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의 빛으로]‘자유교양학문’ 은 인문교육의 뿌리
입력: 2007년 01월 12일 14:58:35
16세기 말 당시 대학의 학문체계를 잘 보여주는 텍스트(스위스 바젤). 문법학, 수사학, 기하학 등으로 분류돼 있다.
‘자유교양학문(artes liberales)’은 한국어로 ‘백과사전’으로 번역되고 있는 ‘Enkyklopaedia’라는 헬레니즘 교육전통에서 유래한다. 언어와 이성, 그리고 이성과 지성의 통합적 완성을 목표로 삼았던 이 교육 방식은 서구의 고전 고대뿐만 아니라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쳐 현대 서양의 교양교육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현대 대학의 인문학과 교양교육의 뿌리가 자유교양학문에 있다는 점은 대학의 기초교양 수강편람에서 쉽게 확인된다. 그렇다면 자유교양학문이란 개념은 언제 한국에 들어왔을까?

문헌을 추적해 보면 육당 최남선(1890~1957)의 “美術(미술)이란 말은 日本人(일본인)이 그 明治初年(명치초년)에 英語(영어)의 Fine art를 飜譯(번역)한 말이니까 東洋(동양) 녯날에는 업섯든 것입니다”(‘조선상식문답’)라는 문장에서 이 용어가 사용됐으나 잘못 이해돼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잘못이 메이지시대의 일본인인지 아니면 육당의 오해에서 비롯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유교양학문이란 용어는 한국의 대학과 교양세계에 원래의 취지와 의미에 맞게 정착되지 못한 개념이다. 어쩌면 이 용어를 구성하고 있는 자유, 교양, 학문이라는 개념 자체가 한국어에는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서양 개념들이 한국에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추적하는데, 매우 중요한 문헌인 ‘羅韓小字典’(나한소자전)에는 ‘자유’를 뜻하는 라틴어 ‘Libertas’가 ‘쥬쟝’ ‘쥬장’으로 번역·소개되고 있고, ‘자유로운’에 해당하는 라틴어 ‘Liberalis’가 ‘관후한’ ‘너그러온’으로 되어 있다. ‘기술’(학문)을 지칭하는 라틴어 ‘Ars’는 ‘예업, 슐업, 손재조, 법, 계책’으로 번역되고 있다는 점에서, 지식탐구 방법이면서 동시에 시민 교양을 위한 교육 제도로서의 ‘학문’에 대한 이해는 100년전 우리 선조에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인의 영어 ‘fine art’를 번역한 ‘美術’을 그대로 수용한 육당의 잘못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자유교양학문이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사회에서는 신분은 물론 정신에 있어서도 자유를 누릴 줄 아는 교양시민이면 알고 있어야 할 ‘지식’과 ‘교양’을 지칭하는 표현이었다. 이러한 지식과 교양을 겸비한 자만이 ‘노예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자유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안재원/서울대 협동과정 서양고전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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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의 빛으로](3) 천지창조 순간에 서서
입력: 2007년 01월 19일 14:56:21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가운데 ‘아담의 창조’.

아무것도 빛나지 않는다. 이 어둠 속에는 모든 것들이 있을 텐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 마침내 어둠을 쪼개며 어슴푸레 빛이 열린다. 저 멀리로부터, 검은 바닥 위로, 밝음과 어둠 사이를 가르는 선이 그어진다. 그 선 아래는 땅, 그 위는 하늘. 땅을 덮고 있던 어둠의 덮개를 서서히 들추면서, 빛은 초록의 산과 숲을 드러내며, 푸르게 굽이치는 강과 바다를 펼쳐놓는다. 새들이 쏟아져 나와 창공을 날고, 사람들이 새싹처럼 돋아나 바쁘게 오고간다. 온갖 빛깔과 형체를 뿜어내는 아침 풍경은 마치 세계가 새롭게 태어나는 천지창조의 모습이라 해도 좋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창세기·기원전 15세기말?) ‘하나님’이란 유태교의 ‘여호와(야웨)’인데, 그리스어로 번역된 ‘70인 역 성경’에는 ‘테오스(Theos)’로 표현돼 있다. 그는 절대적이고 전지전능하며, 존재하는 모든 것을 창조했다.

