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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의 빛으로](6) 새로운 영웅 아이네아스의 탄생
입력: 2007년 02월 09일 14:58:44
로마의 가부장 전통(pater familias)을 표현한 조각상. 가운데 중심 인물이 아이네아스이고, 어깨 위에는 아이네아스 가문의 신주(神主)를 든 아버지 앙키세스, 뒤에는 아들 아스카니우스다. 로렌초 베르니니가 1618년부터 2년에 걸쳐 완성했다(로마 보르게세 미술관 소장).
“기억하라! 로마인이여, (굳건한 기강 위에 세워진) 국권의 힘으로 인민들을 다스리는 것, (이것은 너희들만의 기술일진저!), 평화의 법도를 수립하는 것, 곧 순종하는 자에겐 관용을, 오만한 자에겐 징벌을 내리는 것을(‘아이네이스’ 제6권 851~53장).” 이는 제우스가 아버지 앙키세스의 입을 통해서 로마의 건국 원조인 아이네아스에게 내린 천명이다. 로마식 ‘평천하(平天下)’선언이다. 이 ‘평천하’를 수행할 인물에 대해서 베르길리우스(기원전 70~19년)는 작품 ‘아이네이스’에서 그의 첫 등장 장면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중략)온 바다가 심연의 밑바닥으로부터 뒤집히면서 일으킨 거대한 파도를 바람들이 해안으로 거세게 몰기 시작하자, 선원들은 비명을 내지르고, (돛을 지키는) 밧줄들이 아우성치기 시작한다. 일순간에 먹구름이 덮쳐 트로이인들의 눈에서 하늘과 낮을 강탈해 가고, 암흑이 바다를 뒤덮는다. 하늘을 찢을 듯한 천둥과 창공을 불태울 듯한 번개가 번쩍이면서 눈앞에서 일렁이는 죽음을 선원들에게 몰아대는데, 순간 아이네아스는 공포에 질려 사지가 풀려버리고, 절망의 통성(痛聲)과 함께 하늘의 별들을 향해 두 팔을 뻗어 올린다(‘아이네이스’ 1권 84~94장).”

데뷔 무대치곤 너무 초라하다. 울고 있는 아이네아스의 모습은 영웅으로 보기에는 너무 졸렬하다. 유사한 상황에서 하늘에 대고 포효를 내지르는 그리스의 영웅 아이아스를 보라! 죽는 것은 무섭지 않으니 암흑이 아니라 광명천지에서 장렬하게 전사토록 해달라고 제우스에게 대드는 아이아스를! (‘일리아스’ 17권 645~47행). 이에 반해 아이네아스는 여느 선원들과 마찬가지로 울면서 징징거리고 있다. 용기와 평정심을 가지고 상황을 진두지휘해야 할 사람이 말이다. 이런 그를 영웅이라 할 수 있을까? 영웅답지 못한 그의 모습은 이것만이 아니다. 사랑하는 아내 크레우사도 지키지 못했고, 자신을 가장 사랑했던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내였다. ‘아버지에 대한 효심(pietas erga parentem)’ 때문이라 하지만, 어쩐지 궁색해 보인다. 어쨌든 파파보이(papa-boy)였다. ‘일리아스’의 아킬레우스와 비교해보라! 소위 자신의 ‘왕의 남자’인 파트로클로스가 전사하자, 복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전투에 나선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그는 만인의 사랑을 받는 불멸의 영웅이다. 이렇게 영웅이란 지켜주어야 할 것을 지켜주고 소중한 것을 위해선 모든 것을 걸 줄 알아야 한다. 이 기준에서 볼 때 로마의 아이네아스는 자격이 한참 모자라 보인다.

어쩌면 그리스식, 더 정확히 호메로스식 영웅의 기준에서 보면, ‘아이네이스’에서 진정한 영웅은 아이네아스가 아니라 오히려 여왕 디도일 것이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했으며 자신의 생명도 내던졌던 여인이었기에.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여왕 디도의 사랑이 과연 영웅적인지를. 그녀는 한 나라의 책임자다. 그녀 안에는 그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카르타고 인민과 카르타고가 그녀의 일부이다. 그녀는 자신만의 존재가 아니고, 만인의 존재이다. 자신의 운명이 곧 국가의 운명인 인물이다. 그런 그녀이기에, 여왕으로서 그녀의 사랑이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광기(furor)는 아닐까? 이 광기는 사랑의 감정만이 자신의 모든 것이라 속였고, 자기 안의 다른 존재들도 자신의 일부임을 알아보지 못하게 했다. 결국 그녀를 사로잡은 광기는 절제와 품위로 넘쳤던 한 여왕을 죽음으로, 조국을 파멸로 이끌게 된다.

