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전선 이상없다 - [초특가판]
루이스 마일스톤 감독, 루 에어스 외 출연 / 씨네코리아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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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전쟁은 인류 역사에서 단 한 번도 멈춘 적 없는 사건이다. 마르크스가 정의한 것처럼 '전쟁은 고도의 경제행위'이므로, 전쟁의 목적은 폭력을 써서 상대를 공격해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는 행위다. 따라서 얻을 게 많은 만큼 많은 걸 잃게 된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처럼, 전쟁도 그렇다.
전쟁을 낭만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전쟁의 비극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이다. 전쟁은 집단과 집단이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전쟁터는 개인과 개인이 맞닥뜨리고, 모르는 사람을 아무런 이유 없이 살해하는 현장일 뿐이다.
이때 개인이 모르는 사람을 죄의식 없이 살해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는 기본이 '애국심'이다. 전쟁을 시작한 국가는 '애국심'을 부추기고, 침략 당한 국가는 '조국 수호', '사랑하는 가족을 위하여', '정의를 위하여'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다. 다만, 전쟁을 일으킨 집단(국가)과 개인(들)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는 경우, 전쟁은 일종의 '도박'으로 변질된다. 중세 '십자군 전쟁'으로 불리는 유럽 기독교인 군대가 이슬람 지역을 침략한 사례가 있다. 이들은 '신의 이름으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이슬람 지역을 침탈해 그들의 재산을 뺐고, 사람들을 노예로 잡아 돈을 벌려는 목적이었다. 국가와 국가가 벌이는 전쟁에서 군인들이 약탈하거나 군인이 아닌 사람을 해치는 건 전쟁 범죄에 해당하지만, '십자군 전쟁'의 본질은 '약탈'에 있었다. 이들은 이슬람 나라를 침략해 노략질을 해서 이익을 챙기거나 자기 목숨을 잃거나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도박을 했다.

아주 오래 전, '씨족' 단위의 집단에서 발생한 전투에서 개인이 '씨족'의 한 단위로 참전하는 건 곧바로 그 집단의 생존이 곧 개인(자기 자신)의 생존과 직접 연결되기 때문이다. 씨족 단위의 전투는 집단의 크기를 늘리려는 종족 보존의 본능과 연결되어 있으며, 집단의 규모가 커질수록 개인도 안전하다는 걸 인류는 본능으로 알고 있었다.
최소 부족 단위 규모가 되면서 인류는 남성 중심의 전투원을 구성해 다른 부족과 전투를 벌일 때는 이들 남성 중심의 전투원을 투입했고, 평상에서는 남성이 수렵을 통해 식량 확보와 전투 훈련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했다.
집단이 나라 단위로 커지면서 '군인' 즉 싸우는 사람을 따로 모집해 보다 전문적으로 전투 훈련을 시키고, 전투에서 승리하는 훈련과 실습을 통해 개인의 전투력을 향상했다.
'전쟁'은 두 개 이상의 집단이 극렬한 물리적 충돌에 이르는 상황인데, 전쟁을 일으키는 쪽과 방어하는 쪽이 갈린다. '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지만, 전쟁을 일으킨 집단에 대항해서 싸우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 예를 들어,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다고 가정할 때, 한국이 힘이 없어 일방으로 침략당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고, 한국이 모든 힘을 동원해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이때,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전쟁으로, 역사에서 '임진, 정유 전쟁'이 대표적인데,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려는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조선은 이런 일본의 야욕에 맞서 미리 전쟁 준비를 하지 못한 채 전쟁을 치러야했다. 우리의 역사를 보면, 조선 시대보다 더 거슬러 올아가서 중국의 당나라, 수나라의 침략에 맞서 싸운 전쟁이 있는데, 이때 방어전은 침략당한 나라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전쟁이다.
즉, '모든 전쟁은 나쁘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전쟁을 일으킨 집단은 나쁘지만, 침략에 맞서 싸우는 건 정당한 방어이기 때문에 비난해서는 안 된다. 물론 모든 전쟁이 흑과 백처럼 선명하게 악과 선으로 구분되는 건 아니다. 시대 배경, 정치 상황, 전쟁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집단과 집단 사이의 정치, 경제, 문화, 종교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으니 이런 고려 없이 어느 한쪽을 일방 비난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현대의 시작은 1차 세계전쟁'이라고 에릭 홉스봄은 정의했다. 이 전쟁 이전까지 약 100년 동안은 유럽에서 큰 전쟁 없이 평화로운 시기였고, 그때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가장 활발하게 발전, 성장하고 있었다. 과거에도 전쟁은 끊이지 않았으나 5년 전쟁 기간에 무려 1,500만 명이 죽고 그보다 훨씬 많은 부상자가 나온 전쟁은 1차 세계전쟁이 최초였다.
무엇보다 근대에서 현대를 가르는 건 대량 살상무기의 등장이었다. 개량된 자동 소총과 기관총, 수류탄, 대포, 탱크, 화염방사기, 비행기가 등장했고, 개량한 첨단 무기는 사람의 생명을 너무 쉽게, 너무 많이 죽일 수 있었다. 10대, 20대, 30대 남성이 대부분 죽었으며, 이들은 누군가의 사랑하는 아들이자 손자이며 친구였다.
전쟁은 땅 위에 있는 모든 걸 파괴하는 건 물론, 사람의 생명을 잔혹하게 끊는다. 한 사람의 죽음은 그와 연결된 가족, 친척, 이웃과 연결되며 마을 단위의 공동체를 파괴한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 이렇고, 전쟁은 인륜, 도덕, 윤리와 같은 인간의 정체성은 물론 가치관, 세계관을 망가뜨리며, 사회 질서의 붕괴, 역사의 단절, 세대와 세대의 연속성을 무너뜨리고 과거의 문명까지 모두 파괴한다.

