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방송에서 한 주에 한 권 책을 소개해드리고 있지만 항상 책 소개가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책을 소개한다는 것이 뭘까, 책을 제대로 소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이 좋을까,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까..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어쩌면 제가 그동안 소개했던 책 중에 가장 소개하기 힘든 책 중에 하나였어요.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인 책인데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깊이를 가진 책이라 짧은 소개가 오히려 책의 가치를 훼손시킨다는 느낌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어떻게 소개해도 소개를 잘할 수가 없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애청자분들에게 꼭 추천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읽어봐야지만 그 가치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책이니까요." - 대본 중 일부

 

멀고도 가까운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1.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떤 책을 가지고 오셨나요?

 

네, 오늘 제가 가져온 책은 출판사 반비에서 만들고, 리베카 솔닛이 쓴 <멀고도 가까운>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혹시 ‘멘스플레인’이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대답) 멘스플레인이란 말을 뉴스에서 들어보신 분들이 계실 텐데요, 이 말은 남자(man)와 설명하다라는 뜻의 영어표현인 explain을 결합한 단어인데요, 흔히 남자가 여자를 가르치려 드는 경우를 의미할 때 쓰는 말입니다. 일부 남성들이 여성들이 자신들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가르치려 하는 것을 꼬집는 신조어에요. 오늘 제가 소개해드리는 <멀고도 가까운>이라는 책을 쓴 리베카 솔닛이 이 단어를 만든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2. ‘멘스플레인’이라는 말을 이 책의 저자가 만들었다고요?

 

사실 멘스플레인은 여러 곳에서 동시에 사용된 말이라 리베카 솔닛이 만든 말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좀 있습니다. 그런데 리베카 솔닛이 쓴 책 중에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라는 책이 있는데요, 이 말이 힘을 얻게 된 발단이 이 책이 된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이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솔닛이 어느 파티에서 한 남성을 만나게 되었다고 해요. 이 남자가 리베카 솔닛이 책을 썼다는 것을 들었다고 하면서 말을 걸어오자, 그녀는 자신이 최근에 에드워드 머이브리지에 관한 책을 썼다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남자가 솔닛의 말을 뚝 끊어 버리고 “머이브리지에 대한 중요한 책이 올해 출간된 걸 아느냐”고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사실 그 중요한 책을 쓴 사람이 바로 리베카 솔닛이었던 거죠.

 

3. 남자가 가르치려 했던 여자가 정작 그 책의 저자였던 거네요.

 

멘스플레인이라는 말을 듣고 솔직히 말해서 저는 크게 공감을 하지는 못했었습니다. 제가 정말, 특별히 여성들에게만 가르치고 더 아는 척을 했던가, 생각을 해 본적이 있는데 농담입니다만 저는 사실 직업탓에 모든 사람을 가르치려는 듯한 태도가 있어서 남성, 여성 모두에게 그런 태도가 있는 것 같더라구요.(웃음) 그런데 수많은 여성분들이 이 말을 공감해서 뉴욕타임즈에서는 2010년 올해의 단어 중 하나로 선정되었고, 미국언어연구회의 2012년 가장 창조적인 단어 후보에도 올랐고요, 심지어 옥스퍼드 사전에도 등재된 말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많은 분들이 공감했다는 뜻이겠죠.

그래도 이 말에 공감이 안되는 분들이 있다면 아마 주로 남성 청취자분들이실 것 같은데요, 인터넷에서 운전을 정말 이상하게 하는 사람들을 보고 ‘김여사’라고 하죠? 사실 그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고, 또 여성이라고 하더라도 성이 김씨인지 이씨인지 모르는데요, 아무렇지 않게 우스개 소리랍시고 이상하게 운전하는 사람을 보고 ‘김여사’라고 부릅니다. ‘김여사’라는 말 속에는 이미 여자는 남자보다 운전이 미숙하고, 여자들은 운전을 더 배워야 한다는 ‘멘스플레인’적인 태도가 담겨 있는거죠.