가슴에 꽂은 비수를 아래로 떨구고 있는 여왕 디도와 이를 애절하게 지켜보고 있는 카르타고 사람들의 모습을 그림과 글로 실은 필사본. 바티칸 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반면, 아이네아스의 태도는 딱 파파보이의 그것이다. 그는 사랑이 아니라 아버지의 명령을 따른다. 아이네아스는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깊은 사람이기 때문이라 한다. 나름대로 인간적인 번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종국엔 사랑을 배신한다. 아무래도 쏟아지는 비난을 모면하기는 어려울 듯싶다. 이를 염두에 두었는지 베르길리우스는, 아이네아스의 효심은 파파보이의 그것이 아니라 한다. 이 마음은 단지 생부 앙키세스만을 향하는 혈연적 사랑이 아니기에. 오히려 이 효심 안에는 멸망한 조국의 재건이라는 역사적 사명과 세계에 평화의 법도를 수립해야 하는 천명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아이네아스 안에는 아이네아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로마 인민과 로마도 함께 있다. 이런 운명(fatum)의 인물이기에, 아이네아스는 자신에겐 황홀하지만 다른 만인에겐 참혹한 사랑의 달콤함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그들도 결코 남이 아니므로. 자식, 아버지, 아내, 형제, 친척, 친구, 로마의 인민으로서 자신들의 몫을 아이네아스 안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저울질이었으리라. 아이네아스의 선택은 자신만을 위한 사랑의 달콤함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다른 이들의 몫에 대한 존중이었다. 이 존중을 로마인들은 피에타스(pietas)라 부른다.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사랑에 대해서 자식이 부모에게 가져야 하는 마음, 효(孝)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나라가 인민에게, 인민이 나라에 대해서 가져야 할 마음, 곧 충(忠)으로 확장된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로마식 충효지심(忠孝之心)인 피에타스가 연인에 대한 사랑을 희생시킬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인간 사회의 기본 원리인 남녀의 사랑을 희생시킬 만한 가치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베르길리우스가 피에타스의 확립을 위해 사랑을 희생시킨 데에는 다른 사정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여러 답변이 가능하겠으나, 이런 해명도 가능하리라. “이곳은 사는 동안 형제를 증오하는 놈, 아버지를 두들겨 팬 패륜아, (의지할 곳 하나 없는) 피호민을 속인 귀족 떨거지들, 평생 돈만 알고 (행여 새지나 않나 두려워) 혼자서만 꿰차고 친척들에게 베풀지 않은 수전노(이런 족속이 제일 많은데)들, 간통 중에 걸려 맞아 죽은 (연)놈들, 칼과 창을 들고서 들어와선 안 되는 땅을 군홧발로 짓밟은 놈들, 주인을 속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놈들이 갇혀서 처벌을 기다리고 있는 곳이라오(‘아이네이스’ 6권 608~613행).” 이 대목은 지옥의 한 장면이지만, 실은 지상 로마의 현실이기도 하다. 온갖 잡범들과 법을 어기고서 군대를 로마로 끌어 들이고 있는 악한들로 가득한 지상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림으로, 오늘날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런 현실을 어떤 사람이 바로 잡고자 한다면, 그 사람은 어떤 품성을 가져야 할까? 온갖 범죄로 가득한 나라를 바로 세워야 하는 책무를 지닌 사람에게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이는 분명하다. 그것은 청춘남녀간 사랑의 정념이 아니라, 타인의 몫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할 줄 아는 법과 사람 사이의 관계(人間)를 정립해주고, 사람이 사람답게 처신하도록 해주며, 곧 예의를 회복시켜주는 복례(復禮)의 덕인 피에타스이다. 그것은 전쟁과 내전으로 사람이 짐승으로 떨어지고, 가족도 무너지고, 법의 강제력으로도 나라가 통제가 안 되는 상황에서, 그곳을 다시 사람 사는 곳으로 만들고자 할 때 요청되는 내심(內心)의 명령이다.

칼을 외부의 적으로 향하게 할 때에 필요한 것은 용기(virtus)이다. 그러나 그 칼이 내부의 세계로 향하게 될 때, 그것은 광기(furor)로 변한다. 아무리 내부 세계가 지옥이라 할지라도 저 칼을 내부로 돌려선 안 된다. 복례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폭력이 아니라 정신의 무기이기에. 베르길리우스는 그 무기로 인내와 관용이 결합된 피에타스를 제시한다. 보기에 지저분하고, 하는 일이 일사천리로 시원스럽게 진행되지 않는다 해서 한 판에 싹쓸이해야 한다는, 한 번에 다 씻어내야 한다는 조급증은 이럴 때에 가장 위험한 생각이기 때문이다. 조급증의 소유자는 이런 상황에서 칼의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 있다. 이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그 사회는 내전(bellum civile)이 시작된다. 기원전 80년 술라 독재의 로마를 봐라! 정신의 무기는 그 효과가 당장 드러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 정신의 무기, 곧 인문 교양이 필요한 단계로 접어든 사회는 따라서 더딤과 답답함을 견딜 줄 아는 법을 요구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적어도 속전속결을 요구하는 전쟁터의 영웅에게는 더욱 그러하리라.

