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의 빛으로]신(theos)이란 무엇인가
입력: 2007년 01월 19일 14:56:15
그리스 시인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등장하는 가이아 여신.
극도의 놀라움을 표현하기 위해 일상어법 속에는 신의 개념이 있다. 놀라운 적중률의 주몽 같은 이를 ‘신궁(神弓)’, 이루 말할 수 없이 잘 달리는 말은 ‘신마(神馬)’라 한다. 사지 멀쩡한데 기적처럼 군대를 면제받은 특권층의 자제는 ‘신의 아들’이다. “신통(神通)하네” “신기(神奇)하네”라는 말도 자주 듣는다. 일상적 어법에서 ‘신(神)’이란 ‘인간’이나 ‘자연’과 대비되며, 초인간적·초자연적인 불가사의한 사태를 표현할 때 쓰이는 개념이다. 그래서 신의 개념은 인간의 한계와 그 한계를 넘어선 영역과 존재를 전제할 때, 의미를 갖는다. 인간의 능력이 끝나는 지점에서 신의 개념이 시작되며, 인간의 한계 너머에서 신은 존립하기 때문이다. ‘신’의 개념은 인간의 자기한계 고백이다. ‘신’이란 ‘인간 한계’ 너머를 지칭하는 일반 명사이며, ‘인간 한계 너머’란 바로 ‘신’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신비한 모든 것을 ‘신’으로 일컫는 그리스 사유 방식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신’을 뜻하는 그리스어는 ‘테오스(theos)’다. 이 명사는 ‘신비로운, 놀라운, 신기한’이라는 뜻의 형용사 ‘테이오스(theios)’에서 파생됐다. 사정은 이렇다. 가령, 사랑에 빠진 한 남자가 있다 하자. 사랑하는 여인만 보면 사정없이 떨리고 두근거린다. 평상시에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신기한 일. “사랑은 정말 신비로워(theios).” 이때 ‘theios(신비롭다)’라는 말은 사랑을 꾸미는 형용사다. 이로부터 “사랑이란 신비로운 것”이라는 말이 가능하다. ‘신비롭다’는 술어가 ‘신비로운 것’이라는 명사로 바뀐 것이다. 형용사의 명사화, 속성의 실체화. 남녀 사이의 신비로운(theios) 사랑은 사랑의 신(theos)이 되어 그 신비로운 관계를 일으킨다. 형용사의 실체화, 추상명사의 고유명사화, 신비로운 현상의 신격화. 사랑(eros)의 신 에로스(Eros)는 그렇게 탄생됐다.

고대 그리스인은 인간이 넘을 수 없는 한계선 위쪽에서 운동하는 신의 개념을 통해, 그 한계선 아래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 자신의 본성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나아가 그들의 신화는 존재 세계의 전체를 이해하기 위한 사유의 틀로 확장된다. 보이는 모든 현상 너머에는 보이지 않는 신들의 힘이 작동한다는 생각-신화의 이분법적인 사유의 틀. 이는 ‘현상’과 ‘현상 너머의 형이상학적인 원리’를 전제하는 데로 이어진다. 본질적으로 서구의 철학과 과학은 ‘현상’을 출발점으로 그 너머로 나아가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형이상학적인 원리’를 추구하는데, 이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지향성은 원초적으로 신화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합리적인 로고스(logos)적 사유가 뮈토스(muthos)적 사유에 근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김헌/서울대 협동과정 서양고전학과 강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