전쟁을 낭만으로 바라보는 작품은 매우 많고, 너무 많아서 사람들은 심각함을 느끼지 못한다. 전쟁터에는 늘 영웅이 있고, 영웅이 모든 걸 해결하는 미국 영웅주의 영화가 그렇듯, 사람들은 전쟁의 공포와 참혹함, 끔찍함을 외면하고 낭만을 찾거나 그런 시각에 동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건 오히려 전쟁의 공포와 두려움을 알기 때문에 외면하려는 감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1차 세계전쟁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유럽은 곧바로 2차 세계전쟁의 불구덩이에 휩쓸렸고, 1차 세계전쟁보다 무려 세 배나 많은 사람이 죽은 다음에서야 전쟁의 끔찍함을 인정했다.
하지만 2차 세계전쟁 이후 냉전 이데올로기의 영향으로 동아시아에서 한국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으며, 이 단일 전쟁으로 한 민족 구성원이 무려 최소 100만 명 넘게 죽었고, 군인보다 민간인 사망자가 훨씬 많았던 전쟁이었다. 민간인 사망자가 많은 이유는 한국전쟁이 이념전쟁이자 강대국의 이념전쟁의 대리 전쟁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국제적으로 냉전 이데올로기가 빛을 잃어가면서 2000년 이후 전쟁의 참혹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리얼리즘 영화들이 나타났다. 전쟁의 낭만적 환상은 상당히 벗겨지고, 전쟁의 실체가 사람들에게 주로 영상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가장 큰 충격을 주었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시작으로, 전투의 사실성 즉 참혹함, 잔혹함, 끔찍함을 드러내는 영화들이 나왔으며,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이 영화는 원작 소설이 있다. 레마르크가 쓴 같은 제목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는데, 1차 세계전쟁이 끝나고 10년 지나서 나온 소설은 곧바로 미국(헐리우드)에서 영화로 제작했다. 작가 레마르크는 독일인으로 1차 세계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있으며, 이 소설은 세계 전쟁문학 가운데 반전 소설로 유명하다.
레마르크가 전쟁 경험을 토대로 반전 소설을 썼다면, 레마르크와 비슷한 경험을 한 히틀러는 완전히 반대의 인물이다. 레마르크와 히틀러는 거의 같은 시기에 태어났다. 두 사람 모두 1차 세계전쟁에 군인으로 참전했으며 부상당한 경험이 있고, 훈장을 받은 것도 같다.
하지만 두 사람의 운명은 극과 극으로 갈린다. 전쟁을 혐오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소설을 쓴 레마르크와는 달리, 히틀러는 1차 세계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전후 국가배상금으로 극도의 가난에 시달리며, 불만이 많은 독일인을 상대로 증오를 부추기며 권력을 움켜쥔다.
레마르크는 1929년에 이 소설을 발표했는데, 이때 이미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당수로 권력을 차지한 히틀러는 레마르크의 반전 소설을 싫어했고, 그가 국가수상이 된 1933년 이후 레마르크의 소설은 분서 목록에 올라 공개적으로 불태워졌다.
나찌의 탄압으로 레마르크는 스위스로 망명하지만 그의 여동생 엘프레데는 평범한 노동자로 살다 반역죄로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는데, 히틀러가 레마르크에게 직접 복수하지 못하자 그의 여동생을 살해한 것으로 본다.

레마르크의 소설은 발표하자마자 미국(헐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었다. 1930년작 영화는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현실에 가까운 사실성, 현장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다만 1930년 작품과 1979년 작품은 미국(헐리우드)에서 제작했기에 등장인물이 모두 영어로 말하는 건 옥의 티라고 할 수 있다. 
세 편의 같은 영화 가운데 내 기억에 가장 또렷하게 남은 건 1979년판 영화다. 소설 원작 그대로, 총성이 멈춘 서부전선에서 나비를 쫓다 적의 저격수 총에 맞아 전사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선명하다. 최근에 개봉한 2022년판 영화는 앞의 두 영화보다 미장센은 훨씬 훌륭하다. 주인공이 보여주는 반전 메시지도 명확하고, 앞의 두 영화에서 볼 수 없는 긴장감과 압축, 전쟁 장면의 묘사가 뛰어나다. 다만 마지막 장면은 1979년판과 사뭇 다르다.
영화는 2시간 남짓 서사를 마무리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영화만 보고도 소설의 내용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소설의 감동을 다 느끼지는 못한다.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면 원작 소설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영화에서 말하지 못한 구체적인 인물의 일상, 전쟁에 반대하는 평범한 민중의 목소리,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군인들이 바로 우리 형제, 친구, 동료, 이웃이라는 구체성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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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의 개들 [dts] (2disc) - [초특가판]
쿠엔틴 타란티노 외 출연 / 시네마 크로스 (Cinema Cross)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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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의 개들 또는 창고의 개들

서너 번 봤다. 볼 때마다 새롭다. 영화나 음악은 어떤 환경에서 보고 듣는가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다르다. 영화는 관객(나)의 감정 상태와 물리적 환경에 따라, 음악도 그렇지만 음악이 연주되는 공간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두 장르 모두 극장과 공연장에서 보고 듣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최고의 경험을 할 수 있다.
영화도 소리의 영향이 가장 크다. 과거 무성영화 시기에 자막과 음악이 있었고, 한국에서는 변사가 배우의 대사를 대신 읊어주었다. 영화 그 자체는 움직이는 그림이고, 여기에 대사, 효과음, 배경음 등을 넣어야 비로소 영화가 완성된다. 뻔한 이야기를 한 것은,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새로 구입한 헤드폰으로 들으며 봤기 때문이다. 여기에 오래 되었지만 외장형 사운드카드를 통해 '헤드폰 앰프'를 거쳐 나온 소리를 들으니 그동안 듣지 못했던 소리가 영화에서 들렸다.
가장 신선하게 느낀 건 역시 음악이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영화에 쓰이는 음악을 자신이 직접 고르는데, 이 영화는 그의 데뷔작이고, 저예산으로 만들어서 영화가 생각보다 많이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1970년대 미국 음악이 나올 때는 그가 영화 뿐아니라 음악에서도 얼마나 해박한 지식을 가졌는지 알게 된다. 특히 극중에서 음악을 소개하는 라디오 방송국의 디제이(DJ) 목소리는 건조하면서도 매력이 넘치는 음성인 것을 헤드폰으로 들으면서 새삼 느꼈다. 

