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관한 일기 (4) - 손톱 물어 뜯기
꽤나 시적인 자해가 아닌가
나는 뚱뚱하고, 최근에는 건강까지 나빠졌는데 나쁜 습관도 있다. 내 손톱은 언제나 짧고 뭉퉁하다. 손톱 주변의 손가락 마디 곳곳에 상처가 있다. 모르긴 몰라도 겨울철만 되면 아데노이드가 붓는 것도 손톱 밑의 세균이 원인일 것이다. 나는 손도 씻지 않고 손톱이 자라 올라오기 무섭게 물어 뜯는다. 물론 의식적으로 나 자신이 '이제 제법 길었으니 물어 뜯을 때가 되었군'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손이 입가에 가 있다. 어쩌면 손톱 물어 뜯기는 내게 일종의 기호식품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담배 한 대가 주는 안온함처럼 손톱을 물어 뜯는 것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담배는 피지 않기 때문에 손톱 물어 뜯는 것보다 그게 얼마나 더 효과가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손톱 물어 뜯기가 담배보다 나은 점만큼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담배만큼 건강에 나쁘지는 않다는 점, 비싼 담배와는 달리 공짜라는 점, 남들이 보기 싫은 것을 제외하면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점, 무엇보다 점점 담배 태울 곳이 없어지는 상황과 달리 누구도 손톱 물어 뜯기는 금지하지도 않고, 사실상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는 점. 그러니까 자라나는 손톱은 내 몸에서 자라는 중독성 물질에 가까웠다. 예전에 나는 어느 일기에, '내 손톱은 내 손에서 자라는 대마'라고 쓴 적이 있었다. 그리고 교회에 나가 기도했다. "주여, 내가 이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이 마약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지 않게 하소서".
사실 내가 언제부터 이 '죄 아닌 죄'를 갖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중학교 때인가 엄지 손톱 주변에 작은 물집 같은 것이 생겨 드라이아이스 소독으로 그 주변을 치료했던 적이 있다. 그 때 상처부위가 괴사되면서 딱지가 앉았는데, 학교에서 수업 중에도 촉이 날카로운 '제도1000' 샤프로 딱지 부위를 떼어내고, 다른 손가락에도 짓무른 곳이 있으면 '도루코칼'을 빼내어 도려내느라 집중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다시 손가락은 상처 투성이가 되고, 또 다시 딱지가 앉고, 다시 떼어내고, 상처가 생기고 그러기를 반복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수업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해도 오래가지 않았다. 책을 보면 책을 잡고 있는 손이 보였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마음을 몇 번을 잡고 나면 어느 새 나는 손톱 주변에 있는 죽은 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진학 후에는 제법 성적이 나와 도서관 열람실 자리를 배정 받을 수 있었다. 일인당 하나씩 독서실용 책상이 주어졌는데 손톱 물어 뜯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고, 온전히 내 손톱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게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집이 갑자기 어려워지게 되었다. 손톱 물어 뜯기가 불안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답답할 때 담배를 한 대라도 더 태우게 된다면 아마 손톱 물어 뜯기도 그런 것이 분명할 것이다. 아버지가 집을 비우시고,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더 벌이가 되는 공장 야근일을 하러 가셨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고, 점심 도시락도 싸가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그 때 나는 배가 고팠다. 그리고 마침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었는데, 그 여자애에게 고백이라도 하기 전에, 또 기왕 배가 고픈 김에 살을 한번 빼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게 내가 처음 한 다이어트였는데, 그 때의 다이어트는 '강제된 것'이었다고 하는 것이 솔직한 고백일 지도 모른다. 그 때 나는 물론 아무 것도 먹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는 배가 고파서 친구들의 도시락을 숟가락 하나를 들고 '빈대짓'을 했고, 그리고 내 손톱도 물어 뜯었다. 비록 삼키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왼쪽 손등에 이유를 알 수 없는 깊은 상처가 났는데, 언뜻 기억을 더듬어봐도 이 상처가 생긴지는 1년도 지났다. 나는 손톱을 물어 뜯듯이 손등에 난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딱지를 집요하게 떼어내고, 다시 피가 나는 것이 반복됐다.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는데,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니 손톱을 물어 뜯기 시작한 것이 벌써 20년이 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 손이 무려 23년동안 상처가 나고 아물기를 반복했고, 잘려나갔다가 다시 자랐던 것이구나. 나는 왜 이토록 손에, 아니 손가락에, 아니 손톱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이가 손을 빨 때마다 "손이 똥꼬보다 더럽다" 했더니 물끄러미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내게 "아빠 손은 똥꼬보다 더럽지 않아?"라고 물었다. 아이도 보고 있었구나. 내 손이 똥꼬보다 더 더럽지는 않겠지만, 똥꼬보다 예쁘지는 않을 것이다. 내 손톱은 항상 뭉퉁하고 거치니까.
