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법고전 산책 - 열다섯 권의 고전, 그 사상가들을 만나다
조국 지음 / 오마이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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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법고전 산책

법을 다룬 책, 그것도 100년, 200년 전의 법철학 책이 과연 재미있을까? 이런 생각으로 책을 펼친 나는 시작부터 깜짝 놀랐다. 우리가 가진 상식, 법을 다룬 책은 딱딱하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단숨에 깨뜨리는 내용이었다.
조국 교수는 친절하다.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대표도 말했지만, 조국 교수는 친절한 저자이면서, 알고보면 '츤데레'일지 모른다. 겉으로 보기에는 엄격하고 조금은 냉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정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말이다.
이 책은 조국 교수가 예전에 강의한 내용을 수정, 보완한 책으로, 거의 새로 쓴 내용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한국 정치 현실에 관한 내용과 민주주의의 기본을 다룬 내용이 많아서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흥미진진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민주주의와 인권, 사법의 기틀을 만들어 온 근대 법철학은 어지간한 지식의 기초가 쌓이지 않으면 혼자 책을 읽고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 책의 장점은 근대 법철학의 흐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저자가 재조직하면서, 그 시대의 배경, 역사적 의미를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법철학자의 이름은 다 알고 있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사상의 근원과 내용의 의미, 역사적 배경에 관해서는 어렴풋했는데, 이 책을 읽고는 모두 이해하게 되었다. 저자인 조국 교수도 말했지만, 이 책은 중학생, 고등학생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고 재미있게 썼다.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도록 권하면 좋겠다.

'프랑스 혁명'을 촉발한 장 자끄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시작으로,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존 로크의 '통치론', 체사레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 토머스 페인의 '상식, '인권', 알렉산더 해밀턴, 제임스 메디슨, 존 제이의 '페러랄리스트 페이퍼',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루돌프 폰 예링의 '권리를 위한 투쟁', 플라톤의 '소크라테스를 위한 변명', '크리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불복종', '존 브라운을 위한 청원', 임마누엘 칸트의 '영구 평화론'까지 이름을 들어서 알고 있지만 정작 이들의 저서는 다 읽지 못한 나같은 불량한 독자를 위해 조국 교수는 중요한 문장까지 인용하며 법고전이 근대와 현대를 어떻게 열었는가를 말하고 있다.
인간의 역사에서 개인의 권리, 민주주의의 확대, 인권의 탄생, 인간을 도구가 아닌 '목적' 그 자체로 보기 시작한 근대적 '휴머니즘'의 발전에는 이런 법고전을 통한 강력한 계몽과 사상의 실천이 함께 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미셸 푸코가 쓴 '광기의 역사',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 등이 떠올랐다. 
법고전의 저자들이 큰틀에서 인간의 권리, 자유, 민주주의, 인권에 관해 디딤돌을 놓았다면, 미셸 푸코는 그 시대의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진 권력과 계급 갈등의 구체적인 움직임을 포착했고, 서로 연관이 없을 것 같은 현상을 관찰하면서 본질에서 동일한 시스템이 작동한다는 걸 밝힌다.
푸코는 병원과 감옥(수용소), 학교, 군대가 모두 동일한 시스템으로 작동한다는 걸 역사적 과정을 통해 확인한다. 루소가 '사회계약론'을 설파하고 있을 때, 거리를 배회하는 정신병자들과 부랑자들은 교회(성당)의 비어 있는 공간에 갇히게 되고, 교회(성당)는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아내 이들 정신병자들과 부랑자를 수용해 관리한다.
이렇게 시작된 '수용'과 '감금'의 역사는 '병원'을 탄생하는 계기가 되고, '감옥'의 원형이 된다. 중세에는 거리를 떠도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았어도 '수용'당하거나 '감금'되어도 그걸 항변할 인권이 없었고, '인권', '민주주의'의 개념이 없던 시대에는 '마녀사냥'이라는 명목으로 수십만 명의 여성을 교회가 학살하고 그들의 재산을 탈취하는 악행을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했다.

