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 자서전 - 바람만이 아는 대답
밥 딜런 지음, 양은모 옮김 / 문학세계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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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사건들이 많았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테러와 사고 때문에, 세계 여행조차 쉽게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란 현실과 맞닥뜨렸다.  유투브에선 언제든 전쟁의 참혹한 실황을 찾아볼 수 있다.  게임의 한 장면처럼 인명이 살상되는 자극적인 화면들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웬만한 영화의 특수효과 따위에는 감흥도 없다. 하여, 영화 업계에 일하는 사람들은 좀더 자극적인 화면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다.  세계가 더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을 때, 기억해야 할 노래가 있다.  밥 딜런이 1962년 발표한 곡 "Blowin` In the wind 바람에 실려서"다. 


올해 일흔 다섯의 나이로 여전히 미국 포크 록의 대명사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가수 밥 딜런.  그가 파격으로 2016년 한림원의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심리적 지진동을 느꼈다. 올해, 사람들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상을 점쳤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노벨상이 제 3세계 국가의 어느 시인, 작가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예측했을 것이다.  한림원은 놀랍게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고 결코 출판업자들에게 환영받지 못할 인물이었던 밥 딜런에게 이 상을 건네주었다.  한국의 독자들도 당황했을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책을 사보지 않던 사람들도, 10월 한림원의 노벨문학상 발표에 맞춰, 수상자의 책 한 권쯤은 사볼 계획을 세우곤 하기 때문이다.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을 자격이 있나? 라는 문제로 뉴스의 초점과 사람들의 물음표가 옮겨갔다.  한림원은 이를 예측이라도 한 듯,"밥 딜런은 귀를 위한 시를 쓰는 사람이라고 치켜세웠고, 2천 5백년 전 호메로스와 사포의 시가 지금 읽히듯, 시의 전통을 이어가는 `위대한 시인'이라고 호칭했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그거야 립 서비스 수준의 미사여구 아닌가.  밥 딜런의 노래조차 익숙하지 않은 국내 독자들에겐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미국문화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밥 딜런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 결코 작지 않음을 알 것이다.  IT 천재였던 스티브 잡스에게도 이 포크송 가수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잡스의 자서전을 읽은 이들은 알게 될 것이다.


잡스의 젊은 시절을 지배한 두가지를 고르자면,  마약의 일종이었던`LSD'와 밥 딜런의 노래였다.  LSD는 불법이었고 철이 들면서 멀어졌다면, 일생 그의 영혼에 영향을 미친 것은 마약같은 밥 딜런의 노래였음을 그는 자서전에서 고백한다. 밥 딜런을 잘 모르더라도, 여러 가수에 의해 리메이크된 딜런의 대표곡들은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를 1960년대 미국 민권운동사의 대표주자로 착각하게 만든 노래, "블로잉 인 더 윈드'의 가사를 보면, 한림원의 립서비스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된다.  1960년대 미국은 베트남 전쟁과 흑인들의 차별철폐 운동이 가속화 된 시기다.  소련과 미국의 G2가 체제 경쟁을 가열화 시키면서, 수천개의 핵무기를 무기공장에서 제조하던 시기도 그때다 


언제든, 인류가 지구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던 일촉즉발의 냉전속에서 피비린내 진동하는 베트남 전장속으로 미국 젊은이들이 징집되어 끌려가던 때이기도 했다.  그들은 반전과 평화를 외치며, 주류에 반발하는 히피들로 신분을 세탁했다.  그 와중에 밥 딜런은 "블로잉 인 더 윈드"를 통해, 이 세계의 실상을 폭로하며 질문을 던진다.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봐야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전쟁의 포화가 얼마나 많이 휩쓸고 나서야 영원한 평화가 찾아오게 될까, 얼마나 많이 죽고나서야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음을 깨닫게 될까,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다네"  밥 딜런  "Blowin` In the wind 中


하지만, 밥 딜런의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Chronicles: Volume One>(문학세계사, 2010)을 보면 사람들은 그가 전혀 다른 면모를 지닌 인물임을 깨닫게 된다. 2004년 출판돼 뉴욕타임스 논픽션 부문에서 19주간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딜런의 처음이자 마지막 자서전인 이 책은, 훗날 출판업계를 살린 희귀한 운명을 맞는다.  노벨문학상을 가수에게 줘버린 한림원을 탓하던 와중, 그가 자신의 내밀한 목소리를 전한 자서전이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 아니고 뭔가. 더군다나 이 자서전의 특색있는 집필방식과 목소리 톤은 수상소식을 전해듣고도, 2주간이나 침묵하며 한림원을 머쓱하게 했던, 밥 딜런에게 오해를 풀 기밀서류 같은 느낌을 전해줄 것이다.


아무리 직업적인 문필가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독자를 고려하지 않는 불친절한 자서전은 당혹스럽다.  맥락도, 서두도, 모두 생략하고, 독자에게 예의를 전혀 갖추지 못한 이 자서전은 마치 눈먼 작가의 목소리를 구술로 받아적은 듯한 문체를 유지한다. 꼭 단점만이 보이는 건 아니다. 어떤 화려한 꾸밈도, 기획도 없는 그의 글속에서 독자들은 딜런의 개성과 담박한 인생과 조우할 수 있다. 