그리스 시인 헤시오도스(기원전 8세기)도 ‘신통기(神統記)’(116~138행)에서 천지창조를 노래한다. 태초에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난다. ‘카오스(Chaos)’다. 흔히 ‘질서’를 뜻하는 코스모스(Cosmos)와 대립되는 ‘혼란’으로 이해되지만, 원래 ‘뭔가를 담아낼 수 있는 빈 그릇’을 뜻한다.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모든 것을 품어 안는 거대한 몸집의 신(神·theos)이다. 그가 창조주인가? 유일한 신인가? 아니다.

태초에 카오스가 품어낸 것은 ‘가이아’(Gaia·땅)다. 가이아를 품은 카오스는 짙은 ‘어둠(에레보스)’을 아들로, 깜깜한 ‘밤(닉스)’을 딸로 낳는다. 성경에서와 달리 어둠과 밤은 그 자체가 움직이는 신이다. 최초의 남매인 에레보스와 닉스는 맑은 ‘천공(아이테르)’과 밝은 ‘날(헤메라)’을 낳는다. 환한 하늘이 짙은 어둠으로부터 열리는 찬란한 아침 풍경, 유태인에게 그것은 유일신 여호와가 창조해 인간에게 베풀어 준 은총이지만, 그리스인에게 그것은 어둠과 밤의 사랑이요, 천공과 날의 힘찬 탄생이다. 유태인의 신은 세계 너머에서 세계를 창조하고 연출하지만, 그리스인의 세계는 신으로 가득 차 있다. 세계는 신 자체이며, 신들의 운동이다.

한편 헤시오도스가 그려주는 ‘가이아(땅)’는 모든 것을 낳는 여신(女神)이다. 그녀는 ‘하늘(우라노스)’을 낳아 위로 들어올리고, 많은 ‘산(우로스)’을 낳아 품에 안는다. 평평한 땅이 울퉁불퉁 굴곡을 드러내며 산과 산맥을 빚어낸 것이다. 꿈틀거리며 솟아나는 지평선을 상상하라. 발기하듯 돋아나는 산들의 융기, 심장의 박동 곡선처럼 일렁이며 봉우리와 골짜기가 태어나는 장면을. 가이아는 ‘바다(폰토스)’를 낳는다. 땅이 녹아내려 물이 되고, 거대한 바다를 낳은 것이다. 하늘도 산도 바다도 성경에선 창조주의 작품들이요, 객체이지만 헤시오도스에겐 신들의 탄생이며 운동의 주체다. 시인은 눈에 보이는 자연현상의 내면에 역동하는, 보이지 않는 신들의 모습을 꿰뚫어 본 것이다.

빛으로 그어지는 하늘과 땅의 구분선은 날마다 어둠 속에서 지워지고, 어둠 속에서 하늘과 땅은 한덩어리로 뒤엉킨다. 가이아가 아들인 우라노스와 밤마다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하늘과 땅의 살 섞음. 그로부터 대양(大洋·오케아노스)과 별(휘페이론), 기억(므네모쉬네)과 법도(테미스)…그리고 시간(크로노스)이 탄생한다. 막내로 태어난 크로노스는 아버지 우라노스를 제압하고 최고의 신이 된다. 시간 앞에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의 운명. 세월의 흐름을 도대체 무엇이 이겨낼 수 있겠는가? 세계는 크로노스의 힘 앞에 시들고 만다.

하지만 유태교의 신은 시간을 제압한다. 시간을 초월해 존재하며, 시간 속에서 다른 모든 존재들을 창조하고 섭리한다. 시간은 피조물을 규정하는 물리적 존재조건일 뿐, 언감생심 신이라니! 성경의 신은 유일하다. 여호와 외에 신이란 없다. 인간만이 “그의 형상대로 창조되어”(창세기) 신의 여운과 흔적을 간직하고 있을 뿐,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신일 수는 없다. 인간은 그 이외의 어떤 존재도 신으로 섬겨서는 안된다(출애굽기). 여호와는 창조자로서 “스스로 있는 자”(출애굽기)이며, 피조물을 초월한 존재다. 누가 그를 만들어낸 것도 아니다. 그는 없다가 생겨난 것이 아니며,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고, 시간 너머에 그저 그는 ‘있다’.

