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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 - 후쿠시마와 식민주의, 후쿠시마와 연대, 후쿠시마와 예술
서경식.정주하 외 지음, 형진의 옮김 / 반비 / 2016년 3월
평점 :
지난 주에 교통방송에서는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 한다는 것>을 소개했다. 지난 주에는 대구에서 상화문학제가 있었고, 그 때문에 이 책을 소개했다. 이 책은 정주하 작가의 사진전을 중심으로 이뤄진 대담을 모은 것인데, 정작가의 사진전 제목이 바로 이상화의 시 제목이기도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기 때문이다. 최근 평화박물관 사태로 말이 많은데 이 제목을 제안한 이는 한홍구 선생이었다고 한다. 최근 사태의 진실은 잘 모르겠지만 깊은 생각을 길러내는 제목이었다고 책을 보며 새삼 느낀다. 그리고 나 역시 마루키미술관에서 이 전시를 본 적이 있는데, 사진전에 직접 갔을 때보다 이 책을 읽은 것이 사진을 두고 생각하기에는 더 좋았던 것 같다. 좋은 책인데 더 많은 분들이 읽으시면 한다.
아마 정주하 작가나 서경식 선생님은 불편하실 수도 있었겠지만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은 역시 오키나와 사키마 미술관에서 있었던 대담을 담은 부분이었다. 거기서 히가 도요미쓰는 오키나와 출신의 사진작가인데, 정주하 작가의 사진에 뼈와 피가 없는 것에 대해서 묻는다. 왜 그런 건 찍지 않는가. 서경식 선생이 오키나와와 후쿠시마가 연대할 수 있다고 하자 오키나와는 침탈된 것이고, 후쿠시마는 자기 욕심에 스스로 그런 피해를 입은 것인데 이제와 원전 피해를 입었으니 연대하자는 건가 하고 되묻는다. 그리고 이런 질문이 이어진다. 모두가 원전 피해를 입어야 연대할 수 있다는 건가? 아마 책 전체에서 정주하 작가의 사진전 제목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어두운 대답이 아니었나 한다. 정희진 선생은 히가 도요미쓰의 마지막 질문에 대해 무어라고 대답할까. 아마 정희진의 <피해를 공유하는 방법>에서 쓰고 있는 이 말이 아닐지.
"원전 자체를 없애야 하겠지만 쉬운 일이 아니므로 일시적인 ‘해결’은 피해를 보편화하는 것이다. 행하는 사람(주체)과 당하는 사람(대상)의 구분을 없애고 타자(他者)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실험이다."
후쿠시마라면 이런 방법도 있겠지만, 오키나와의 피해는 어떻게 보편화할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이 어렵다면 결국은 빼앗긴 들에 대한 기억으로 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
- 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이번 주에 제가 소개해드릴 책은 출판사 반비에서 만들고, 서경식과 정주하 외 여러분들이 함께 나눈 대화를 정리한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 중 한 사람인 정주하 선생은 사진작가인데요,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후쿠시마 지역에 있던 원자력 발전소가 파괴되는 중대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정주하 작가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2011년 11월에 후쿠시마를 방문해 후쿠시마와 피해가 컸던 미나미소마를 촬영하여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 때 만들어진 작품을 2012년 3월에 한달간 서울의 평화박물관에서 전시를 하게 되었고, 2013년 3월부터 2014년 5월까지 일본 전역을 도는 순회전시가 열리게 됩니다. 후쿠시마 미나미소마 중앙도서관을 시작으로, 사이타마의 마루키미술관, 도쿄의 신주쿠 어느 갤러리, 오키나와 사키마 미술관, 나가노의 우에다 시나노데생관, 교토의 리츠메이칸대학 뮤지엄까지 모두 여섯 곳에서 전시가 있었는데요, 그 때마다 진행되었던 정주하 선생과 여러 학자, 청중들의 대담을 엮어서 만든 책이 바로 오늘 소개해드릴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이라는 책입니다.
2. 그러면 이 책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정주하 작가의 사진에 관한 대담집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해서는 일본인 사진작가들도 얼마든지 기록할 수 있었을텐데요, 한국의 정주하 작가가 일본에까지 가서 일본의 사고 현장을 촬영한다는 것이 언뜻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네, 아마 그렇게 여기시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 한국 작가가 일본의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대한 기록을 하는가? 일본인들도 얼마든지 기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요, 이 책을 읽어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제목의 시 아시나요?
3. 그럼요. 이상화 시인의 시죠.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하고 시작되는.. 게다가 이상화 시인은 대구 출신이라 대구 시민분들에게는 익숙한 시인이죠.