이런 이유에서 베르길리우스는 아이네아스를 호메로스식 전쟁 영웅에서 인내와 관용의 인물로 탈바꿈시킨다. 더디고 답답해 보이는 지도자로 말이다. “‘오 동료들이여, (중략)자네들은 이보다 더 험한 것도 겪지 않았소. (중략)자! 그러니 탄식과 두려움일랑 떨쳐 버리고 용기를 냅시다! 이 고생도 언젠가는 즐거운 추억이 될 것이오. 비록 다양한 고난에 부딪히면서 숱한 험로를 지나고 있지만 우리는 라틴 땅으로 향하고 있소. 운명이 우리에게 보장한 안녕(安寧)의 땅으로 말이오. 그곳에 트로이를 재건하는 것이 우리의 천명이오. 견디시오. 장성하게 뻗어 나갈 나라를 위해서 당신 스스로를 지키시오.’ 아이네아스는 이렇게 말했다. 산더미 같은 걱정에 짓눌려 견디기 힘들었지만 얼굴로는 거짓 희망을 지어 보이면서, 가슴 저 깊은 곳으로는 고통을 억누르면서 말이다(‘아이네이스’ 1권 198~206장).” 자기도 견디기 힘든 것을 남에게 견디라고 한다. 이런 면에서 그는 영웅이 아니다. 뭐 하나 해결해 주지도 못하니 말이다. 그렇지만 수많은 고초를 통해서 형성된, 참고 기다릴 줄 아는 법이 그의 내면에 굳건하게 자리 잡게 된다. 이 법은 인고의 세월을 통해 언젠가는 얻게 될 결실(로마의 ‘평천하’)을 위한 기본 원리로 작동한다. 이 점에서 그는 새로운 영웅(heros novus)이다. 그는 자기를 견딜 줄 아는 극기(克己)의 영웅이다. 극기의 힘은, 그것이 힘이라는 점에서 외면의 용기와 다르지 않다. 같은 힘이다. 외부로 향한 용기가 내면으로 승화된 힘이 극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면화는 쉽지 않다. 여기엔 저 숱한 견딤의 세월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견딤을 통해서 마침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법, 곧 예의를 회복하는 길이 열리게 된다. 이 길을 열어 준 사람이 아이네아스이다. 즉, 그는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영웅이고, 이를 통해서 로마의 ‘평천하(平天下)’를 가능케 했다. 물론 로마의 ‘평천하’가 군대의 힘과 외면적 용기에 의지한 면도 없지 않지만, 근본에 자리 잡고 있는 힘은 로마인의 내심에서 작동하고 있는 ‘극기복례’의 원리인 피에타스일 것이다. 그러므로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도 않았고,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안재원|서울대 협동과정 서양고전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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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사유하기]말한다 “나는 나를 그린다”… ‘렘브란트 자화상’
입력: 2007년 02월 09일 14:58:24
‘창가의 자화상’ (1648)
옛날 초상화의 인물들은 날 불편하게 한다. 그들은 신이나 왕, 귀족과 같은 이른바 ‘고귀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이미지는 대체로 무뚝뚝하고 고상하며 근엄해 보인다. 마치 인형극 속의 꼭두각시처럼, 아니면 공식 석상의 인물들처럼 입은 꽉 닫혀있고, 눈빛은 주변을 경계하는 듯하다. 표정은 가면처럼 굳어있고, 친밀감을 느끼기 어렵다. 자세나 몸짓, 동작과 행위는 의례적이어서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들 주인공은 곧 상인 같은 신흥자본가들로 채워진다.

역사적으로 보면 초상화의 인물들은 대개 정치적 권력이나 경제적 부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 삶을 상징하는 여러 소품들-비단이나 털모자, 귀고리나 반지 같은 금은 세공품 등-이 늘 주위에 배치돼 있다. 그러나 이같은 대상은 차츰 변한다. 돈과 힘과 권위를 가진 인물들로부터 화가의 가족이나 친구, 일반 서민으로 모델이 옮겨지면서 초상화는 지난날의 이상화된 형태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다. 좀더 현실에 밀착한다고나 할까. 무엇을 과시하거나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 자체, 인물의 성격과 고민과 세계관이 표현되는 것이다. 자기를 그린 초상화, 자화상에서는 개인의 복잡다단한 내면이 특히 잘 나타난다.

