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열매도 나무 멀리 떨어진다 


자폐아이를 키우고 있는 한 엄마에게 메일을 받았다. ‘신이 제게 준 자식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는 부분이 유독 눈에 밟혔다. 사람들은 때론 자폐아에 대해 환상적인 그림을 그리는 천사 같은 아이를 떠올리지만 자폐증은 다른 어떤 장애보다 많은 자식 살해를 유발할 정도로 부모를 미치게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어떤 말을 건네야 할까 고민하다 앤드루 솔로몬이 쓴 ‘부모와 다른 아이들’을 꺼내 읽었다.


이 책은 자폐증, 신동, 트랜스젠더, 소인증 등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예외적 자녀를 키워낸 가족들의 이야기다. 앤드루는 10년 동안 300가정이 넘는 예외적 자녀를 둔 가족을 만나 기록한 인터뷰를 정리해 총 1천500쪽에 육박하는 분량의 책을 만들었다. 앤드루는 유명 작가지만 사실 그도 부모와 다른 존재였다. 심각한 난독증을 앓고 있고, 성적 소수자였던 탓에 아버지와의 불화가 극심했다. 책에 소개된 대부분의 부모들도 처음에는 자식들과의 차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에게 수화 대신 발화 교육을 시킨 부모, 왜소인인 아이의 키를 늘리는 시술을 감행한 부모까지. 처음에는 아이가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는 부모들조차 결국 이렇게 예외적인 아이지만 이 아이는 바로 ‘나의 아이’라는 사실을, 또 우리가 열등한 차이로 구분하는 특질조차도 그저 또 다른 정체성의 차이일 뿐임을 깨닫게 된다. 앤드루는 이런 차이에 대한 인정이 다양성을 만들고, 이런 차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부모 역시 미성숙의 껍질을 벗고 ‘인간’이 된다고 선언한다.


영어 속담에 ‘사과 열매는 나무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자식은 부모를 닮기 마련이라는 뜻인데, ‘부모와 다른 아이들’의 원제인 ‘Far from the tree’는 이 속담의 의미를 뒤집은 것이다. ‘나무에서 멀리 떨어진’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이 말은 아이들은 모두 저마다 부모와 조금 혹은 때때로는 아주 다른 존재라는 것을 암시한다. 나무에서 멀리 떨어진 사과라 해서 사과 아닌 것일 수 없고, 심지어 떨어진 열매가 사과가 아니었다고 해도 열매 아닌 것일 수 없다. 부모와 다른 아이라 해서, 자폐아라 해서 내 아이가 아닌 것이 아닌 것처럼, 생각이 다르다고 해도, 믿음이 다르다 해도, 지역도, 성별도, 성적 지향도, 계급이 다르다 해도, 이처럼 나무에서 멀리 떨어진 것이라 해도, 모든 열매는 나무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고 저마다의 ‘차이’는 당연한 것이다. 이 단순한 사실에 대한 인정이 세상을 조금이나마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리라.


“양육은 이들 가족에게 지난한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후회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는 자녀를 받아들이는 부모의 태도에서 힘든 사랑이 손쉬운 사랑에 못지않다는 확신을 가졌다.” 나무에서 떨어진 사과, 아픔을 가진 이웃은 나무가 지키는 것이 아니다. 나와 너의 힘든 사랑이 지키는 것이다. (매일신문에 쓴 글, 201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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