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양장) - 세상의 모든 인생을 위한 고전 글항아리 동양고전 시리즈 4
공자 지음, 김원중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공자는 기원전(BC) 551년 중국 산둥성 취푸에서 태어나 기원전 479년 사망한다. 73살의 노스승은 그가 일생 길러낸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을 마쳤다.  공자의 생몰은 정확한 역사 기록이다.  그는 소크라테스, 예수, 석가모니와 함께 인류의 4대 스승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이 4명을 함께 호칭하는 것은 신심 깊은 이들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예수와 석가모니는 종교 신비주의의 영역안으로 들어가 있어, 그들을 같은 인간의 격으로 부르는 것은 어색하지 않은가.  오직 공자와 소크라테스만이 살아서도, 죽어서도, 인간이란 격을 벗어나지 않았다.  하여,  신성(神聖)의 성격이 짙은 신약성서나 불경을 읽는 것과 공자의 어록을 담아낸 <논어>를 읽는 마음 가짐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논어>를 역사책이나 철학서로 마주하거나 아니면 처세서로 읽을 수도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이 짧은 공자의 어록이 담긴 책을 며칠 이면 완독할 수 있다. 그러나, 공자의 <논어>는 과연 그렇게 간단한 책인가.  한반도에 서양의 다양한 종교, 철학 사상이 들어오기 전 먼 고조선부터 삼국시대, 고려, 조선을 거치며 2천년 이상 한민족은 공자 사상의 영향을 직,간접으로 받아왔다. 각 시대마다 <논어>의 가르침이 경시되거나, 중시되는 경향은 달랐지만 조선은 무려 500년간 정치와 체제의 근본이념으로 공자의 사상을 받들었다. 그 영향은 현대에도 한민족의 생활을 제약 한다.  충과 효를 강조하는 것이나 제례의 전통을 유지하며 조상을 존경하는 것은 동아시아인의 스승, 공자의 <논어>에서 가장 중요시하게 다루는 철학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한국 사람들이 서양 철학이나 성경을 위시로한 경전을 읽는데 심혈을 기울이는데 반해, 공자의 <논어>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쉽게 품지 않는다.  나또한 그랬다.  한자 세대가 아닌 독자들은 <논어>라는 책에 접근하기가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출중한 한학자로서 사마천의 <사기> 전체를 완역해 낸 김원중 교수가 옮긴 <논어>(글항아리, 2012년)는 공자의 어록에다 생소한 중국 역사기록과 주요 주석가들의 해설을 함께 담아냈다.  그간 몇번 읽다가 완독을 포기한 <논어> 완독에 안착한 것은 그 덕분이다. 


<논어>를 읽는 가운데, 또 완독 후에, 내 마음은 지극히 충만했다. 공자의 어록들은 짧았지만, 그 문장 안에 담긴 뜻은 오묘하고 깊었다. 반복해 읽을 때마다 그 뜻이 이해되는 듯하다가도, 다시 읽으면 또 다르게 읽히는 것이다. 이 책은 감히 완독했다고 표현할 수 없는 책이었다. 곁에 두고 꺼내보고, 또 꺼내 봐야 할 책은 진정 <논어>였다.  중요한 것은 내가 <논어>에서 공자의 견해와 사상에 공감하는 점을 상당히 발견한 점이다. 그가 소위 성인으로 불리는 까닭은 `인(仁)' 사상에 기댄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곧 인, 이라고 했다.  인에 이르기 지극히 어렵고, 주위에 인한 사람이 없으나, 인격이 완성되고도 인하지 않으면 쓸모없다고 할만큼, 공자는 인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내가 공감한 것은 그런 평범한 성인의 미사여구가 아니었다. 


내가 <논어>에서 발견한 공자 사상의 특별한 점은 다음 몇 가지로 추려볼 수 있겠다.