이 책 '조국의 법고전 산책'은 유럽 중세의 극악한 사회 현상 이후 나타난 계몽의 결과물이 무언가를 알려준다. 즉 무소불위의 왕권, '마녀사냥'을 통해 돈벌이에 눈이 먼 교회(성당) 권력의 부패함, 광장에서 죄인 또는 죄인이라는 누명을 쓴 사람들을 한꺼번에 교수형을 하면서, 그들의 죽음을 구경거리로 전락시키는 참혹함, 갓난 고아들에게 럼주를 먹여 수십, 수백 명의 고아를 살해하던 극악한 범죄 등을 본 지성인들이 미개한 사회를 계몽하고, 인간의 이성이 작동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애쓴 결과물로 나온 책들이 바로 이 책에 등장하는 법고전 책들이다.
여기 등장하는 책들은 모두 당대에 진보적 테제를 내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들이 온전히 독자적이고, 독립적으로 앞서 나간 것은 아니다. 모든 사회 현상이 그렇듯, 이들 법고전이 등장하는 배경에는 이미 누적된 민중(인민)의 투쟁이 있었고, 이 책의 저자들은 그런 사회 현상을 날카롭게 발견하고 정리했다. 그들의 높은 안목과 철학이 한 권의 책으로 집약되고, 이 책은 다시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면서 민중의 삶을 위한 투쟁과 지성인의 저서가 변증적으로 상호 작용해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좋은 책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이 책은 조국 교수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 쓴 책이다. 수많은 책이 있지만, 읽어서 살이 되고, 뼈가 되는 책이 있는 반면, 종이만 낭비하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은 살이 되고, 뼈가 되는 책이다. 조국 교수의 진심이 담긴 책이니 가능한 많은 사람이 읽고, 이 책에서 말하는 개인의 권리, 인권, 민주주의에 관해 자기 생각을 올곧게 세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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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대리석
진혜원 지음 / 한길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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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친 오징어가 쓴 소설책이 도착했다. 평소 농담과 거짓말을 매우 그럴 듯하게 잘 하는 분이라 또 무슨 웃기는 이야기를 썼을까 싶어 책을 받고 잠깐 책장을 넘겨보다가 그만 푹 빠져들고 말았다.
이미 이 오징어께서 글 잘 쓴다는 사실은 매우 잘 알고 있던 터라, 마음 한쪽에서 질투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질투보다는, 서늘하고, 묵직하고, 진한 아픔이 몸 깊숙한 곳에서 전체로 서서히 퍼져나가는 걸 느꼈다.
세상의 소설가들은 다 죽어야 한다. 본업도 아닌 오징어께서 쓴 소설이 밀란 쿤데라, 카프카의 등짝을 스메싱할 정도라면, 나같은 삼류 나부랑이는 그냥 펜을 꺾어야 한다.
내 페친이어서가 아니라, 한국문학계에 놀라운 발견이다. 전문용어로 알레고리와 풍자와 해학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슬픔과 아픔과 힘들었던 지난 시간을 오징어답게 약간의 먹물을 뿌려가며 웃기고 울린다. 화성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를 이렇게 눈물나도록 잘 쓰는 오징어라면, 내가 오징어의 일족이라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무조건 사서 읽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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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대리석
진혜원 지음 / 한길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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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고백과 자전적 이야기를 이렇게 신선하게 쓸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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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생명의(아주) 짧은 역사
헨리 지 지음, 홍주연 옮김 / 까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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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생명의 아주 짧은 역사

제목이 정직하다. 지구의 역사에서 최초의 생명은 40억 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인류의 역사는 아무리 길어봐야 고작 700만 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지구과학이나 생물학, 진화를 다룬 전문서적이 아니다. 태양의 탄생과 이후 지구의 탄생부터 시작하지만, 특이하게도 이 책에는 어떠한 그림, 사진, 도표, 수식, 일러스트 등이 단 하나도 없다. 아, 도표는 몇 개가 있는데, 각 장의 끝에 연대표를 만들어 독자가 글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매우 어려운 자연과학을 다루고 있음에도 문장은 어렵지 않다. 쉽게 읽어내려갈 수 있고, 읽으면서 곧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저자 헨리 지는 매우 섬세하게 독자를 배려하면서 글을 썼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지구의 탄생, 최초의 생명, 고세균의 등장, 지의류, 이끼류의 진화, 지구 환경의 변화에 따른 생물의 진화와 멸종, 산소 농도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지구 환경과 생물의 생존 반응, 바다에서 생명의 진화 단계, 단세포의 출현과 단세포끼리의 포식과 공존, 다세포의 출현과 진화를 통한 복제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
이 책의 뒷부분에 미주가 두껍게 모여 있는 건 어쩔 수 없으면서 필연적인 선택이다. 본문에는 미주 번호가 꽤 많은데, 이 미주를 함께 읽으면 책의 내용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독자들 가운데는 이런 미주를 챙겨 읽는 걸 귀찮아할 수도 있겠다.