렘브란트(1606~69)의 자화상은 회화사에서도 유일무이하다는 평을 받는다. 남아있는 유화는 거의 쉰 개, 에칭판화는 서른 개, 소묘는 열 개 정도 된다. 라이덴에서 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하던 스무살 무렵부터 암스테르담에서 죽을 때까지 그는 거의 매년, 때로는 1년에 여러번 자신을 그렸다. 동시대의 루벤스가 네 개, 푸생은 두 개, 벨라스케스는 단 한개의 자화상을 그린 것과 비교하면 확연히 차이난다. 그 많은 자화상 가운데 내가 즐겨 보는 에칭판화가 하나 있다. ‘창가의 자화상’(1648)이다.

이 판화에서 렘브란트는 작업 중이다. 열린 창가로 빛이 들어오고, 그는 무엇인가 그리고 있다. 그리다가 잠시 고개를 들어 정면을 쳐다본다. 여기에는 젊은 날의 화려함이나 야심이 없어 보인다. 입은 옷은 낡은 작업복이고, 모자도 흔히 쓰는 멋들어진 화가의 것이 아니다. 아무런 장식도 없는 평범한 모자. 길게 늘어뜨린 머리나 멋 부린 이전의 턱수염 대신 코밑수염이 나 있다. 그는 더 이상 외모에 무신경한 듯하다. 나이 마흔 둘. 나는 오로지 나를, 세상을 기록할 것이니. 응시하는 눈빛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대상에게 무언가 기대하기보다는 이 대상을 투시하려 하고, 이 투시를 통해 또 다른 세계를 꿈꾸는 듯하다. 주위에 있으나 속하지 않은 그러나 속하고 싶은 어떤 세계를 그는 떠올리는 것인가.

‘창가의 자화상’은 9년전에 그린 ‘돌 벽에 기댄 자화상’(1639년)과 자주 비교된다. 챙 없는 모자를 비껴 쓴 채 그는 정면을 주시한다. 입을 꽉 다문 채 왼쪽 어깨를 내밀고 있다. 눈빛은 이때도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옷은 화려하고 모자도 한껏 멋을 풍긴다. 장갑의 무늬나 목걸이의 십자가도 보인다. 팔이 기댄 벽은 허물어지고 금 가 있지만 어떤 결의가 느껴진다. 존경하던 티치안이나 라파엘을 거울삼아 그는 이 그림에서도 모자의 형태나 위치, 몸의 자세를 바꿔 묘사한다. 대가의 이상을 배우고 따름으로써, 그러나 다르게 표현함으로써 이들처럼 독자적 길을 가겠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겐 마흔 둘 때의 작업복 모습이 더 맘에 든다. 그래서 방에 걸어놓고 시간 날 때마다, 지나칠 때마다 쳐다보곤 한다.

‘돌 벽에 기댄 자화상’ (1639)
이전의 화가와는 달리 렘브란트는 교회나 왕실, 귀족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가 기댄 사람들은 막 태동하기 시작하던 미술시장의 고객들이었다. 그 점에서 그는 자본주의적 시장원리를 이용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원리에 종속된 화가는 아니다. 예술의 상품시장화 속에서도 자신만의 회화세계를 창출했기 때문이다. 미술학자 존 몰리뉴는 그를 “반자본주의적 화가”라 말했지만, 사실 16세기에 유화가 번성한 것은 점증하는 자본의 구매력과 긴밀히 연관돼 있다. 거래와 교역, 유통과 무역의 발전이 유화의 시장적 구매를 지탱한 조건이 된 것이다. 이는 르네상스 시기 플로렌스와 베네치아의 회화 발전이 무역상을 통한 엄청난 부의 축적으로 가능했던 것과 같다. 그림은 동시대 지배계급의 소유욕과 이데올로기적 관심-자신의 정치경제적 힘을 확대코자 하는-의 결과로 나온 것이다.

이것은 중요하지만 그러나 하나의 관점이다. 우리는 경제적 조건과 이데올로기의 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 예술의 표현은 무엇보다 물질적 필요와 이념적 갈구 사이의 줄다리기 아닌가. 그러면서 이런 갈구에는 쉽게 말하기 어려운 충동과 내적 의지도 작용한다. 그러니 지난날의 렘브란트 해석이 흔히 그러했듯이, ‘자기탐구’나 ‘영혼’ ‘개인성’의 의미만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는 예술가와 작품, 그리고 시대조건의 상관관계를 함께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의 작품과 이를 둘러싼 다른 작품들과의 관계를 생각해야 하듯, 모티브와 양식 그리고 역사적 조건과 문화적 정신도 동시에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당시에 널리 퍼져있던 전통적 회화규범을 무조건 추종하지 않았다. 인물이 아름다울 때도 있지만 추한 모습도 여지없이 드러내고, 구성은 정제돼 있지만 그렇다고 일률적이지 않다. 그는 시대가 요구하는 것을 적극 받아들였지만, 이런 수용은 ‘현실에 충실하는 한도 안에서만’ 허락됐다. 그 외의 것은? 모두 자기 원칙으로 대신한다. 현실에 기반한 창조적 변형의 능력이 독자적 세계를 일군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관찰 속에 사람들의 일반적 고찰내용을 모두 녹여버린다.

