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테라스에서 모노노케 히메까지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45
박규태 지음 / 책세상 / 200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고이즈미 신사참배 파문.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14일 한국과 중국 등이 반대하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또 기습적으로 강행했다.'(한겨레. 2003년 1월 4일자 기사)이 기사를 대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반응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또야?' 이 한마디에는 우리 민족이 겪었던 식민지배의 고통에 대한 분노보다는 주변국의 반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해마다 되풀이되는 이 소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배어있다. 왜 일본의 수상과 각료들은 2차대전의 A급 전범들이 모셔져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굳이 가려는 것이고, 전쟁에 반대한다고 하는 일본인들도 이 문제에는 동정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단지 우익 정치가의 돌출행동이나 옛 제국 시절에 대한 향수로 해석하기에는 미진한 구석이 남는다.

이 문제에 대해 <아마테라스에서 모노노케 히메까지>의 저자는 정치적인 관점이 아닌 일본인들의 '원령 신앙'을 이해하는 데서 그 실마리를 찾을 것을 제안한다. 아직도 사람이 죽으면 가미(神)가 된다는 생각을 가지는 많은 일본인들은 전쟁터에서 비정상적으로 죽은 자는 원령(怨靈)이 되어 산 자를 괴롭힐지도 모르니 죽은 자의 원령을 위무해주어야 하고, 야스쿠니 신사가 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이 책은 이렇게 사회 문화체계의 가장 심층에서 작동하는 코드로 '종교'를 설정하고, 일본이라는 타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본 종교에 대한 우리의 무지와 일본에 대한 이중적인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여기서 말하는 이중적인 콤플렉스가 '있다, 없다'로 대변되는 기존의 일본 관련서들을 가리키는 것임은 쉽게 추측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최고(最古)의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에 실린 천손강림(天孫降臨) 신화로 시작해서, 불교의 전래와 그에 따른 신도와 불교의 습합(習合), 그리고 기독교의 전래 이후 신종교의 발생에 이르기까지 일본 종교의 역사를 더듬어 내려오는 동안 저자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신도의 독특한 '선악 관념'이다.

신도의 가미는 도덕적인 선악에 구애받지 않는 존재로 여겨져 이치(理)에 맞느냐 안 맞는냐를 가지고 헤아릴 것이 아니라, 다만 가미의 성냄을 두려워하면서 전적으로 삼가 모실 일이라는 것이다. 확실히 이 것은 유일신을 절대 선으로 상정하는 서구의 기독교적인 도덕관이나 인(仁)과 의(義)를 중시한 중국과 한국의 유교적 도덕관과는 판이하다.
이러한 선악관이 나중에는 덕(德)의 원리보다는 종(種)의 원리를 중히 여기는 근세 일본의 이데올로기의 기초를 이루었다고 보면, 천황을 찬양하는 내용의 기미가요와 일장기를 앞세워 군국주의로 내달았던 그네들의 속내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저자는 이렇게 타자의 문화를 포괄적인 개념어로 규정짓기보다 문화란 숲의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풍경을 볼 것을 주문한다. 하지만 계율과 내세보다는 현세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욕망을 긍정하는 일본의 불교-결혼을 하는 승려를 보라-를 보면서 개방적인 일본의 성문화나 발달된 대중문화를 떠올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현대 일본 사회의 종교를 설명하면서 옴진리교와 같은 신흥 종교의 성행을 '가상의 현실화'라는 정보화 사회의 문제로 보는 시각 등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몇 군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마테라스에서 모노노케 히메까지>가 일본의 종교사에 대한 날씬한 개설서이자 일본 문화의 숲으로 가는 훌륭한 지도 역할을 하리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일본 관련서들의 깊이 없는 이원론에 아쉬움을 느꼈던 분들이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이누야사> 등 일본 대중문화의 신화적 상상력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궁금한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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