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모삼
아이가 신발을 벗자 집에는 발냄새가 진동한다. 얼마나 땀을 흘렸는지 입고 있던 옷이 땀에 절었고 머리카락까지도 뻑뻑하다. 불결한 냄새를 풍기는 아이는 이번에도 “목욕하기 싫어”라며 억지를 부린다. “그러면 우리 목욕하지 말고 세차하자.” “아빠, 내가 차도 아닌데 어떻게 세차를 해?”라며 투덜대지만 아이의 눈이 세차라는 말에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첫 공정은 충분히 물을 뿌린 후 광택기를 이용해 자동차의 때를 제거해 주는 것이다. 아이의 광택기는 아빠의 손에 끼워진 노란색 이태리 타월이다. 이때 효과적인 광택이 되려면 자동차의 컴파운드라 할 수 있는 비누를 조금 바르는 게 좋다. ‘위이잉~’ 하는 광택기 소음은 사실 아빠의 입에서 나는 소리다. 아이는 아빠의 눈과 코를 스위치 삼아 광택기의 세기를 조절한다. 배터리가 방전되었다고 하면 충전 입력 단자인 아빠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대고 충전을 시작한다. 세차를 하다 보면 하기 전엔 몰랐던 내 차의 흠집도 알게 되기 마련이다. “아빠, 광택기 돌리고 나면 흰색 차가 될 수 있을까?” 수영하러 갔다 친구들이 아이의 피부가 검다고 조금 놀렸던 모양이다. 세차를 하고 광택을 낸다 해서 검은 차가 흰 차가 될 리 없는 법, 아이에게 평소 지론대로 ‘자동차는 검은색이 멋있어’라고 해 놓고선 광택기를 보다 힘껏 돌린다. 광택 작업의 마지막 공정은 왁스칠이다. 보디로션을 왁스 삼아 아이 몸에 펴 바르자 검은 피부가 반짝반짝 윤이 난다. 식탁은 아이의 주유소다. 엔진에 있는 때를 벗겨 내야 더 빨리 달릴 수 있다며 아이가 평소 잘 먹지 않던 배추쌈도 건네 보았다. 아이는 말이 많아도 자동차는 말이 없다. 주는 대로 잘도 받아먹는다.
하긴 늘 그랬다. 잠은 자지 않겠다는 아이가 ‘충전’은 하겠다고 했다. 피아노 연습은 싫다면서 피아노 특공대 훈련은 좋단다. 이런 아이를 보며 아이 엄마는 ‘조삼모사’라며 바보 같다고 놀리지만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를 주는 것은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는 것과 확실히 다르다. 수량은 같지만 의미가 다르고,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대상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샛별’과 ‘개밥바라기’는 모두 금성을 부르는 이름들이지만 금성과 샛별은 다르고, 샛별과 개밥바라기도 다르다. 새벽 동쪽 하늘의 저 별과 저녁 서쪽 하늘의 저 별이 어찌 금성과 같단 말인가. 그래서 조삼모사도 ‘조사모삼’과 다르고, 목욕도 ‘세차’와 다르며 잠과 ‘충전’도 다르다. 인간이 말 한마디에 달라질 만큼 소심한 까닭은 우리 모두 조금씩은 시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밤 충전을 마치면 세차를 하러 다녀와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