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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비메탈을 듣는 방법
김혜정 지음 / 델피노 / 2024년 7월
평점 :
음악으로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
[헤비메탈을 듣는 방법] - 김혜정 작가
장 그르니에의 말처럼,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섬이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떠 있는 섬이며, 그 섬들을 오가는 건 우리의 ‘육체’가 아니라 ‘마음’이고 ‘정서’다. 일렁이는 물결처럼, 섬에 부딪치는 파도처럼, 우리의 마음과 정서는 다른 사람, 다른 섬에 부딪치며 전달된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거칠게.
김혜정의 이 소설은 짧은 이야기 아홉 개가 마치 저마다 하나의 독립한 섬처럼 존재하는 듯 보이지만, 마지막 장을 읽다보면, 서로 다른 이야기와 개별로 등장했던 인물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연작 장편 소설이다.
아홉 개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우리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 가운데 약간의 재능을 가진 사람, 약간의 육체적 불편함이 있는 사람이 있지만, 그런 부분적 모습으로 구분할 만큼 우리들은 특별하지 않다.
오히려 그런 부분적이고 사소한 면들을 감싸고, 아우르며, 서로의 공감대를 만드는 게 이 소설에서 마치 바다처럼 사람들의 감정을 전달하는 ‘음악’이다. ‘음악’은 사람들 사이를 연결하고, 감정과 정서를 전달하며, 저마다의 삶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음반 가게를 운영하는 화자는 평범한 중년 남성이다. 그는 다른 재주가 없고 음악을 많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음반 가게를 열고, 생업으로 살아간다. 어느 날, 두 젊은 여성이 가게에 들어와서 ‘굿바이 제리’라는 밴드의 라이브 음반을 찾는다.
음반을 찾는 여성이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음악을 들을까 생각하다, 귀를 막고 음악을 크게 틀면 진동으로 음악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뒤로 가면서 다른 단편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과 관계가 하나씩 드러나는 방식으로, 작가는 독자가 궁금해서 계속 읽게 만드는 기법을 쓰고 있다. 청각장애가 있는 수연은 음반 가게에 함께 온 지우와 친구이고, 수연은 하진을 만나 연인이 되었다가 헤어지지만, 음반 가게 사장의 후일담에서 두 사람이 다시 결합한다는 소식을 전하는 방식으로 만났던 사람들의 뒷 이야기까지 촘촘하게 이야기의 그물로 엮었다.
작가는 음악과 청각장애라는 두 가지 장치를 통해 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 음악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방식과 헤비메탈이라는 음악 장르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말한다. 두 가지는 비슷하면서 다른데, 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람으로 수연과 글렌 크레이그라는 헤비메탈 음악을 하는 미국인 그리고 한 쪽 눈만 오드아이인 고양이가 등장한다.
수연은 여섯 살 무렵 열병을 심하게 앓고 나서 귀가 들리지 않게 되었고, 글렌 크레이그는 천재 음악가로 알려졌으나 교통사고 이후 귀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고양이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 선천성 장애인데, 헤비메탈 밴드에서 활동했던 글렌 크레이그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작곡을 한다. 마치 베토벤이 말년에 청각을 잃어버린 뒤에도 작곡을 했던 것처럼.
여기서 작가는 헤비메탈 밴드 ‘굿바이 제리’에 관해 자세한 묘사를 하는데, 독자는 이 그룹이 마치 실재 있는 듯한 착각을 하도록 만든다. 당연히 ‘굿바이 제리’라는 헤비메탈 그룹은 작가가 만든 가상 그룹이다.
작가 자신이 지체장애가 있으니, 그의 작품 소재에 장애가 있는 사람, 동물이 등장하는 건 자연스럽다. 그리고 작가의 (마음의)눈은 사회적 약자들의 삶에 더욱 세심하고, 섬세하다. 비장애인이 무심하게 살아가는 하루가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는 특별한 하루이며, 날마다 새로운 체험으로 본다. 아니, 장애가 있고 없고가 아니라, 삶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감성과 정서의 파도를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이라면, 하루하루가 늘 새로운 날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