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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평점 :
부기.
나는 한 주에 한 번 교통방송에 나가 책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 올리는 인터뷰 형식의 리뷰는 모두 그 방송에서 10~12분 정도 책을 소개한 내용의 전문이다. 교통방송을 집에서 듣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라디오가 결국 자동차용 매체가 되긴 했지만 교통방송은 특히나 운전을 많이 하는 분들이 즐겨 청취하는 채널이다. 그래서 작가는 항상 내게 보다 쉬운 책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한다. 소개도 쉬워야 한다. 나도 쉽게 써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내가 처음으로 방송에서 소개했던 책이 서경식 선생의 <내 서재 속 고전>이었는데 방송도 나가기 전에 청취자 수준에 비해 어려울 것 같다는 피드백이 돌아왔다. 책은 어렵지만 소개는 쉽게 해줬다는 평을 들었지만, 작가와 PD가 소개해 줬으면 하고 예를 든 책은 '라면을 끓이며'나 '미움 받을 용기' 같은 책이었다. 제목에서 이미 후크가 있는 베스트셀러라야 청취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책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항상 쉬운 글을 써달라고 나는 부탁을 받는다. 쉽게 쓰더라도 어려운 책이면 안된다.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라디오의 청취자들이 '투명사회' 정도 수준의 독서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제하는 것 같다. 지난 번에 소개한 '사랑하는 안드레아'나 '이노베이터의 탄생'도 어려운 책이라 청취자들이 관심을 갖기 어려울 것이라 단정해 버린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는 남들이 다 아는 유명한 책과 소개 없이도 읽을 수 있는 쉬운 책들을 별로 소개하고 싶지 않다.
신문에서도 마찬가지다. 칼럼을 쓰면 항상 '지나치게 철학적이다'라는 평이 돌아온다. 돌려말했지만 어렵다는 것을 내가 철학전공자라는 것을 보고 철학하는 사람은 글을 어렵게 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어느 신문에 썼던 글에 대해서도 기자는 '쉽게 써달라'고 했다. 사실 내가 그 신문에 소재로 쓴 그 책은 내가 쓴 글보다 훨씬 더 어렵다. 그리고 책의 모든 글은 어느 신문사에 1년 이상 신문 한면 전체에 한 주에 한번씩 연재되었던 글이다.
그러니까 글이 독자에게 어렵게 느껴질지 어떨지를 생각하지 않고 글을 쓰기 위해서도 어떤 자격이 필요하다. 글을 어렵게 쓰더라도 이미 독자층이 확보되어 있는 경우나 이미 직업적으로 어려운 말을 해도 좋다고 암묵적인 허락을 받은 경우, 그러니까 교수들이나 변호사들, 평론가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일부러 어렵게 쓰지 않는다. 내 위치에서 보이는 사실과 어려움을 글로 드러내기 위한 과정에서 최대한 쉽게 쓰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런 의도가 실패하거나 주제가 일반적이지 않아서 어렵게 읽혀지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공적 발언권을 얻지 못하고 좁은 나만의 공간에서 독백에 가까운 이야기와 글을 쓰며 살았다. 그리고 가끔씩 신문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게 허락한 최소한의 발언권을 얻기 위해 신문사나 언론의 요구에 맞춰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쉽게 쓰라'는 요구는 내가 내 목소리를 내기 위해 얻고자 했던 발언권의 의미를 훼손시킨다. 신문에 글을 쓰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그 때문에 정작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못쓰게 된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읽고 싶은 책을 소개하고, 쓰고 싶은 글을 쓰면 다시 나는 독백의 방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청취자와 독자에게 나는 소통불가능한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고, 사실상의 독백에 불과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나 역시도 어려운 글을 쓸 권리가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을 구분하며 책을 읽어왔고, 어려운 글을 마음을 쓰고 시간을 내어 읽어주려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어쩌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쉽게 쓰고 싶다. 아직 내게 2000자로 생각을 담아 낼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으로 변명을 할 뿐이다. 쉬운 글은 아니지만 쉽게 쓰려고 노력했기에 쉽게 쓰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것만은 알아줬으면 좋겠다.