그런데 그는 피조물을 초월해 있으면서도, 없는 곳이 없는 존재라고 한다. 만물과 떨어져 있으면서 동시에 떨어져 있지 않은 존재. 마침내 신은 스스로 인간이 되어 나타난다. “태초에 말씀(logos)이 있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으니, 이 말씀이 바로 하나님이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요한복음) 인간이 된 신(神), 신비로운 존재의 전이. 그가 예수이다.

반면 헤시오도스는 어둠과 빛, 밤과 낮, 하늘과 땅 등 자연 현상을 단순하게 자연 현상으로 보지 않고 신비로운 힘을 지닌 신 자체로 보았다. 그뿐이 아니다. 기억과 시간, 사랑, 법도, 지혜, 운명 등 인간 사회의 모든 현상들도 신으로 형상화된다. 모든 현상은 평범하고 당연한 일상이 아니다. 모든 현상은 신비로운 힘을 가진 신 자체의 현시다. 평범함 속에서 신비로운 힘을 발견할 수 있는 정신세계. 이곳에서 신은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들과 어울리고, 헤라클레스처럼 인간마저 신이 되기도 한다. 철학자 탈레스는 말했다. “만물은 신들로 가득 차 있고”, “신은 우주의 정신이며, 만물은 살아있고, 신령으로 충만하다”라고.

〈김헌|서울대 협동과정 서양고전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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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의 빛으로]신(theos)이란 무엇인가
입력: 2007년 01월 19일 14:56:15
그리스 시인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등장하는 가이아 여신.
극도의 놀라움을 표현하기 위해 일상어법 속에는 신의 개념이 있다. 놀라운 적중률의 주몽 같은 이를 ‘신궁(神弓)’, 이루 말할 수 없이 잘 달리는 말은 ‘신마(神馬)’라 한다. 사지 멀쩡한데 기적처럼 군대를 면제받은 특권층의 자제는 ‘신의 아들’이다. “신통(神通)하네” “신기(神奇)하네”라는 말도 자주 듣는다. 일상적 어법에서 ‘신(神)’이란 ‘인간’이나 ‘자연’과 대비되며, 초인간적·초자연적인 불가사의한 사태를 표현할 때 쓰이는 개념이다. 그래서 신의 개념은 인간의 한계와 그 한계를 넘어선 영역과 존재를 전제할 때, 의미를 갖는다. 인간의 능력이 끝나는 지점에서 신의 개념이 시작되며, 인간의 한계 너머에서 신은 존립하기 때문이다. ‘신’의 개념은 인간의 자기한계 고백이다. ‘신’이란 ‘인간 한계’ 너머를 지칭하는 일반 명사이며, ‘인간 한계 너머’란 바로 ‘신’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신비한 모든 것을 ‘신’으로 일컫는 그리스 사유 방식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신’을 뜻하는 그리스어는 ‘테오스(theos)’다. 이 명사는 ‘신비로운, 놀라운, 신기한’이라는 뜻의 형용사 ‘테이오스(theios)’에서 파생됐다. 사정은 이렇다. 가령, 사랑에 빠진 한 남자가 있다 하자. 사랑하는 여인만 보면 사정없이 떨리고 두근거린다. 평상시에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신기한 일. “사랑은 정말 신비로워(theios).” 이때 ‘theios(신비롭다)’라는 말은 사랑을 꾸미는 형용사다. 이로부터 “사랑이란 신비로운 것”이라는 말이 가능하다. ‘신비롭다’는 술어가 ‘신비로운 것’이라는 명사로 바뀐 것이다. 형용사의 명사화, 속성의 실체화. 남녀 사이의 신비로운(theios) 사랑은 사랑의 신(theos)이 되어 그 신비로운 관계를 일으킨다. 형용사의 실체화, 추상명사의 고유명사화, 신비로운 현상의 신격화. 사랑(eros)의 신 에로스(Eros)는 그렇게 탄생됐다.