이 영화는 홍콩영화 '용호풍운'을 오마주했다. '용호풍운'은 홍콩영화가 한창 잘 나가던 때인 1987년에 개봉했는데, 이 영화는 나중에 '무간도'와 '신세계' 같은 경찰이 조폭 집단에 잠입해 활동하는 느와르 영화에 영향을 준다. '용호풍운'의 주인공도 홍콩 최고 배우인 주윤발과 이수현이다. 이들은 2년 뒤에 홍콩영화의 전설로 남은 영화 '첩혈쌍웅'에도 함께 출연한다.
'저수지의 개들' 인트로에서 조가 수첩을 보면서 '토니웡'이라고 몇 번 말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토니웡'은 '첩혈쌍웅'에 나오는 인물로 그룹의 총재다. 이런 깨알같은 장면에서도 쿠엔틴은 홍콩영화의 영향을 받았음을 암시했다.
'저수지의 개들'이 '용호풍운'을 오마주한 건 맞지만, '표절'이라고 말하는 건 지나치다. 경찰이 범죄조직 내부로 잠입해 비밀수사를 하는 상황, 보석상을 터는 상황, 창고에 모여서 세 명이 서로 총을 겨누는 장면 등이 비슷할 뿐,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쿠엔틴이 영화 제목을 지을 때, '저수지의 개들(Reservoir Dogs)'이라고 했는데, 쿠엔틴이 감독이 되기 전, 비디오 가게에서 일할 때, 한 손님에게 영화 '굿바이 칠드런(Au revoir les enfants)'을 추천했는데, 그 손님이 제목을 정확히 알아듣지 못하고 '창고(Reservoir)' 영화는 볼 생각이 없다.'고 대답했다. 쿠엔틴은 그 단어가 퍽 인상 깊게 남아서, 영화를 만들면 반드시 '창고(Reservoir)'라는 단어를 쓴 제목을 붙이겠다고 마음 먹었고, 데뷔작에 'Reservoir'를 붙였다. 여기서 '저수지'라는 단어와 '창고'라는 단어가 같은 창고'Reservoir'여서, 최초 번역이 그대로 남게 되었는데, 쿠엔틴의 의도는 '용호풍운'에서처럼 '창고'에 모인 '개들'을 상징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영화 인트로에서 레스토랑에 모여 밥을 먹고 잡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서 쿠엔틴(미스터 브라운)이 마돈나의 노래 'Like a Virgin'에 관한 해석을 하는 내용이 나온다. 수위 높은 음담패설인데, 쿠엔틴의 수다스러움과 테이블에 앉은 일곱 명의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에 자연스럽게 섞이면서 가벼운 농담처럼 들린다.
레스토랑 인트로는 길지 않지만, 영화에서 상당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스터 브라운의 음담패설도 있지만, 그보다 조 캐벗이 음식값을 치르고, 팁은 각자 1달러씩 내라고 했을 때, 이들 가운데 미스터 핑크는 팁을 내지 않겠다고 반발한다. 웨이트리스에게 충분한 서비스를 받지 못했으며, 무조건 팁을 주는 건 옳지 않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반면 다른 여섯 명(이때 조 캐벗은 음식값을 계산하러 카운터로 간 상태)은 무조건 팁을 주는 것이 맞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서 고등학교 이하의 학력을 가진 여성이 당장 일해서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이 웨이트리스이며, 그들은 매우 적은 임금을 받고, 팁을 받아야만 생활할 수 있으니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팁은 주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범죄 영화에 이런 장면이 있는 건 신선하다. 이들이 범죄자이면서도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누가 사회적 약자인지를 구분하고 있고, 그럼에도 미스터 핑크처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여덟 명 가운데 두 사람, 조 캐벗과 그의 아들 에디는 정장을 입지 않고, 여섯 명의 사내는 모두 검은색 정장을 입었다. 마치 장례식에 가는 사람들로 보인다. 게다가 이들 가운데 다섯 명은 검은색 선글래스를 쓰고 있다. 이쯤되면 이들이 평범한 남자들로 보이지 않을 것 같은데, 리얼리티는 떨어지지만 스타일은 살리는 클리셰를 선택했다고 본다.
레스토랑 인트로가 끝나고 곧바로 총에 맞아 헐떡이는 미스터 오렌지가 보이고, 그를 부축하는 미스터 화이트가 창고로 그를 끌고 들어온다. 직전까지 레스토랑에서 한가하게 농담을 떠들던 장면에서 곧바로 피투성이가 된 인물의 등장은 관객에게 충격을 준다.
그리고 이들이 나눈 대화에서 이미 미스터 브라운과 미스터 블루는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즉 두 사람은 레스토랑 인트로에만 등장한다. 등장인물을 줄인 건 저예산의 한계와 이야기를 보다 핍진하게 풀어가려는 감독의 의도로 보인다.
이 영화는 거리 장면이 매우 적고, 거의 모두 창고 안에서 벌어지는 장면이어서, 영화지만 연극의 무대와 거의 같다. 즉, 큰 변화 없이 연극으로 만들 수 있는데, 실제 쿠엔틴은 이 영화를 다시 만든다면 연극으로 만들고, 등장인물은 모두 흑인으로 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영화에는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다. 레스토랑 인트로에도 웨이트리스가 한번 나올 듯하면서도 나오지 않고, 딱 한 번, 여성이 등장하는데, 미스터 오렌지가 탈출하는 장면에서, 거리를 뛰던 미스터 오렌지와 미스터 화이트가 달려오는 차에 총을 겨누고 차를 뺐는데, 그 차의 운전자가 여성이었다. 이 여성이 미스터 오렌지를 총으로 쐈고, 미스터 오렌지도 반사적으로 총을 쏜다. 
첫 장면에서 피투성이가 된 미스터 오렌지의 상황이 여기서 시작한 것으로, 이때 관객은 모르는 상태지만 미스터 오렌지가 잠입경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관객은 충격을 느낀다. 경찰이 범인을 잡으려고 범죄자 행세를 하다 시민의 총에 맞고, 시민을 사살하는 상황은 어떻게도 풀 수 없는 딜레마이기 때문이다.
미스터 오렌지가 맞닥뜨리는 딜레마는 더 있다. 탈출하는 과정에서 미스터 화이트가 경찰차를 향해 총을 난사하고, 두 명의 경찰이 그 자리에서 죽는 장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미스터 블론드가 탈출하면서 경찰 한 명을 납치해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오는데, 이 경찰을 창고 안으로 데리고 들어온 다음 미스터 블론드, 미스터 핑크, 미스터 화이트가 구타하는 장면을 미스터 오렌지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총을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상태다.
나중에 미스터 블론디 혼자 창고에 남아 경찰을 고문하고 기름을 끼얹어 불태워 죽이려 하자 참지 못한 미스터 오렌지가 미스터 블론디를 사살한다. 납치당한 경찰은 미스터 오렌지가 잠입경찰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고문당하면서도 끝내 말하지 않았다.