손톱을 물어 뜯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을텐데, 사실 손톱을 뜯으면 손톱만 뜯기는 것이 아니다. 손톱의 깊은 안 쪽에는 손톱이 마치 나무처럼 살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손톱을 잡아 뜯으면 살이 뜯어질 때도 가끔 있다. 흡연가들 중에는 끽연가도 있고 입담배를 태우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손톱을 물어 뜯는 것도 사실 사람마다 다 같지는 않다. 내가 아는 J는 손톱 물어 뜯기에서는 끽연가급인데 그 친구의 손톱은 내 손톱의 절반도 채 미치지 못할 정도다. 심지어 손가락 끝은 언제나 피가 멍울져 있어서 누군가와 손도 잘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거기에 비하자면 나는 보통 수준에 가깝다. 가끔 나도 피가 나지만 대개의 경우는 손톱이 자라 올라와 색깔이 변하는 지점까지를 목표로 삼는다. 다른 친구 K는 손톱만 물어 뜯지 않는다. K는 엄지 손가락 아래 손바닥을 물어 뜯는다. 굳이 비유하자면 그건 담배도, 대마도 아닌 필로폰 수준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 친구도 처음은 엄지 손가락 아래 손바닥에 난 딱지를 떼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했다.
담배라면 누구라도 끊어보라고 했겠지만 손톱을 물어 뜯는 나의 은밀한 중독에 대해 나더러 그만두라고 한 사람은 거의 없었고, 나 자신도 '이제는 고쳐야겠다'고 생각하거나 다짐한 적이 없다. 나는 손톱을 물어 뜯고 뭉퉁해진 내 손을 보면서, 나 자신이 어떤 심리적인 문제가 있다고도 별로 생각했던 적이 없다. 전문가들은 그걸 강박적 행동이라고 했지만 내게는 그냥 흡연처럼 가벼운 중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손톱을 물어 뜯을 때 느끼는 입술의 쾌감, 손톱 아래의 개운함, 탁탁 거리는 소리의 경쾌함까지, 담배를 한 대 물고 있는 것만큼 손톱을 물어 뜯는 것은 누군가에 멋있어 보이지는 않겠지만 그보다 공감각적인 쾌감을 주었다. 자기 손바닥을 물어 뜯는 녀석도 아마 살을 뜯을 때 느끼는 아픈 감각이 쾌감이 되었을 것이다. 충분히 그 쾌감을 이해할 수 있다. 손톱을 물어 뜯을 때 가장 짜릿한 순간은 살이 뜯어져 나오는 바로 그 순간이니까 말이다. 게다가 나는 손톱 물어 뜯기가 심지어 아주 시적인 습관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나는 살과 손톱을 뜯는 야수적인 본성으로 최소한의 야수적 성향도 남지 않도록 손톱을 없애고 있었다. 내 손으로는 그 누구도 긁히지 않고, 다치지 않는다. 내 입도 그 누구도 공격하거나 물어 뜯지 않는다. 오직 내 손과 손톱만 물어 뜯을 뿐이었다. 자해치고는 꽤나 시적인 자해가 아닌가. 이렇게 쓰고 있지만 이 시적인 자해로 상한 손을 내 보이는 것은 부끄럽다.