고대 그리스인은 인간이 넘을 수 없는 한계선 위쪽에서 운동하는 신의 개념을 통해, 그 한계선 아래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 자신의 본성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나아가 그들의 신화는 존재 세계의 전체를 이해하기 위한 사유의 틀로 확장된다. 보이는 모든 현상 너머에는 보이지 않는 신들의 힘이 작동한다는 생각-신화의 이분법적인 사유의 틀. 이는 ‘현상’과 ‘현상 너머의 형이상학적인 원리’를 전제하는 데로 이어진다. 본질적으로 서구의 철학과 과학은 ‘현상’을 출발점으로 그 너머로 나아가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형이상학적인 원리’를 추구하는데, 이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지향성은 원초적으로 신화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합리적인 로고스(logos)적 사유가 뮈토스(muthos)적 사유에 근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김헌/서울대 협동과정 서양고전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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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의 빛으로](4)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탄생한 인문학
입력: 2007년 01월 26일 15:10:38
원래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은 인간에게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다. 인간에게 가장 재앙이라 일컫는 판도라도 제우스의 선물이라는 점은 이를 잘 말해준다. 어쩌면 인간들과 신들은 갈등과 경쟁 관계에 놓여있었다. 인간들은 틈만 나면 신의 세계에 도전했고, 수가 틀리면 다른 이름의 신을 섬기겠다고 협박을 일삼았다. 이는 아폴로 신이 인간에게 한 경고 “너 자신을 알라(gnothi sauton!)”에서 역설적으로 잘 드러난다. 요즘 말로 하면 “너나 잘 하세요!”일 것이다.

삶의 터전인 들판의 한 중앙에서 서로 포옹하고 있는 두 사람은 사람 인(人)자를 형상하고 있다. 이 그림을 통해 인간을 서로를 유익하게 해주는 존재임을, 곧 더불어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그래서 인간임을 작가 코멘스키는 보여주고 있다.(얀 아모스 코멘스키의 ‘그림으로 파악하는 세계’, 234쪽, 1658년)
소크라테스가 했다고 알려진 이 말은 그리스 제 7현인 중의 한 사람인 스파르타 출신 킬론이 델피신전에 봉헌한 헌사로, 사원 앞의 주랑에 새겨져 있다(파우사니아스 제10권 24장 1절). 물론 신들도 인간이 인간답게 살도록 가르치기 위해 노력을 안한 것은 아니다. 처음엔 수치(aidos)를 보내고, 다음엔 정의(dike)를 파견하고, 이도 저도 안되자 홍수와 지진으로 협박하고, 전쟁으로 위협도 했다. 하지만 우주 삼라만상의 존재 중 인간만한 별종은 없는지라 신들도 끝내는 손을 놓고 말았다. 신들이 떠난 지상은 온통 서로 치고받고, 맞고 때리고, 붙고 떨어지는 인간들의 싸움질로 가득찬 아수라장이 돼버렸다. 그런데 이런 아수라장의 한 복판에서 ‘이러면 안된다’ ‘인간답게 사는 법(humaniter vivere)’을 찾아야 한다는 반성(reflexio)이 인간 스스로에게서 자생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렇게 인간의 이성과 양심에 잉태된 반성이 제 모습을 갖추고 세상에 등장한 때는 기원전 62년, 장소는 로마의 한 법정이었다.

