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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 라이트 하이킹
쓰치야 도모요시 지음, 최종호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어느새인가 캠핑이 한철 유행을 지나 이제 우리네 여가 문화의 일부로 자리잡았다는 데 다들 이견은 없으리라. 여기서 그저 캠핑이라 하였는데 정확히
하면 '오토캠핑'을 말함이다. 한편으론 많은 이들이 여전히, 흔히 비박이라고들 하는, '백패킹'을 즐기고 있다.
이
'백패킹'의 영원한 화두가 바로 짐 줄이기, 즉 배낭 가볍게 하기다. 더 멀리 걸을수록 필요한 짐은 더 많아진다. 아침에 올라
저녁에 산을 내려온다면 끼니를 대신할 김밥 몇 줄과 마실 물 그리고 겉옷 하나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며칠이 걸리는
거리라면 어떨까? 텐트며 취사 장비는 기본에다 준비할 식량은 거리에 비례해 늘어날 것이다. 하물며 겨울에 길을 나선다면? 더
추울수록 필요한 짐은 더더욱 많아진다. 짐이 늘수록 힘은 더 들고, 지칠수록 더 무겁게 느껴진다. 악순환이다.
초소형, 경량화, 티타늄, 신소재 등등.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이나 가릴 것 없이 등산용품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이다. 짐의 가짓수를 줄일 수는 없으니 짐 자체의 무게를 최소화하는
노력은 가히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20세기 이후에는 등산장비를 만드는 이들이 앞장서왔다고 하면 과장이
지나친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산을 자주 오르는 이들이 느끼기에'라는 단서를 하나 붙인다면 말이다.
게이트우드 할머니. 그런데 이 책이 소개하는 한 여성이 그 지난한 노력을 하찮게 보이도록 만든다. (절대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지. 항상 노력한 이들에게 감사하며 걷고 있다.) 1965년 당시 69세였던 이 분은
3500킬로미터 길이의 미국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4개월 반 만에 마쳤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등산화가 아닌 스니커즈를 신고 직접
만든 헝겊 자루에는 식량과 물을 포함해 9킬로그램 이내의 짐만 넣고 길을 걸었단다. 새벽에 동네 약수터에만 가도...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꼭 그럴 필요도 없고, 누구나 따라야할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다음의 '울트라 라이트 하이킹 철학'을 보자.
꼭 필요한 짐만 지고
자연 속을 편하게 걷는다.
자연 속에서 살며시 눈을 감고
자연의 섭리를 느끼며
자연과의 관계를 생각한다.
- 울트라 라이트 하이킹의 철학(22~23쪽)
푹신한 매트리스, 접이식 의자, 밝은 랜턴, 수많은 즉석음식과 통조림 등등. 가져가면 좋은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 말입니다.' 편한 것이 다는 아닐 것이다. 내가 트레킹/하이킹/등산을 하는 것은 문명의 이기를 어느 정도 포기하고 자연 속으로 들어가 단순한 삶을 회복, 또는 극복해보자 함이 큰 이유 아닌가. 그렇다면 짐은 줄고 만족은 늘테니 일석이조다.
저자는 이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 가령 뼈대가 없는 배낭을 사서 매트리스를 이용해 형태를
잡는 '초경량 배낭' 만드는 법. 텐트가 아닌 다른 방식의 잠자리 만드는 법. 하루 먹을 식량은 100g+250g+150g 같이
준비한다는식으로 매우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역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스포일러 금지.
이
책에는 단점도 있다. 일단 저자가 일본인이고 위의 할머니나 가상의 트레커가 걷는 곳은 미국의 장거리 트레일이다. 북알프스를 종주한 경험에 비춰보면 일본의 경우엔 통할 수 있어도 우리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국립공원 안에서 야영이 금지된 것이 한참 전이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그리
비싸지도 않으니 충분히 사서 볼 가치가 있으니 추천한다.
* 사족 - 앞서 오토캠핑과 백패킹 이 둘을
나눠서 이야기함은 그 우열을 가리자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의 것으로 단순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전제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 자식들이 포함된 가족이 모처럼 자연속으로 캠핑을 나왔다면 이들을 최대한 챙기는 것이 아비, 어미의 도리라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다. 아마도 그 과정에서 한번쯤은 캠핑장의 쓰레기더미나 낭비되는 음식 등에 대해서 아이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럼 그때,
다음에는 좀 다른 식으로 캠핑하는 법을 생각해보자고 하면 어떨까? 서점에 같이 가서 이 책을 같이 본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