의 표정이 미묘하게 뒤틀리는 걸 느꼈다. 사과가 썩어가는 과정을 고속촬영한 것처럼 그의 표정은 천천히 일그러지고 있었다. 잠시 후, 대통령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은 일단 시민들을 구조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주십시오. 저를 믿고, 일단 그렇게만 해주세요.”

 

회의는 허무하게 끝났다. 

비상대책센터에 있는 수많은 각료들이 계속해서 대통령에게 구체적인 대답을 요구했지만, 대통령은 끝내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대통령은 몇 가지 지시만 내리고 비상대책센터를 나갔다. 그 지시 중 가장 강조한 건 언론에서 괴생명체에 대한 소식을 다루지 못하게 막으라는 것이었다.


남아 있는 각료들은 대통령을 향해 비난을 쏟았다. 진실을 말해주지도 않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만 요구하는 대통령에게 실망한 기색들이었다. 이후에 그들은 안보실장을 대상으로 질문 공세를 이어갔다. 그러자 안보실장 역시 대통령과 똑같이 비상대책센터를 나가버렸다. 이어서 묵묵히 자리에 앉아 있던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도 비상대책센터를 나갔다. 


이제 비상대책센터 안에 있는 사람 중 괴물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은 국정원장과 현국 두 사람뿐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괴물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현국은 몇 번이나 진실을 말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지만, 회의실에 들어오기 전 들은 국정원장의 말을 기억하며 침묵을 지켰다. 언제까지 이 비밀을 지킬 수 있을까? 


현국은 숨이 막힐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 비상대책센터의 공기가 순식간에 다 증발해버린 것만 같았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진 현국은 도망치듯 절뚝거리며 비상대책센터를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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