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_혼자

 

 

순이는 문을 열고 다락방으로 들어섰다. 리타가 누워 있던 침대가 텅 비어 있었다. 순이가 여길 나설 때만 해도 리타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불과 30분 전의 일이다. 소녀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제 발로 걸어 나갈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계단을 내려가 창고 밖으로 나서자 빈 상자를 의자 삼아 대낮부터 술판을 벌이고 있는 인부들이 보였다. 얼마 전에 실려 온 여자애를 못 봤느냐고 묻자 그들은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누가 데려갔으면 그들의 눈에 띄었을 것이다. 결국 제 발로 나갔을 가능성이 크다. 체구가 작고 나뭇가지처럼 깡말랐으니 인부들도 알아차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귀찮게스리…….”


순이가 조선말로 중얼거렸다. 대단한 계집애다. 두 발로 서 있기도 힘들 텐데. 에스메랄다는 천막 밖에서 담배를 피우며 농땡이를 치고 있었다. 순이는 그녀를 붙잡고 리타가 사라졌다고 이야기했다. 두 사람은 동물농장 안을 헤매고 다니며 리타를 찾았다. 창고에서 동물농장 외부로 통하는 입구까지는 꽤 거리가 있다. 차로 이동하면 금방이지만 걸어가면 15분 정도 걸린다. 어디까지나 어른 걸음일 때의 이야기다. 몸이 아픈 데다 이곳 지리도 모르는 아이가 동물농장 밖으로 나갔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한참을 찾아다녔지만 소득이 없었다. 하늘은 어느새 저녁노을로 붉게 물들었다.


난 작업장 쪽을 한 번 더 돌아볼게. 너는 저택 뒤편으로 가봐.”


에스메랄다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순이는 그녀의 말대로 저택 뒤편으로 달려갔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게 뻗은 갈대밭이 그녀를 맞이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사람 하나를 죽이고 가출한 여자애를 찾으러 다녔다. 그녀는 허기를 참으며 갈대 밭으로 들어섰다. 자신의 키보다 더 큰 갈대를 헤치며 리타의 모습을 찾던 순이의 귓가에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갈대밭 한편에 리타가 주저앉아 있었다. 보기에도 안쓰러운 알몸을 잔뜩 웅크린 채 제 무릎에 머리를 파묻고 울고 있었다.


뭐해?”


순이는 리타에게 다가갔다. 소녀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누런 콧물을 거칠게 빨아들이며 순이를 올려다보았다.


이제 좀 살 만한가 보지?”


리타는 울먹이기만 할 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순이는 리타의 손목을 잡고 그녀를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집에 가려고?”


순이가 물었다. 열세 살짜리 여자애가 갈 만한 곳이란 뻔하다. 학교 아니면 집이겠지.


너희 집 없어. 다 불탔다.”


순이가 말했다.

리타의 얼굴이 다시 일그러졌다.

저 표정. 익숙했다. 순이는 리타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 또한 리타처럼 집을 잃었다. 다만, 불이 아니라 무너져내리는 산이 집을 삼켰고, 그 안에 머물던 부모님과 동생들을 생매장시켰다.




순이는 열일곱 살 때 입대했다. 자원입대였다. 가난에 허덕이는 가족을 먹여 살리려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녀의 가족은 함경북도 풍계리 집단농장에서 감자와 옥수수를 일궜다. 그녀가 어렸을 때만 해도 수확량이 나쁘지 않았다. 농작물을 관리하는 당국에서도 군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점차 수확량이 줄더니 흉작이 이어졌다. 당국에서는 농부들이 게으른 탓이라고 질타하며 떨어진 수확량만큼 식량과 생필품 배급을 줄였다. 그러나 흉작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자연의 조화일 뿐이었다.


군에 입대한 지 2년째 되던 해였다. 유난히 장마가 길게 이어졌다. 여름에 내리기 시작한 비가 가을까지 이어졌다. 그녀는 고향 마을에 산사태가 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마을 위쪽에는 텅스텐과 구리가 매장된 탄광이 있었다. 그곳이 진원지였다. 굴착하다가 산을 잘못 건드린 것이다. 연일 내리는 비로 약해진 지반은 더 이상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무너져버렸다.


순이가 휴가를 얻어 고향 마을을 찾았을 때,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진흙으로 뒤덮인 민둥산뿐이었다. 수십 명의 인부가 중장비도 없이 삽과 곡괭이로 땅을 파서 시체를 캐내고 있었다. 순이는 온몸에 진흙을 두른 아버지와 어머니, 어린 동생들의 시신을 앞에 두고 울 수조차 없었다. 그저 망연자실하게 주저앉아 있었다. 그녀에겐 더 이상 가족이 없었다. 집도 없었다. 그녀는 철저히 혼자였다. 눈앞에 있는 리타도 그때의 순이와 같은 처지였다.


이제 세상에 믿을 건 너 자신뿐이다. 정신 똑바로 차려.”


순이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이럴 때 위로의 말을 건네겠지만, 순이는 누굴 위로하는데 영 소질이 없었다. 리타는 콧물을 빨아들이며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의 냉정한 태도에 화가 난 것일까, 아니면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일까. 순이는 알 수 없었다.


두 사람의 등 뒤로 해가 저물고, 동물농장에 밤이 찾아왔다. 순이는 리타를 데리고 창고로 향했다. 멀리서 에스메랄다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대체 어딜 갔던 거야? 몸은 괜찮아?”


에스메랄다는 리타를 붙들고 어디 다친 데는 없는지 살폈다. 그러곤 자신의 겉옷을 벗어 가죽만 남은 리타의 몸에 걸쳐주었다. 리타는 다락방에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누웠다. 에스메랄다가 이불을 덮어주자 눈을 감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코를 골기 시작했다. 낮은 코골이 속에 피로가 가득 묻어났다.


아무튼 살아서 다행이다, 그치?”


에스메랄다가 말했다.

순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살아서 다행일까? 쉽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육신에 남은 상처는 시간이 가면 회복되기 마련이다. 마음에 남은 상처는 그렇지 않다. 안으로 계속 곪아들어가며 사람을 괴롭힌다. 순이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 역시 살면서 받은 크고 상처들을 끌어안은 채 전전긍긍하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슬픈열대>

  7월 14일 출간예정


  [연재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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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표: 7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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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2017-07-10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모르게 설레이는 문장과 장면 넘좋아요^^ 책으로 출간될때 대박♥♥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