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관한 일기 대신 책 – 팻(돈 쿨릭과 앤 메넬리 엮음)
몸, 특히 뚱보에 관한 문화인류학적 보고서

매주 금요일 교통방송에 나가서 책을 소개한다. <팻>은 내가 17번째로 소개한 책이다. 지금 서경식 선생님은 아주 날씬해지셨지만 10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덩치가 크고 머리도 아주 짧게 자르시고, 중절모에 검은 코트를 입고 다니셨는데, 서경식 선생님을 내게 소개시켜 주셨던 사학과 I 교수는 내게 "따뜻하고 다정한 분이시지만 실제 만나뵈면 야쿠자처럼 보일 수도 있다"고 하셨다. 서울에 선생님께서 계실 때 선생님께 비만인권리투쟁협회, 비투협을 만들어야 한다고 농담을 했었는데 선생님께서는 그저 웃기만 하셨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가끔 비투협에 대해 언급하셨다. 나는 정말 그런 협회가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비만인권리협회가 미국에서 소수이지만 현재 활동을 하고 있고, 이 책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활동이나 철학이 아주 섬세하다. 예를 들어 협회 소속원들이 다이어트를 하는 것은 모순적일까, 우리의 주장이 청소년들에게 전달되는 것은 과연 바람직할까 등등의 진지한 고민, 그리고 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뚱뚱하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묻는 등의 캠페인은 섬세하게 계산하지 않았다면 이뤄지기 어려웠을 활동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내용은 뚱보 인권운동가에게 "사이즈가 얼마냐?"고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이다. 사이즈는 달라진다고 한다. 브랜드마다 다른 사이즈를 입고, 셔츠와 코트와 바지를 살 때도 같은 사이즈가 아니고, 시기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그리고 그들은 비만인들에게 맞는 옷 사이즈가 제공되지 않는 브랜드 매장 앞에서 공격적 시위를 하기도 한다. 나만 해도 이 정도 몸집이 되면 어지간한 브랜드에는 사이즈가 없을 때가 많다. 나는 폴 스미스에서 만든 옷을 예쁘다고 생각해 왔는데 여태 단 한번도 사입어 본 적이 없다. 사이즈가 없어서 둘러보다 그냥 나오기 민망해 머플러를 하나 산 것이 전부다. 랄프로렌은 예민한 디자인 감각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선호할 만한 브랜드가 아닐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폴로가 없다면 기성복 라인에서 내 몸에 맞는 남방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20대 초반에는 제일모직에서 나온 푸부라는 브랜드가 있었는데, 지금은 잘 찾아보기 힘들고 내 나이대에 걸맞는 디자인도 아니다. 백화점 점원들은 내가 너무 커서 맞는 옷을 팔 수 없는 것을 안타까워 하지만 시장 상인들은 나와 눈을 마주치면 "사이즈 없어요"라고 물을 기회도 주지 않는다. 심지어 제주에 어떤 시장에서는 사이즈를 볼 수 있냐고 물으니 상인이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아무 말 없이 다시 보던 TV를 보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살을 가장 빼고 싶은 이유를 들자면 폴로 말고 다른 옷을 입어 봤으면 하는 것이다!

이 책의 가장 강렬한 메시지는 다이어트는 항상 실패한다는 것이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의 76%는 다이어트를 시작한지 3년 뒤에 다이어트 이전보다 살이 더 찌며, 5년 뒤에는 95%나 살이 더 찐다”는 통계를 마주하면 내가 저 통계 안에 들어간다는 사실에 뭔가 모를 안도감이 생긴다. 나는 95%니까 요요가 온 것은 내 절제력의 부족이 아니라 보통의 인간에게는 당연한 것이라 생각에 말이다. 저자들은 다이어트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매번 실패할 수밖에 없는 다이어트의 제단에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것의 합리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온갖 병과 낮은 자존감, 불편의 원인이 비만인 줄 알면서도 살을 빼지 못하는 것일까?

