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
디파 아나파라 지음, 한정아 옮김 / 북로드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에는 주인공 자이를 비롯한 아홉 살 남짓의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 사실만 보고 처음엔 적당히 현실을 각색한 동화풍의 이야기가 아닐까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아이들을 위해 쓰여진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함께. 저 분홍분홍하고 샤방샤방한 표지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정작 몇장을 넘기자마자 내가 생각했던 것들은 착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동화 같은 제목과 표지에 그렇지 않은 내용이랄까.  

 

다른 나라, 이를테면 미국이나 중국이라고 하면 그 나라에 대해 아는(혹은 적어도 안다고 생각하고 있는) 배경지식을 한무더기 풀어놓을 수 있었을텐데 정작 인도에 대해 아는 내용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나마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조차 세계 2위의 인구수, 신분제(카스트제도)가 아직 남아다는 점, 해외토픽에서 봤던 기사 몇줄, '걸어서 세계 속으로' 같은 여행 프로에 나오는 단편적인 풍경이 전부다. 특히나 인도의 빈민가에 대한 지식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인도는 세계 2위의 인구수를 가진 나라인 동시에 빈부격차가 매우 극심한 나라이기도 하다. 아홉 살 소년 자이가 사는 곳 역시 그러한 인도의 빈민촌 중 하나이다. 대기오염이 심해 항상 스모그가 자욱하고 낡고 지저분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곳. 쓰레기장과 장벽을 사이에 두고 부유층들이 사는 호화로운 고층빌딩들과 맞닿은 곳. 먹을만한 것을 찾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는가 하면, 집에 화장실이 없어 공중화장실까지 가서 줄을 서야 하는 등의 모습이 생경스러우면서도 안쓰러웠다. 

 

마을에서 아이들이 연쇄적으로 실종되기 시작했다. 단순가출이라 치부하기에는 그 수가 너무 많다. 누가 일부로 아이들을 납치해가기라도 한 것일까? 그렇다면 어떠한 목적으로? 그러나 정작 아무도 실종된 아이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동네주민들은 물론이요 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할 경찰들이나 언론마저 이 사건에 대해 관심을 뗀지 오래이다. 이 실종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촌장과 사건을 뒷전이요 이를 핑계로 뇌물을 바라는 부패한 경찰들, 이 참혹하다 못해 화나는 현실이 다만 소설 속의 이야기일까? 어떠한 대상이나 국가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싶지는 않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자꾸 그런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러는 와중에조차 실종되는 아이들은 점점 늘어만 간다. 더구다나 실종된 아이들 중에서는 자이의 친구들도 속해 있었다. 이에 보다못한 우리의 주인공 자이가 탐정을 자처하고 나선다. 셜록 홈즈에게는 왓슨 박사가 있다면 자이에게는 수사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훌륭한 조수들 아니 두 친구 파리(9살,여)와 파리즈(9살,남)가 있다. 이 사건을 해결하고자 친구들과 함께 수사단을 꾸린 자이, 이름하여 '보라선 정령 순찰대'이다. 하지만 막 개셜된 이 탐정단의 앞날의 밝고 희망차지는 않다.

 

내가 바하두르를 찾아내면, 사람들은 이런 어리석은 말싸움을 하지 않을 거다. 그 대신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탐정인 나, 자이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바쁠 것이다. (p.77)

 

실종된 친구들을 찾기위해 엄마의 비상금을 훔쳐서 값비싼 보라선 열차를 타러 가는가하면, 또 자신이 훔친 그 비상금을 다시 돌려놓기 위해 자이가 유령시장 내에 있는 찻집 종업원으로 취업하는 등 수사 와중에도 우여곡절도 많았다. 반면 찻집 종업원으로 취업한 것이 뜻밖의 잠입수사가 되는가하면, 예상치못한 곳에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나오는 등 일이 술술 풀린 적도 있었다. 자신의 친구들을 비롯한 실종된 아이들을 찾아나선 자이의 용기있는 행동은 과연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부디 이 소설이 여타의 어린이 수사물처럼 꿈과 낭만이 넘치는 어린이탐정단이 아니라 인도 빈민가의 현실을 리얼리티하게 담은 하이퍼 리얼리즘이라는 사실을 잊지마시길.

 

"정령?"
"파이즈는 알라신이 정령을 만들었대요.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는 것처럼 좋은 정령, 나쁜 정령이 있대요. 나쁜 정령이 바하두르를 납치했을지도 모른대요."
(p.59)

 

넝마주이 아이들을 돕는 멘탈의 정령, 여자아이들을 도와주는 사거리의 여왕 등 정령들이 주로 바쁜 신을 대신하여 아이들을 지켜주는 선량한 존재로 묘사된다. 그렇지만 물론 반대로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나쁜 정령도 어딘가에는 존재하겠지? 나쁜 정령이 친구들을 납치해갔다고 믿는 자이즈의 생각이 순수하고 그 또래의 아이다운면서도 이들이 마주친 현실이 참담함에 다시끔 한숨짓게 된다.


"궁극적으로 《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은 그 아이들에 관한, 오직 그 아이들만을 위한 이야기다. 나는 그 아이들이 통계수치로 전락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맞서기 위해서 이 소설을 썼다. 숫자 뒤에 숨겨진 그 아이들의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 (작가의 말 中)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