나는 그리며 산다. 나는 숨쉬며 그린다. 나는 그리며 견디고 웃으며 그린다. 이렇게 그리며 판화 속 렘브란트는 내게 말한다. 지금은 일할 때, 네 세계를 구축할 때라고.

〈문광훈|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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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사유하기]김정희 150주기전을 다녀와서
입력: 2007년 02월 02일 15:05:58
-정격과 파격 사이 ‘秋史의 울림’-

추사의 말년 자화상
대도시에 살면서도 시내 나가는 것이 그리 반갑지 않다. 소음도 번잡함도 부담된다. 나갔다 오면 어지러워 세수부터 하게 된다. 그래도 나가지 않을 수 없는 때가 있다. 보고 싶은 전시회가 끝나고 있거나 그냥 돌아다니고 싶을 때. 지난 토요일 오후가 그랬다. 예술의 전당에 간 것은 한 가지 이유-추사 김정희의 자화상을 보고 싶어서였다.

추사가 남긴 것은 무엇이나 생기와 활력을 느끼게 한다. 면밀하면서도 호방하고 참신하면서도 어딘가에 뿌리박은 듯하다. 글씨나 그림, 논증과 편지 등 그가 손댄 모든 것에는 발랄한 정밀성이 배어 있다. 이것은 물론 내 아마추어적 인상에 불과하지만, 그래서 더 자세히 논의돼야 하지만, 대충 보아도 추사의 규모는 가늠할 만하다. 이것은 이미 한 글자의 운용에도 있다. 곧고 굽은 선이나 굵고 가는 획의 형태는 때로는 그림 같고 때로는 도형 같다. 나는 추사에서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 지난주 세상을 떠난 볼프강 이저(W. Iser)가 말한 것도 이런 것이었다.

야우스(H. R. Jauß)와 함께 ‘수용미학’을 정초한 이저는 작품의 의미란 수용자의 해석으로 이뤄진다고 주장했다. 그 것은 수용자의 자의성을 강조한 측면도 있지만, 작가만큼이나 독자도 작품의 의미형성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니까 작품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확정되지 않은’ 의미를 드러내고, 그래서 독자는 이 ‘빈 자리’를 채우는 능동적 역할을 한다.

이런 불확정적 의미구조는 문학을 넘어 예술일반에도 해당된다. 우리가 읽고 보고 듣는 작품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는다면, 이 영향력은 곧 작품의 호소력이면서 감상자가 만들어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예술작품은 내가 그 의미를 적극적으로 채울 때 하나의 ‘사건’이 된다. 추사의 말년 자화상은 내게 사건과도 같은 체험이었다.

낡은 탕건을 쓴 한 노인네가 화면의 아래편에 다소곳이 앉아 있다. 눈언저리와 뺨에는 크고 작은 주름이 져 있고, 두 눈 밑에는 깊은 그늘이 서려 있다. 수염과 구레나룻은 아무렇게나 자라 있고, 얼굴의 핏기도 빛바랜 옷처럼 사그라들고 있다. 그러나 눈매는 빛을 발하며 앞을 응시한다. 모든 것을 허무는 시간의 엄습을 시선은 거스를 수 있다는 것인가. 노인은 액자 밖으로 사라질 듯하다.

이 자화상은 소치 허련이 그린 다른 초상화들보다 더 핍진하게 추사의 말년 삶을 보여주는 듯하다. 편지 쓸 종이조차 없던 과천 시절 추사는 자기의 천한 몸이 무뎌져 갈수록 어리석고 염치 없어진다고 탄식했다. 이 그림은 그 퇴락의 시간에서도 자신을 직시하려 했던 어떤 기운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이렇게 덧붙였을까. “이 사람을 나라고 해도 좋고 내가 아니라고 해도 좋다. 나라고 해도 나고 내가 아니라고 해도 나다. 나이고 나 아닌 것 사이에 나라고 할 것이 없다…하하.”