그것도 병이라고, 교조증이라는 이름이 있다는 글을 읽고서 병은 신에게 기도하는 것보다 병원에 가는 것이 빠르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나는 의사를 좋아하지 않아 (정확히 말해 직업적으로가 아니라 의사가 되는 인간 종류를 싫어해서), 일단 먼저 스스로 한번 사람들이 교조증이라는 병이자 동시에 내게는 흡연과 같은 중독과 한번 싸워 보기로 한지 3주가 되었다. 손등에 난 상처는 이번에는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연고를 바르고 기다렸더니 두 주만에 완전히 나았다. 손톱도 제법 자랐고, 손톱 주변에 피부가 갈라지고 상한 부분도 내가 보기에는 80% 정도 회복이 되었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손톱이 자라니까 이전에는 없었던 다른 감각 하나가 생긴 것 같이 손톱 아래가 아린 느낌이 들고, 손가락 끝에 힘이 들어한다. 책장을 넘길 때 손가락 끝이 아니라 손톱이 먼저 닿는 것은 정말로 23년만에 느끼는 감각이다. 자판을 칠 때 C, N, M 등의 문자열 맨 아래는 손가락이 아니라 손톱으로 미끌려지듯이 치게 되는데 그 때마다 들리는 손톱과 키패드가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와 손톱에서 전해져 오는 감각이 낯설게 느껴진다.
엄마 젖을 덜 빨아서 손톱이나 물어 뜯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설명보다는 내가 정확히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살이 급격하게 쪘다는 것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중학교 1학년 때는 덩치는 컸지만 그렇다고 내가 고도 비만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중학교 2학년이 되자 몸이 급격히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어두워 졌고, 손톱으로 마음을 달래기 시작했다. 그렇다. 내가 손톱을 물어 뜯은 것이 아니다. 뚱보자아가 나를 물어 뜯기 시작한 것이다. 뚱뚱한 나를, 내 손을, 내 손톱을 말이다.
2016년 3월 16일. 지난 주말은 현미로 된 김밥집을 찾아 떼운 끼니가 많았다. 현미김밥이라면 평생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데, 밥알을 자세히 보니 꼭 백미처럼 보였다. 만일 속이는 것이라도 기분 좋게 속기로 했다. 그래서 진짜 현미인지는 물어보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오늘 아침은 미역국을 먹었고 여주 가루를 먹었다. 여주 가루는 목 뒤로 넘어가면 말도 못하게 쓴 편이라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점심 때 주변 산을 한시간을 걸었고 아메리카노를 한잔 마셨다. 오후에는 아이와 함께 오리고기를 먹었는데, 이제 오리고기도 많이 먹지는 못한다는 생각에 먹으면서도 뭔가 참울한 기분이 들었다. '오리고기와 혈당'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니 오리 고기의 기름을 떼어내고 먹으면 괜찮다는 내용이 나왔는데, 제길 오리고기에서 기름을 빼면 그걸 오리고기라 할 수 있나? 그런 식이라면 만두에서 만두 속을 빼면 만두가 되나? 냉면에서 면을 빼고, 잡채에서 당면을 빼고, 비빔밥에서 밥을 빼면 그게 냉면이고 잡채고 비빔밥인가. 저녁식사를 마치고 아이와 목욕탕에 다녀왔다. 요근래한 운동 중에 가장 격렬한 운동이었다. 무엇보다 몸에서 때를 벗겨내는 것은 손톱을 물어 뜯을 때 못지 않은 쾌감이 있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목욕을 마치고 아이가 편의점에 가자고 졸라댔다. 아빠는 먹을 것이 없으니 네 것만 사라고 하니, 아이는 같이 먹자며 이렇게 말했다. "아빠, 얼굴 좀 작아졌어. 턱 쪽에 붙어 있던 살이 좀 나갔어". 다음 주에는 용기를 내어 체중을 달아 보리라.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무거운 용기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