‘스팸’을 다룬 장에서 한가지 대답을 찾을 수 있다. 하와이는 미국에서도 스팸 소비가 가장 많은 지역이고, 스팸과 관련된 축제도 열릴 정도로 이 고기 통조림을 좋아한다. 물론 하와이 사람들도 스팸이 건강에는 좋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스팸을 왜 좋아하는 걸까? 스팸은 통조림 제품이라 2차 대전 당시에 미군들에게 식량으로 보급되었는데, 진주만 공습 후 하와이에 미군이 증강되면서 군인 뿐만 아니라 스팸이 들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또 진주만 피습 후에 미국 정부가 근해 어업을 금지하면서 하와이 사람들의 주식인 생선이 귀해진 반면에 스팸은 구하기 쉽고 저렴했다. 하와이에서는 전쟁의 힘든 시기를 성공적으로 이겨낸 것을 연상시키는 ‘그리운’ 음식이 되었고, 해를 거듭하면서 전통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내게 빗대자면 일종의 “만두” 같은 거다. 아버지께서 늘 사다주시던 중국 사람이 운영하는 가게의 군만두 같은 것 말이다.
살을 빼지 못하는 것은 이런 문화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이유도 있다. 라틴랩의 거장인 ‘빅 펀’은 사망 당시 몸무게가 698파운드, 그러니까 316킬로그램이었다. 어렸을 때는 뚱뚱하지 않았지만 섭식장애를 앓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헤로인 중독자였고, 양아버지는 아주 폭력적이었는데 거기에 대한 분노와 좌절감으로 빅펀은 벽에 구멍을 내서 벽돌 부스러기를 먹곤 했다. 부모의 방치나 학대로 이식증이 생긴 것이다. 빅펀은 돈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식욕을 채우는데 집착했고, 체중이 급격하게 불어났다. 그리고 결국은 28살의 나이에 심장병으로 죽었다. 빅펀이 살을 빼지 않은/못한 것은 빅펀의 마음 속에는 ‘학대 받아 배고픈 자아’와 ‘뚱보 자아’가 모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라 미국의 힙합 문화에서는 ‘크기’를 ‘힘’으로 여기는 문화가 있었다. 마치 큰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 권력을 상징하는 것처럼 큰 몸집은 힘과 성공을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힙합 가수들은 헐렁한 옷을 입고 신체를 더 크게 보이도록 만든다. 유럽의 귀족들도 큰 덩치를 권력으로 여겼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빅펀은 살을 빼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책은 다이어트가 항상 실패인 이유를 직접 말하지는 않지만 이 외에도 ‘비만’을 읽는 다양한 비평적 관점을 제시해 준다.
방송에서는 하지 못한 이야기가 많은데, 특히 뚱보 포르노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할 수 없어서 아쉽다. 뚱보 포르노에는 뚱보 여성이 성관계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저 가슴과 배를 드러내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생크림을 숟가락으로 떠먹는 모습을 비춰 준다는 것인데, 저자는 말년에 푸코가 가학/피학 성애에 대해 말을 많이 했다는 것을 가져와서 아마 푸코도 뚱보 포르노에 열광했을 것이라 예상한다. 푸코의 관점에서 이런 '변태 성향'은 남근 중심의 성적 욕망이 재배치된 결과이다. 보통 포르노 영상은 금지되고, 소수적인 취향을 미세하게 반영한다. 엄청나게 뚱뚱한 여자가 마음껏 음식을 먹는 것을 보는 것은 '금지'에 대한 도전이라는 점에서 별 차이가 없다. 뚱보 포르노에서 '비대한 살'은 역겹거나 혐오스러운 것이 아니라 사랑스럽고 욕망의 대상이 된다. 성기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과 비슷하게 말이다. 뚱뚱한 여자가 나오는 포르노가 성적으로 매력적일 것이라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지만 깡마른 여자보다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이 책은 '뚱뚱하다는 것'을 철학적으로, 문화사회학적으로, 인류학적으로 해명하는 여태 보지 못했던 책이다. 마지막으로, 솔직히 말해 잘 읽히지는 않는다. 그래도 팻에 대해서만큼은 팻하게 담고 있는 아주 내실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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