네, 아마 우리 청취자분들께서도 이상화 시인을 많이 아실텐데요, 제가 이 시를 말씀드린 이유는 정주하 작가가 후쿠시마를 촬영해 만든 이번 사진 전시의 제목이 바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였습니다. 이상화 시인의 시 제목을 그대로 사용한 거에요.
4. 아 그래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는 일제 식민지 치하의 우리나라의 현실을 노래한 내용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것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어쩌면 이 책 전체는 방금 말씀하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과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의 내용을 후쿠시마에 대해서도 읽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일텐데요, 원전 사고 이후에 후쿠시마라는 지역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방사능에 땅을 완전히 빼앗기고 말았고, 거기서 목축을 하거나 감나무를 재배하거나 농사를 짓고 어업을 하던 사람들이 더 이상 자신의 고향에 살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말 그대로 ‘들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마치 일본 제국에 의해 우리 고향을 빼앗겨 버린 것과 비슷합니다. 일제의 수탈과 징용으로 더 이상 고향의 들에서 살 수 없게 되어 버린 조선 사람의 처지와 다르지 않습니다. 어제까지는 내 고향이었지만 지금은 “남의 땅”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죠. 정주하 작가는 사진전의 제목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붙여 후쿠시마를 빼앗겨 버린 후쿠시마 지역의 사람들과 조국을 빼앗겼던 한국 사람들의 고통과 기억을 연대하려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사진전의 제목으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제목을 붙여 일본인들이 후쿠시마 사고로 인해 생긴 고통으로 식민지 통치를 기억하도록 하고, 한국인들에게는 일제 때의 수모와 고통을 기억하게 해서 후쿠시마 사고로 들을 잃은 자들의 고통을 상상하도록 하고 싶다는 것이죠.
5. 제가 방송 전에 잠깐 책을 봤는데요, 책 표지를 열자마자 정주하 작가가 전시한 사진이 컬러로 실려 있더라구요. 마치 사진집처럼요. 그런데 사진을 봤을 때는 이게 원전사고가 난 지역을 찍은 것인지 바로 알아채기 어려웠어요. 그냥 일상적인 풍경 사진처럼 보였거든요.
저는 이상화 시인이 대구의 시인이라는 것이 무척 자랑스러운데요, 제가 왜 이상화 시인 말씀을 드리냐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를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이 시에서 한 사람은 빼앗긴 들을 걸으며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 가구요,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고 웃습니다. “혼자라도 기쁘게 가자 /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그러니까 이 시를 언뜻 보면 조금도 슬프지 않습니다. 식민지 현실의 고통을 바로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시인이 돌아와 걷고 있는 이 땅은 이렇게나 아름다운 내 고향이지만 사실은 이제 더 이상 내가 땀을 흘려 일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고, 아주까리 기름을 바르고 지심 매던 사람들도 보고 싶어도 다 흩어져 더 이상 볼 수 없는 땅입니다. 달라진 것이 아무 것도 없어 보이지만 사실 이 들판은 이제는 빼앗겨 버려 더 이상 우리 땅이 아닌거지요.
방사능 유출 사고가 후쿠시마에서 있었는데요, 방사능 사고가 났다고 해서 눈으로 봤을 때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방사능은 눈에 보이지 않잖아요? 방사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살인마이기 때문에 어마어마하게 위험하지만 곧장 확인이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요, 후쿠시마는 청도처럼 일본에서는 가장 유명한 감 산지입니다. 그래서 곶감 생산이 후쿠시마 지역 사람들의 수입원 중 하나였는데요, 정주하 작가의 사진을 보면 감나무에 주렁주렁 감이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을 따지 않아서 감이 나무에 매달린 채 홍시가 되어 축 늘어져 있습니다. 그냥 감을 따도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감 수확을 할 수 없는 이유가 많은 과일 중에서도 유독 감이 방사능에 취약하다고 해요. 보통 1킬로그램 당 100베크렐 이상의 방사성 물질이 들어 있는 식품은 출하할 수 없는데, 일단 감에서 그 이하로 검출되었다고 해도 이걸 곶감으로 만들면 수분은 빠져 나가고 방사성 물질은 남기 때문에 방사성 물질이 수백배로 농축된 제품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 곶감을 만들어도 출하할 수 없는 거죠. 어제의 곶감이 더 이상 그 곶감이 아닌 겁니다.
6. 아무리 식민지가 되었다고 해도 어제나 오늘이나 산과 들은 그대로인 것처럼 보여도 같은 들일 수가 없는 거네요.