미스터 화이트는 이 작전을 설계하고 사람을 모은 조 캐벗과 친한 인물인데, 마지막 장면에서 미스터 오렌지를 옹호하며 조 캐벗과 대립한다. 두 사람이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조 캐벗은 미스터 오렌지를 경찰 끄나풀이라고 주장하고, 미스터 화이트는 미스터 오렌지가 결코 경찰 끄나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조 캐벗은 자기의 직감을 믿는다고 말하는데, 조의 아들 에디는 창고에서 죽은 미스터 블론디와 매우 친한 관계이고, 이제 막 감옥에서 4년을 보내고 나온 미스터 블론디가 조 캐벗을 위해 혼자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간 것을 높게 평가했는데, 미스터 오렌지의 말에 따르면 조 캐벗이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창고에 오면 모두 죽이고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도망가겠다고 말한 것은 비논리적이며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에디의 말을 들으면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그럼에도 미스터 화이트는 미스터 오렌지를 옹호한다. 그건 미스터 화이트가 미스터 오렌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행동하면서 느낀 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대립은 각자의 신념과 가치관, 세계관이 충돌하는 장면이다. 같은 범죄자이고, 서로 오래 알아왔지만 결정적 순간에 두 사람(조 캐벗과 미스터 화이트)은 불화한다. 범죄자의 세계에서 '믿음'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허무하고 허구적인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마지막까지 유일하게 살아남은 미스터 핑크가 보석 가방을 챙겨 창고 밖으로 빠져나가고, 부상을 당한 미스터 오렌지와 미스터 화이트가 피투성이가 된 채 서로 끌어당기는데, 미스터 오렌지가 자기를 믿고 지켜준 미스터 화이트에게, '내가 경찰이에요'라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아주 작은 소리로 창고 바깥 장면이 들린다. 경찰차 싸이렌 소리와 총소리, 미스터 핑크의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데, 매우 작은 소리여서 주의해서 들어야만 들린다. 이번에 구입한 헤드폰으로 들으니 예전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려서 신기했다.
결국 미스터 핑크도 체포당하거나 사살당하는 것으로 나오고, 창고 안에 있던 미스터 오렌지도 미스터 화이트의 총에 죽고, 창고로 들이닥친 경찰의 총에 미스터 화이트가 사살당하면서 이들의 작전은 실패한다.

레스토랑 인트로는 쿠엔틴의 데뷔작이라는 점, 여덟 명이 모두 모인 유일한 장면이라는 점, 이 장면이 영화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등장 인물의 관계와 사건의 내용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뛰어난 장면이고, 새롭고 신선한 연출이다.
잠입 경찰인 미스터 오렌지를 제외하고, 일곱 명의 악당은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대가를 죽음으로 치렀다는 점에서 영화는 도덕적 딜레마에서 비켜서 있다. 즉, 등장인물이 죽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안쓰러움 없이 영화를 볼 수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를 관통하는 '철학'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은 사회적 기준으로 보면 범죄자 또는 범죄를 다룬 작품이 많고, 그들 대부분은 비참한 죽음을 당한다. 나쁜 짓을 저지른 놈은 죽어도 싸다는 게 쿠엔틴의 작품 철학이다. '데스 프루프'에서 여성만 골라 자동차 사고로 살해하는 마이크를 스턴트 연기를 하는 여성들이 때려죽이고, '비스터즈:거친 녀석들'은 미군이 독일군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내용이다. '장고:분노의 추적자'도 현상금 사냥꾼 슐츠와 장고가 힘을 합해 노예로 끌려간 장고의 아내 브룸힐다를 구출하는 내용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도 찰스 맨슨 일당에게 살해당한 로만 폴란스키를 추모하며 영화로 대신 복수하는 내용이다.
이처럼 쿠엔틴의 영화에서는 도덕적 딜레마 없이 마음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어서 관객은 폭력 장면에서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다. 나쁜 짓을 한 놈은 죽어도 싸다는 보편의 상식과 감정에 충실한 영화들이라 영화를 보는 동안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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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젠틀맨 : 일반판
가이 리치 감독, 매튜 맥커너히 외 출연 / 디온(The On)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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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맨