첫째, 공자 자부심의 정체는 `배움(學)이었다.  제자들이 편찬한 <논어>에서 그 첫 시작을 알리는 공자의 말씀은 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다.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않은가."  제자들은 스승 공자가 일생 무엇에 집착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편찬한 책의 첫 일성에 배움이란 흔한 단어를 넣지 않았을 것이다.  공자는 <논어>안에서 수차례 배움의 가치와 방법, 배움에 대한 자신의 지극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공자가 어떻게 배웠는지 궁금해하는 제자들과 이웃들에게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세상 이치를) 아는게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고 부지런히 그것을 추구한 사람이다"고 언명한다. 또, "나는 온종일 먹지도 않고 밤새도록 잠자지 않고 생각해보았지만, 유익함이 없었으며, 배우는 것이 더 나았다"고 표현한다.


호학(好學)에 대한 공자의 클라이막스는 여기다. " 열 가구가 사는 고을에도 반드시 성실과 믿음이 나와 같은 자가 있겠지만, 나처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그러면서 공문자라는 사람이 시호에 `문文'이라고 일컬어지게 된 사연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영민하지만 배우기를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기에, 그를 文이라 부른 것이다."  사람이 사람됨을 갖는 것은 일평생 배운다는 자세 안에 있고, 모르는 것에 대해선 아는 체 할게 아니라 아랫사람에게도 떳떳히 물어서라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둘째, 공자는 인문주의자이자 지독한 현실주의자였다.  서양이 르네상스를 겪고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세계관의 좌표를 또 한번 수정하지만, 공자는 그보다 2천년 전에 이미 인본주의를 설파한 위인이었다.  공자는 상을 당한 사람이 지나가면 고개를 숙이고, 한쪽 귀퉁이에서 종종걸음을 칠 정도로 몸을 조심히 하고 예를 표했다. 또, 그는 어린 시절 제사상을 차리는 놀이를 할 정도로 예를 일찍이 숭상했다. 3년상이 너무 길다는 제자와의 논쟁에서 공자는 단도직입적으로 "여(재여)는 인하지 못하구나, 자식은 태어나서 3년이 지나야만 부모의 품을 벗어난다."고 일갈한다.  한마디로 너 어렸을 때, 부모님이 3년간 너를 돌봐주었는데 너는 부모돌아가시자 3년간 예를 표하는 삶이 길다고 하니 말이 되냐?고 따지는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뜻밖에 귀신을 멀리할 것과 죽음에 대해 묻지 말라고 얘기했다.  계로라는 제자가 귀신 섬기는 것에 대하여 묻자, 공자는 이렇게 답한다. "사람을 섬기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 " 계로가 물러서지 않고 다시 `죽음이 무엇이냐'고 묻자 공자는 "삶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라고 되묻는다.  공자는 삶을 이야기했지 죽음과 귀신에 대해선 말하려 하지 않았다. 공자는 귀신을 `경원(敬遠)', 즉 공경하면서 멀리한다고 표현한 적이 있다. 그렇다고 공자가 신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는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거나 `나를 알아주는 것은 오직 하늘 뿐'이라고 토로했다.  공자가 <논어>에서 말한 `귀신'이란 것은 인간의 인지능력으로 알 수 없는 모든 신비주의적인 것을 총칭한다.


공자의 고백은 얼마나 정직한가. 혹여, 오늘날 세상이 이렇게 어지럽고 종교간 분쟁과 테러, 증오가 들끓는데 종교가 공헌하고 있는 점은 없을까. 이 구절을 읽으며 깊게 생각해볼만 하다. 공자는 귀신을 섬긴다는 사람들이 살아 있는 사람조차 잘 섬기지 못하는 역설을 꼬집은 것이다.  죽음이 무엇이냐고 묻는 제자에게 삶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느냐고 호통친다. 오늘날 많은 종교인들이 마치 죽음을 겪어 본듯이 얘기하곤 한다.  그래서, 세상이 평화롭고 건강해 졌는가, 따져보면 절대 아니다.  그들이 말하는 `죽음'이 전부 다르기 때문에 다툼밖에 날 것이 없다.  차라리 공자처럼 정직히 죽음을 모르니 삶에 전념하고 살아 있는 사람들끼리 더 사랑하자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셋째, 공자가 말한 이상적인 정치와 정치인 상은 여전히 유효하다.  공자는 56세가 되자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실제 정치에 적용시킬 군주를 찾아 제자들과 여정에 들어선다. 14년간 주유열국(周遊列國) 하지만, 누구도 공자를 등용하지 않았고 69세가 되어 초라한 신세로 고향에 돌아와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에 여생을 보냈다.  그가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길은 봉쇄되었지만, 공자는 스승으로서 참된 정치의 기본 원리를 <논어>에 남겨 놓았으며 그의 정치 사상은 현대의 정치 지도자들도 명심해야할 대목으로 충만하다.