동물의 출현은 약 6억 3,500만 년 전에 일어났는데, 지구가 탄생하고 약 40억 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때까지 지구는 지구 자체의 변화와 진화를 끊임 없이 이루어 왔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지구는 가장 최근인 200만 년 전까지도 빙하기와 해빙기를 반복하면서 생물이 살아가기 힘든 별이었다.
하물며 6억 년 이전까지 지구는 대륙의 생성, 멘틀의 이동, 화산 폭발 활동, 우주에서 날아오는 행성과의 충돌, 지진, 용암 분출로 인한 육지의 발생과 바다의 출현, 지각판의 습입과 충돌로 인한 대륙의 융기와 함몰, 이산화탄소의 증가 또는 감소, 산소의 증가와 감소에 따른 대기 성분의 변화로 생물의 멸종과 진화 등 이루 열거하기 힘들 정도의 다양한 변화가 지구 자체의 진화를 이루고 있었다.

6억 년 전에 최초의 생명체들이 등장한 이후 5억 년 전 '오르도비스기'에 생물의 종류가 급격히 늘어났지만 빙하기가 시작하면서 그 다양한 생물 대부분이 멸종한다. 4억 년 전에 최초로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오는 생물, 육상 식물이 등장하고 3억 5천만 년 전에 네 발을 가진 동물이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오는 혁명적 사건이 발생한다. 이 시기를 '데본기'라고 하는데, 데본기 말엽에 다시 생물 대멸종 시기가 있었다. 외부 행성 충돌로 인한 지구 환경의 급격한 변화때문으로 분석하는데, 이때 멸종한 동식물들이 현대에서 '석탄'으로 나타나서 이때를 '석탄기'라고 분류한다.
'석탄기'가 끝나고 지구 대륙은 판게아가 어느 정도 형성되는데, 멸종에서 살아남은 생물들이 번성했으나 2억 5천만 년 전인 '페름기' 말에 다시 대멸종이 일어나 생물의 90%가 지구에서 사라진다. '페름기'를 지나면서 초기 포유류가 등장한다. 
지구는 판게아 대륙이 계속 갈라지고, 부닥치면서 대륙의 형태가 바뀌고, 대륙이 이동하는데, 이 과정에서 다시 2억여 년 전 '트라이아스기' 말에 대멸종이 다시 일어난다. 지구 자체의 급격한 변동과 외부 충격, 판게아의 이동과 대기의 변화에 따른 지구 환경으로 생물은 멸종과 진화를 반복한다.
'쥐라기'가 끝날 무렵, 그러니까 공룡 시대가 끝날 무렵 새의 조상이 나타나고, '쥐라기' 이후 '백악기'에 식물에서 꽃이 나타난다. 하지만 '백악기' 말에 다시 대멸종이 일어나고, 신생대로 들어서면서 빙하기가 시작한다.