가이 리치 감독의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그 신선한 연출과 감각적인 시나리오에 반했다. 그의 데뷔작인 '락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와 후속작 '스내치'를 보면서, '놀라운 감독'의 출현에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가이 리치의 작품들은 기복이 심해졌고,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재능이 빛을 잃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초기 작품의 빛나는 연출을 보기 어려웠고, 그는 자기의 개성과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작품들만 만들고 있었다.
가이 리치 영화의 특징은 복잡한 시나리오와 화려한 연출에 있는데, 초기작을 제외하고는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영화가 드물다. 물론 '셜록 홈즈'로 흥행에 크게 성공하면서 다시 스타 감독으로 인정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작품에서 최고로 꼽을 수 있는 건 역시 앞에 나열한 초기작 두 편과 '리볼버'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 '젠틀맨'은 작년에 개봉한 영화로, 가이 리치 감독의 최근작이다. 이 작품은 초기작에서 볼 수 있었던 신선함과 많이 꼬인 복잡함을 다 볼 수 있는 작품으로, 가이 리치의 역량이 녹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시작부터 강렬한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주인공 미키(마이클 피어슨-매튜 매커너히)가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는 장면에서 뒤에 나타난 암살자의 총에 맞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립탐정이자 파파라치인 플레처(휴 그랜트)는 레이몬드(찰리 허냄)의 집으로 찾아와 2천만 달러를 달라고 말한다. 그러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증거 자료를 넘겨주겠다고 하면서, 자기가 쓴 영화대본까지 보여준다. 이렇게 시작하는 영화는 플레처와 레이몬드가 나누는 대화가 곧바로 실제 스토리로 연결되면서 대본 속의 대본극으로 진행하는 이중 구조를 담고 있다.
미키는 옥스포드 대학을 졸업한 재원인데, 그는 영국인이 아니고 미국인이었다. 그것도 아주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는데, 그가 옥스포드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의 과거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미키는 대학생일 때 이미 소소하게 대마초를 판매하면서 돈을 벌었고, 그것을 자신의 미래로 삼기로 결정한다. 미키가 대학생일 때부터 현재, 40대 중반의 거물로 성장할 때까지의 과정 역시 빠르게 설명한다. 미키의 과거는 여기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미키는 자신의 사업 전체를 4억 달러에 넘기고자 한다. 그 대상으로 이미 마약 사업을 하고 있던 미국인 유대인인 매튜를 만난다. 미키는 매튜를 자신의 사업장으로 데리고 가서 대마초를 어떻게 재배하고 있는지, 수익은 얼마가 나는지 설명한다. 미키의 말대로라면 미키의 사업을 그대로 4억 달러에 인수한다해도 해마다 수억 달러의 이익을 볼 수 있는 '노나는 장사'였다.
미키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기발한 방법으로 대마초를 재배하고 있는데, 몰락한 영국 귀족의 영지를 빌려서 지하에 대마 재배 공장을 지었다. 귀족에게는 해마다 일정한 금액을 주고, 대마 사업은 몰락한 영국 귀족의 영지에서 지속할 수 있으니, 이건 영국의 귀족이 범죄자의 돈을 받고 살아간다는 비아냥이기도 하다. 범죄자의 돈이라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몰락한 영국 귀족은 곧 과거 왕조시대의 전통으로 이어지는 영국의 봉건성을 뜻한다.

우연처럼, 미키가 매튜에게 자기 사업장을 보여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 삼합회 간부인 드라이 아이(헨리 골딩)가 미키의 아내 로잘린드(미셸 도커리)를 찾아온다. 그는 미키와 만나고 싶다고 말하고, 로즈는 미키에게 드라이 아이를 만나보라고 말한다. 드라이 아이는 미키에게 농장을 매입하고 싶다고 제안하는데, 미키는 당연히 거절한다.
또 다시 우연처럼, 드라이 아이가 찾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흑인들이 대마초 농장을 습격해 대마초를 털어간다. 미키는 이 일련의 사건들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걸 확신한다.
아니나다를까, 플레처는 이 모든 사건의 배경에 '빅 데이브'가 있다고 말한다. 빅 데이브는 CJD같은 쓰레기 언론사의 사장 겸 편집장인데, 어떤 파티 장소에서 우연히 미키를 만났고, 먼저 악수를 청하지만, 미키가 빅 데이브를 쓰레기 취급하는 바람에 감정이 상했다. 그는 미키를 잡기로 작정하고, 미키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을 찾다가 몰락한 귀족 가운데 한 명인 프레스필드 경과 그의 딸 로라를 찾아낸다. 프레스필드 경은 미키에게 집을 나가서 마약하는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딸을 찾아 집으로 데려와 달라고 부탁한다. 미키는 자신이 가장 믿고 아끼는 레이몬드에게 일을 맡긴다.
레이몬드가 로라를 찾아내 집으로 데리고 오는 과정에서 함께 있던 로라의 친구이자 마약을 하던 아슬란이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는 사고가 발생한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아슬란의 아버지는 러시아 마피아로, 과거 KGB였었고, 현재는 러시아의 재벌이기도 한 사람이다. 

사건의 실마리는 '코치'(콜린 패럴)를 통해 이루어진다. 대마초 농장을 습격했던 흑인들은 한 체육관에 소속된 운동선수들이고, 이들은 과거 범죄를 저질렀지만 '코치'의 노력으로 운동을 하면서 시합에도 나가고, 더 이상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청년들이었다. 하지만 대마초 농장을 습격한 것은 그들 스스로의 결정이 아니라, 누군가의 사주에 의한 것임을 코치가 알게 된다. 
코치는 레이몬드를 찾아가 사과한다. 시키는 일을 할테니 아이들을 용서해 달라고 부탁하고, 레이몬드는 우선 비밀 장소인 농장을 어떻게 알았는지, 누가 알려주었는지 확인하라고 말한다. 코치는 당연히 농장을 습격한 아이들에게 물었고, 사주한 친구가 중국인 '조옷'이라는 걸 밝힌다. 코치와 레이몬드는 '조옷'을 납치해 오지만, 그는 철길로 떨어져 자살한다. 죽기 전에 그는 '드라이 아이'가 시켰다고 말한다.

레이몬드에게 전후 이야기를 들은 미키는 상황을 판단한다. 그러니까 농장을 습격한 것은 흑인 청년들이고, 그 뒤에는 중국인 '조옷'이 있었는데, '조옷'의 두목은 자신을 찾아왔던 삼합회 간부 '드라이 아이'이며, 삼합회 두목은 '조지'라는 걸 파악하고, 미키는 조지를 찾아간다. 조지는 이미 마약으로 돈을 벌고 있었고, 큰 어려움 없이 사업(범죄조직)을 운영하며 잘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미키가 나타나 자기 사업을 방해한다고 말하니 어처구니 없었다. 알고보니 조지에게 보고하지 않고 드라이 아이가 단독으로 벌인 짓이었다. 그럼에도 미키는 조지를 죽기 직전까지 만들고, 그의 사업장(마약제조공장)을 불태워버린다.

