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시간, 두 시


 아이가 세 살 때였던 것 같다. 세 살 아이는 “언제?”라고 물음에 항상 “두 시”라고 답했다. “할아버지는 언제 왔어?”, “밥은 언제 먹었니?”, “아빠 언제 올까?”, 어떤 질문을 해도 언제나 대답은 “두 시”였다. 아이 대답이 웃기기도 했지만 그걸 알고도 매번 묻는 내가 우습기도 했다. 아이가 두 시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대답했을리 없다. 아마 아빠나 할머니에게 들어서 ‘두 시’라는 것이 ‘언제?’라는 질문에 호응되는 말이라는 것 정도는 알았겠지만, 세 살 아이에게는 시간 관념, 아니 숫자 관념이 없었다. 하나, 둘도 모르는 아이가 한 시, 두 시를 알 리 없을테니까. 그런데 왜 하필 ‘두 시’였을까? 한 시, 세 시, 네 시, 열두 시 등 다른 시간도 얼마든지 있는데 두 시만을 고집스럽게 되풀이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추측건대 아이의 엄마가 직장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시간이 두 시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이가 보채거나 엄마를 찾곤 하면 나는 습관적으로 “엄마 두 시 되면 온다”고 달래곤 했다. 아이가 이해하리라 생각하고 했던 말이 아니다. 보채고 우는 아이 앞에서 당황한 내가 스스로를 격려하려고 한 말이었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아이가 ‘두 시’로 답하는 다른 이유는 찾지 못하겠다. 


 아이 엄마가 미국으로 유학길을 올랐을 때 아이를 미국에 데려 간 적이 있다. 열흘 간의 달콤한 만남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날, 지하철을 타고 공항으로 가는 내내 아이도 말이 없었고 아이 엄마도 말이 없었다. 아이도 큰 짐들을 보고 눈치를 채 버린 것일까. 공항에서도 수속을 밟는 내내 엄마에게 안겨 떨어지려 하질 않았다. 나더러 “아빠 가. 아빠 싫어. 엄마 좋아”라며 응석을 부렸다. 공항 검색대에 길게 늘어진 줄 앞에서 아이에게 “이제 아빠한테 안기자”라고 했다. 뭔가 이해하고 있는 듯 엄마 품에서 내게로 오는 아이 모습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에 내가 먼저 울고 말았다. 아이 엄마도 곧장 따라 흐느끼기 시작하자 아이가 “엄마… 엄마…”라고 하면서 평소와 다르게 입을 꼭 다물고 울기 시작했다. 아! 지금도 아이의 그때 울음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우리가 이 아이한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수십 번을 되물은 것 같다. 울면서, 달래면서, 파트너에게 손을 흔들면서, 공항 검색대를 빠져나왔다. 얼마 남지 않은 탑승 시간 때문에 탑승구를 향해 아이를 안고 달려가면서 아이에게 말했다. “우리 엄마 만나러 다시 오자. 언제 또 올까?” 이번에도 아이 대답은 “두 시에”였다. 아, 두 시! “응, 우리 두 시에 엄마 보러 다시 오자”. 


 아이에게 두 시는 엄마의 시간이었다. 기다리던 엄마를 만나는 시간, 엄마가 오기로 한 약속의 시간이 ‘두 시’였다. 실제로 엄마가 집에 오는 시간이 정확히 두 시가 아니라도 상관이 없었다. 다시 엄마를 만나러 미국에 가는 시간도 꼭 두 시일 필요가 없었다. 엄마가 두 시에 오든 세 시에 오든, 아이에게는 엄마가 오는 시간이 바로 ‘두 시’였다. 마치 아침은 여섯 시나 일곱 시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해가 뜰 때 시작되는 것처럼, 아이의 시간도 엄마의 시간에 따라 흘렀고 해가 반드시 뜨는 것처럼 아이와 엄마는 항상 ‘두 시’에 재회했다.


 “댁의 아이가 반에서 좀 처진대요”. 얼마 전 학부모 모임에 나갔다가 들은 말이다. 순간 어질했다. 집에 돌아와 일곱 살 아이를 영어학원에 보내야 할까, 이제는 축구 교실에라도 보내고, 노는 것도 ‘뒤처지지 않도록’ 놀이교실을 보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동안 영어도, 수학도 안 가르쳤으니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축구교실 대신 친구들과 축구하면 되고, 시간이 지나면 한글 맞춤법도 알게 될테고, 사칙연산 정도는 스스로 해내는 성취감 정도는 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뒤처진다고 하니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을 가누기 어려웠다. 초조한 마음으로 학원을 알아보는 내게 아이 엄마가 말했다. “여보, 지금 좀 뒤처져도 돼. 금방 따라갈거야”. 나는 아이 엄마를 답답하다듯이 쳐다보며 물었다. “혹시 자신감을 잃지 않을까? 언제 따라갈 수 있을까?”, 아이 엄마는 내 등을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두 시에”,


 아이가 엄마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을 믿었던 것처럼, 그래서 엄마의 시간, 약속의 시간, ‘두 시’를 기다린 것처럼 나도 아이의 시간을 그렇게 기다려야 한다. 서쪽보다 동쪽에 아침이 먼저 온다고 해서 서쪽에 아침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닌 것처럼 아이가 뒤처진다고 해서 자라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무리 서둘러도 아이는 아이의 시간이 되어서야 무서워 오르지 못하던 미끄럼틀 꼭대기에 올라가고, 밀어주지 않으면 타지 못하던 그네를 혼자서 타기 시작하고, 말을 하고, 글을 깨치고, 숫자를 알게 되지 않았던가. 아이들은 이 모든 일을 자신의 ‘시간’에 해냈을 때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얻게 된다. 그러니까 자신감은 남들보다 빨리 갈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조금 늦더라도 스스로 해낼 때 생긴다. 어쩌면 나는 ‘뒤처진다’는 말에 그만 불안해져서 조금 빨리 영어를 말하고 셈을 하는 것과 아이의 자부심을 맞바꾸려 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네 발 자전거에서 보조바퀴를 떼어 버리고 처음으로 두 발 자전거를 탄 날, 아이의 얼굴은 환하게 빛났다. 아빠가 밀어주던 세 발 자전거를 타던 아이가 어느 새 두 발 자전거를 타는 것을 보니 아이의 시간을 기다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움베르트 에코는 “신은 달팽이 같다”고 했다. 인간의 타락 이후에 메시아가 오기까지 왜 그토록 긴 시간이 필요했단 말인가. 신을 믿는다는 것은 그 더딤을 인내하는 것이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내 아이의 더딤을 답답해하기도 하고, 불안해하고, 그러면서도 그 더딤을 기다리려는 초조한 몸부림을 거듭하고... 밤이 아침을 기다리듯, 아이가 엄마를 기다리듯, 나도 그렇게 아이의 때를 기다리리라. ‘두 시’ 아니 ‘세 시’까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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