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모 레비가 쓴 <릴리트>에는 "로렌초의 귀환", "체사레의 귀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번에는 신문에 어떤 이야기를 쓸까 하다 로렌초와 체사레의 일화가 떠올랐다. 아우슈비츠 생환자였던 두 사람의 이야기에서 군에서 만났던 두 친구의 모습이 함께 떠오른 것은 우연일까. 로렌초는 고향으로 귀환 후 '성자'가 되었고, 체사레는 고향으로 가는 열차를 견딜 수 없어서 열차에서 내려 비행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독특한 개성을 가진 두 사람은 내게 각각 B와 K처럼 보였다. 그리고 무거운 마음으로 민폐를 끼치고 민폐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 자체가 민폐인 인간의 삶에 대해서 써 내려갔다.  아래의 글이다.


민폐라는 원죄 


K는 나보다 한 기수 아래의 헌병이었다. 신병 시절부터 말이 많았던 K는 선임들로부터 얼차려를 많이 받은 편이었다. K는 소속 부대에서 겪은 일을 말할 때면 말끝마다 “미국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했다. 미국을 기준으로 볼 때 군생활의 부자유가 견딜 수 없었던 K는 좀처럼 부대에 적응하지 못했다. 결국 관심병사로 지정됐고 이후 군교회의 배려로 군종병이 되었다. 군종병 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다른 군종병과 자주 부딪혔고, 결국 병장도 되기 전에 열외 상태가 되었다. 이후 K는 내무실에서 영어를 공부했다. 가끔 K가 피아노를 치며 가스펠을 부를 때면 그 모습이 마치 고난받는 예수처럼 보였다.


B는 나보다 한 기수 위의 보급병이었다. 충청도 출신이던 B는 말수가 적었다. B와는 훈련소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다. 가끔 B를 만나면 내무반 생활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마음이 너무 약한 것이 문제였다. B는 후임이 동갑이라면 말을 놔라 했고, 후임에게 일을 시키는 경우도, 신병에게 함부로 대하는 법도 없었다. 그 때문에 선임들에게 자주 얼차려를 당했고 동기들도 B를 좋아하지 않았다. 제대하는 날, 이제 자유라며 수줍게 웃던 B의 얼굴이 선하다.


한참을 잊고 살다 몇 달 전 K의 연락을 받았다. 은행에서 일한다며 내게 신용카드 발급을 부탁했다.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소식이 궁금해 시내 카페에서 만났다. 카드 발급을 위한 서류에 서명을 마치자 고맙다며 상품권 한 장을 건넸다. K는 군생활 중에 했던 영어공부 덕에 일찍 취업할 수 있었다고 했다. K가 군생활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군교회당 피아노 앞에서 노래하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K에 대해 생각했다. 관심병사 K는 결코 군생활 부적응자가 아니었다. K에게 부대는 자유롭게 지내며 마음껏 영어공부를 할 수 있는 자신만의 미국이었다. K를 만나고 돌아오니 B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전화를 하자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B가 두 달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군생활 중 생긴 우울증이 올해 1학년 담임을 맡으며 악화됐다고 했다. 초등교사로 임용된 지 정확히 10년 만이었다.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며 살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존재의 숙명 같은 원죄일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숙명을 피할 도리는 없다며 더 적극적으로 민폐를 끼치며 살아가고, 누군가는 사소한 민폐조차 끼치는 것도 견딜 수 없어 자신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혐오하며 살아간다. B를 죽음으로 몰고 간 고뇌도 이것이 아니었을까. 무엇이 인간의 삶인 것일까. 작은 민폐 정도는 서로 견뎌주는 사회라면 B도 살아남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진짜 죄는 민폐가 아니라 민폐를 견뎌주지 못함에 있을 것이다. 오늘, B의 죽음으로 K를 견뎌내기로 결심한다.

(매일신문에 쓴 글. 2017.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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