 

4.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김여사’라는 농담에 그런 비하의 의미가 있을 수 있네요. 그 외에도 여성을 비하하는 말이 유독 많기는 한 것 같아요. 된장녀, 김치녀라는 말도 그런 것 중 하나죠.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요즘 커피전문점에서 커피 한잔 5000원 하는데 그걸 여성분들만 특별히 더 마시는게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그런 구매 행위는 생각이 없다고 남성들이 여성들을 비판하면서 ‘된장녀’라고 부르는데 사실 굉장히 모욕적인 말이지요. 그러니까 멘스플레인은 생각보다 대단히 광범위하게, 남성들도 별로 의식하지 않지만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는 현상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리는 책의 저자 리베카 솔닛이 이 말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리베카 솔닛이 얼마나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저자인지, 또 뛰어난 언어 감각의 소유자인지를 짐작하게금 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리는 <멀고도 가까운>이란 책 역시 리베카 솔닛의 정말 놀라울 정도의 감수성과 아름다운 언어가 직조된 책인데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 묵은 저의 상처를 용기를 내어 다시 끄집어 내어 바라보고, 어루만지고, 치유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멀고도 가까운>, 이 책은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책입니다만, 굳이 정리하자면 ‘치유의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5.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라, 어떤 이야기일일까요?

 

제목부터 말씀을 드려보고 싶은데요, 이 책 제목이 <멀고도 가까운>이잖아요? 혹시 진행자님께서는 멀고도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는 분이 계신가요? (대답)

네, 다들 그런 관계들이 조금씩은 있으실텐데, 레베카 솔닛에게는 바로 그녀의 어머니가 그런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작가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의 모든 것을 질투했다고 해요. 딸의 눈부신 금발도, 글쓰기 재능까지도 질투했지만 정작 나이가 들어서는 다른 자녀들을 다 제쳐두고 오직 리베카 솔닛에게 의지하고, 부르고, 청을 했다고 합니다. 이 책의 작가 역시 어머니에 대해서 원망하는 마음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책에서 솔닛은 자신이 어머니의 도움 없이는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쓰기도 하니까요. 이 책에서 작가인 리베카 솔닛과 어머니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을 이루는 중심 이야기 중 하나에 해당됩니다.

이 책은 어머니와 작가 사이의 멀고도 가까운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점점 더 멀어져 가는 의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리베카 솔닛의 어머니는 알츠하이머병, 그러니까 치매를 앓고 있습니다. 알츠하이머병이 생기면 어린 아이와 비슷해진다고 하지만 사실 기억은 어린 아이와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점점 더 기억을 쌓아가고 점점 더 멀리가지만, 알츠하이머를 앓는 이들은 그동안 쌓아뒀던 기억을 하나씩 허물어가고 점점 더 자기 안으로만 들어가게 되죠. <멀고도 가까운> 이라는 제목은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하나의 은유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6.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어머니와 그녀의 딸인 작가의 이야기라 할 수 있겠네요. <멀고도 가까운>이라는 제목이 이해가 됩니다. 치매를 앓고 있는 내 어머니는 자신의 딸도 알아볼 수 없을만큼 기억이 손상되어버리면 자녀 입장에서는 ‘멀고도 가까운’ 존재로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네, 그렇지요. 그런 이야기도 이 책에 나오는데요, 리베카 솔닛이 말하는 알츠하이머병 환자 가족에게 가장 짜증나는 질문은 “어머니가 당신을 알아보나요?”라고 해요. 그런데, 여기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알아본다는 말에는 다양한 뜻이 있고, 어떤 의미에서 어머니는 나를 단 한번도 알아보지 못했다. 나중에는 어머니가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우리 관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고 해요.

 

7. 아, 왜요? 너무 슬픈 일일 것만 같은데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니가 나를 알아본다는 게 그렇게 중요하고 대단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그 무렵에, 내 목소리나 다른 특징이 어머니에게 익숙한 무엇이 되어서 당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어쩌면 어머니를 나를 더 진실하게 알게 되었을 것이다. 나 역시 어머니를 더 진실하게 알게 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피상적인 것이 벗겨져 나가자, 어머니라는 인간성의 핵심, 그리고 그 연약함이 날것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8. 그러니까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병을 앓게 되면서 오히려 어머니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는 거군요.