이 자화상은 한때 진위시비 속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자찬을 내가 처음 읽었을 때 추사가 아니라면 이런 글은 쓸 수 없으리라 생각되었다. 시인도 이렇게 쓰기는 어렵다. 현실의 투시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이렇게 투시하는 내 생명이 꺼져가고 있다면, 이 의지란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이 부질없는 의지도 ‘부질없다’고 표현될 때, 그것은 허무의 차원을 넘어선다. 이 초월 속에서 나와 세계, 예술과 시간의 경계는 이미 없다. 그러니 표현된 것에 무슨 말을 더 보태며 무엇을 또 뺄 것인가. 적거나 그린 모든 것은 삶에 아무 것도 아니면서 실존의 전부가 된다.

추사에게 자기경계와 도량, 사실직시와 운치, 준엄함과 유머는 마치 연암에게 그러했듯이, 둘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것은 늘 정격(正格)과 파격(破格) 사이의 긴장을 유지한다. 스스럼없는 정신이 어느 한 편에 치우쳤다면, 그의 글은 이다지 큰 울림을 못 주었을 것이다. 결국 그 울림은 학문과 생활, 예술과 삶이 어긋나지 않은 데 있을 것이고, 작게는 ‘스스로 마음을 속이지 않는(自不欺心)’데서 올 것이다. 옛 것을 익히며 새 것을 만들어내는 이른바 법고창신(法古創新)도 이런 철저함의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근원은 둘로 나뉘지 않는다고 했다. 최상의 예술가에게 모든 것은 낱낱의 것과 융회관통(融會貫通)한다.

남은 것은 추사의 성취를 오늘의 세계 안으로 불러들이는 일일 것이다. 그것은 몇 단계의 절차를 요구한다. 우선 실증적 문헌분석이 있어야 하고-여기서 한학자의 도움에 의지해야 할 것이다-각 분야에서의 정밀한 논의가 축적되어야 하며, 이들 분야를 종합시킨 포괄적 관점의 해석사가 더해져야 한다. 추사 개인과 사회역사적 배경, 예술과 현실의 관계는 그런 통합적 해석의 예가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바탕 위에 150년전의 추사학을 오늘의 생산적 에너지로 변용시키는 일이다. 이 서너가지 요소들이 ‘동시에’ 구비되지 못한다면, 그래서 해석과 문장, 식견, 그리고 사상이 하나로 모아지지 못한다면 추사의 현대적 재구성도 그리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이 작업은 기존과는 전혀 다른 추사상(秋史像)까지 포함해야 한다. 또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추사는 오늘날의 의미 있는 사건이 된다.

전시관에서 나와 지하철을 탄다. 한강 철교를 지날 때 나는 도록 대신 밖을 쳐다본다. 서쪽 한쪽으로 구름이 걷히면서 햇살이 나고 있다. 가만 보니 오늘 처음 하늘을 본 것 같다. ‘소창다명 사아구좌(小窓多明 使我久坐)’라고 했던가. “작은 창에 볕이 많이 드니 나로 하여금 오래 앉아 있게 하네.” 9년의 유배생활 후 추사가 예순 무렵 쓴 글이다.

학교로 돌아와 자리에 앉는다. 추사처럼 나도 볕드는 창가에 잠시 앉는다. 그리고 밖을 가만히 쳐다본다. 짧은 해가 곧 지면 마른 나뭇가지 하나 제대로 못 볼 것이다. 잦아드는 햇살 아래 나는 ‘추사의 여러 다른 나’를 떠올린다. 추사전은 이달 25일까지 계속된다.

〈문광훈|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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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의 빛으로]영웅의 또다른 조건
입력: 2007년 02월 02일 15:05:48
‘일리아스’에서 영웅이란 탁월한 무술과 압도적인 힘으로 혁혁한 무공을 세우는 전사다.

그리스 최고의 연설가 데모스테네스.
그런데 그것만이 영웅의 유일한 조건은 아니다. 설득력 있는 말로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수사(修辭) 능력은 영웅의 또 다른 조건이었다. 그래서 설전이 벌어지는 회의장은 전쟁터와 함께 “남자를 명예롭게 하고” “남자들이 돋보일 수 있는 곳”으로 각광받았다. 꿀보다 더 달콤한 “감미로운 말을 하는” “웅변가” 네스토르는 창과 칼로 적을 제압하며 승리를 이끄는 아킬레우스 못지않은 존경을 받는다. 위기와 갈등의 본질을 바라보는 통찰력과 돌파구를 제시할 수 있는 지혜, 그 모두를 설득력 있는 언어로 담아낼 수 있는 수사의 힘. 접전의 현장에서 날렵하게 적을 무찌르는 전사를 보며 경탄하듯이, 갈등과 위기 속에서 갑갑한 사람들은 돌파구를 제시하는 지혜로운 언변에서 상쾌함을 느낀다.

