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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말 당시 대학의 학문체계를 잘 보여주는 텍스트(스위스 바젤). 문법학, 수사학, 기하학 등으로 분류돼 있다. | ‘자유교양학문(artes liberales)’은 한국어로 ‘백과사전’으로 번역되고 있는 ‘Enkyklopaedia’라는 헬레니즘 교육전통에서 유래한다. 언어와 이성, 그리고 이성과 지성의 통합적 완성을 목표로 삼았던 이 교육 방식은 서구의 고전 고대뿐만 아니라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쳐 현대 서양의 교양교육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현대 대학의 인문학과 교양교육의 뿌리가 자유교양학문에 있다는 점은 대학의 기초교양 수강편람에서 쉽게 확인된다. 그렇다면 자유교양학문이란 개념은 언제 한국에 들어왔을까?
문헌을 추적해 보면 육당 최남선(1890~1957)의 “美術(미술)이란 말은 日本人(일본인)이 그 明治初年(명치초년)에 英語(영어)의 Fine art를 飜譯(번역)한 말이니까 東洋(동양) 녯날에는 업섯든 것입니다”(‘조선상식문답’)라는 문장에서 이 용어가 사용됐으나 잘못 이해돼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잘못이 메이지시대의 일본인인지 아니면 육당의 오해에서 비롯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유교양학문이란 용어는 한국의 대학과 교양세계에 원래의 취지와 의미에 맞게 정착되지 못한 개념이다. 어쩌면 이 용어를 구성하고 있는 자유, 교양, 학문이라는 개념 자체가 한국어에는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서양 개념들이 한국에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추적하는데, 매우 중요한 문헌인 ‘羅韓小字典’(나한소자전)에는 ‘자유’를 뜻하는 라틴어 ‘Libertas’가 ‘쥬쟝’ ‘쥬장’으로 번역·소개되고 있고, ‘자유로운’에 해당하는 라틴어 ‘Liberalis’가 ‘관후한’ ‘너그러온’으로 되어 있다. ‘기술’(학문)을 지칭하는 라틴어 ‘Ars’는 ‘예업, 슐업, 손재조, 법, 계책’으로 번역되고 있다는 점에서, 지식탐구 방법이면서 동시에 시민 교양을 위한 교육 제도로서의 ‘학문’에 대한 이해는 100년전 우리 선조에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인의 영어 ‘fine art’를 번역한 ‘美術’을 그대로 수용한 육당의 잘못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자유교양학문이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사회에서는 신분은 물론 정신에 있어서도 자유를 누릴 줄 아는 교양시민이면 알고 있어야 할 ‘지식’과 ‘교양’을 지칭하는 표현이었다. 이러한 지식과 교양을 겸비한 자만이 ‘노예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자유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안재원/서울대 협동과정 서양고전학과 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