법정을 연 사건의 발단은 기원전 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해는 대중영합주의로 세력을 얻은 폼페이우스 일파가 로마의 부랑민과 폭력배를 청산한다는 핑계로 외국인 추방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던 시기다. 이 운동으로 제정된 ‘파피우스’ 법에 따라 아르키아스(기원전 119~44년)라는 그리스계 안티오키아 출신의 시인이 추방될 처지에 놓였고, 키케로가 나서서 그를 구해준다. 이 재판은 굳이 키케로가 나설 필요도 없는 평이한 사건이었다. 신출내기 변호사라도 이길 수 있는 그런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당시 콘술까지 지낸 키케로까지 나선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여기서부터는 키케로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검사) 그라티우스여, 자네는 묻고자 할 것이다. 우리가 이 사람에게 이토록 열정적인 사랑을 보내는 까닭을 말이다. 이 사람은 우리에게 힘을 주기 때문이다. 소란스러운 광장의 다툼에 지친 마음엔 생기를, 말싸움에 이력이 난 우리의 귀엔 휴식을 불어 넣어준다. (중략)그리고 배심원들이여, (중략)다른 사람들이 만약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놀자판 축제만을 위해서, 여타의 오락만을 위해서, (뭔가를 잊고 즐기는 것만 추구하는)마음과 몸의 휴식을 위해서, 그토록 많은 시간을 밤늦은 술자리에, 주사위(도박)에, 공놀이에 허비했다면, 나는 나를 위해서 이 학문들의 광맥(鑛脈)으로 돌아와 깨고 닦고 가꾸는 데에 그 시간을 투자했기에 말이다. (중략)지금 하고 있는 이 연설도, 비록 미력에 불과했지만 위험에 빠진 친구들을 구하는 데 결코 실패한 적이 없던 이 능력도 그 뿌리는 사실 이 학문들에 있고, (여기에서)성장한 것이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별 것 아닌 것으로 가볍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나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최상의 힘을 나는 어떤 샘으로부터 길어올리고 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낀다. 무릇 한 인생을 살면서 다른 무엇보다도 칭찬과 명예를 추구하는 데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고, 그런데 이것을 실천하면서 감내해야 하는 신체적 고통, 추방, 죽음의 위험까지도 가벼이 여겨야 함을, 어린 시절에 많은 사람의 가르침과 많은 글에서 배우지 않았다면 나는 결코 국가의 안전을 위해서 저 숱한 종류의, 저 대단했던 전투에 그리고 오늘 벌이는 이 재판처럼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드는 악한들의 공격에 이 한 몸을 내던지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책들은 모범사례(模範事例)로, 현인들의 목소리는 규범전례(規範典例)로, 옛 역사는 전범선례(典範先例)로 가득 차 있다. 문자의 빛이 없었다면 이 모든 모범들은 어둠속에 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스와 로마의 작가들은 가장 용감했던 이들을 경탄은 물론 본받음의 대상이 되도록, 얼마나 많은 위인들을 전해주고 있는가? 내가 국가를 통치할 때 나의 마음과 정신을 이끌어주고 지켜준 것은 바로 이 위인들에 대한 생각, 바로 그 자체였다. 나는 이 위인들을 항상 마음의 첫 자리에 모셔두곤 했다.”(아르키아스 변론 제12~14장)

각설하자면, 키케로가 아르키아스를 구제키 위해 나선 것은 학문을 구제하기 위해서였다. 이 학문을 ‘별 것 아닌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 학문은 평상시는 아무런 쓸모가 없을지 모르지만 언젠가 한번은 꼭 ‘최상의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인간답게 살고자 할 때 말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종종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 뭔가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할 경우에 힘이 되고, 더 나아가 국가공동체의 운명까지도 결정해야 하는 위치에 있을 때는 더 그렇다는 것이다. 적어도 키케로 본인에게는 그랬다. 키케로가 저토록 강조하고 있는 저 학문, 평상시엔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는 저 학문, 그게 바로 오늘날 우리의 ‘인문학(humanitas)’이다. 결론적으로 아르키아스 같은 시인, 곧 인문(人文) 일을 하는 사람들을 추방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정신과 영혼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당장 쓸모가 없다고 추방하는 사회는 더 이상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닌 야만(barbarus)의 세계라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로마의 역사가 잘 보여준다. 피비린내 나는 내전으로 점철됐던 삼두정시대와 공화정의 몰락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로마 사회의 위기를 키케로는 미리 꿰뚫어 보았기에 ‘별 것 아닌 것’을 지키기 위해서 법정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이 ‘별 것 아닌 것’을 지키는 와중에 인문학이 탄생한 것이다. 따라서 인문학이 태어난 곳은, 흔히들 알고 있듯이 그런 고상한 곳이 결코 아니다.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이 인간들에게 선물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삶의 한복판에서 사회적 위기와 함께 태어난 학문이다.