투명사회
1.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네, 이번 주에 제가 소개해드릴 책은 출판사 문학과 지성사에서 만들고, 한병철이 쓴 <투명사회>라는 책입니다. 제 전공이 철학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이 책은 우리 사회에 대한 철학적 진단이 담겨 있는 책입니다. 한병철 선생님은 <피로사회>, <시간의 향기>라는 책에서도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날카롭게 진단하기도 하셨는데요, 특히 <피로사회>의 경우는 인문학 분야에서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인기를 얻은 책입니다. 현재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 교수로 있고요, 오늘 소개할 <투명사회>도 독일어를 쓰여진 것을 서울대 김태환 교수가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도 좋아 잘 읽힙니다.
2. 잘 읽힌다고는 하셨지만, 사실 철학이라고 하면 어렵게 느껴지거든요. 철학적 진단을 담고 있는 책이라니 일반 독자들에게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데요.
철학이라는 말만 들어도 어렵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글이 어렵다는 말을 돌려 말할 때 ‘글이 너무 철학적이다’라고 말할 정도니까요. 사실 저도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쓰면 그런 평을 받기도 하는데요, 오늘은 책에 대해서 말씀 드리기 전에 ‘철학책’을 읽는 방법에 대해서 먼저 말씀드려보고 싶습니다.
사실 제가 알려 드리는 방법이 철학책 읽기를 쉽게 해주지는 않을 거에요. 그래도 철학책을 읽는 것이 대단히 재밌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도움이 되실 겁니다. 철학책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철학자들이 개념을 아무 설명 없이 그냥 사용하기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사실 철학자들은 글을 쓸 때 항상 어떤 상황이나 현상을 염두에 두고 씁니다.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내용이 나온다면 이 사람이 어떤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시면 글이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면, 이 책 <투명사회>도 언뜻 보면 추상적인 내용처럼 보이지만 요즘 자동차마다 설치된 ‘블랙박스’를 생각하면서 읽는다면 전혀 어려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블랙박스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 철학자의 글이 정말 맞는 말인지 따지고 물어가면서 읽어보면, 철학책만큼 재밌는 책이 또 없거든요. 이 책의 내용이 어떤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인지 생각하면서 읽으면 어려운 철학책이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요. 그리고 사실 <투명사회>는 본격적인 철학책이기 보다는 철학에세이라 보시는 편이 맞습니다.
예전에 제가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라는 책을 소개해드렸던 적이 있죠? 그 책도 소설 읽듯이 읽으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만, 실제로 우리가 책을 읽는 방식과 책의 내용을 비교하면서 읽는다면 재미있는 독서가 되는 거죠.
3. 말씀을 들어보니 소설이나 시 읽기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경험을 비춰보게 되잖아요?
네, 그렇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공감이 되는 때는 소설 속 내용이 우리 삶의 경험과 일치한다고 느낄 때이니까요. 지어낸 이야기인 소설이 진실이 되는 것이 바로 그럴 때죠. 그런데 문학은 이야기가 있다보니 몰입이 쉬운 편인데 철학책은 그렇지 않다보니 읽기가 상대적으로 어렵게 느껴지는 거지요.
오늘 소개해드릴 <투명사회>라는 책도 우리가 매일 만나는 현실의 경험에 비춰서 읽어나가면 정말 재미있는 책입니다. 금방 블랙박스 말씀을 드렸는데요, 블랙박스 제품 중에 ‘다본다’라는 것이 있거든요. 아시나요? 그런데 벤담이 생각한 원형감옥의 이름이 판옵티콘인데요, 판옵티콘에서 pan이 ‘전부’라는 뜻이고, optic이 ‘본다’는 뜻입니다. 원형감옥은 한 사람이 중앙에서 죄수 전부를 감시하는 구조로 이뤄져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여졌는데요, 블랙박스 ‘다본다’는 우리 사회가 일종의 감시 체계인 원형감옥 판옵티콘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거죠.
4. 아, 그러니까 투명사회를 ‘원형감옥’과 같은 사회로 생각하면서 서로 서로를 감시하는 사회라고 생각하는 것이군요. 그런데 블랙박스만 하더라도 저자의 말처럼 꼭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가 있을까요? 블랙박스 덕분에 생긴 장점도 많은데요.
