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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심장 ㅣ 스토리콜렉터 100
크리스 카터 지음, 서효령 옮김 / 북로드 / 2022년 3월
평점 :
우리는 언제나 자극적인 소설에 열광한다. 그것은 화끈한 수위를 자랑하는 로맨스소설일 수도 있고, 잔혹하고 끔찍한 방식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마가 등장하는 스릴러소설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그런 소설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야 당연한 말이지만 재미있으니까. 특히나 잔악무도하지만 한편으로는 똑똑하고 매력적인 연쇄살인범 캐릭터는 그 이유로 대기에 충분하다. 스토리 콜렉터 100번째 작품으로 출간된 <악의 심장>은 띠지에서부터 토머스 해리스의 유명한 저서 <양들의 침묵>을 능가한다는 자극적인 문구를 앞세우고 있다. 이 타이틀 보니까 오랜만에 다시 <양들의 침묵>을 읽고 싶어지네.
책의 내용은 와이오밍주의 한 식당 앞에서 벌어진 교통사고로부터 시작되었다. 평소 심장질환을 앓고 있던 트럭 운전자가 갑자기 심장발작을 일으켜 사망, 트럭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그대로 나아가 식당 입구를 들이받았으나 빠른 대피로 인해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사건 자체로 보면 특별한 것이 없다. 실제로도 차량 급발진 등의 이유로 차량이 도로 아래로 추락하거나 근처 건물을 들이받고 인명피해를 낸 사건이 종종 뉴스에 나오니까 말이다. 하지만 원인과 결과가 단순해보이는 이 교통사고가 가져온 파장은 의외의 곳에서 찾아왔다.
트럭 운전자가 친 차량에서 누군가의 시체가 발견된 것이다. 그것도 차마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끔찍하게 훼손된 두 여성의 잘린 머리가 말이다. 누구도 예상치못했던 우연은 희생자에게는 다행을, 범인에게는 불행을 가져왔다. 유력 용의자는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이대로 범인의 자백만 받아내면 일이 쉽게 해결되는 듯 했다. 하지만 용의자는 자백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다 단 한 사람 로버트 헌터를 지목해 데려오길 청한다. 용의자는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째서 관할도 아닌 로스엔젤리스 경찰국의 강력계 형사인 로버트 헌터를 지목한 것일까?
그 이유는 오직 용의자, 루시엔 폴터 본인만이 알고 있다. 여기서 새롭게 밝혀진 점, 루시엔 폴터는 로버트 헌터와 같은 대학에서 범죄심리학을 같이 전공했으며 한때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사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둘은 위치가 반전되어 각각 심문자와 연쇄살인범으로 다시 재회했다. 이 책에서는 스토리가 진행함에 따라 하나의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인간은 처음부터 악하게 태어난 것일까? 아니면 주변의 불운한 환경이 그를 그렇게 만들어낸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소위 범죄자 유형은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것일까? 루시엔 폴터의 악랄하기까지 한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악(惡)은 타고나는 것이라는 그의 말이 묘하게 설득된다.
서로를 잘 안다는 점은 득보다 독에 가깝다. 잘 알기에, 아니 적어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기에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한다. 심리전이 이어지자 루시엔 폴터는 로버트 헌터의 약점을 잡고 정신적으로 농락하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이제 로버트 헌터는 루시엔 폴터 본인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잊고싶은 끔찍한 과거와도 싸워나가야 한다. 구태여 사이코패스나 쾌락살인자 같은 소위 괴물이라고 불리는 부류가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주변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은 있다. 잔인함에 치를 떨고 때때로 분노가 치밀어 오를지라도 다시금 이런 책에 빠져드는 이유도 사실은 이런 악인들의 심리가 궁금해서가 아니었을까?
“너희들은 항상 냉혹한 살인마의 정신세계가 어떤지 알아내려고 하지.
어떻게 나 같은 괴물이 생겨났을까, 하고 말이야.
하지만 나 같은 ‘괴물’도 너희 같은 사람들의 머릿속을 알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