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의 빛으로]인문학, ‘너 자신을 알라’ 에서 출발
입력: 2007년 01월 26일 15:10:42
본래 인문학은 ‘너 자신을 알라’라는 아폴로 신의 경고에서 유래한다. 이같은 신의 경고에 인간들 중 가장 강력하게 반발한 사람은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일 것이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떠들고 다녔기 때문이다. 이 주장에 대해 가장 강렬하게 반박한 사람은 소크라테스였다. 그는 ‘너 자신을 알라’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의 핵심 단어인 ‘자신’에 대한 깊은 통찰을 통해서 그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아폴로 신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신탁이 새겨져 있었다고 전하는 델피 신전.
인간이 자신에 대한 지식(self-knowledge)을 갖게 되는 순간이다. 이렇게 인간은 신과의 대비를 통해서 발견된다. 인간에 대한 자기 지식이 없어서 파멸한 이도 있다. 오이디푸스 왕이다. 그는 누구도 풀지 못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 정도로 명석했지만 ‘자기가 누구인지’를 모르기에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이상의 진술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발견과 관련해 그 탐구의 돌파구를 열어 준 것은 사실 인간이 아니라 아폴로 신이라는 점을 확인한다. 이것이 아마도 그리스 인문학의 핵심일 것이다.

그러나 로마 인문학은 인간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그리스인들과 달리 로마인의 중심에는 신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예컨대 키케로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경고와 관련해 ‘내가 누구인지’를 묻지 않는다. 그의 관심사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며 그의 최대 화두는 “인간답게 사는 것과 그 방법”이었다. ‘아르키아스 변호’가 바로 그 전거(典據)다.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목적(quae ad humanitatem pertinent)에 봉사하는 모든 학문들은 서로가 서로를 묶는 공통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고 마치 혈연에 의해 연결된 것인양 상호 결속되어 있다.”

놀랍게도 키케로는 학문들이 섬겨야 할 주군(主君)의 자리에 진리(veritas)가 아니라 ‘사람됨’(humanitas)을 놓고 있다. 순수한 의미에서 인간이 중심에 서있는 인문학이 등장하는 순간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문학이 신들의 세계를 무시하는, 그러니까 불경죄에 해당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신들 역시 인간 내면의 저 양심의 세계(religio)에서 얼마든지 인간을 조정하고 다스릴 수 있는 공간을 인문학은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형성된 서양의 인문학(humanitas)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최소 120년 이전일 것으로 추정된다. 인문학이라는 말이 당시 조선어에는 없었던 모양이다. 당시 조선어 사정을 잘 알려주는 ‘라한소자전’은 ‘humanitas’를 ‘인셩’ ‘량선’ ‘례모’등으로 소개한다. 흥미로운 점은 1936년 작업에 착수해 1959년 1월29일 경향신문사에서 출판한 윤을수 신부(1907~71)의 ‘라한사전’에는 ‘studia humanitatis’라는 별도 표제와 함께 ‘인문학’이라는 표현이 나온다는 것.

그런데 이 표현이 일본인 학자 다나카가 편찬한 ‘라화사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인문학’이라는 번역어를 누가 만들었는지가 우리의 관심을 끌지만, 문헌자료 추적의 어려움으로 이 문제는 여기서 일단락지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윤을수 신부의 고유 번역일지도 모르겠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 육당 최남선도 인문학에 해당하는 영어 ‘fine art’를 ‘美術(미술)’로 사용하고 있었기에 말이다.

〈안재원/서울대 협동과정 서양고전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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