네, 우리 경험에 비춰보면 꼭 블랙박스의 장점이 있어서 좋은 점이 참 많지요. 블랙박스 덕분에 교통사고가 났을 때 과실을 더 정확히 따질 수 있게 되어서 억울한 일이 줄어들고, 범죄 예방이나 범인 검거도 더 용이하게 된 것은 분명히 좋은 점이라 할 수 있을 거에요. 그런데 한병철 선생님은 그것을 “좋게만”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즉 투명한 사회가 항상 좋기만 한 것인지, 정말 개인과 사회에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는 건데요, 이 책에는 꼭 그렇게만 볼 수 없는 이유가 무수하게 나오고 있어요.
한 예로 ‘투명한 정치를 만들자’라는 구호는 언뜻 보면 바람직한 요구지만, 정보를 즉각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하다고만은 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정치인들이 장기적 계획을 세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지게 됩니다. 즉흥적이 되는 거죠. 투명해져야 한다는 것은 ‘정직해져야 한다’는 말이기도 한데요, ‘정직’은 신뢰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덕목이지만, 정치적 통치술이기도 해요. 주인이 노예와 같이 일하지 않는 한 노예에게 정직해야 한다고,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쳐야 ‘관리와 통제’가 가능하니까요. 영화 <노예 12년>을 보면 흑인노예를 일요일 아침에 불러 모아놓고 백인 주인이 정직해야 한다고 설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투명해야 한다는 요구도 맥락에 따라 살펴봐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하고 있는 겁니다.
5. 조금 이해가 되는데요, 긍정적으로 보이는 것도 꼭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런 뜻으로 이해할 수 있겠네요.
방금 말씀하신 그런 면 때문에 한병철 선생은 ‘부정성’의 철학자라고 불립니다. 부정성이라는 말도 말은 어려운데 의미는 단순합니다. 우리가 소위 부정적이라 여기는 것들의 가치를 생각해보자는 말인데요, 우리는 나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것, 나의 의지와 통제에 따르지 않는 것, 나에게 거역하는 것, 내가 원하지 않는 것,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 혐오스러운 것, 이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여기는데요, 금방 말씀드렸던 것처럼 부정적인 것이 꼭 나쁜 것만이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까 투명하지 않는 것이 반드시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는 겁니다. 사실 ‘자유롭다’는 기분이 언제 가장 크게 생겨나는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나 외에는 아무도 없는 집, 비밀스러운 시간, 나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고 나를 아는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곳, 그러니까 내가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은 자유롭다고 느끼고, 새로운 생각과 꿈을 꾸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페이스북에는 이런 부정성이 없죠? 오직 마음에 드는 글에 반응할 수 있는 ‘좋아요’ 버튼만 있고, ‘싫어요’ 버튼은 없습니다.
6. 정말 그런 면이 있네요. 우리 사회는 그런 부정적인 것들이 없는 상황을 오히려 자유로 느끼는 때가 많지만, 모든 것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것도 자유롭지 않을 것 같아요.
역사와 문명이 진보하는 과정이라는 것이 나의 의지대로 되지 않고,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을 축소시키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스마트폰은 궁금한 것을 더 이상 참지 않아도 되도록, 필요한 정보를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도록 해서 불편을 엄청나게 줄여줬다고 할 수 있을텐데요, 다른 한편 우리는 스마트폰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나요? 끊임 없이 SNS에 접속을 하고, 강박적으로 검색을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게 된거죠. 그런데요, 이것이 단지 중독을 초래한다는 것은 정말 사소한 문제에 불과합니다. 한병철은 우리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사적인 사진과 글을 마치 노출증 환자처럼 끊임 없이 올리고 자신의 정보를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공개하는 것이 모두 자본주의 기업들의 요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페이스북을 보면요, 거기 자신의 이름이나 얼굴만 올리는 것이 아니에요. 출신학교, 좋아하는 책, 연예인, 영화, 온갖 취향까지도 공개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좋은 마케팅 재료인거죠.
검색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구글이나 네이버 등 검색 사이트에서는 개개인들이 무엇을, 어디서, 언제 검색했는지 모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게 범인들 검거에는 확실히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사실은 기업과 국가가 마음만 먹으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관리하고 지켜볼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 책은 <투명사회>는 사회는 사실상 통제 사회와 다를 바 없다고 진단하는 겁니다.