〈안재원|서울대 협동과정 서양고전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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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의 빛으로]인문학, ‘너 자신을 알라’ 에서 출발
입력: 2007년 01월 26일 15:10:42
본래 인문학은 ‘너 자신을 알라’라는 아폴로 신의 경고에서 유래한다. 이같은 신의 경고에 인간들 중 가장 강력하게 반발한 사람은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일 것이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떠들고 다녔기 때문이다. 이 주장에 대해 가장 강렬하게 반박한 사람은 소크라테스였다. 그는 ‘너 자신을 알라’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의 핵심 단어인 ‘자신’에 대한 깊은 통찰을 통해서 그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아폴로 신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신탁이 새겨져 있었다고 전하는 델피 신전.
인간이 자신에 대한 지식(self-knowledge)을 갖게 되는 순간이다. 이렇게 인간은 신과의 대비를 통해서 발견된다. 인간에 대한 자기 지식이 없어서 파멸한 이도 있다. 오이디푸스 왕이다. 그는 누구도 풀지 못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 정도로 명석했지만 ‘자기가 누구인지’를 모르기에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이상의 진술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발견과 관련해 그 탐구의 돌파구를 열어 준 것은 사실 인간이 아니라 아폴로 신이라는 점을 확인한다. 이것이 아마도 그리스 인문학의 핵심일 것이다.

그러나 로마 인문학은 인간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그리스인들과 달리 로마인의 중심에는 신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예컨대 키케로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경고와 관련해 ‘내가 누구인지’를 묻지 않는다. 그의 관심사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며 그의 최대 화두는 “인간답게 사는 것과 그 방법”이었다. ‘아르키아스 변호’가 바로 그 전거(典據)다.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목적(quae ad humanitatem pertinent)에 봉사하는 모든 학문들은 서로가 서로를 묶는 공통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고 마치 혈연에 의해 연결된 것인양 상호 결속되어 있다.”

놀랍게도 키케로는 학문들이 섬겨야 할 주군(主君)의 자리에 진리(veritas)가 아니라 ‘사람됨’(humanitas)을 놓고 있다. 순수한 의미에서 인간이 중심에 서있는 인문학이 등장하는 순간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문학이 신들의 세계를 무시하는, 그러니까 불경죄에 해당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신들 역시 인간 내면의 저 양심의 세계(religio)에서 얼마든지 인간을 조정하고 다스릴 수 있는 공간을 인문학은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형성된 서양의 인문학(humanitas)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최소 120년 이전일 것으로 추정된다. 인문학이라는 말이 당시 조선어에는 없었던 모양이다. 당시 조선어 사정을 잘 알려주는 ‘라한소자전’은 ‘humanitas’를 ‘인셩’ ‘량선’ ‘례모’등으로 소개한다. 흥미로운 점은 1936년 작업에 착수해 1959년 1월29일 경향신문사에서 출판한 윤을수 신부(1907~71)의 ‘라한사전’에는 ‘studia humanitatis’라는 별도 표제와 함께 ‘인문학’이라는 표현이 나온다는 것.

그런데 이 표현이 일본인 학자 다나카가 편찬한 ‘라화사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인문학’이라는 번역어를 누가 만들었는지가 우리의 관심을 끌지만, 문헌자료 추적의 어려움으로 이 문제는 여기서 일단락지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윤을수 신부의 고유 번역일지도 모르겠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 육당 최남선도 인문학에 해당하는 영어 ‘fine art’를 ‘美術(미술)’로 사용하고 있었기에 말이다.

〈안재원/서울대 협동과정 서양고전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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