후쿠시마에는 료젠이라는 아주 아름다운 산이 있는데요, 정주하 작가가 후쿠시마를 찾아간 11월에는 단풍이 곱게 들어 마치 우리나라 설악산처럼 장관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걸 보면 그저 아름답다는 느낌을 일단 받게 되는데요, 후쿠시마의 미나미소마 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전시에서 이 작품들을 본 후쿠시마 지역민들은 우리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감나무가 열린 아름다운 고향, 단풍이 아름다운 내 고향, 밤바다 위 하늘에서 빛나는 별이 너무나 아름다웠던 내 고향, 저 고향에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는 느낌에 큰 슬픔을 느낀 분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방사능의 위험은 10년 20년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수백년에서 수만년에 이릅니다. 그러니까 한 인간이 80년을 산다고 할 때 인간의 척도로는 측정 자체가 불가능한 엄청난 피해지요. 이제는 내 고향의 아름다운 들을 이렇게 측정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방사능에게 빼앗겨 버린 겁니다.
7. 그러고보니 정주하 작가의 사진에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어요. 풍경사진을 찍으려 사람을 일부러 찍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고향과 들을 떠나버려 아무도 남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없었던 것이라 봐야겠군요.
네, 맞습니다. 본래 예술은 뭐든지 직접적으로 잘 표현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정주하 작가가 찍은 사진을 보면 돌인형인 귀여운 곰 한 마리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게 있습니다. 이 사진에서 무엇이 찍혀 있냐라는 물음에 대해 ‘바다입니다’, ‘곰입니다’는 제대로 된 답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여기서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의 바다를 생각하고, 어떤 분은 작은 희망이라도 볼려고 하는거죠.
이 책에서 대담자 중 한 사람으로 사사키 다카시라는 분이 나옵니다. 사사키 선생은 현재 치매를 앓고 있는 자신의 아내와 함께 원전 사고 이후에도 후쿠시마를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사사키 선생은 스페인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였는데 사고 이후에는 사람들이 모두 떠나간 후쿠시마의 모습을 기록해 그것을 책으로 내기도 했어요. <원전의 재앙 속에서 살다>는 책인데요, 사사키 선생은 정주하 작가의 사진과 이상화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해요. 자신이 어릴 적 살던 미나미소마에 200미터에 이르는 아주 높은 탑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딘가에 멀리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에 기차 창 밖으로 이 탑이 보이면 안심하기도 했다고 하고, 일본에서도 가장 높은 탑이라 자랑스럽기도 했다고 합니다. 마치 일본 도쿄에 있는 스카이트리처럼 콘크리트로 만든 이 탑도 일본의 국위를 드러내기 위한 용도였던 거죠. 그런데요, 이 탑이 언제 만들어졌냐면요, 1923년, 관동대지진이 있기 2년 전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육중한 탑을 만들기 위해 사형수와 조선인들이 위험한 작업에 동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번 사진전을 보면서 관동대지진 때 있었던 조선인 학살, 우리의 자랑이라고만 생각했던 200미터 탑의 역사,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원전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일본 정부의 이야기가 얼마나 허구에 가득찬 이야기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주하 작가의 의도대로 일본인과 한국인 사이에 고통 받았던 기억에 의한 연대가 이뤄지게 되는 것이지요.
8. 우리나라에도 여러 곳에 원전이 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대구 지역에도 멀지 않은 곳에 원전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우리 청취자들께 마지막으로 이 책을 추천해주시는 이유 정리해 주시죠.
지금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시설과 위험은 정부의 통제 하에 완벽히 컨트롤 되고 있다고 하고, 결국 도쿄 올림픽까지 유치했습니다. 일본 정부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구요, 문제는 일본 정부의 이런 말이 명백한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일본 시민들도 여기에 동조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원전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고, 이 사고로 경기가 더 나빠지길 바라지 않기 때문이에요. 정부와 기업과 일반 시민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후쿠시마 원전 문제는 지금도 해결되지 않고, 후쿠시마 지역 사람들의 고통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이 책을 소개하고 추천드리고 싶었던 이유는요, 우리나라에도 원전이 많고 그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도 있지만 사실 가습기 살균제 사고 때문입니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우리 집 앞 원전의 노심이 녹아내려 내가 살던 고향을 빼앗아 가 버린 것처럼 정부와 대학의 교수와 글로벌 기업과 대형마트가 안전하다고 했던 가습기 살균제가 많은 이들, 특히나 어린 아이들의 목숨을 수도 없이 앗아가버렸습니다.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는 방사능 물질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피해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집계도 되지 않습니다. 가까운 분들 중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직접 입은 분들이 없다고 해도 내가 가는 식당이나 회사 사무실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는지 일일이 확인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나도 그로 인해 피해를 입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후쿠시마 사고 이후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진 적이 없다는 것 아시나요? 우리나라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해서도 기업들은 모두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그것을 감독할 책임이 있던 정부도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합니다.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사람들은 이제 자주 가는 식당과 커피샵도 불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런 여러분들에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질문을 드리면서 이 책을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