7. 애플이 아이폰 사용자의 위치를 추적해서 기록해서 몇 년 전에 문제가 되었던 적도 있었죠? 인터넷 사이트에 회원 가입을 하면서 무심코 하게 되는 ‘정보제공동의’에 그런 의미가 있었던 거네요.
카카오톡의 경우도 그렇죠? 카카오톡에서 오고 간 이야기가 모두 저장되어 있어서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기업에 정보를 요구했던 적이 있다고 하는데요, 이 책에 따르면 바로 감시 사회가 디지털에서 완성되었다고 보는 겁니다. 이 책에 따르면 투명사회는 감시사회, 통제사회인데요, 결국 이것은 인간 관계의 타락으로까지 이어진다고 합니다.
8. 관계가 투명하면, 관계면에서는 더 좋을 것 같은데 그건 왜 그런 걸까요?
아까 한병철 선생을 ‘부정성의 철학자’라고 소개해드렸는데요, 이 책에서는 ‘오직 투명한 것은 기계 뿐’이라고 합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본래 불투명하고, 그래서 그 불투명함 때문에 ‘신뢰’라는 것이 중요해지고 깊은 인간 관계도 생겨난다는 거죠. 투명하기만 하면 다른 사람을 신뢰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모든 것이 투명할 때 ‘믿음’이라는 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것이 되는거죠. 상대가 다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다 드러나지 않는 그런 비밀스럽고 은밀한 부분에 대해서까지도 믿는다는 것이 믿음의 가치이지, 투명하게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것을 믿는다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인 거니까요. 깊은 인간 관계라는 것이 ‘믿음’에 기반하고 있다면, 더 이상 누군가를 믿을 필요 조차 없이 투명한 사회에서는 인간관계가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이 책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기계는 우리를 속이지 않지만 기계와의 관계가 깊은 관계일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죠.
이런 가정을 한번 해볼까요? 만약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을 내게 말했다거나, 친구가 가장 숨기고 싶은 과거를 내가 우연히 알게 되었다고 가정을 한번 해봐요. 이 경우 두 사람 간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가장 친밀한 사이에서 가장 은밀한 이야기를 했으니 관계가 더 깊어질까요? 아마 이런 경험을 해보신 분은 공감하실텐데요, 이런 경우 서로의 비밀이 서로에게 알려지는 순간 그 관계는 얼마가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그 비밀을 말해 준 친구가 그 사실을 숨기고 싶었을 때 내가 그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불편하게 느낄 것이 분명하거든요. 비밀은 비밀로 남아 있는 것이 관계를 오래동안 유지하기는 훨씬 좋지요.
9. 아 그런 면이 있겠군요. 우리 청취자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에 대해서 정리해주시죠.
이 책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좋은 것이라 인식하는 것들의 다른 측면을 보도록 도와줍니다. 투명성에 대한 요구가 지배자의 통치술일 수 있고, 감시와 통제를 가능하게 한다는 거죠. 친밀함이라는 것도 무조건 긍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적인 삶이 무너진 자리에 사적 관계가 자리잡게 되니까요. 우리 사회의 지역주의 문화나 학벌 문화나 이런 것이 모두 법과 공공성 대신에 사적인 친밀함이 중시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일 수 있는거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도 우리에게 더 넓은 관계를 맺도록 도와주지만 우리가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과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으로 진짜 관계를 맺지 못하고, 편리한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우리를 오히려 가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이 책은 말합니다.
이 책은 얇고 작은 책이지만 결코 쉬운 책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차마다 붙여진 블랙박스를 생각하면서, 인터넷과 SNS, 디지털 카메라를 생각하면서 읽어보신다면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독서 경험이 되실 겁니다.
이 책에는 한계점도 적지 않습니다. 책의 전체 내용이 투명사회라는 현실에 대한 스케치에 치중되어 있어서 대안을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또 책을 다 읽고 나면 출구가 없다고 느껴지는 점, 그리고 내용이 지나치다 할만큼 관념적인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즉 페이스북의 시대, 블랙박스의 시대의 어두운 측면을 직시하는 힘을 갖길 원하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