헤시오도스는 이와 같은 언변의 능력을 무사(뮤즈)여신의 선물이라 노래한다. “…그녀들이 그를 보며/그의 혀에 달콤한 이슬을 부어 주나니/그의 입에서는 꿀 같은 낱말들이 흘러나오지. 사람들은/모두 그를 주목하고 있다네. 올곧은 정의로/법도를 분별하여 정하는 그를. 그는 실수 없이 연설을 하며/즉시 뭔가 중대한 분쟁을 요령 있게 해결하지. (중략) 편안하게 달콤한 말로써 권고를 하며/논쟁터로 나가는 그를 사람들은 신처럼 맞이한다네/존경스런 그 감미로움으로 인해. 그는 모여든 사람들 가운데 돋보이나니/이것이 인간들에게 준 무사(뮤즈)들의 신성한 선물인 것을.”(신통기(神統記)에서). 말의 힘은 한갓 인간을 불멸의 신처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또 다른 영웅의 조건이었다.

〈김헌/ 서울대 협동과정 서양고전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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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의 빛으로](5) 영웅의 조건
입력: 2007년 02월 02일 15:05:38
-목숨 버려 불멸의 명예 얻다-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1대1 대결(루벤스 작).
나무는 슬프다. 하늘에 닿으려는 열망이 땅에 뿌리를 박고 있어야만 하는 운명으로 끝내 좌절되기 때문이다. 무궁무진한 하늘을 바라보며 나무는 땅에 붙박인 몸체를 안타까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무는 아름답다. 땅에 뿌리를 박아야 한다는 운명에 짓눌려, 하늘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늘이 너무 높아도, 계절이 잎을 무너뜨리고 혹독한 입김으로 헐벗겨도, 끝내 좌절하지 않고 봄으로 살아나 꿋꿋이 하늘에 대한 꿈을 키워나간다. 절망은 없다. 찬란한 신록이 폭죽처럼 터져 하늘에 대한 희망이 계속됨을 천명한다. 나이테로 관록을 늘려갈수록 조금씩 하늘에 다가가며 열매를 맺고 새로운 씨앗을 땅에 뿌리며 꿈을 이어간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은 나무가 꾸는 꿈이 피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더 놀라운 것은 하늘을 향한 상승 욕구가 높아 갈수록, 땅속으로 자신을 더 깊이 뿌리박아 가는 나무의 지혜다. 단단한 땅으로 뚝심있게 파고들어 자신을 깊이 묻어가는 한편, 창공을 향해 끊임없이 높이를 더해가는 나무의 생태. 땅으로 깊어 갈수록 하늘로 높아 갈 수 있음을 아는 지혜가 심오하다. 살아서 하늘로 날아오를 수 없는 한 하늘에 대한 희망은 망상일 뿐이라고, 뿌리가 깊어갈수록 하늘로 상승하려는 소망은 더욱 더 실현될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 한계를 알면서도 도전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면서도 절망하지 않기에, 나무는 진정 위대하다.

인간도 나무처럼 슬프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존재. 죽음 이후엔 허무뿐일지도 모르는 존재. 하지만 그 운명에 굴하지 않고 영원을 지향하는 인간은 아름답다. 마치 나무가 땅의 꿈으로 끝나고 말 하늘에 대한 열망을 끝까지 간직하며 하늘로 가지를 뻗어 올리듯, 꼭 그렇게 죽어 없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안고도 영원함을 ‘멋지게’ 열망하던 사람들이 있다. 그리스 최초의 서사시 ‘일리아스’(기원전 8세기경)에서 노래되는 영웅들의 열정은 독특하다. 불로초(不老草)를 구하여 이 땅에서 육체적인 수명을 무한히 연장해 보려했던 진시황의 집념과는 다른 열정. 그것은 이 땅의 삶을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며, 피안의 영역에서 영원한 신의 품에 안기려는 기독교의 종교적인 노력과도 다르다. ‘나’를 지움으로 모든 고통과 찰나의 구속을 벗어나려는 해탈의 수행도 아니다. 이 세상의 삶을 값진 것으로 여기면서 죽음을 엄연한 필연으로 받아들이고, 불멸의 명예를 통해 영원하고자 하는 데서 그리스 영웅들의 모습은 고유한 빛을 발한다.

“어머니께서도 나에게 말씀하셨지. 은빛 발을 가지신 여신 테티스께서도/두 가지 운명 중에 하나가 나를 죽음의 종말로 데려간다고./만일 여기 남아 트로이아인들의 도시를 둘러싸고 싸우면/나에게 귀향이란 없어지지만, 명성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며/만일 내 고향 땅 집으로 돌아간다면/나에게 고귀한 명성은 없어지지만, 나의 수명은 길어질 것이며/나에게 결코 죽음의 끝이 일찍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트로이아 전쟁(기원전 1200여년경)의 최고 영웅 아킬레우스에겐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있었다. 평범하게 살며 장수를 누리는 길과 장렬하게 단명하며 불멸의 전설이 되는 길. 누구나 죽는다. 죽으면 ‘나’는 없어진다. ‘내’가 죽어 없어진 후에도 계속 살아남는 길은 나의 자식과, 나의 자식의 자식들에게 나의 이름이 기억의 대상으로 영원히 남는 것. 나의 명성이 멀리 사방으로 퍼져 나가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자손들에게 영원히 회자되는 것.