백악기 대멸종이 끝나고 6천만 년 전, 고대 포유류와 공포새가 등장하고, 5천 5백만 년 전 영장류와 '현대' 포유류가 나타난다. 최초의 영장류는 700만 년 전에 나타났으며, 이후 영장류의 진화는 지구 역사에서 짧은 시간에 빠르게 진화하는 걸로 보인다.
이 책에서는 인류의 진화 단계를 거시적으로 살펴보고 있어 이해하기 쉬운데,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진화에서 보다 깊이,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지각의 발달, 뇌의 발달, 언어의 발달 같은 추상적 진화 과정을 더 공부해야 한다.
이 책은 지구의 변화, 진화와 함께 지구에서 탄생한 모든 생물의 진화와 인간의 진화를 함께 살펴보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그것도 자연과학을 잘 모르는 독자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쉽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그동안 연구로 밝혀진 최신 과학의 결과를 어려운 말로 하지 않고, 쉽게 설명하는데 있다. 따라서 독자는 이 책에 밑줄을 그어가며 읽다가 지구의 탄생, 지각, 용암, 대륙판과 같은 내용이 나올 때는 '지사학'과 관련한 책을 찾아 읽으면 좋고, 생명의 탄생, 생명의 진화와 관련해서는 '진화생물학' 관련 책을 찾아 읽기를 권한다.
이 책은 다양한 분야의 자연과학을 한 권으로 소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며, 다른 분야로 나아가는 기초가 되는 자연과학 입문서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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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버지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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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버지 - 옌롄커

옌롄커는 1959년에 태어났다. 중국이 혁명에 성공하고 불과 10년이 지났을 때였으니, 중국은 혁명의 소용돌이와 혼란, 봉건의 역사와 수천 년 이어지는 전통의 습속이 뒤섞이고 충돌하던 시기였다.
옌롄커는 60년대와 70년대를 시골에서 성장하는데, 어지간한 시골이 아니고 바러우산맥 아래쪽 몹시 척박한 땅에 뿌리 내린 궁핍한 산골 마을에서 자랐다. 중국공산당이 혁명을 성공하고, 도시에서는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던 시기였지만, 산골 마을은 변화가 크지 않았다. 
옌롄커는 아버지와 아버지 형제들의 삶을 돌아보며 아버지 세대의 농민들이 살아온 삶과 중국 현대의 변화를 진솔하고 담담하게 써내려간다. 옌롄커는 혁명 이후의 세대지만 그의 부모 세대는 혁명 이전 세대로, 전통과 관습을 지키며 살아왔다.
혁명 이후에도 농민의 삶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으며, 언제나 도시보다 열등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도시 노동자는 시간당 임금이 있고, 그 임금도 농촌보다 훨씬 높았다. 농촌에서는 온종일 일해도 도시 노동자의 10%에 불과한 임금을 받았다. 
옌롄커의 아버지들은 전통 사회를 살아왔으며, 그들은 가족을 위해 헌신한다. 거친 음식을 먹고, 남루한 옷을 입으며, 온종일 논과 밭에서 땀흘려 일하고, 자식들이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며, 자식들이 결혼할 수 있도록 돈을 모아 집을 짓고, 혼수를 마련한다.
그렇게 한평생 자식을 위해 일하고,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부모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삶이자 운명이라 여겼다. 아버지들은 집안을 지켜야 하고, 가문을 위해 살아야 하며, 자식들을 위해 어떤 어려움도 견뎌야 했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옌롄커가 자신의 아버지와 아버지 형제들에 관해 쓴 기록이다. 옌롄커가 작가가 되기까지, 그가 소설을 쓰게 된 배경과 그의 작품이 고향인 허난성을 배경으로 하는 농민들의 이야기와 자신이 오래 몸담았던 군대의 이야기에서 소재를 가져오는지 이해할 수 있다.
옌롄커는 어릴 때부터 힘든 노동을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와 아버지 형제들과 사촌 형제들의 삶도 돌아본다. 옌롄커는 대학 입학을 바랐으나 실패했고, 돈을 벌려고 작은아버지, 넷째 삼촌이 일하는 석회 공장에서 적은 임금을 받으며 노동을 했다.
