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_소녀



콰콰콰쾅! 어마어마한 폭음이 순이의 고막을 때렸다. 조타실 안은 아비규환이었다. 박살난 계기판에서는 연신 불똥이 튀었다. 선체가 기울어지면서 바닥에 널려 있는 시체들 위로 온갖 집기가 쏟아졌다. 어디선가 치이익- 가스 새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장을 지나가던 파이프 관에서 하얀 가스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폭발이 임박했다. 그렇게 판단한 순간, 몸을 던졌다. 등 뒤에서 또 한 차례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등을 송두리째 태워버릴 것 같은 강렬한 열기와 강한 압력이 그녀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튕겨 나오다시피 복도 위를 굴렀다. 이미 선체는 45도로 기울어졌다. 배가 침몰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누이!”


느닷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허성훈 대위가 난간을 붙잡고 간신히 몸을 지탱한 채 순이를 부르고 있었다. 밑에서부터 차오른 바닷물은 그의 두 다리를 집어삼키고 허리까지 밀려 올라왔다.


“잡아라!”


순이가 손을 뻗으며 외쳤다. 두 사람의 손끝은 아슬아슬하게 서로를 스치고 말았다. 복도 왼편 벽을 무너트리며 밀려온 바닷물 때문이었다. 


“권 소좌……, 누이!”


밀려든 바닷물은 성훈을 집어삼키고 여세를 몰아 순이를 덮쳤다. 사방이 깜깜한 어둠으로 뒤덮였다.


“살려주세요…….”


귓가에 어른거리는 희미한 목소리에 눈을 떴다. 순이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닷물 속에 잠겨 있었다. 맞은편에는 육중한 철장이 있었다. 철장 너머는 시커먼 어둠뿐이었다.


“살려주세요…….”


어둠 속에서 수많은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원망으로 가득 찬 눈길. 흐릿하게 드러나기 시작하는 얼굴의 윤곽들. 왜 우릴 버리고 갔느냐는 한 맺힌 목소리. 


순이는 질끈 눈을 감았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눈을 떴다. 곰팡이가 피어 있는 익숙한 천장과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에 비친 뿌연 먼지 입자가 눈에 들어왔다.


“권! 안에 있어?”


카를로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이는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아직도 꿈속인 듯 정신이 몽롱했다. 문을 열자 중절모를 쓴 초로의 신사와 함께 서 있는 카를로스가 보였다.


“어제 말했던 의사야. 아이를 봐줄 거야.”


의사는 탁자에 가방을 올려놓고 그 안에서 청진기며 손전등 따위를 꺼내놓았다. 소녀는 여전히 의식이 없는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의사는 입을 굳게 다문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의사는 이불을 걷어내고 소녀의 몸을 꼼꼼히 살폈다.


“저 애의 이름은 리타. 리타 몬테너야. 쿠바의 유명한 가수랑 이름이 같지. 올해 열세 살이라더군.”


카를로스가 말했다. 

리타……. 순이는 소녀의 이름을 중얼거려보았다.


“연락할 만한 가족이 있나 알아봤는데 아무도 없더군. 몇 안 되는 친척도 죄다 죽거나 행방불명된 상태야. 친가고 외가고 전부 FARC(콜롬비아 무장혁명군)와 엮였다나 봐.”


순이는 콜롬비아 무장 혁명군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그들은 정부군과 대립 중인 좌파 무장혁명조직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정부군, 우익 게릴라 조직들을 상대로 수시로 교전을 벌이곤 했다. 


“그래서 말인데…… 권, 당분간 저 아이를 좀 맡아줘야겠어.”


카를로스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싫다.”


순이는 무 자르듯 단호하게 말했다.


“아주 맡아달라는 게 아니고 어느 정도 회복될 때까지만.”

“처음엔 딱 하루라며?”


순이가 카를로스를 쏘아봤다.


“아니 애가 저렇게 오늘내일 하는데 불쌍하지도 않아?”


카를로스가 인정에 호소했다. 순이는 콧방귀를 뀌었다.


“나는 총잡이로 온 거지 보모로 고용된 게 아니다. 전문 간병인을 구해.”

“따지고 보면 카르텔 간의 항쟁에 말려든 아이잖아. 그런 애를 돌봐주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어. 괜히 불똥이 튀어서 화를 입을 수도 있으니까.”


난감했다. 순이는 리타와 최대한 빨리 헤어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한 방에 데리고 있는 것도 불편한데 아예 보모 노릇까지 하라니. 순이가 재차 거절하려는데 의사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항생제를 좀 놨어. 급한 상처도 일단 처치해뒀고. 하루 정도 지나면 알 수 있을 거야, 살아날 수 있을지 없을지…….” 의사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힘겹게 말을 이었다. “성적 고문도 있었던 것 같아. 참혹하더군.”


의사는 항생제가 들어 있는 봉투와 상처에 바를 치료약을 건네고는 다락방을 떠났다. 


“그럼 부탁 좀 할게!”


카를로스가 두 손을 모으며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잽싸게 의사를 따라 나섰다. 순이가 계속 거부하리란 걸 짐작하고 꽁무니를 빼버린 것이다.


“비겁한 간나새끼…….”


순이는 모국어로 욕설을 내뱉으며 소녀가 누워 있는 침대 옆에 주저앉았다.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차라리 때려치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욱하는 마음 한편으로 다른 일자리를 구하는 건 쉬울까? 하는 우려가 찾아들었다. 무엇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눈과 귀가 없는, 그들과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는 일터가 필요했다. 그녀는 한때 충성을 바쳤던 조국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그들과 엮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따지면 동물농장은 순이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직장이었다. 콜롬비아는 공화국의 관심 밖에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하는 일에 비해 봉급이 높은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다. 짜증이 밀려왔다. 결국 이 귀찮은 짐 덩어리를 맡아줄 수밖에 없는 건가.


순이는 물끄러미 누워 있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리타 몬테너. 열세 살. 겨우 열세 살. 순이는 그 나이 때 고등중학교를 다녔다. 한창 그림에 빠져 있을 때다. 화가가 되는 게 그녀의 꿈이었다. 그때 순이는 순진했다. 나라의 인정을 받는 공훈 예술가가 된 미래의 자신을 그려보곤 했다. 하지만 집단농장 노동자의 딸인 순이는 공훈 예술가가 될 수 없는 신분이었다. 순이는 그 사실조차 알지 못할 만큼 어렸다. 같은 나이에 이 소녀는 성 고문의 희생자가 됐고,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위독한 처지에 놓여 있다. 


연민의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순이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타인에 대한 쓸데없는 연민만큼 무의미한 것도 없다. 결국 다 주어진 팔자대로 살고 죽는 거다. 나와는 상관없다. 순이는 죽어가는 소녀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슬픈열대>

  7월 14일 출간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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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표: 7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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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ycoffee 2017-07-12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실감나네요. 긴박감도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