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_습격(2)

 

 

고개를 들었다. 여자가 카를로스 앞에 서 있었다. 피로 목욕이라도 한 것 같은 몰골이었다.그녀의 두 손에는 피 묻은 AK47 한 정이 들려 있었다. 원래 가지고 있던 토카레프는 바지 앞 춤에 꽂혀 있었다.

여자는 어떻게 사지를 헤쳐 나온 것일까? 저 소총은 어떻게 손에 넣은 거지? 조금 전 산 정상에서 들은 총성은 누가 울린 것일까? 설마 저 여자가 매복한 적들을 다 죽인 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카를로스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 같았다.


여자는 오두막 안으로 성큼 걸음을 옮겼다. 카를로스와 제프가 뒤를 따랐다. 뿌연 연기와 매캐한 화약 냄새가 집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거실 한복판에는 피떡이 된 사내 하나가 누워 있었다. 그는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옆으로 늘어뜨렸다. 숨을 거둔 모양이었다.

여자와 카를로스, 제프는 거실 한가운데 놓여 있는 큼지막한 소파 뒤로 몸을 숨겼다. 총성과 폭음으로 요란했던 집 안은 다시 고요 속에 휩싸였다.


엄호해.”


여자는 짧게 말하고는 기어서 소파의 측면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오두막 안쪽에 있는 주방을 응시했다. 연기가 아직 완전히 걷히지 않아 주방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소총의 총구를 움직여 마룻바닥을 톡 쳤다.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주방에서 총성과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소파에 달라붙어 있는 카를로스의 등짝에 누군가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는 듯한 감촉이 전해져 왔다. 총알이 소파에 틀어박히며 발생한 충격이 그런 식으로 전달된 것이다.


여자는 차분한 얼굴로 주방 쪽을 겨누더니 방아쇠를 당겼다. ! 한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주방을 가로막은 기다란 바(Bar) 위로 시커먼 형체 하나가 축 늘어졌다. 이어서 머리통 두 개가 주방 위로 불쑥 올라왔다. 숨어서 마구잡이로 총을 쏘아대던 녀석들이 동료의 죽음에 반사적으로 반응한 모양이다.

여자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다시 한 방 쏘았다. 머리통 하나가 움찔 하더니 뒤통수에서 핏물을 뿜어냈다. 남은 한 놈이 여자를 향해 AK47을 겨눴다. 여자가 한 박자 빠르게 방아쇠를 당겼다. 또 한 방. 남은 한 놈도 피를 뿌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한 발에 한 명씩. 여자는 그렇게 순식간에 세 사람을 해치웠다. 그녀의 솜씨는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꾼처럼 침착하고 날카롭고 정확했다.


권순이……. 발음하기조차 힘든 여자의 이름이 카를로스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는 그제야 브로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카를로스가 지금까지 본 총잡이들과는 격이 달랐다. 최정상급 용병이라는 소개는 과장이 아니었다.

 

순이는 우두커니 서서 시체들을 내려다보았다. 사람을 상대로 총을 쏜 건 4개월 만이었다. 조금 쉬었던 것 치고는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잠깐!”


제프의 다급한 외침에 고개를 돌렸다. 그가 바닥을 가리켰다. 순이가 귀를 기울여보니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것 같은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밑에 지하실이 있고, 거기에 적들이 숨어 있는 게 틀림없었다.

세 사람은 흩어져서 지하실로 내려가는 입구를 찾았다. 순이는 운동화를 통해 느껴지는 바닥의 감촉에 주의를 기울이며 천천히 거실을 걸어 다녔다. 싸구려 카펫 위로 발을 딛자, 방금 전과 달리 생소한 감촉이 느껴졌다. 카펫을 걷어내자 정사각형 모양의 문이 드러났다. 카를로스와 제프가 순이 곁으로 다가왔다. 세 사람은 문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문 아래쪽에서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잠시 후, 벌컥! 하고 문이 열리더니 사람 머리 하나가 튀어나왔다. 세 사람은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공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사내는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벌집이 됐다. 시체가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좁은 계단을 올라오던 사내 두 명이 시체에 부딪쳐 지하실로 굴러 떨어졌다. 세 사람은 탄창이 빌 때까지 쉴 새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지하실 아래에서 피와 화약 냄새가 뒤섞인 진한 악취가 풍겨왔다. 순이는 빈 탄창을 뽑고 적에게 노획한 새 탄창을 꽂아 넣었다. 그녀는 소총을 치켜든 채 신중한 걸음걸이로 계단을 내려갔다. 카를로스와 제프가 뒤를 따랐다. 누런 회중전등 하나가 원을 그리며 회전했다. 흔들리는 불빛이 지하실 안을 비췄다. 총알에 갈갈이 찢겨 걸레짝처럼 되어버린 시체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순이는 바닥에 쏟아진 뇌수와 핏덩어리, 뼛조각들을 피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지하실 안은 대충 쌓아 놓은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었다. 한편에는 AK47 수십 정이 마구잡이로 쌓여 있고, 다발로 묶인 다이너마이트가 무방비 상태로 나뒹굴고 있었다. 군용 탄띠와 취급주의 경고문이 커다랗게 박혀 있는 빈 상자도 눈에 들어왔다. 한쪽 벽에는 흰 페인트로 콜롬비아 방위 결사대(Colombian Defense Corps)’라 쓰여 있었다. 그 옆에는 큼지막한 콜롬비아 국기가 걸려 있었다.


순이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지하실 한구석에 우두커니 놓여 있는 커다란 마대 자루였다. 뭔가에 씌워 놓은 것처럼 부피감이 있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무엇일까? 마대 자루 뒤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내 하나가 튀어 나왔다. 그가 총구를 들이밀며 입을 열었다.


가까이 오면 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순이의 AK47이 불을 뿜었다. 그녀가 쏜 총알이 사내가 들고 있던 리볼버의 총구를 파고들었다. 총열을 박살내며 리볼버 깊숙이 파고든 총알은 장전되어 있던 탄창을 강한 힘으로 두드렸다. 탄창이 폭발하며 불꽃이 리볼버를 휘어감았다.


으악!”


사내는 총을 떨어뜨렸다. 그의 손에는 불이 붙어 있었다. 순이는 사내를 쏴버리려다 카를로스를 힐끔 쳐다봤다.


죽이면 안 돼.”


카를로스가 말했다. 순이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카를로스가 달려가 사내의 손을 군홧발로 짓밟아서 불을 껐다. 그의 팔뚝에 선명하게 새겨진 전갈 문신이 전등 불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이게 전부인가…….”


제프가 중얼거렸다. 지하실 안에서 다른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였다.


아호레 포르 파보르(Ahorre por favor)…….”


실낱같이 희미한 목소리가 순이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그녀는 이 문장이 무슨 뜻인지 기억해내려 했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아호레 포르 파보르…….”


목소리는 순이가 쳐다보았던 마대 자루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순이는 포대를 쥐고 천천히 벗겨냈다. 살이 썩어 들어가는 역한 냄새가 왈칵 풍겨왔다. 포대 자루 속에 사람이 있었다. 알몸인 채 한 소녀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절대 우연히 생길 수 없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상처들. 벌어진 살 틈새에는 구더기가 들끓었다. 오랜 기간 제대로 먹지 못한 듯 갈비뼈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소녀는 초점 없는 눈으로 순이를 바라보았다. 핏줄이 터져 흰자위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하얗게 말라붙은 입술 사이로 희미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호레 포르 파보르…….."


순이는 그제야 그 말의 뜻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살려주세요.”






 <슬픈열대>

  7월 14일 출간예정


  [연재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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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표: 7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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