 

그런 것 같아요. 어머니 역시 자신의 딸을 알아볼 수 없게 되자, 딸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고, 자신에게 익숙한 대상으로 여기게 된 것 같아요. 딸에 대한 기대, 자신의 거울로 살아줬으면 하는 욕심,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딸이 가졌다는 것에 대한 분노를 모두 내려 놓자, 비록 자신의 딸이라는 것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리베카 솔닛이라는 한 인간을 그대로 바라보게 되는 거죠. 리베카 솔닛 역시 자신이 가진 어머니에 대한 기대, 분노를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겁니다. 알츠하이머병이 두 사람의 관계를 ‘멀지만’, 그러면서도 ‘가까운’ 관계로 만들어준거지요.

 

이 책의 제목은 지금 말씀 드린 이야기 외에도 정말 다양하고도 많은 은유를 담고 있습니다. 금방 말씀 드린 것처럼 이 책은 어머니와 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리베카 솔닛 본인의 아이슬란드 여행기이기도 하구요, 또 작가가 힘든 병을 얻고 치유하는 과정을 쓴 책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은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이야기가 중첩적으로, 몇 겹으로 짜여져 진행이 됩니다. 보통의 책들처럼 하나의 이야기에 하나의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와 겹쳐지고, 처음 나온 이야기가 가장 마지막에 나오기도 합니다.

 

이 책의 목차가 재밌는데요, 이 책은 1장부터 13장까지 모두 13개의 이야기가 있는데요, 1장과 13장, 2장과 12장, 3장과 11장, 이런 식으로 5장과 9장이 제목이 같습니다. 1장 제목이 살구인데 13장도 살구에요. 마치 책 전체가 실을 감았다가 중간부터는 다시 감은 실을 푸는 것 같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9. 정말 특이한 구조네요. 책의 목차를 보니까 6장은 감다, 7장은 매듭, 8장은 풀다네요.

 

네, 그리고 다시 9장에는 5장과 같은 제목이 붙습니다. 두 이야기가 하나의 쌍을 이루는 건데요, 작가는 6장까지는 이야기로 기억을 감아올리고, 9장부터는 이야기를 기억을 자신에게서 떠나 보내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책의 구조 역시 <멀고도 가까운>이라는 제목처럼 이뤄져 있는거죠. 이 책은 작가가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면서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을 이야기하고, 체게바라의 혁명을 이야기하고, 아이슬란드의 늑대를 이야기하고, 프랑켄슈타인, 어릴적 읽었던 나니아 연대기를 끄집어 내어 다시 읽고 풀어내며 작가가 어머니와 화해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작가는 이제 자신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와 어떻게 대화할 수 있었을까요? 작가가 여러 ‘이야기’를 가져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프랑켄슈타인, 체게바라, 안데르센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말이 가진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에게 공감할 수 있게 된다는 거지요. 작가는 여러 이야기를 통해 이제 더 이상 말할 수 없게 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10.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것을 통해 세상을 다른 관점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임을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정리해주시지요.

 

제가 늘 이 방송에서 한 주에 한권 책을 소개해드리고 있지만 항상 책 소개가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책을 소개한다는 것이 뭘까, 책을 제대로 소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이 좋을까,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까..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어쩌면 제가 그동안 소개했던 책 중에 가장 소개하기 힘든 책 중에 하나였어요.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인 책인데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깊이를 가진 책이라 짧은 소개가 오히려 책의 가치를 훼손시킨다는 느낌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어떻게 소개해도 소개를 잘할 수가 없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애청자분들에게 꼭 추천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읽어봐야지만 그 가치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책이니까요.

 

한가지 더. 최근에 있었던 강남역 살인사건이라는 초유의 여성혐오 범죄가 있었죠? 이 책을 읽으면 여성의 삶에 대해, 고통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인간에 대한 성찰이 있는 문학이자, 철학적이며 치유적인 이야기입니다. 이 책을 통해 한 여성의 삶을, 이야기를 듣고, 여러분의 삶의 이야기도 감아 올리게 되셨으면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