아킬레우스의 선택은 분명했다. “이제 나는 가겠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헥토르를 만나러/죽음의 운명을 나는 받아들이겠습니다. 그 언제든/제우스가 또 다른 불사의 신들이 끝내시길 원하시면/헤라클레스의 힘도 죽음의 운명을 피하지는 못했습니다./크로노스의 아들 제우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자였음에도. 운명이, 그리고 헤레의 참기 힘든 분노가 그를 제압했습니다./그처럼 나도, 만일 나에게 똑같은 운명이 정해졌다면/죽어 눕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고귀한 명성을 얻고 싶습니다.”

생각해보라. 아킬레우스는 3200여년 전 죽었으나, 그는 지금 여기 한반도에 사는 우리들에게도 기억되는 이름으로 여전히 살아있지 않는가? 그는 죽었으나 불멸한 영웅의 길을 택하였기에 지금도 살아있고 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스 영웅에게 최고의 가치는 불후의 명예. 그런데 불멸의 명예를 위해선 하나뿐인 목숨을 걸어야 한다. 불멸하기 위해선 ‘끝내주게’ 죽을 수 있어야 한다. 바꾸어 말하자면 죽기를 두려워하며 죽음을 피하려고 할 때, 이 땅 위에서 조금 더 길게 살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불멸의 명예를 얻을 순 없다. ‘멋지게’ 죽지 않는다면, 잊혀진다. 잊혀진다면, 끝장이다. ‘장렬하게 죽을 때 불멸한다’는 비극적인 이율배반-이것이 영웅들의 덕목이다. 트로이아의 전사 사르페돈은 출정하며 이렇게 말한다. “여보게 친구, 만약 우리 둘이 이 전쟁을 피하여/영원히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있을 수 있다면/나 자신이 맨 앞에 서서 싸우진 않을 것이다. /남자를 명예롭게 하는 싸움터로 너를 보내지도 않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헤아릴 수 없는 죽음의 운명이 버티고 서 있으며/그것들을 인간들은 피할 수도 없고 모면할 수도 없으니/나가자! 우리가 누군가에게 명성을 주던가, 누군가가 우리에게 줄 것인즉!” 죽음이 항상 도사리는 싸움터는 영웅들에게 영원히 살 수 있는 영생의 장소였다. 이곳에서 시시하게 죽어선 안된다. 대충 버티고 살아남거나 비겁의 오명과 모욕으로 남아선 안된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거나 더러운 이름으로 기억되는 것. 그것은 영원한 죽음과 다를 바 없다.

‘일리아스’에서 인간을 수식하는 전형적인 표현은 “죽을 수밖에 없는(thnethos)”이다. 반면 신에 대해선 “죽지 않는(athanatos)”이라는 표현을 쓴다. ‘죽음’이란 인간과 신을 가르는 결정적인 한계선이다. 그 선 아래에서 인간의 규정은 끝나고, 그 선 위에서 신의 규정은 시작된다. 그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 조건을 안고, 불멸의 명성으로 영원을 지향하던 영웅에게 그리스인들은 “신을 닮은(theoeides)”이라는 형용사를 부여한다. 죽음이라는 인간조건의 한계를 안고, 한판뿐인 인생을 걸어 불멸의 명예를 열망하던 영웅은 불멸하는 신을 닮은 존재. 그는 신과 인간의 경계선 위에서 죽음으로 죽지 않는 신비로운 외줄 타기를 하며 보는 이들의 경탄을 자아낸다. “노장 프리아모스가 두 눈으로 맨 먼저 그를 보았다./별처럼 반짝이며 들판 위를 질주하는 그를./그 별은 늦여름에 떠오르니, 그 찬란한 광채는/밤의 심연 속 수많은 별들 사이에서 돋보이나니/그 별을 오리온의 맹견이란 별명으로 부른다./가장 찬란하지만 이것은 불행의 징조니/가련한 인간들에게 수많은 열병을 가져다준다./꼭 그처럼 달리는 그의 가슴 위에서 청동이 빛을 뿜고 있었다.” 헥토르를 향하여 돌진하는 아킬레우스는 천상의 별을 닮은 지상의 별이다. 땅 위에 불멸하는 눈부신 이름이다.

〈김헌|서울대 협동과정 서양고전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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