"나는 일리노이에서 왔다고 했고 그는 그것을 받아적었다.  다른 일을 한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나는 열 가지도 넘는 직업을 가졌었고 한때는 제과점 트럭을 몰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것도 적었고 그밖에 또 다른 일을 했는지 물었다. 건축공사장에서 일을 했다는 말에 그는 어디냐고 물었다. `디트로이트요', `여행을 다녔군요?' `예', 그는 가족에 관한 일과 가족이 사는 곳을 물었다. 나는 오래 전에 가족을 떠났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가정생활은 어땠습니까?' 나는 쫓겨났다고 말했다."  13-14쪽,  <바람만이 아는 대답>


딜런은 10살 때 처음 시를 썼다.  가수로 성공하고 난 후엔, 그림을 그렸고 모터사이클을 탔다.  그는 가수이자 시인이었고 화가라는 호칭을 들었다.  그는 결코 평범하지 않는 예술가였지만 일생 평범하게 보지 않는 타인들의 시선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다.  1959년 미네소타 대학에 입학했으나 2년만에 중퇴했고, 전기기술자였던 아버지와 불화도 그때부터 시작된 듯하다. 아버지는 그가 기술자가 되길 원했으나, 딜런은 집을 나와 자신의 우상이었던 포크가수 우디 거스리의 밑으로 들어간다.  빈민가였던 그리니치 빌리지 주변 클럽을 배회하며, 연주하고 노래했고 훗날 유명 음반 제작가 존 하몬드에게 캐스팅 돼 콜롬비아 레코드를 통해 데뷔한다.


첫 앨범 `더 프리윌 밥 딜런(1963)에 들어있는 `블로잉 인 더 윈드'가 히트를 치며, 단박에 사회 저항 운동의 대표 음악가로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자서전에서 딜런은 자신을 규정하는 모든 언론과 대중의 호칭에 거부감을 표한다.  "나라는 사람은 어느때나 그 누구에게 속해본적이 없으며, 자신은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노래하고 있을 뿐"이라고 일갈한 것이다. 이 말을 실천에 옮기기라도 하듯, 저항적인 어쿠스틱 포크 가수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일렉트릭 사운드로 전환을 시도했다. 그 이후, 그는 배신자 소리를 들었지만 한치의 흔들림 없이 자신의 음악세계를 구축해갔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밥 딜런의 대략적인 음악 인생의 여정이었다.


아직 젊은 시절 쓴 자서전이기에 미완성 느낌이 강하게 드는 자서전을 읽으며, 그의 모든 것을 포착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딜런이 대중들의 분노를 뒤로하고 음악적인 변신에 거침없었던 이유와 마찬가지로, 그는 삶을 정해진 것으로 규정하는 것에 저항했다.  유대계에서 기독교로 개종하지만, 인생과 음악을 대하는 시선은 차라리 낙관론자도, 염세주의자도 아니고 불가지론자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앞에는 번개를 가진 검은 구름이 잔뜩 낀 이상한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오해하고 생각을 바꾸지 않았으나 나는 곧장 그리로 갔고 그 안은 활짝 열려 있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세계는 신이 주관하지도 않았지만 악마가 주관하는 것도 아니었다."  311쪽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그가 언론이 조작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일생 평범한 일상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고, 그것에 가치를 두는 인생을 살아왔다는 점이다. 자신의 노래가 사회저항적이란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런 노래만을 앨범에 담은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자신의 가사가 때로는 저항적이지만, 목가적이기도 하고, 사랑에 흠뻑 젖어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살고 있는 공동체와 개인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것이 자신의 노래였다고 고백한다.  하여, 자신을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가 아닌 목동으로 봐달라고 요구한다.  밥 딜런은 자서전의 상당 부분을 소박한 삶에 대한 바람으로 채워넣고 있다. 


"멀리 갈 곳이 없었다. 남들은 무슨 꿈을 꾸고 사는지 모르지만 내가 꿈꾸는 것은 아홉시부터 다섯시까지 일하고 나무가 양쪽에 늘어선 집에 하얀 말뚝 울타리를 치고 뒷마당에는 붉은 장미가 피는 집에서 사는 것이었다. 그것이면 충분했고 그것이 나의 가장 깊은 꿈이었다. " 130쪽


그의 꿈이 우리가 알고 있는 밥 딜런의 투사의 이미지와 상반될까?  아니라고 본다.  그가 언급했듯, 가장으로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족을 먹여살리고, 큰 욕심 부리지 않고 평범한 일상인의 모습으로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어찌 소박하다고 타박받아야 할 꿈이란 말인가.   `블로잉 인 더 윈드'에서 노래 하듯,  인간은 어리석은 전쟁과 폭력의 노예로, 비양심과 탐욕의 화신으로, 증오와 갈등의 주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어리석은 모습을 언제까지 반복해야만 그것을 그치고, 반성하고, 올바른 길로 접어들며 세계를 지금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까라고 묻고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는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소망하는 세계가 밥 딜런이 꿈꾸었지만 사람들이 경시하는 그 `평범과 평화'안에 있질 않은가.  


한림원의 노벨문학상 시상식에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밥 딜런.  그 사유를 그는 `선약이 있어서'라는 애매모호한 답으로 대신했다. 수상소식을 듣고도 2주간 침묵한 것 때문에 비난도 받은 그였다.   하지만, 무척 긴 수상소감문을 편지로 보내왔다.  그 속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수많은 음반과 콘서트를 했지만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제 노래'입니다. 다양한 문화 속, 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 자리를 찾은 것 같아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한번도 스스로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내 노래가 문학인가?' 그 질문을 던져주고 이런 멋진 답까지 준 스웨덴 한림원에 매우 고맙게 생각합니다.  -  밥 딜런 올림"    형식과 이미지에 치중하지 않고, 담박한 노래와 시로서 살아가는 진정한 인간의 진심이 담긴 문장들.   평범함이란 인류의 오랜 꿈이자 이상이었음을 그는 몸과 마음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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