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범죄의 재구성 : 한정판 양장본
최동훈 감독, 박신양 외 출연 / 컨텐트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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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책은 아주 적게 읽고 영화는 많이 봅니다. ^^;;

각설하고, 한국 영화보다 재미있는 영화가 요즘에는 별로 없는 듯 합니다. 그만큼 한국 영화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뜻이겠지요. 옛날에는 ‘한국 영화’를 ‘방화’라고 했습니다. ‘방화’라고 스스로 낮춰 말할 만큼 영화의 수준이 낮았다는 뜻이기도 하고, 외국 것이라면 무조건 좋게 보는 ‘사대주의적 발상’일 수도 있겠습니다.

한국 영화보는 재미가 쏠쏠해서 외국 영화는 아주 좋다는 평이 아니면 그다지 손이 가지 않는군요.

이 영화는 등장 인물들이 하나같이 개성있고, 평범하지 않은, 살아 있는 인물들로 그려집니다. 김선생과 최창혁을 뒤쫓는 형사들이 오히려 좀 평범해 보인다고 할까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재미도 재미지만, 극 중의 인물들이 던지는 대사 하나, 행동 하나가 다 즐거움을 줍니다. 연기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실제 상황을 옆에서 보는 듯 합니다.

이 영화에서 백윤식은 예의 그 멋진 연기를 보입니다. 정말이지 백윤식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연기죠. 백윤식은 꽃미남 탤런트에서 개성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연기파 영화배우로 거듭 났습니다. 그의 연기가 계속 기대됩니다.

박신양은 역시 훌륭합니다. 일인 이역을 해내는 역할도 그렇지만, 어떤 역을 맡아도 잘 소화해내는 그의 연기력이 돋보입니다. 염정아는 연기가 자연스럽지만, 스스로 캐릭터를 창조하는 힘이 좀 부족한 듯 합니다. 이 영화에서라면, 염정아가 맡은 인물이 보다 더 개성 넘치고 드라마틱한 연기를 펼쳐 보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김사장과 함께 작업을 하는 이문식이며 제비, 휘발유 등의 조연들도 연기가 훌륭하지만, 조금 더 개성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더군요.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가이 리치 감독의 ‘록 스톡 앤 투 스모킹 배럴즈’나 ‘스내치’와 비슷합니다. 한탕을 위해 모이는 것, 뒤통수를 때리는 것,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것, 그러면서도 재미있고 유쾌한 영화라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가이 리치가 스토리를 무지 복잡하게 하고, 거기에 어마어마한 편집까지 해서 보는 즐거움을 더해주었다면, ‘범죄의 재구성’은 여기 저기 작은 재미들이 많이 있는 영화라는 점이 다릅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 통쾌한 복수가 있는 영화, 소소한 즐거운 볼거리가 곳곳에 있는 영화여서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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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언 달러 베이비 (2disc) - 할인행사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힐러리 스웽크 외 출연 / 덕슨미디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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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복싱 영화입니다. ^^

고백하자면, 저는 복싱을 지금도 퍽 좋아합니다. 예전처럼 열광적으로 환호하거나 텔레비전에서 하는 복싱 경기를 보거나 하지는 않지만, 복싱이라는 스포츠를 좋아합니다.

리영희 선생님은 몸으로 부딪치며 피를 튀기는 스포츠는 진정한 스포츠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복싱은 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복싱 이외에 피를 튀기는 격투기는 스포츠라고 생각하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

복싱은 힘과 힘이 겨루는 격투기임에는 분명하지만, 링에 올라가기 전까지 선수가 치러야하는 그 숱한 고통의 시간들이 마치 구도자의 수련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복싱은 ‘자기와의 싸움’이라고도 하고, 다른 어떤 스포츠보다 고독하다고 합니다.

바로 아래 ‘신데렐라 맨’이 진짜 복싱 영화이고 그 속에 가족의 소중함이 담겨있다면 ‘밀리언달러 베이비’는 복싱이라는 매개를 통해 진정한 가족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이제는 영화배우보다 더 유명한 감독으로 자리잡은 크린트 이스트우드는 평범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끌고 나갑니다. 이 영화에서도 복싱은 ‘헝그리 스포츠’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주인공 매기의 집안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매기의 가족은 진정한 가족일까? 프랭크의 가족은 있기나 한 것일까?

우리에게 가족은 무엇일까? 그리고 가족은 정녕 소중한 존재일까? 뭐, 이런 조금은 철학적인 질문들 말입니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가족이라는 존재도 그런 건 아닐까요? 아니, 제 경험으로 보건대 분명 그렇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지만, 저는 이 말은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옳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 속에 담겨 있는 가족 이기주의, 혈연, 학연, 지연으로 얽매인 폐쇄된 관계들이 생각나서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가족의 지평이 넓어져야 하고, 보편화 되어야 합니다. 내가 낳은 새끼만 자식이 아니듯, 내 부모의 형제만이 내 가족이 아니어야 하겠지요. 말로는 ‘사해평등’이니 ‘지구촌 공동체’니 떠들어대고, 기업에서도 ‘직원을 가족같이 공장일을 내일같이’ 구호를 외치면서 정작 비정규직에 해고에 노동조합 깨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걸 보면, ‘가족’이라는 이름의 위선과 기만이 얼마나 부조리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프랭크가 진정으로 사랑한, ‘나의 밀리언달러 베이비’를 저 세상으로 보내고, 스스로 사라지는 것은 피를 나누지 않았어도 진정한 가족의 사랑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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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맨 - 아웃케이스 없음
론 하워드 감독, 러셀 크로우 외 출연 / 브에나비스타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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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은 ‘헝그리 스포츠’라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복싱이 별로 인기가 없나봅니다.