공자는 정치의 기본은 가정에서 시작된다고 믿었다. 어떤 사람이 관직에 있지 않은 공자에게 `왜 정치를 하지 않느냐'고 묻자 답한다. "[서경]에 이르기를 효도하고 오직 효도하여 형제들에게 우애롭게 대하고 정치에 (이것을) 베풀어라'고 했으니, 이 또한 정치를 하는 것이다. 어찌 벼슬을 해야만 정치를 하는 것이겠는가"  오늘날 정치의 수준이 밑바닥을 기는 것은 혹여 가정조차 제대로 건사할 자격이 없는 자들이 정치판에 나온 것 때문은 아닐까란 생각이 드는 문장이다. 


공자는 자공이 정치에 대해 묻자 "식량을 충족시키고, 병기를 충분히 하고, 백성들이 (군주를) 믿게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의 신뢰라고 답한다. 거짓말 잘하는 정치인, 선거철이면 표를 받기 위해 거짓공약을 난발하고 모르쇠하는 정치인들은 유념할 대목 아닌가.  또, 부끄러움에 관해 얘기하면서 "나라에 도가 있을 때 (자리를 차지하며) 녹봉을 받고, 나라에 도가 없는데도 (물러나지 않고) 녹봉을 받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고 주장한다.  군자는 도가 있으면 세상에 나오고 도가 없으면 은거해야 한다고도 했다.  물불 가리지 않고 양심과 의리를 파는 정치 철새들을 향한 공자님의 말씀이다.


<논어>는 두께가 얉고 공자의 어록을 단문으로 집어낸 문장들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일생을 두고 곱씹고 사색할만큼 촌철살인의 비유와 2천년의 시간을 넘어서도 보편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내용들로 구성 돼 있다. 공자는 제자 자공의 말재주를 싫어했다.  배울 땐 둔하다 싶을 정도로 과묵하고 공자의 언변에 토를 달지 않았던 안회를 가장 사랑했다. 그 이유를 공자는 안회가 배운 것을 어떻게든 실천하고자 노력했다는 점에 두고 있다. 공자는 자신에게는 네가지 걱정거리가 있다고 토로했다. 


"덕을 닦지 못한 것, 배운 것을 강습하지 못한 것, 의로운 것을 듣고서도 찾아가지 못한 것, 좋지 않은 것을 고치지 못한 것, 이것이 나의 걱정거리다"   <논어> 공자, 133쪽  김원중 옮김


<논어>를 읽는 시간은 예상외로 지루하지 않았다.  수많은 페이지와 문장이 접히고 밑줄이 그어졌다.  완독했지만 다시 읽을 수밖에 없는 책을 가진 다는 것은 특별한 독서체험이다. <논어>는 종교서적도 아니고, 처세서도 아니었다. 세상 살이에 보탬이 되고 인간관계에 득이 되는 책도 아니다. 21세기 독자들에게 이 책이 주로 처세서로 팔리는 현실은 적절하지 않다.  <논어>는 그 모두를 포용하지만,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차라리 그것은 세상 살이와 인간 세계의 이치를 담아내며,  넓고 깊은 사색의 시간으로 인도하는 보물창고였다.


제자들에게 공자는 `해와 달'에 비유되곤 했다.  자신들이 넘어서고자 애쓰지만 감히 넘어설 수 없는 스승이라고 생각되었다.  어록에 담긴 문장들로 2천 5백년 전 한 인간의 모든 것을 유추할 순 없지만, 공자가 일생 무엇에 뜻을 두고 가르침을 전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여, 우리는 이렇게 자문할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세상 이치를 깨달은 공자도 일평생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  모르는 것에 관해서는 촌부에게서도 배울 점을 찾았다.  일평생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은 그였지만, 좀더 덕스럽지 못하고, 의롭지 못함을 고민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사람인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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