죽다 살아난 조지는 드라이 아이를 불러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고 꾸짖지만, 드라이 아이는 오히려 늙은이는 이제 그만 물러나야 한다면서 조지를 살해한다. 그러면서 부하를 미키에게 보내고, 자신은 미키의 아내 로즈에게 가서 로즈를 잡고, 미키에게 사업장을 넘기라고 협박하려 한다.
미키가 로즈의 전화를 받는 장면이 바로 영화의 첫 장면이다. 첫 장면에서는 총소리가 나고, 피가 튀는 것만 보여주는데, 여기서 죽는 사람은 미키가 아니라 드라이 아이의 부하였고, 레이몬드가 미키를 살린다. 미키는 로즈가 드라이 아이에게 잡혀 있음을 알고는 차를 몰아 로즈가 있는 정비공장으로 달린다. 그러다 교통사고가 나고, 겨우 빠져나온 미키는 로즈의 사무실로 들어가는데, 로즈는 드라이 아이에게 성폭행을 당하기 직전이었다.

플레처는 레이몬드에게 72시간 안에 2천만 달러를 주지 않으면 모든 자료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한다. 레이몬드는 이제부터 반격을 시작하겠다며, 가장 먼저 CJD같은 쓰레기 언론사의 사장겸 편집장인 빅 데이브를 납치하도록 '코치'에게 부탁한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건, 즉 미키가 매튜에게 사업 전체를 4억 달러에 팔겠다고 한 이후부터 발생한 사건의 배후에는 매튜가 있었다. 매튜는 대마초 비밀 농장을 방문한 다음, 알고 지내던 드라이 아이에게 가격을 떨어뜨리기 위한 작전을 지시한다. 드라이 아이의 부하였던 '조옷'은 동네에서 껄렁대던 친구들인 체육관 흑인 친구들에게 대마초 농장을 습격하라고 말했고, 체육관 흑인들은 대마초를 공짜로 가질 수 있다는 말에 농장을 습격한 것이다. 이 사실을 코치가 알았고, 코치는 레이몬드를 찾아가 사과하고, 자기 제자들을 부추긴 '조옷'을 레이몬드와 함께 찾아낸 것이다.

코치와 흑인들은 빅 데이브를 납치한 다음 약을 먹이고 동영상을 찍는다. 이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웃기면서도 압권인데, 언론 권력으로 유명인사들을 낙인 찍어 사회에서 매장시키기를 밥 먹듯 해왔던 언론인 빅 데이브는 자기가 돼지와 수간한 동영상을 보면서 그 자신이 사회에서 완전히 매장되었음을 알게 되고, 비명을 지른다. 이건 명백히 기존 쓰레기 언론, 황색 언론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다.
영국에도 쓰레기 언론이 많고, 어느 세상에나 쓰레기 언론이 세상을 오히려 더 더럽게 만들고 있는데, 가이 리치 감독은 그런 쓰레기 언론인이 돼지하고 수간이나 하는 인간 이하의 존재라고 본 것이다.

매튜는 미키를 만나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시끄러운 사건들 때문에 미키의 사업이 4억 달러가 아닌, 1억 달러의 가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1억 달러에 살 의향이 있으니 그렇게 알라는 말이다. 매튜는 미키가 사건의 전말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인데, 미키는 또 다른 사업장이 있는 냉동창고로 매튜를 데려가 냉동된 '드라이 아이'를 보여준다. 즉, 드라이 아이와 모의했던 것까지 다 알고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매튜는 끝까지 잡아떼고 드라이 아이를 모른다고 말하는데, 결정적으로 경기장에서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이야기 하는 장면을 보여주자, '사업일 뿐 사적인 감정은 없다'고 말한다.
미키는 그런 매튜에게 1억 3천만원에 매수한다고 했으니, 냉동고에 들어가서 2억 7천만 달러를 당장 송금하고, 지금까지 소란을 일으킨 것에 대한 보상으로 매튜 자신의 살 1파운드를 스스로 잘라내라고 말한다. 여기서 '살 1파운드'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장면으로, 이자 대신 살을 받겠다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의 말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돈이 많으면서도 양아치 짓을 하는 유대인 매튜에 대한 문학적 보복인 셈이다. 냉동고 온도는 영하25도로, 1시간도 견디기 어려운 곳이어서 매튜가 살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돈을 송금하고, 자신의 살을 스스로 잘라내야 한다. 그런데, 과연 1파운드, 450그램의 살을 어디에서 잘라낼지도 궁금하다.

플레처는 레이몬드를 찾아와 돈을 달라고 하고, 코치와 흑인들은 마지막으로 레이몬드를 돕는다. 아슬란의 아버지가 러시아 마피아라는 건 이미 확인했고, 그들이 레이몬드와 미키를 죽이려고 다가오는데, 코치와 흑인들의 도움으로 두 사람은 목숨을 구한다. 그 와중에 플레처는 도망가지만, 레이몬드는 도망가는 플레처를 잡는다. 플레처는 아슬란의 아버지 즉 러시아 마피아에게 돈을 받고 미키의 정보를 팔아넘겼고, 미키에게서 돈까지 받아내 미국으로 도망가려던 계획이었다.

이야기는 매우 복잡하게 꼬여 있어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이야기를 따라가야 한다. 이렇게 복잡한 이야기는 집중하지 않으면 흐름이 끊겨서 재미 없게 느껴질 수 있다. 가이 리치 영화는 무언가 새로운 걸 배우거나 교훈을 얻기 보다는, 영화의 재미 그 자체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의 복선, 반전, 캐릭터의 개성, 서사의 교차 같은 영화 문법들이 주는 재미와 즐거움은 가이 리치 영화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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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꺼풀
오멸 감독, 이상희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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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눈꺼풀
-희생자를 위한 진혼곡

바닷가 자갈 틈에서, 산속 개울 아래서 크고 작은 미륵불이 보이는 섬, 노인은 이 섬을 찾는 사람에게 떡을 만들어 먹인다. 멀고 먼 길을 떠나는 여행자들은 이 섬을 찾아와 노인이 만들어준 떡을 먹으면 그가 떠나왔던 곳에서의 모든 기억이 사라지고, 그가 가야할 길만 기억하게 된다.
노인은 라디오로 세상 소식을 듣고, 떡을 만들어 달라는 전화를 받으면 절구에 쌀을 빻고, 우물에서 물을 긷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 떡을 찐다. 그렇게 하얀 백설기가 되면, 섬을 찾아온 사람은 떡을 먹고 사라진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그 배에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이 많고, 이 학생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는 방송 보도가 들린다. 그리고 바다에서 섬으로 쥐 한 마리가 헤엄쳐 오고, 그 쥐는 노인의 집 천정에서 부스럭거리며 노인의 잠을 방해한다. 노인은 쥐를 잡으려 나서고, 절구공이로 절구 위에 있던 쥐를 내리치지만 절구공이만 부러지고, 쥐는 다시 도망치다 섬에서 유일한 우물에 빠진다.