대부분 먹고 살만하고, 가난한 젊은이라도, 처절한 고통이 따르는 복싱을 좋아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복싱이 굉장한 열풍으로 뒤덮었던 때가 있었지요. 세계 챔피언이 무려 13명이나 되었던 바로 그때, 1970년대 말.

복싱 챔피언은 카퍼레이드도 하고, 텔레비전에서 황금시간에 중계 방송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의 화려한 챔피언들도 이제는 평범한 시민이 되어 고기집을 운영하거나 때로는 실패한 인생으로 전전하기도 합니다. 세월은 화려함을 빛바래게 합니다.

‘신데렐라 맨’은 미국의 경제 공황기에 화려하게 재기한 한 복서의 이야기입니다.

뉴욕의 빌딩에서 투신 자살하는 사람들이 마치 눈송이 같았다고 하던 바로 그 참담한 빈곤의 시절에도 100달러짜리 지폐로 담배를 말아피던 자본가들은 여전히 있었고, 민중들은 빵 한쪽을 얻기 위해 무슨 일이건 해야 했습니다.

바로 그 시절에, 무명에 가깝던 제임스 브래덕은 복싱계에서 쫓겨나 부두 노동자로 전전해야 했고, 전기와 가스가 끊긴 지하 셋방에서 한끼를 해결하기 위해 피눈물하는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세 명의 아이를 굶지 않게 하려고 무슨 짓이든 하려던 브래덕에게 우연히 링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고, 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마침내 세계 챔피언이 됩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는 인생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누가 그랬지요. 브래덕이 상대 선수의 펀치를 맞고 다운 되었을 때, 그의 칩 세컨이던 조 굴독이 이렇게 외쳤답니다.

“이봐, 지미, 아이에게 우유를 먹어야 한다! 지미, 아이에게 우유를 먹여야 해!”

아이가 있는 평범한 아버지라면, 이 말을 들으면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낄 겁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신의 가족을 위해,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서야 하는 아버지의 책임을.

물론, 이렇게 드라마틱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많지는 않겠습니다만, 심정적으로는 다들 긍정하실 겁니다. 밑바닥 인생에서 세계 챔피언이 되는 순간까지 브래덕이 뉴스를 타면서 브래덕과 같은 실업자들과 도시의 민중들은 그를 ‘신데렐라 맨’이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희망은 있다는 것을 브래덕이 보여주었기 때문이죠. 특히 공황이 한창이던 30년대 초에 미국은 누군가 영웅이 필요했던 것이고, 마침 브래덕의 놀라운 재기는 영웅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브래덕이 세계 복싱계의 최고 선수라고 일컬어지는 조 루이스에게 패할 때까지, 신데렐라 맨의 이야기는 계속되었고, 그 후에도 브래덕은 평범한 시민으로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경제 공황도 지나가고 미국은 그후 끊임없이 경기가 좋아지고, 살기가 좋아졌지요. 미국만의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어쨌거나,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신데렐라 맨’은 희망을 줍니다. 그것이 숲을 못 보고 단지 나뭇가지만을 보는 것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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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불편하고 짜증나서 견디기 힘들다.

도로 위에서 차가 지나갈 때마다 속도를 확인하고, 사진을 찍어대는 바로 그 카메라 때문이다.

나는 이 감시 카메라를 볼 때마다, 내 자유가 속박 당하고,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감시 당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몹시 불쾌하다.

고속도로에서도 100Km 제한 감시 카메라 앞에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고, 국도에서도 80Km나 60Km 제한 감시 카메라 앞에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나는 굴욕을 느낀다.

내가 사는 사회가 정말 ‘민주주의’ 국가인지 심하게 회의하면서.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속도 감시 카메라를 없애버리면, 도로 위는 무질서하고 난폭하며 엉망진창이 될 거라고.

우리는 이미 무의식까지 침투한 ‘자기 검열’과 ‘통제’에 너무 익숙해 있다. ‘자유’와 ‘선택’이 오히려 부담으로 느껴지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근대화부터 현재까지 ‘민주주의’가 실현된 적이 없는 나라이고, 시민들도 ‘민주주의’ 훈련을 올바르게 받은 적이 없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전근대, 군국주의, 독재, 파시즘의 그늘이 짙은 나라이고, 명령과 복종이 당연하게 인식되며, 폭력이 용인되는 사회인 것이다.

도로 위의 속도 감시 카메라가 갖는 의미도 마찬가지다.

