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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동의보감 - 상 ㅣ 소설 동의보감 3
이은성 지음 / 창비 / 200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바로 1991년도의 일이다. 나는 그때 당시 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나의 담임 선생님은 갓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담임을 맡은 새내기 교사였고 그녀의 젊은 의욕은 우리 어린 마음을 이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나의 어린 시절은 당신의 영향을 참으로 많이 받았다.
여름 즈음해서 우리 반 학생들은 부쩍 수업태도가 좋아졌다. 왜냐하면 우리가 선생님 말 잘듣는 착한 어린이로 보내는 날에는, 선생님이 그 노력에 대한 보답으로 '옛날 이야기' 상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소설 동의보감> 이야기 즉, 허준이라는 의원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것을 듣기 위해 우리는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사이좋게 조별활동을 하고 청소도 깨끗이 하는 등 선생님이 예뻐할 일을 했다.
그 91년은 바로 <소설 동의보감>이 나온지 얼마 안된 시기였다. 그 당시 동화책이나 소년소녀 명작소설 등만 읽어왔던 우리들은 사실 어른용으로 나온 그 소설책을 읽기란 힘든 나이였다. 그렇기에 우리 선생님은 저녁 퇴근 후 집에서 소설을 열심히 읽으신 후에 그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것이다.
허준이 유의태에게서 쫓겨나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린 우리들은 눈물을 글썽였고 허준이 아픈 사람을 고치는 대목에서는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내의원 시험을 보지 못해 문 앞에서 쫓겨날 때는 우리모두 가슴을 졸이며 안타까워 했다. 이렇게 나의 선생님의 들려주시는 허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조선시대에 양반과 천민, 적자와 서자의 차별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우리 나라에도 훌륭한 의술이 있었고 백성들을 생각하는 의원들이 많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훌륭한 스승 밑에는 그에 합당하는 훌륭한 제자가 있고 노력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그에 합당하는 보답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어린 우리들이 어렴풋이 깨닫게 된 허준의 가르침이었다.
내가 중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찾아간 선생님에게서 그것이 바로 소설책 이야기였음을 듣게 됐다. 그리고 나서 나는 부리나케 서점에 달려가 소설책을 사들고 왔고 밤새워 책을 읽었다. 활자로 읽은 감동은 띄엄띄엄 걸러서 듣게된 선생님의 이야기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원작자인 이 은성 작가가 작고한 이유로 허준의 이야기가 끝을 맺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가 계획했었다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이야기 중 겨울이 결국 빛을 못봤다는 그 사실은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아팠다. 그 때 '신은 왜 그를 데려가셨을까' 하는 원망도 어린 가슴에 나왔으니 그때 아쉬움은 가히 짐작할만 하다. 그렇게 나의 학창시절은 선생님의 이야기, 소설 그리고 그 안에 살아있던 허준과 함께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에 입학한지 어언 3년째에 이르렀다.
너무나 정의로운 허준의 모습은 지금 검어져만 가는 세상사람들, 특히 위정자들의 모습에 비춰볼 때 부럽고 샘나고 심지어는 지금의 세상이 안타깝기만 하다. 특히 그를 길러낸 유의태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스승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됐고, 교육을 공부하는 나에게 있어서 그의 교육자적 모습은 의원으로의 모습보다도 더욱 뚜렷이 각인됐다. 실천자 적인 그의 모습은 앞으로 교육의 본질,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지 실체를 깨닫게 해주는 것 같았다. 허준이 천번을 오가며 현판을 외우는 벌을 받았을 때 스승의 가르침을 마음에 담고 그것을 이겨가는 모습, 아픈 병자를 고치며 스승의 은혜를 생각하는 모습을 볼 때면 바로 교육자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진정한 교사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를 느끼게 했다. 아무래도 사람의 눈은 자기를 중심으로 보는 것일까. 유의태의 모습을 보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부분은 바로 이러한 것이었다.
이는 내 어릴적 허준을 맹목적으로 좋아하던 시절과는 달라진 나의 모습이었다. 대할때마다 새로움을 주는 허준의 이야기. 떠들썩한 드라마보다 나를 더 감동시켰던것은 처음 읽었던 그때의 허준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