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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방 ㅣ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9
최인호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언제부터인가 나는 방에 불을 켜놓지 않으면 잠이 들지 않는 불편한 버릇이 생겼다.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불면증이 확대된 것인지, 어두운 곳에 있으면 괜한 공상거리만 떠오를 뿐, 통 잠이 오질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난 언제나 엎드려 책이나 잡지 등을 뒤적거리다 잠이 들곤 한다. 나에게도 어두운 내 방은 마치 다른 공간과 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 그는 누구인가.
주인공도 마찬가지로 아내가 없는 자신의 방에 돌아와 불을 켠 잠시, '낯선 곳'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자신의 자각 이전에 이미 이웃에게는 이웃이 아닌 타인으로 오해받는다. 그는 열쇠도 가지고 있고 아내도 있는데, 왜, 타인으로 오해받는 것일까. 여기에서 아내는 그와 방의 소유관계를 증명해 줄 수 없었다. 방한용 피륙과 같은 성기를 가진 아내, 아내는 그를 감싸주고 챙겨줄 유일한 존재였다. 그러나 후에 깨닫게 되듯, 아내는 거짓의 편지를 남기고 사라져 버린다. 그가 가진 것은 단지 열쇠뿐이다. 열쇠는 충분히 타인도 지닐 수 있는 것이고, 어쩌면 그는 열쇠주인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그는 타인에게 자신을 이해시킬 수 없었다. 문을 닫는 순간까지 이웃은 그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 방은 무엇인가.
물론 이 소설에는 남자와 도입부의 옆집 사내, 그리고 결말부분의 '아내' 이외에는 등장인물이 없다. (잡다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江'과는 상당히 대조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가지 중요한 소재가 등장하는데, 그것은 그의 '방'이다.
방은 그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공간이다. 자유롭게 마음껏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란 것이다. 처음에 그는 이곳에서 여러 자유로운 행동을 한다. 붙여놓은 껌을 씹음으로써 아내가 남긴 보잘 것 없는 흔적을 음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자유는 뒤에 역전이 된다. 언제부턴가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방을 눈초리를 느낀다. 그것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다가 결국에는 몸을 굳게 만들고, 어느 사이에 그는 방의 구성물들과 한 몸뚱이가 되어 버린다.
¶ 왜, 그는 방이 되어버렸나.
한가지 주의깊게 읽었던 부분은 그가 방으로 변하는 부분이다. 그는 어느새 부턴과 자신 이외의 존재가 방에 들어와 무언가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런데 그 존재에 대해 어떤 두려움이나 공포를 가진 것이 아니었다. 호의나 반가움 역시. 그는 이상하게도 '심한 고독감'을 느낀다. 그리고 갖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느낀 순간, 방안의 모든 물건이 살아서 꿈틀거리기 시작하고 그는 굳기 시작한다.
작가가 방이라고 상정한 것은 우리 자신의 의지란 생각을 했다. 어느 누구도 증명해 줄 수 없는 나만의 공간이다. 어느새 타인에게 나의 의지, 자아를 의심받는 순간, 동시에 그것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계속 내가 다스릴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다. 결국 그와 방의 관계는 역전되고 '불을 켜려는', 즉 자신의 자아를 조금이나마 밝혀 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멸한다. 이제 그는 자신의 의지를 더 이상 조절할 수 없다. 순간 부활하는 것처럼 느끼지만, 결국에는 방의 구성물로 변할 뿐이다. 남아있던 일말의 가능성, 그를 일깨워 줄 수 있는 존재인 아내 마저 다시 그를 떠난다. 처음의 편지보다 다소 공손하지 않은 쪽지만을 남기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