감시 카메라가 많을수록, 경찰이 시민을 감시하고 자유를 억압하며 권력을 확대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단지 ‘속도’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감시와 억압이 일상화되면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굴종’과 ‘복종’을 내면화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민주시민’이 아닌, ‘노예’가 되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도로에서 속도 감시 카메라를 모두 제거한다고 달라질 것이 있을까.

독일의 아우토반이 무법천지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예전에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통행금지를 법으로 정했던 시대가 있었다.그것이 누구를 위한 법인지는 이제 다 알고 있다.

통행금지를 해제할 때, 어떤 작자들은 마치 무법천지가 될 거라고 핏대를 세우기도 했지만, 어떤가? 과연 밤 12시부터 새벽4시까지 온세상이 무법천지가 되었는가 말이다.

도로 위의 속도 감시 카메라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이 사라지면 마치 엄청난 혼란이 올듯이 떠들어대는 바로 그 작자들이 바로 ‘원흉’이다.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시민을 통제와 굴종의 굴레에 가두려는 음험한 수작을 부리는 것이다.

도로 위에는 지금과 같은 안내 시설과 방범 카메라 정도만 있으면 된다. 

강력하게 감시하고 처벌할 곳은 ‘어린이 안전시설’과 관련이 있는 곳, 마을의 골목길, 장애인 위반 시설 정도면 된다. 나머지 도로 위의 감시 카메라, 특히 속도와 관련된 감시 카메라는 모두 철거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감시’와 ‘통제’가 아닌, 자율의 힘이며, 그것은 결국 시민 스스로의 훈련을 통해 배워나가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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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장 직선제가 필요하다

 

시골에 살면서 면 지역의 주민자치위원을 5년, 마을 이장을 2년간 했다.

나름대로 지역의 발전을 위해 적은 힘이라도 보태려고 노력했으나 나의 부족함을 절실히 깨닫는 시간이었다.

면 지역에서 살아보니 지역자치,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 면장 직선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꼈다.

현재 면장 임명은 군수가 군청 공무원을 지정해서 내려보내는 방식이다.

즉, 하향식 인사이며, 면장 자신이 공무원 신분이다. 결국 면장은 자신의 임명권자인 군수를 바라볼 수밖에 없고, 임기도 불안정하다.

면 지역에서 면장의 역할은 매우 크고 중요하다.

면장이 바뀔 때마다 면장의 성향, 능력에 따라 면정이 판이하게 달라지는데, 이는 면 지역의 안정적인 발전과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에 영향을 미친다.

공무원 신분의 면장은 지역 발전과 지역 화합에 관해 깊은 고민을 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들은 군청(군수)의 정책을 집행하는 수동적인 역할에 그칠 뿐이고, 면 지역의 장기적인 발전, 주민 화합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문제 등에 관해서는 알면서도 외면하거나, 깊이 있게 알려고 하지 않는다.

주민이 군수는 직접 선거로 선출하면서 면장은 군수의 임명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지역자치, 풀뿌리 민주주의에 역행한다고 생각한다.

면장의 임명을 내 나름대로 추정한다면, 면장의 위치나 역할이 워낙 미미해서 주민이 직접 선거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거나, 군수를 직접 선거로 선출하고, 군수가 군정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 면장은 군수가 마음대로 인사를 관리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오산이다. 군의 기본 단위는 면이다. 면은 지역 단위의 기본이며, 지역자치, 풀뿌리 민주주의의 세포 조직이라고 해도 좋다.

즉, 면 지역이 완벽한 지역자치를 이루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의 지역자치는 큰 성과를 이룰 것으로 믿는다.내가 사는 면 지역만 해도, 지역자치를 이루기 위한 조직들이 상당히 많다.

이장협의회, 주민자치위원회를 비롯해 노인회, 부녀회, 청년회, 새마을회, 자율방범대 등 수 십 개의 자치 기구들이 있고, 여기에 속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지역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지역의 많은 단체들은 모두 지역 주민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이 지역을 위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정작 면의 수장인 면장은 공무원 신분이고, 임기가 불안정한 상태여서 면장과 함께 면의 장기적인 사업을 추진하기 어렵고, 일관된 정책을 추진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군의 공무원이 면장으로 오면 좋은 점도 있다. 군 전체의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할 수 있고, 군청(군수)과 협력하기가 편하며, 군의 예산을 집행하기에도 도움이 되고, 군 전체의 무수히 많은 기관, 단체와 협력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면 지역에 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의 구체적인 이익을 위해서는 면 지역에서 직접 면장을 선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지역 주민이 잘 아는 사람을 면장으로 선출할 수 있고, 면에서 검증된 사람만이 면장이 되며, 면장 소환제를 통해 부정을 저지른 면장을 파면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면의 부정부패를 철저히 막을 수 있다.

면 지역의 인구는 적게는 2천 명부터 1만 명 정도에 이르는데, 이 정도 인구는 직접 민주주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지역 자치, 풀뿌리 민주주의에 적당한 인구라고 생각한다.

마을 이장도 주민 직선으로 선출하고, 군수도 주민 직선으로 선출하는데, 유독 면장만 공무원을 임명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고, 지역 민주주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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