70년대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이 일어나 수많은 지식인이 '반동', '반혁명분자'로 낙인 찍혀 죽거나 일자리에서 쫓겨나거나 사회적으로 매장되는데, 시골에서는 그런 영향과 분위기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변화의 물결에서 멀리 있었다.
옌롄커가 지식인을 경멸하고 싫어하는 이유도 그가 어릴 때 경험했던 사건 때문이었다. 그의 마을에도 도시에서 '하방'한 청년 지식인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 청년이 동네 젊은 여성을 강간했지만 정작 강간한 청년은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고, 강간당한 젊은 여성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와 반대로, 시골 청년이 도시에서 온 젊은 지식인 여성을 강간하려다 미수로 그친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때는 시골 청년이 잡혀 총살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도시 사람과 농촌 사람을 드러내놓고 차별한 이 사건과 함께, '하방'한 청년 지식인들이 시골에서 노동을 하지 않고, 오히려 마을 사람들이 키우던 닭과 양, 염소 등을 몰래 잡아 먹는 일이 종종 있었으며, 도시의 청년 지식인들은 드러내놓고 말을 하지 않지만, 농민들을 경멸하고 하찮게 여긴다는 걸 옌롄커는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느낀다.

옌롄커는 작가가 되기 전, 어릴 때부터 노동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고, 몹시 힘든 노동을 오래도록 한 경험이 있었다. 또한 그의 아버지와 아버지 형제들이 어떻게 농사를 짓고 살았는지, 도시로 나간 넷째 삼촌이 공장에서 얼마나 힘든 노동을 하며 돈을 버는지 잘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노동하는 사람들이 존중받지 못하는 풍토에 분노하고 있었다.
옌롄커의 소설이 땅, 농사, 개인의 욕망, 인간의 존엄에 천착하고 있는 것도 그가 전통 시대를 살아온 부모 밑에서 농사와 노동을 했기 때문이며, 지식인의 허위를 어릴 때 발견한 경험으로 그는 '말'보다는 '행동'을 더 믿는 사람이 되었다.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이 책은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옌롄커의 문학은 그가 탄생한 허난성의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며, 쌀과 땔감, 기름과 소금을 얻으려는 노동으로 가득하다. 오로지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중국 농민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옌롄커의 문학도 이해하기 어렵다.
옌롄커 자신은 농촌을 탈출해 도시에서 사는 지식인이 되었지만, 그의 작품에서 지식인과 도시인은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지식인과 도시인은 노동하는 사람에게 기생하는 존재인데 오히려 그들은 농민을 경멸하고, 하찮게 여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옌롄커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특출한 사람이 없다. 지극히 평범하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장삼이사 가운데 하나다. 소설 속 인물들은 배우지 못하고 가난하지만 자기 운명에 쉽게 굴복하지 않는다. 고난과 죽음이 닥쳐도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꿋꿋하게 맞서 싸우는 개인의 모습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평범한 사람의 위대한 모습이다.
이들 평범하지만 위대한 인간의 모습은 산골에 사는 중국 농민이 모델이며, 작가의 아버지와 아버지 형제들이 큰 영향을 끼쳤다. 이제 작가의 부모 세대가 모두 돌아가고, 중국의 현대에는 이런 강건하고 꿋굿한 인민의 전형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개혁개방' 시대 이후 태어난 중국인은 옌롄커의 작품에 등장하는 부모 세대의 고난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에서도 50년대, 60년대 태어난 세대가 지금 부모 세대이고, 그들의 자식 세대인 80년대 이후 세대는 부모 세대가 겪은 정치, 문화, 사회의 경험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옌롄커는 이런 중국의 세대가 겪는 서로 다른 경험의 이질성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자신이 부모 세대에게 배우고 얻은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귀한가를 말함으로써, 중국의 젊은 세대가 '중국'이라는 나라와 민족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길 바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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