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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 호텔 ㅣ 스토리콜렉터 101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지음, 김미정 옮김 / 북로드 / 2022년 5월
평점 :
전면이 초대형 판유리로 둘러싸인 고풍스러운 호텔, 카이에트. 주변의 황무지와 대비되는 호텔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선 초현실적인 요소를 느끼게 만들었다. 완벽해만 보이는 이 오성급 호텔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낙서 하나가 새겨졌다. ‘깨진 유리조각을 삼켜라.’
의미를 알 수 없는뿐더러 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불길한 낙서의 등장에 사람들은 당연히 이 낙서를 한 범인을 찾아나선다. 배다른 여동생 빈센트와 함께 호텔에 들어온 폴은 동료에 의해 범인으로 지목되었고, 결국 이 일로 인해 호텔에서 해고를 당한다. 한편, 여동생 빈센트는 호텔의 소유주이자 금융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누리고 있었던 조너선 알카이티스의 구애를 받아들여 대외적 아내 행세를 하는 등 승승장구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그로부터 수년 뒤, 공해를 지나던 컨테이너선의 선상에서 한 여성이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실종된 신원 불명의 여성, 그리고 실종사건을 조사해달라 의뢰를 넣은 리언 프레반트, 사건의 내막이 밝혀짐에 따라 과거에 일어났던 한 사건이 다시 재조명된다.
조너선 알카이티스는 호텔의 손님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사업 구상 계획을 미끼로 투자자들을 끌어들었고, 전형적인 돌려막기 방식으로 그동안 대규모 금융 사업을 유지해왔던 것이다. 단단해만 보이는 유리가 자그마한 충격에도 쉽게 깨지듯이 찬란한 그의 사업은 허무하리 만큼 손쉽게 무너져내렸다. 폰지사기라는 것이 들통난 후 체포된 그는 법정 170년을 선고받고 복역하게 된다. 리언 프레반트 역시 그 사건의 피해자였다.
폰지사기란? 실제 이윤 창출 없이 나중에 들어온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나누어 주는 다단계 금융 사기. 1920년대에 폰지(Ponzi, C.)가 벌인 사기 행각에서 비롯하였다. (네이버 국어사전)
조너선 알카이티스로부터 시작된 돈의 왕국은 이에 협력하는 이들과 이를 알고도 모른 척 방관했던 이들로 인해 더욱 굳게 다져져왔다. 마치 오성급 호텔의 통유리 안에서 바깥을 구경하고 싶을 뿐, 정작 황무지까지 가고 싶지 않아하는 카이에트 호텔의 손님들처럼 말이다.
<글래스 호텔>은 2008년에 실제로 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 출신의 펀드매니저 버나드 메이도프는 자신의 이름을 내곤 ‘버나드 메이도프 투자증권’을 설립해 금융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집, 수많은 피해자와 총 650억 달러 규모의 피해액을 낳은 희대의 폰지사기 사건이다. 자그만치 38년동안 지속되어온 버나드 메이도프의 사기행각은 2008년 체포된 그가 150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됨으로써 막을 내렸다.
폴과 빈센트, 조너선 알카이티스, 리언 프레반트 등의 인물을 통해 소설은 폰지사기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의 군상극을 보여주고 있다.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은 이미 전작인 <스테이션 일레븐>을 통해 접해본 적이 있었다. <스테이션 일레븐>에서는 전염병으로 대부분의 인류가 멸망한 아포칼립스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면, <글래스 호텔>에서는 실제 일어난 폰지사기 사건을 중점으로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