섬에 학생과 선생님이 도착하고, 노인은 어린 학생을 보더니 '어린 사람이 왜 이 섬에 왔느냐'고 역정을 낸다. 학생은 '떡을 먹으러 왔다'고 말한다. 노인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으므로, 쌀을 빻아 떡을 만들려 하지만, 절구공이가 부러져 쌀을 빻을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돌미륵불을 거꾸로 들어 쌀을 빻지만, 고통스러운 노인의 신음소리와 함께 돌미륵불의 목이 부러지고, 절구도 부서진다. 
선생님은 물을 마시려 우물로 가지만, 우물은 이미 썩어버렸다. 노인은 망가진 절구와 목이 잘린 돌미륵불을 우물에 던진다. 절구와 돌미륵은 바다 깊이 가라앉고, 자욱한 모래먼지 속에서 돌덩이로 보이던 물체가 미륵불인듯, 사람인듯 눈을 감고 있는 돌같은 물체가 순간 눈을 번쩍 뜨고 정면을 바라본다.

오멸 감독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한편의 진혼곡을 영화로 만들었다. 이 작품은 알레고리와 메타포로 일관하고 있지만, 아주 드물게 현실을 직접 언급할 때가 있다. '세월호 침몰'과 관련한 언론 보도를 다룰 때가 그렇다. 
바다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이루는 삼도천을 상징한다. 바다는 세월호가 침몰한 바다이면서, 희생자들이 있는 삶과 죽음의 공간이자, 삶에서 죽음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이어지는 경계로써의 바다다. 이 바다를 건너면, 어떤 사람은 살아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어떤 사람은 죽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거나, 영영 바다에 살게 된다. 
노인은 미륵불의 현현이고, 불쌍한 중생을 보듬는 부처이자 억울하게 죽은 영혼을 달래고, 위로하는 한없이 자애로운 보살이다. 노인은 섬을 찾아온 학생과 선생님을 보면서, 그들에게 떡을 해주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저 어린 것들이 대체 무슨 죄가 있어서 이 깊은 바다를 건너 노인을 찾아와야 했을까. 노인은 자신을 내던져 온몸으로 쌀을 빻지만, 주체할 수 없는 비애와 아픔 때문에 목이 잘리고 만다. 미륵불 마져도 이 어린 학생과 선생님을 구할 수 없다는 기막힌 현실, 죄 없는 사람들만 바다를 건너야 하는 이승의 불의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노인은 이승을 떠난 사람이 먹어야 하는 떡도 만들지 않고, 떡을 만드는 도구인 절구와 절구공이를 바다에 버린다. 부정한 세상에서 갈 곳 없는 영혼들은 결국 떡을 먹지 못하고 사라지고, 목이 잘린 미륵은 저 바다밑 깊은 곳에서 수천 년, 수만 년을 기다려도 뜨지 않던 눈을 뜬다. 
느리고 유장한 화면만으로도 이 작품이 얼마나 깊게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희생자를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살았지만, 산 것이 아니고, 살아있는 동안 결코 잊을 수 없는 화인같은 슬픔을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 
그것은 민주주의라는 제도로 뽑은 대통령이 더할 나위 없이 무능하고, 천박하며, 야비하고, 악랄한 쥐새끼 같은 존재였고, 인간이 아닌 존재, 저주받아야 마땅한 악귀같은 존재가 대통령이며, 공무원이며, 국회의원이며, 검찰, 경찰, 해경이며, 패륜집단이 저지른 야만의 학살이자, 집단 살해극이었고, 그 결과의 참담함은 다수의 국민들 가슴에 찍힌 고통이다.

7년. 아직도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고, 가해자들은 잘 먹고,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달마가 눈꺼풀을 잘라 낸 것은 무엇을 보려는 것이었을까. 두눈을 부릅뜨고 끝까지 지켜봐야 하는 것은 저 악마들, 가해자들의 기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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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고잉 인 스타일
잭 브라프 감독, 앨런 아킨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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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잉 인 스타일


세 명의 노인이 은행을 턴다는 이야기로, 코미디 영화다. 가볍게 볼 수 있고, 해피엔딩이어서 보는 내내 즐겁고 마음이 편하지만, 이 영화는 겉으로 드러난 코미디 서사의 이면에 무시무시한 미국 사회의 공포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조, 윌리, 앨 세 노인은 오랜 친구다. 이들은 철강공장에서 40년을 노동자로 함께 일하며 우정을 쌓았고, 퇴직한 지금도 이웃에 살며 날마다 만나서 어울린다. 이들은 가족이 없거나(앨), 멀리 떨어져 있거나(윌리) 이혼한 딸과 손녀를 돌보며 살아야 하는(조) 노인이다.

사건의 발단은 조의 집과 관련한 모기지 대출 이자의 급등이다. 저금리 대출이자의 만기가 끝나자 곧바로 고금리 대출이자 상품으로 연동되면서 조의 모기지 대출 이자가 몇 배로 뛰자 조는 졸지에 앉아서 집을 빼앗길 처지가 되고 만다. 이 상황은 미국에서 2007년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배경으로 한다. 

미국 정부는 2000년 초부터 금융 이자를 낮게 유지하는 정책을 펼쳤다. 가라앉은 경기를 띄우기 위한 것이 목표였고, 저금리 정책으로 중산층 이하 서민의 주택 구입이 늘어나면서 주택 가격이 올라갔다. 금융권에서는 여기에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는데,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라면 주택 담보로 집값의 100%까지도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이때는 집값이 더 오를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고, 실제 한동안 부동산 시장은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2004년 이후 미국 정부는 저금리 정책을 포기하고 금리를 올렸는데, 바로 이 금리의 인상이 이 영화의 앞부분에서 조가 은행의 대출담당 직원과 나누는 이야기의 핵심이다. 은행직원은 모기지 대출을 해주면서 대출 이자가 높아질 수 있다는 말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그건 고객을 우롱하는 짓이었다.

조는 대출 이자를 내지 못하면 집을 뺐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분노가 끓어오르는 상황에서 갑자기 은행에 강도들이 난입해 총을 난사하고 불과 2분만에 은행의 돈을 털어 사라지는 걸 보게 된다.


집을 뺐기게 된 조가 두 친구에게 은행을 털자고 말하지만, 윌리와 앨은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 말라며 거절한다. 당연하게도 세 명의 노인은 모두 일흔 살이 넘은 늙은이고 몸도 잘 움직이지 못하는 처지에 은행강도라는 건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은행을 털자고 합의하게 되는 결정적 사건이 발생한다. 그건 바로 그들이 40년 동안 다니던 공장에서 더 이상 연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결정이었다. 세 명의 노인은 40년 - 사실상 한 사람의 평생이나 다름 없는 시간 -을 철강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이들은 뼈빠지게 일했고, 그렇게 열심히 살아서 퇴직을 하고 이제 연금을 받으며 살 수 있다고 기대했는데, 회사에서는 연금을 중단한 것이다.

그 이유가 더 기막히다. 철강회사는 다른 회사와 합병을 할 것이고, 합병하면서 기존의 채무를 노동자들의 연금으로 갚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세 노인은 분노가 폭발한다. 그리고 세 노인은 남아 있는 생애에 연금 금액을 곱해서 거래 은행에서 가지고 나와야 할 돈을 계산한다.

하지만 마음만 청춘일 뿐, 평생 노동자로만 살아왔던 노인들이라 세상 물정도 잘 모르고, 행동도 꿈떠서 은행은 커녕 동네 마트에서 연습삼아 한 도둑질도 들켜 마트 매니저에게 훈계만 듣고 풀려난다. 예행 연습에서 실패한 뒤, 조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딸과 이혼해 혼자 살고 있는 사위를 찾아간다. 사위는 대마초 사업 - 캘리포니아에서는 합법이다 -을 하고 있는데, 전문가를 소개해 달라고 말한다.

그렇게 만난 전문가와 함께 세 노인은 은행을 털기 위한 사전 준비를 철저하게 한다. 이쯤에서 영화는 '노인 재활 특별 프로그램'으로 보일 정도로 세 노인은 운동도 열심히 하고, 마치 '오션스 일레븐'의 주인공처럼 은행을 사전 답사해 폐쇄회로 카메라의 위치를 확인하고, 출입부터 내부 동선을 점검하며, 범행에 필요한 2분의 시간을 맞추기 위해 꾸준히 연습한다.


디데이. 세 노인은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축제 장소에서 자신들이 각자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정해진 시간에 은행을 턴다. 이들은 2백만 달러의 현금을 가지고 사라졌으며, 작전은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불과 며칠 만에 세 노인은 FBI에게 체포된다. 예행 연습을 했던 마트의 매니저가 앨의 움직임이 은행강도와 똑같다고 제보했고, 그것을 단서로 세 명 모두 체포된 것이다.

하지만 물증은 없고, 세 노인의 알리바이를 초 단위로 추적하기 시작하지만, 세 노인의 알리바이는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FBI와 경찰은 범인을 지목하지 못한다. 영화에서 백미는 세 노인의 알리바이가 톱니바퀴처럼 매끄럽게 맞아들어가는 장면이다. FBI와 경찰은 세 노인이 범인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물증이 없어 석방할 수밖에 없고, 세 노인은 자유로운 몸이 된다.

자기들의 연금만큼의 돈을 제외하고, 세 노인은 남은 돈을 노인단체에 기부한다. 그리고 항상 다니는 레스토랑의 웨이트리스 마지에게도 한 묶음의 돈을 몰래 건넨다. 앨은 윌리에게 신장을 기증하고, 앤과 결혼한다. 세 사람은 건강한 모습으로 앨의 결혼식에서 샴페인을 부딪치며 건배한다.


이 영화는 같은 제목으로 1979년에 발표한 것을 리메이크한 영화인데, 1979년판이 세 명의 노인 모두 백인이었다면, 2017년판은 흑인(모건 프리먼)이 있다는 것이 다르다. 미국 사회에서 노인들이 은행강도를 해야 할 정도로 보편적 복지 수준이 열악하다는 사실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건 심각한 사회문제이면서, 그걸 또한 코미디로, 해피엔딩으로 끝내야 하는 것 역시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비극적이다.

한국영화에도 이와 비슷한 영화가 있다. '육혈포 강도단'은 세 명의 할머니가 은행을 털기로 작정하고, 역시 전문가(임창정)의 도움을 받는다는 점에서 '고잉 인 스타일'의 기본 모티프를 가져 온 것으로 보인다. '고잉 인 스타일'이 미국 서민의 복지 문제를 건드려 사회 비판적 시각을 내재하고 있다면, '육혈포 강도단'은 세 노인이 하와이로 여행할 비용을 뺐긴 것에 대한 복수로 은행강도를 실행한다는 점에서 개인적 일탈로 그려지고 있다.

노인도 작정하면 완전범죄를 저지를 수 있고, 노인들이 은행을 털어 큰 돈을 가져가는 것은 서민의 돈이 아닌, 자본가와 부르주아의 돈이어서 죄책감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여기에 세 노인은 은행에서 뺐은 돈으로 비슷한 처지의 노인들이 머무는 양로원에 기부하는 것으로 이들이 서양의 홍길동인 '로빗훗'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부조리한 사회에서 '로빈훗'은 정의로운 인물이고, 부자의 돈을 빼앗는 건 범죄가 아닌, 정의의 실천이라고 바라보는 시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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